Tatoo on the back

이대철展 / LEEDAECHUL / 李大哲 / installation   2014_0919 ▶ 2014_0928 / 월요일 휴관

이대철_trust me_알루미늄에 채색, 스테인레스에 아크릴채색_49×146×11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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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919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 컴퍼니 긱 Art Company GIG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 31-5 Tel. 070.7795.7395 www.artcompanygig.co.kr

2014년 가을 방배동 아트사이길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 컴퍼니 긱에서는 공모를 통해 당선된 이대철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이대철 작가는 2009년 "invisible visuality" 라는 타이틀로 덕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로 2010년에는 송은갤러리 「Unknown sight」, 2013에는 스페이스 캔 「written on the water, 오래된 집 프로젝트」에서 차례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전시가 진행되어짐에 따라 성숙해져가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올 여름 동화제약 부채표 가송재단에서 기획,주최한 가송예술상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또한 상상마당, 서교예술실험센터, 마포아트센터, TV12등 유명예술공간에서의 20여차례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 이대철 작가의 네 번째 전시 『Tattoo on the back』展에서는 작가자신이 어릴 적 새긴 등 뒤의 문신을 통해 집단 안에서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작가의 시선으로 통찰하고자 한다. 작가는 작품에서 "I LOVE YOU", "FOREVER" 등 인간의 사랑과 감정을 나타내는 글귀를 입체적으로 섞어서 사용했다. 하지만 이를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가시성이 극도로 흐트러지도록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서 인간애에 대한 이중성와 환영, 환상을 민낯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대철작가의 전시는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계속되며 월요일은 휴무이다. ■ 아트 컴퍼니 긱

이대철_IDONTKNOWIFYOULOVEMEBUTIDO_은박 풍선_설치_180×180cm_2013
이대철_foreverreverof_스틸에 채색_140×50×50cm_2013
이대철_forever with_스틸에 채색_60×60×10cm_2014
이대철_fact & fuck_스테인레스에 프린트, 빈공간에 빔, CPU_가변설치_2014
이대철_attentionplease_스틸에 채색_112×150×60cm_2014

"나도 모르게 내 등뒤에 문신이 새겨진다면 나는 언제쯤 알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누가 또 알아봐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문신은 어떤 형태이며 남들에게 혹은 내게 있어서 괜찮은 것일까. 그것은 수정 가능한 문신일까?" 어린 시절 등 뒤에 문신을 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단지 그 당시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멋으로 문신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잘 나가는 사람으로서 인정 받고 싶다는 환상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문신의 이유나 의미를 물어볼 때 거창한 의미를 만들어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문신의 의미는 내가 가진 환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날 특별히 대해줄 것이라 믿었나 보다. 문신의 의미는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아픔이, 또 누군가 에게는 어떤 내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관심이 필요했을 뿐 이였다. ● 경제학 용어에서 "파노플리 효과"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용어이다. 예를 들어 나이키 에어조던을 신고 농구선수 조던처럼 혀를 내밀고 농구를 하는 모습에서 그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관심 받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 에게 있어 "관심"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누군가의 인정이다. 돌이켜 보면 나를 포함한 수 많은 사람은 집단 안에서 인정 받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왜 하필 집단 안에서의 인정 일까. 집단이라 함은 사전적으로 나와 함께 이해를 도모하고 소통하는 조직체이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 이러한 집단은 명과 암처럼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혹은 그들과 같다는 인식을 심어줘야만 한다. 그것이 물건이든 말이든 혹은 행동이든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한 경제학 용어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것 보다는 나의 개인적 행동에서 더욱 유사한 경우를 찾는다. 나의 파노플리 행동은 쉽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 뒤에 찾아오는 누군가의 관심을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파노플리 현상은 일종의 환상을 지칭하는 말인데 나는 누군가의 관심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믿는 환상이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시들어진 관심은 이별을 말하거나 집단에서의 퇴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한 관심은 이내 내게 인정이라는 단어를 갈구하게 만든다. 내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인정 받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도 든다. 그 집단 안에서 머물기 위한 일종의 장치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인정은 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이러한 것은 다양하게 설명 되어 질 수 있는데 부모님께 받고 싶은 인정, 연인에게 받고 싶은 인정, 혹은 앞으로 나를 알아갈 수 많은 사람들에게 받고 싶은 인정 같은 것으로 설명 되어질 수 있다. 즉, 스스로 애정결핍증이 있다고 믿는 나는 인정받기 위해서 사랑을 거짓으로 말하기도 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일종의 거짓, 허영, 허세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비단 나만 그래 왔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집단이라는 것은 유동적인 조직체 안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행동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조차 인정 받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거짓된 행동을 하며 알 수 없는 속내를 비추고는 한다.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다. 혹은 보이지만 알 수 도 없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작업에 녹여보았다. 작업에서 글자라는 재료는 보이지만 보일 수 없는 어떠한 행동이나 말들이다. 인식은 되지만 읽을 수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 글자들은 나의 행동과 혹은 누군가의 숨겨진 행동을 의미한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앞세운 말과 행동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영원히", "사랑", 행복해" 등등의 말들은 읽고 느낄 수 있지만 때로는 얼마나 무의미 하고 거짓된 말인가. "나를 좀 봐줘" 라는 말들이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랑해줘"라는 숨은 의미를 알아주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다는 찰나의 진심들이 영원 불변한 감정이 될 수 있는가 말이다.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그러한 감정들이 내 작업에서는 표현되고 있다. ■ 이대철

Vol.20140919d | 이대철展 / LEEDAECHUL / 李大哲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