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잇 Between

임충섭展 / LIMCHOONGSUP / 林忠燮 / installation   2014_0917 ▶ 2014_1115 / 일요일 휴관

임충섭_사잇 Between展_우민아트센터_2014

초대일시 / 2014_0917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4_0917_수요일_03:00pm

후원 / 우민재단 미디어후원 / 중부매일_청주문화원_KBS 청주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우민아트센터 WUMIN ART CENTER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북로 164 우민타워 B1 Tel. +82.43.222.0357 www.wuminartcenter.org

귀향(歸鄕): 달아, 높이곰 돋아샤"나의 작업은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경계를 비춤과 동시에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임충섭)

임충섭_타래-월인천강Ⅱ_실, 나무, 움직임, 음향장치_335.28×609.6×457.2cm_2014 (음향_JOHN CAGE:The Complete Short Works for Prepaed Pianmo / Phillpp Vandre prepared piano)

인연 1 ● 내가 임충섭의 작품을 처음으로 본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던 시절 '한국미술95'란 제목의 전시를 맡아 진행하면서였다. 당시 이 전시의 기획을 맡은 나는 "사물의 양은 부피이며, 질은 그것의 그림자이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대기원근법 이론에 착안하여 '질·량·감'을 주제로 설정하고 당시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보여주던 4·50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이때 동료 큐레이터들도 작가를 추천하고 회의를 통해 참가 작가를 최종적으로 선정하였는데 그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임충섭이란 작가가 명단에 올라왔다. 그래서 임충섭이란 낯선 작가에 대한 조사가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지만 1986년 원화랑의 개인전이나 1991년의 국제갤러리 개인전 자료를 뒤적이며 그의 작품에 대한 기초지식을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설치하면서 나는 그가 이지적이면서 구조적인 사유를 하는 독특한 작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은 차갑거나 건조하지 않은, 명징하되 여백이 있는 공간구성을 지향하고 있음도 발견했다. 그것은 젊은 큐레이터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해 겨울, 임충섭은 국제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시간과 공간, 과거와 현재, 문명과 자연을 가로지르는 작품으로 나의 관심을 다시 한번 자극했다.

임충섭_타래-월인천강Ⅱ_실, 나무, 움직임, 음향장치_335.28×609.6×457.2cm_2014 (음향_JOHN CAGE:The Complete Short Works for Prepaed Pianmo / Phillpp Vandre prepared piano)

인연 2 ● 내가 임충섭의 작품을 제대로, 그것도 본격적으로 본 것은 2012년 12월에 개막해 이듬해 2월말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달, 그리고 월인천지'를 통해서였다. 60년대의 앵포르멜로부터 모노크롬을 거쳐 미니멀리즘의 경향을 띤 작품도 있었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넓은 전시공간을 압도하는 설치작품인「월인천지」였다. 분석적이고 비평적이어야 할 미술평론가로서 자제해야 할 감성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이 설치작업이 나에게 준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의 귀향전시라 할 수 있는 이번 개인전에 글을 쓴다는 것에 우선 흥분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과거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느꼈던 '앎에의 욕구'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규명하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에 소용돌이쳤던 것이다. 보들레르가 바그너의「로엔그린」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나를 그토록 흥분시킨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비평은 바로 이러한 강한 앎에의 욕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과문한 내가 임충섭의 작품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으니 작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수적인 절차이자 과정임에 분명하다. 비록 반나절의 짧은 시간이었으나마 그의 작품이 설치된 우민아트센터에서 그와 독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예사로운 인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임충섭_타래-월인천강Ⅱ_실, 나무, 움직임, 음향장치_335.28×609.6×457.2cm_2014_부분 (음향_JOHN CAGE:The Complete Short Works for Prepaed Pianmo / Phillpp Vandre prepared piano)
임충섭_타래-월인천강Ⅱ_실, 나무, 움직임, 음향장치_335.28×609.6×457.2cm_2014_부분 (음향_JOHN CAGE:The Complete Short Works for Prepaed Pianmo / Phillpp Vandre prepared piano)

어느날, 문득 ● 중국의 화론에 따르면 남종문인화를 개척한 당대(唐代)의 시인이자 화가, 유마거사를 흠모하여 스스로 자를 마힐(摩詰)이라 정할만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왕유(王維)는 어느 날 집 앞으로 지나가는 취주악단의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직관과 통찰에 의해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인데 나처럼 평범한 필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지만 예술에 있어서 논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약 또는 초월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선불교의 돈오(頓悟)와도 같은 문득 깨달음의 기회가 임충섭에게도 왔던 것이다. 어느 날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 읽었던 책이 계기를 제공했다. 지루한 비행동안 그는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에 대한 비유를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유명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얽힌 논쟁을 읽었다고 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임충섭은 서양 현대미술이 추구해왔던 본질과 가상에 대한 논의가 이미 오래전 조선의 성리학자들에 의해 개진되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2010년에 발표한「월인천강」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임충섭_타래-월인천강Ⅱ_실, 나무, 움직임, 음향장치, 영상_335.28×609.6×457.2cm_2014 (음향_JOHN CAGE:The Complete Short Works for Prepaed Pianmo / Phillpp Vandre prepared piano)

'월인천강'은 물론 세종의 명에 따라 수양대군이 지어 바친 『석보상절』을 보고 몸소 훈민정음으로 지은 악장체의 찬불가(讚佛歌)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으로부터 연유한 개념이다. 석가모니의 진리는 하나이지만, 여러 중생을 널리 교화시킨 것이 마치 달은 하나이나 달빛이 수만 개의 강에 골고루 비치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월인천강'인 것이다. 그렇다고 임충섭의 작품에서 이 개념이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성도 후 중생구제를 위해 바친 생애를 칭송하는 종교적 배경과 목적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의 창시자주희(朱熹) 역시 '달이 만 개의 도장처럼 찍혀있다(月印萬川)'는 비유를 통해 태극(太極)의 리(理)가 인간 개체 안에 본성으로 내면화됨을 설파한 바 있다. 인식론적 맥락에서 하늘에 떠있는 달과 물에 비친 달그림자는 실재와 현상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예컨대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여기에 착안하여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로 맹신하는 '동굴의 우상'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인천강은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 사상, 즉 하늘의 달이 하나이듯 천 개의 다른 강에 비친 달도 결국은 하나이다는 가르침의 비유이므로 강물에 비친 달은 실재의 그림자일 뿐이므로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논리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유방식이 낳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달이 하나이듯 그것이 아무리 천개의 강에 비친다 하더라도 물속의 달 또한 하나이다. 물이 출렁인들 달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흔들리는 물에 비친 달은 하늘의 달이 사라질 때 비로소 자취를 감추므로 물에 비친 달 또한 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임충섭은 이러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비유를 통찰함으로써 문명과 자연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그 사이를 관조할 수 있는「월인천강」을 제시했고, 그것의 자기발전 형식이라 할 수 있는「월인천지」의 거대서사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임충섭_사잇 Between展_우민아트센터_2014

사잇 ● 이번 우민아트센터 개인전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주제는 '사이'이며 그것은 비단 이번 전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탐구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크게 회화, 발견된 물체, 설치 등 세 개의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인 경향으로 구성된 것이다. 먼저 회화의 경우 문, 기와, 단청, 공포(包) 등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자유로운 선적 드로잉의 활달함에도 불구하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단아한 질서이다. 평면 위에 그려진 오브제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색조는 모노크롬 지향적이다. 이런 점은 그의 회화를 평면과 입체, 리듬과 절제된 구조 사이에 위치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액자를 잘라내고 그 파편을 다시 조립한 사이에 형성된 틈이다. 말하자면 이 틈은 사각의 프레임 속에 갇혀있는 선과 형태가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이자 회화가 호흡할 수 있는 숨길인 것이다. 두드러진다. 거기에 비하면 발견된 물체들은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뉴욕거리를 산책하다 주운 평범하고 어떤 점에서는 무가치한 사물이 아주 천연덕스럽게 벽에 부착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견된 사물이 원래 있었던(버려졌던) 장소를 떠나 전시장에 부착됨으로써 그것은 더 이상 폐기물이 아니라 의미를 발산하는 오브제가 거듭난다. 빛은 이 연금술적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사이의 내러티브가 생명을 획득한다. 비천한 것이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현대미술에서 발견된 물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벌써 한 세기 전에 마르셀 뒤샹이 이미 기성품으로 창작과 발견의 경계를 해체해 놓았기 때문에 발견된 물체란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맥락과 해석이 중요한 것이다.

임충섭_사잇 Between展_우민아트센터_2014

그는 1980년 뉴욕의 퀸즈뮤지엄의 전시에 창호지에 바둑판처럼 기하학적인 선을 긋고 그 교차점에 검은 점을 새긴 작품을 출품하여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저명한 미국평론가인 핀커스 위튼(Robert Pincus-Witten)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높은 경쟁을 뚫고 이 미술관의 '연례(Annual)' 전시 참가작가로 선정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물론 작가로서 그의 첫 개인전을 O.K 해리스 갤러리에서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맞이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미니멀리즘이라고 규정하자 그는 뉴욕근대미술관(MoMA)의 전시장 경비였던 로버트 라이만(Robert Ryman)이 매일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모노크롬을 제작했고, 그의 작품으로 미니멀리즘과 모노크롬은 이미 완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규정에 환호하거나 용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확정된 경향이나 방법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험을 시도했으며, 발견된 오브제를 거쳐 무명실로 공간을 직조하는 설치로 나아갔던 것이다. 실타래에서 무명실을 뽑아 공간에 설치하는 작업은 엄밀하게 말해 직조라기보다 차라리 현악기의 줄처럼 공간을 정돈하는 것에 가깝다. 이 정돈, 즉 가지런한 배열은 베틀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건축적 구조까지 결합시키고 있으므로 그의 설치는 복잡하지만 단아하며 완결성이 높은 공간설치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명실이 감긴 실타래, 베틀, 한국의 전통건축구조는 그가 조형언어를 통해 읊고 있는 월인천강이란 시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배열을 그는 문명과 대자연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사이는 물리적 거리이거나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심리적 이격이 아니라 대립적 관계를 조화로 이끄는 관계의 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임충섭_사잇_화분, 움직임, 실, 자, 모래_가변크기_2014

인연 3 ● 언젠가 임충섭은 "한 개인(의) 노스텔지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정서에 에너지가 된다."라고 말했다. 1941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나 1973년에 뉴욕으로 떠났던 그는 서울에서 몇 차례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나 이번 전시를 통해 어린 시절 마음의 낙원이었던 고향에 바치는 경의를 표현하고자 한다. 한국의 고시가 중에 『악학궤범』이 전하는「정읍사(井邑詞)」는 행상을 떠난 낭군이 위험한 것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한 백제여인의 애절한 심경을 노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달아, 높이곰 돋아샤'는 이제 고향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임충섭이 저 달을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달은 귀향을 꿈꿔온 작가의 소망을 반추한다. 이것 또한 인연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인연은 마냥 운명에 맡길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고향의 산천, 어린 시절 보았던 베틀에 앉은 어머니의 모습, 기와집의 기둥과 대들보, 보름달이 그를 월인천강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고향에서의 전시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니 그가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을 표현한 것이야말로 인연의 베를 짜는 것은 아니었을까. 마침 그의 전시가 보름달 밝은 계절에 열리는 것을 보니 예사 인연은 아닐 것이다. ■ 최태만

임충섭_사계절_캔버스, 나무, 구멍이 육각형인 철조망, 광택제_167.64×40.64×10.16cm_2009

타래-실 ● 나의 설치 작품「1000개의 강」은, 크게 보아 자연과 문명 그 사잇에 인간의 이성 개입에 의한 "다리놓기" 그리고 예술 실론이다. ● 즉, 한국의 전통무명실, Video(달-luna)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의 정자를 매체한 전통속에 있어져 온 자연. 그것에 지금의 "나"로서 자연회귀적 여망을 "빛"을 통한 하나의 시각화라고 본다. 우리 무명실이 주는 "빛" 대자연으로의 음성적의 "빛" 그 "달" 전통속의 우리 고전 건축공간으로의 "빛" ● 16세기 조선의, 두 학자가「달」에 대한 해석에 이견을 가졌다. 이황은 하늘에 있는「달」도 달이지만 강에 비추어진 달도 달이다. 이에 기대승은「달」은 하늘에만 있지, 강에 비추어진 달은 달의 반사일 뿐이다. 나는 이황의 견해에 적극 동의한다. 이황은 이미 조선 중엽(16c)에 현대미술의 모든 모음새를 정서적으로 이루어 놓았다고 본다. ● 무명실은 3차원의 예술계, 즉 조각 미술에서 볼 때 마치 점토가 갖는 매체와 같이 일종의 양성과 음성이 함께 하여진 재료이다. ● 무명실 (동양 천년 직조문화의 재료와 빛) / 달 (대자연, 빛으로의 연상 작업) / 정자 (동양의 전통건축) ● 즉, 영상에 발하는 달과 물, 그리고 실이 주는 문명과 자연의 연계점. 그들이 소실점을 향한「자연회귀」의 여망을 열람한다. 서양 문화는 해. 동양 문화는 달. (2014년 9월 17일) ■ 임충섭

Vol.20140920g | 임충섭展 / LIMCHOONGSUP / 林忠燮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