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사건

이지호展 / LEEJIHO / 李持昊 / painting   2014_0923 ▶ 2014_1006 / 일요일 휴관

이지호_망각한것을되찾는방법1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12:00pm / 일요일 휴관

에이원 갤러리 A1 GALLERY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 42길 40(송파동 116-9번지) Tel. +82.2.412.9560

무의지적 무한생장을 위하여 ●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을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발명한다. 주어진 환경은 단지 소비되기 위해 인간의 영역으로 편입되며, 자연은 사회의 시스템에 따라 규제되고 재단된다. ● 비록 현재의 자연이 고압축 성장에 따른 과포화 상태 때문에 심각한 통제 상태에 있을지라도 자연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시계바늘의 회전 속에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인간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재해나 재난으로 인해 버려진 도시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방문하게 되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상상해보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우리는 자연이 가진 정화 기능과 끝없는 생장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는 재앙 - 태풍, 쓰나미, 지진 - 이 아니더라도 인고의 시간동안 문명세계를 지워나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란,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에 대한 경외일 것이다. ● 이지호 작가는 인간의 통제적 시스템을 벗어난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한다. 자연을 묘사하는 많은 회화들이 있는 그대로의 한적하고 평온한 자연풍광 혹은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반해, 작가는 역동적인 자연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특유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창조된 풍경은 어쩐지 이질적이고 기괴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을 느끼게 한다.

이지호_망각한것을되찾는방법2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14

다만 풍경을 재현하는 방식은 2013년 초를 기점으로 다르게 드러난다. 2012년까지의 작업에서 작가는 능동적 자연과 그 속에 녹아들어 있는 인간을 묘사하는데, 이 시기의 작업을 스스로는 '아나키적 생태세계'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자연물들은 견고하면서도 꿈틀대며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반면 인간은 신체 자체가 자연의 모습을 닮아 있거나, 손과 발 등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그 어떤 기관도 배제된 채 머리와 방향을 조타하기 위한 꼬리만 달고 있는, 마치 올챙이 같은 형상을 띄고 있다. 즉 인간은 그 어떤 문명이나 문화를 개척할 이성이 마비된 채 자연 속에 몰입되어 있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과 자연, 자연과 인간의 뚜렷한 구분없는 다양한 혼합변종의 상태는 지금의 국가와 사회시스템 일체가 거부된 아나키적 세계이며, 자연의 생장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세계이다. ● 이후 작가는 시스템 비판적 태도와 거리를 두고 자연의 생장에 보다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작가는 자연의 강하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하여 독특한 방법을 취한다. 「Piece of landscape series」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는 자연의 개체를 인간의 신체조직 - 근육과 살, 대장의 융털과 혈관 - 과 흡사하게 묘사한다. 자연의 생장은 오랜 기간 숙성되듯 아주 느리게 진행되므로 역동성을 부여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는 마치 인간의 신체조직을 모티프 삼아 자연을 재현함으로써 자연이 - 마치 인간처럼 -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이지호_마주침이 세계를 낳는다_종이에 아크릴채색, 목탄, 콘테, 연필, 파스텔_150×1100cm_2014
이지호_사이의울림에귀기울여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4
이지호_scattering space_에이원 갤러리_2014

작가의 근작은 자체의 시스템을 지닌 생태세계를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 자체의 생장력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이는 두 가지 전략을 통해 실현된다. 첫째, 작품 내 풍경이 중력으로부터 해방된다. 「망각한 것을 되찾는 방법」은 사방으로 캔버스를 돌려보아도 그 자체로 작품이 될 정도로 모티프들이 2차원 평면 속에 자유롭게 부유하고 중첩되어 있다. 둘째, 자연의 다양한 모티프들 - 바위, 식물 줄기, 바다 식물같은 융털들이 서로 혼재-성장된다. 「Scattering space」은 여러 개의 작은 캔버스가 큰 구도 속에서 관계를 맺으면서도 각자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어떤 캔버스에서 땅인 자연모티프가 다른 캔버스에서는 구름이 되기도 하고, 절벽이 바람이 되기도 한다. 이전 작업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혼합변종을 이루는 상태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연물과 자연물이 혼합 변종되면서 각 개체간의 경계를 허문다. ●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혼합변종에서 자연 자체의 역동적 힘을 재현하는 것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사라지고, 중력이 사라지며, 모티프들 간의 혼재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력의 해체는 공간의 해체이며 자연의 모티프들의 혼재는 모티프의 재현의 포기로 이어진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작가 자신에 의한 자의적 구성까지도 제거하여, 다양한 모티프들이 부유하고 중첩되면서 자체적인 생성의 공간이 창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였다. 시작도 끝도 없이 끊임없이 생장되는 세계를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의지를 최대한 내려놓은 채 생물의 생장을 재현함으로써 자연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지호_soaring bush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3
이지호_rising rock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3

이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작품 자체가 작가에 의해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니만큼 작가의 의지가 배제된 생장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또한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반복되는 모티프들 - 바위, 나무줄기, 융털 등 - 은 작가 스스로 창안한 형태가 아닌가? 자의적으로 구성된 모티프들 간의 우연적 결합은 작가 자신의 의지를 작품에서 완전히 배제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도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려는 태도에 있다. 내가 타자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이타심이 생겨나듯, 자연의 무한한 생장과 그 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작품을 통해 이를 재현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유은순

Vol.20140923b | 이지호展 / LEEJIHO / 李持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