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바람

배성미展 / BAESUNGMI / 裵聖美 / installation   2014_0927 ▶ 2014_1017

배성미_넘어야 할 담_현무암에 아크릴채색_35×50×2.2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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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제주아트창고 문화공간 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239

반쯤 열린 문 ●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계를 대상화시켜 자신의 외부에 두고 관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세계가 자기 안에 있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배성미는 세계와 자기 내면 사이에 문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어떤 경우에는 문을 닫고 자신의 밖과 안을 구분한다. 그러나 주로 문을 열어두어 세계와 내면을 연결하고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배성미는 현명하게 문을 열고 닫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고, 부조리하다고 여기는 사회문제에 대해 작업할 때 대안 없는 비판을 하거나 현실과 괴리된 이상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배성미의 작업들은 지금 여기의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일침을 가하며, 본질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지금 여기 너머를 사유하게 한다. 『바람에게 바람』은 도시에서 살아온 작가가 제주도의 농촌마을에 잠시 거주하면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풀어낸 전시다. 새로운 환경은 작품의 소재와 재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번 작품들의 주요 소재와 재료는 제주도의 자연을 대표하는 바다, 현무암, 바람이다. 언어의 사용도 두드러진다. 이전의 작업들에서는 언어를 사용하여 대상을 설명을 하거나 직접 질문을 던졌다면 이번에는 감정을 담아낸다. 따라서 작품 속 단어들은 문장을 이루지 않고 나열된다. 문장이 되지 않은 단어는 의미가 확정되지 않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한다.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언어유희 또한 작품에 대한 해석의 폭을 넓힌다. 전시제목이자 작품제목인 '바람에게 바람'은 고유명사인 '바람'과 동사의 명사형인 '바람'의 재치 있는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음의 반복은 둘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다. 또한 목적어가 없기 때문에 바라는 대상이 감상자 모두에게 열려있다.

배성미_바람에게 바람_현무암, 동선_가변설치_2014
배성미_가고 있는 땅시간_흙, 초시계_35×35×2cm_2014
배성미_흔들리고 부딪치는 것들_단채널 비디오_02:00:00_2007
배성미_움직이는 땅_나는 3.3㎡입니다._스틸, 현무암, 흙, 잔디, 우레탄바퀴_30×180×180cm_2014
배성미_움직이는 땅_나는 3.3㎡입니다._부분

개발의 열풍이 불고 있는 제주도에서 작가는 땅을 둘러싼 부조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땅은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요즘 땅에서는 나무나 곡식 대신 돈이 자란다. 사람들은 돈이 잘 크도록 임야나 농경지를 공업용지나 주택용지로 변경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누울 한 평의 땅도 없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걸어서는 하루 안에는 다 돌아보지 못할 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움직이는 땅_나는 3.3㎡입니다」는 3.3㎡ 즉 한 평이라 불리는 크기의 바퀴가 달린 땅이다. 작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는 대신 한 평의 땅을 시각화함으로써 '땅은 무엇이며 지금 땅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2007년에 작업한 「흔들리고 부딪치는 것들」이 2014년 제주도에서 다시 선보이게 될지 작가도 몰랐을 것이다. 바다 위로 자기애, 이기심, 용기, 욕망이라는 단어가 파도와 함께 나타났다 사라진다. 제주도의 자연은 작가를 붙잡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움직이는 땅_나는 3.3㎡입니다」는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완성하지 못했다. 작품의 제목처럼 땅이 움직이면서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작품의 의미가 생기고 그때서야 비로소 작품은 완성을 향해 갈 수 있다. 그러나 비바람이 계속되는 날씨로 인해 움직여야 하는 땅은 움직이지 못하고 작업실에 갇혔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배성미는 움직이는 땅을 세워둔 채, 이성을 멈추고, 마음이 시키는 것을 해 나갔다.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나는 단어들을 현무암 위에 하나하나 적고 쌓아 돌담을 만들었다. 「넘어야 할 담」은 작가 내면을 모두 꺼내 보인 작품이다. 돌담 위의 단어들을 가만히 읽어보면 지금까지 작가가 무엇에 관심을 가져왔고, 분노했으며, 무엇을 바라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말대로 그것들은 넘어야 하지만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것들이다. 작가가 바람을 만든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일이다. 자연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은 그 옛날부터 거대한 자연 앞에 유한한 인간이 취한 행위였다. 작은 현무암 위에 버려진 구리선을 재활용하여 나무를 만들었다. 현무암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반복적인 형태 속에서 바람이 만들어졌다. 형상화된 바람에게 작가는 좋은 바람만 불기를 바란다. 마음을 담아 하나하나 만든 「바람에게 바람」은 일종의 주술적인 행위다. 「가고 있는 시간」에서 작가는 바람에게 시간이 느리게 가기를 바란다. 이제 작가는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바랄 수 있게 되었다. 낯선 세계에 놓인 작가는 세계와 자신 사이에 놓인 문을 반만 열었다. 문 밖에서는 현재 제주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인 부분으로 돌아가 질문했고, 문 안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돌아봤다. 이러한 과정을 배성미는 작품들로 정직하게 보여주었고, 그래서 관람객들은 작품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문을 반밖에 열지 못한 채 제주도를 떠났다는 점이다. 제주도에 머물렀던 기간이 문을 활짝 열기에는 짧았다. 제주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분명 배성미의 작품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제주도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 김연주

Vol.20140927k | 배성미展 / BAESUNGMI / 裵聖美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