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 릴레이展 The 6th Artists-in-Residence of Yeongcheon Art Studio · Relay Exhibition Part1-이두원_이지현展 / 2014_0827 ▶ 2014_0905 Part2-김원준_장종용展 / 2014_0910 ▶ 2014_0914 Part3-김태선_박세호展 / 2014_0917 ▶ 2014_0921 Part4-안진영_유영환展 / 2014_0924 ▶ 2014_0928 Part5_최병규展 / 2014_1001 ▶ 2014_1019
관람시간 / 10:00am~06:00pm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YEONGCHEON ART STUDIO 경북 영천시 왕평길 38(교촌동 298-9번지) Tel. +82.54.330.6062 www.yc.go.kr
□ 김태선_희 노 애 락(애증) 존재의 소리들... 과거와 현재의 대화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생소하고 거창해서 입에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영천 레지던시' 라는 축약된 단어를 붙여 입버릇처럼 부르곤 했다. 김태선 작가와의 인터뷰 혹은 대화를 위해 그 '영천 레지던시' 공간을 방문하던 날은 장대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친숙한 도상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보는 인물들인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드라마 '간난이' 혹은 'TV문학관' 과 같은 드라마의 스틸 컷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시대에 대한 이질감이 있어서 일까 작품을 보는 내내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작품과 나 사이에 간극이 꽤나 벌어져 있다. 조금이라도 틈을 메워보려 작업실 곳곳에 놓인 작품 앞에 마주섰다. ● 초췌한 모습의 한 소녀가 포대기에 축 늘어진 잠든 아기를 업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정면을 바라본다. 그 옆 또 다른 소녀는 뭐가 그리 행복한지 눈동자가 보이지도 않게 환하게 웃으며 업고 있는 아이와 살을 맞대고 있다. 보고 있자니 내 입 꼬리도 함께 올라간다. 불어터진 국수를 한 젓갈이라도 손자에게 먹이려 힘들게 목을 비튼 할머니는 어미 새가 새끼에게 모이를 주듯 필사적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나무에 목을 맨 사람의 뒷모습이 시선을 잡아끈다. 그 순간 뭐라 말로 형언하기 힘든 비애가 밀려왔다. 생(生)과 사(死)는 표리일체(表裏一體)라는 생각이 접착제처럼 발걸음을 붙잡는다.
김태선의 작품에는 삶이 녹아있다. 그것도 남루하고 가난한, 슬픈 생애를 살고 있는 하층민의 삶이다. 결코 녹록치 않을 것 같은 생의 고단함이 그들의 표정을 통해 전해진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인물들은 단순히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외적인 것 그 이상의 무엇을 품고 있다. 그 시대의 사회상과 함께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의 삶 또한 녹아있는 것이다. 작품을 보며 예상은 했었지만 그의 유년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던 척박한 환경은 고스란히 어린 그에게도 전달되었다. 게다가 가족 간의 오랜 불화와 할머니 손에서 자라온 외로웠던 환경은 오래도록 남아 당시의 기억을 되씹게 만든다. 그의 작업이 과거지향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이유다. 또한 작품에는 색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간혹 색채가 눈에 띄지만 그 영역은 미비하며 대부분 검은색이 주를 이룬다. 목탄 색 혹은 먹색으로도 불리는 이 색깔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이며 무거움, 두려움, 암흑, 공포, 죽음 등을 대변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이미지는 흑백사진처럼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극대화 시킨다. 수많은 선들과 면들이 응축된 화면은 마치 판화작업과 같은 거친 느낌을 준다.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더 강하게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거친 목판화를 사용했던 '케테 콜피츠'의 작업처럼 그의 이미지는 거칠면서도 구상적이다. 거칠고 팍팍한 삶속에서 질기게 이어온 삶이 우리 역사의 한 단면임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채화의 붓 자국은 세월의 흔적을 남긴다. ● 작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캔버스에 담는 것이 작업의 목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눈으로 말 그 자체를 듣는 일은 불가능하다. 대신 인간은 다양한 기억과 경험을 떠올리며 눈앞에 있는 이미지에 대입한다. 이런 공감각적 인지를 통해 관객은 지나간 역사의 과거와 현재가 서로 대면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역사의 흐름 속에 잊혀진 한국 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김태선의 캔버스는 개인과 근대사의 트라우마가 접하는 곳이다. 실제 장면에서 병치되어 결합하고 서로 중첩되어 합성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대상을 이루고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 김지윤
□ 박세호_玄音 현음 무질서 속의 질서 ● 박세호는 영천작가이면서 영천작가가 아니다. 영천에서 태어나 영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영천작가이지만, 국제적인 보편성을 띤 작품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영천작가가 아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영천에서 활동하는 서예가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그것이 선입견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현대 서예의 동아시아, 즉 국제적인 추세는 '붓질(筆法)의 추상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문자가 갖고 있는 조형성보다는 붓질이 갖고 있는 서예적인 표현성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 자체가 상형, 즉 이미지적인 속성이 강하지만, 현재 서단에서는 문자 너머의 붓질의 표현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대 미술가들이 서예적인 추상성을 응용하는 이들이 많은 데다, 서예가들이 넘치는 창작의욕을 문자로 한정하기에 일정한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 국제적 보편성을 두고 보면, 박세호는 한국에서 선두에 선 작가다.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문제를 깊이 성찰해왔다. 붓질의 추상성은 일본에서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이제 한국에서 서서히 불기 시작한 신조류다. 동아시아의 서단 가운데 한국이 가장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고 대부분 전통적인 문자에 얽매여 있다. 박세호를 비롯한 몇몇 젊은 서예가들이 그 틀을 과감하게 깨트리거나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그가 추구한 추상적 서예는 2013년 한중수교20주년기념 문자문명전에서 빛을 발했다. 북경예술원 내 중국서법원 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회 작품집(主編;王鏞)의 표지에 박세호의 작품이 당당하게 실려 있는 것이다. 여러 작가가 참여하는 도록의 표지에는 참여 작가의 작품을 모두 싣는 것이 관례인데, 박세호의 작품만을 실은 것은 그에 대한 중국 서단의 지극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 전시회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내로라는 서예가들이 출품했지만, 약관의 박세호가 표지를 장식하는 영예를 얻은 것이다. ● 중국 서단의 관심을 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박세호의 작업이 중국에서 유행하는 붓질의 추상적 실험에 걸맞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거친 붓질로 시원하게 구성했다. 언뜻 거칠어 보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치밀한 시도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지의 비중을 하단이 아닌 상단에 두고 이미지를 좌우에 두어 오히려 가운데를 비어두었다. 상식과 관례를 깬 구성이다. 파격적인 구도가 붓질의 추상성을 더욱 극대화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때론 무질서하고, 때론 거칠며, 때론 즉흥적이다. 왜 그렇게 표현했냐고 물었더니, 그는 혼돈(카오스)의 소리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 대답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혼돈의 소리다. 무질서할수록 원초적이고, 거칠수록 생동감이 넘치며, 즉흥적일수록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사실 혼돈은 원초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영적인 카타르시스다. 그가 자유롭게 거침없이 풀어낸 붓질에는 영적으로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박세호가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작품 제목으로 자주 쓰는 단어 가운데 소리를 뜻하는 '음(音)'이 있다. 왜 소리에 집착하는가를 궁금했는데, 대화중에 그 의문이 풀렸다. 그는 어려서 한쪽 귀가 어두워져서 유난히 소리에 집착이 강하다고 했다. 소리에 대한 유난한 그리움은 영적인 풀어냄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원초적인 세계인 '현음(玄音)', 즉 태초의 소리다. 영적인 소리, 그것은 개인적으로 아픔이지만, 오히려 그로 하여금 평생 붓을 놓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 그런데 그에겐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복잡하고 무질서한 세계에서 질서와 조화를 갖추는 것이다. 몇몇 작품은 나름대로 완성도가 있지만, 많은 작품들이 무질서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어찌 보면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무질서 그 자체보다 질서를 배태한 무질서를 창출했을 때 비로소 그것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혼돈에만 머물면, 그것은 예술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사상의 차원에 가깝다. 혼돈에서 벗어나 조화와 질서를 갖출 때,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예술의 경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내가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세계일 수 있지만, 우리가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세계는 그보다 소박한 세계다. 아직 많은 작품들이 질서보다는 혼돈에 더 가깝지만, 어느 순간 자신만의 질서를 깨우칠 때 아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우뚝 선 존재에 놀라게 될 것이다. 결국 '무질서 속의 질서', 그것이 그가 추구해야 할 세계이자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 그는 영천작가이면서 영천작가가 아니다. 영천작가로 머무를 수 있지만, 그것을 벗어나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고 활동하는 작가가 될 수 있다. 그 관건은 어떤 질서를 갖추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무질서 상태에 있으면 영천작가가 될 것이고, 무질서 속에 어떤 약속된 세계를 갖게 되면 국제적인 작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질서하거나 질서정연한 단조로운 세계보다, 무질서와 질서의 양면을 갖춘 세계가 훨씬 복선적이며 깊은 감동을 주는 세계가 될 수 있다. 큰 포부와 투철한 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결코 하늘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 정병모
Vol.20140919f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 릴레이 Part3-김태선_박세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