間:사이

김누리_김민희_박성림展   2014_0924 ▶ 2014_1104 / 일,공휴일,근로자의 날 휴관

초대일시 / 2014_092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근로자의 날 휴관

신한갤러리 역삼 SHINHAN GALLERY YEOKSAM 서울 강남구 역삼로 251 신한은행 강남별관 B1 신한아트홀 내 Tel. +82.2.2151.7684~7678 www.shinhangallery.co.kr

'사이'는 시간을 말할 수도, 공간적인 거리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의 여정, '과정'일 수도 있다. 또한 ""너와 나 사이""라고 말할 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즉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사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지 긍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왔다. 특히 학문, 문화 등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융합'과 '통섭', 그리고 어떤 확고한 틀을 벗어날 것을 말하면서, 자연스레 어떤 영역 간의 '사이'도 그 의미를 더하게 된 듯하다. '사이'라는 개념을 공간이나 영역에 빗대어 말할 수 있다면, '사이의 영역'은 예전에는 경계의 바깥에 위치한, 무의미한 공간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요즘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이것과도 저것과도 맞닿아 있어 개체간의 상호작용과 공명을 촉발시키고, 개성 강한 이들까지 조화롭게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역이 있기에 존재 각각의 특별함도 비로소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 이번 『間: 사이』전에서 김누리, 김민희, 박성림 세 명의 작가는 특별히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업들을 선보인다.

김누리_가위바위보_캔버스, 실_95.4×122.7cm_2014
김누리_접속_캔버스, 실_가변크기_2014

개인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김누리의 작업은 이러한 개인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 들여다본다. 작가는 지금까지 인체의 구체적인 형상을 모티브로 한 작업들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몸통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도 하고, 신체와 밀착해 사용되는 의자와 같은 사물들을 소재로 작업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도 손이라든지 뇌, 심장처럼 인체의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작가가 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관계'에 대한 시각은 예전과는 차이가 있다. 이전의 작업들이 각기 다른 개인들이 사회 속에 모여있음으로써 생겨나는 이질감이나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시선이 그 '사이'의 이질감과 경계 자체에 머문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일체감만을 꿈꾸던 소녀가 성장하면서 사랑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듯, 이번 작업들은 '관계'라는 주제에 대해 예전보다 담담하지만 더 섬세한 시각을 보여준다. ● 사회적 관계들 중에는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관계도 있고, 노력해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관계도 있을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를 정하고, 우열을 가려내야만 하는 냉정한 관계도 있을 것이다. 「가위바위보」, 「시상식」, 「오케스트라」 는 사회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승자'와 '패자'의 구조, 그리고 그러한 관계의 구조가 어느덧 우리에게 내면화 되어버린 양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는 무엇이든 승패를 가르고 보는 습관이 어쩌면 어린 시절 흔히 하던 가위바위보 놀이로부터 이어져왔을지도 모르겠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비롯된 상대적인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한낱 순간일 뿐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시상식」이란 작품에서는 시상대의 형상을 발로 딛고 올라서면 푹 꺼져버리는 스펀지 소재로 만들어 승패의 구조란 공고할 수 없는 것임을 은유한다.

박성림_Fantastic world-part1_메탈사_70×70×17cm_2014
박성림_Untitled_지끈_110×132×26cm_2014

박성림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양상이 추상화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손으로 일일이 섬유를 직조해내듯, 육면체의 큰 틀 안에 반복적으로 실을 묶어 작품을 제작했다. 이렇게 집약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은 얼키설키 얽힌 나뭇가지 덤불 또는 켜켜이 쌓아 만든 둥지를 연상시킨다. 박성림은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경험이 있어 평상시에 작품의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많이 얻곤 한다. 특히 작가는 거미줄이나 벌집의 반복되는 선적 요소, 구조적 형태에 매료되었고, 그 속에서 현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편린들을 보았다. 작품 속 불규칙하게 얽혀 표현된 선들은 복잡한 인간관계를 상징하고, 수많은 매듭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종다양한 의미로 읽힌다. 한 개의 매듭은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의 만남이나 함께했던 하나의 기억이 될 수도 있는 한편, 다른 누군가에게는 관계의 일단락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 작가는 이렇듯 인간관계로 인한 다양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반추하듯 작품을 완성해냈다. 그 과정은 마치 내면을 다스리는 수행과도 같았고, 실제로 긴장, 불안, 소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순화되었다고 한다. 작품은 전시장 공간 속에 또 다른 세계의 일부를 툭 떼내어 놓은 듯, 또는 부유하듯 자리한다. 이들 작품은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그 질감과 구조 만으로 우리가 맺고 사는 수많은 관계들에 대해 풍부한 시적 심상을 불러 일으킨다.

김민희_68년간 갈고 닦은 이야기_폴리, 실, 아크릴물감_85×130×35cm_2014
김민희_그리움,사무치다_실, 라이트클레이, 아크릴물감_90×120×30cm_2014

김민희의 작업에서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사회적인 차원으로 옮겨간다. 작업의 시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그 기억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상황 때문에 우리에게 벌어진 최근의 사건들을 계기로, 작가는 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특수한 기억, 특수한 관계들에 주목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의 인권보호와 구출, 유엔 로비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단체를 위해 인쇄 홍보물 제작을 도와주며, 탈북한 인권운동가를 직접 만나기도 하고, 제3국에서 북송 당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김민희는 ""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거리와 서로에게 닿을 것 같지 않은 심리적 거리는 가까이할 수 없는 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있다""고 느꼈고, 그 이후로 '우리' '사이'의 이야기에 대해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기에, 작가 세대에게 '분단'은 어쩌면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전수되고 공유된다는 점에서 분단은 이미 미래의 세대에게도 피할 수 없는 집단적, 집합적 기억이다. 김민희는 돌에 ""빨갛다"", ""空""등의 글자를 실로 새기는 작업을 통해 이러한 이슈를 시각화한다. 이 땅의 '돌'은 모든 민족적 풍파를 함께 겪었을 역사성을 가진 사물이자, 그림이나 글씨가 새겨져 무엇인가를 전해온 가장 오래된 기록 매체이다. 단단한 물성을 지녀 숱한 시간과 환경 속에서도 쉬이 스러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돌에 부드럽고 유약한 성질을 가진 실로 글씨를 새기는 행위는 역설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불편한(uncanny) 감정마저 유발한다. 68년이 넘도록 분단된 상태-늘 그래왔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 그 사이의 간극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 세 작가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 또는 섬유라는 매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다", "연인 사이에는 새끼 손가락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매여 있다" 등 우리는 통상적으로 관계를 이야기할 때 유독 섬유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이 세 작가의 작업에서 섬유예술을 근간으로 한, 실을 '잇고', '묶고', '꿰매고', '새기는' 행위, 그리고 그 표현들이 일으키는 감수성은 전시의 주제인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데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동시대 예술에서 '관계'에 대한 논의는 폭넓게 이루어진다. 이 때 전시장은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관계-사이의 접점이자 작품을 이루는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사회 속 관계에 대한 사적인 단상과 더불어 세 작가의 작품들이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관계, 그 울림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이진

Vol.20140925c | 間:사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