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M DONG YOO

김동유展 / KIMDONGYOO / 金東囿 / painting   2014_1010 ▶︎ 2014_1120 / 일요일 휴관

김동유_MARILYN MONROE (JOHN F, KENNEDY)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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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세솜 GALLERY SESOM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지로 239번길 38 Tel. +82.55.263.1902 www.gallerysesom.com

부분과 전체가 구성하는 아름다움의 의미에 대하여 ● 동서고금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신비한 개념인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는 여전히 통용되고 진실이기에 영원할 것이다. 칼로카가티아란 "진선미는 하나여서 따로 떼거나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는 뜻이다. 작가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사물을 바라보고 거기에 무궁한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특별함이 바로 그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일상에서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평범한 시각과는 다른 특별한 사유를 자주 창출하곤 한다. 그는 시든 꽃에서 사랑을 찾고, 버려진 무명 화가의 그림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낸다. 가장 범속한 호랑이 무늬에서 삶의 에너지를 발견하기도 하고 대중잡지의 일시성에서 영원성의 가능성을 읽곤 한다.

김동유_MARILYN MONROE (JOHN F, KENNEDY)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9

불교에서 양족존(兩足尊)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아주 대중적인 용례이다. "두 발로 걷는 생명체 중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보통 고타마 싯타르타를 가리킨다." 두 번째 용어가 김동유 작가와 관계 있다. "이 용어는 특별하게 현상계와 절대계 양쪽 모두에 하나의 다리씩 걸치고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김동유 작가는 과연 절대계까지 읽어내는 사람일까? 내가 10년간 지켜본 작가에 대한 판단에 의하면 그럴 확률이 아주 높다.

김동유_MICHAEL JACKSON (MADONNA)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0

우리가 뉴튼-데카르트 식 물리학과 세계관인 주관, 객관의 이분법으로 우주를 바라볼 때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파편적 시각에 의한 사고(fragmentary thought)이다. 이 파편적 시각이 종국에 불러올 결과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분해라는 사실을 작가는 본능적으로 느껴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작가는 스스로 물어보았고 우리는 전체적 사고(thought of wholeness)를 지향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전체(whole)는 건강(health)와 성스러움(holy)의 어원이 되는 고대 그리스어 '할로(halo)'에서 비롯되었다. 전체를 지향해야만 비로소 건강한 사고나 성스러움이 솟구칠 수 있다. 작가의 세계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동유_PRAYING HANDS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12
김동유_ROPHY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12

김동유 회화의 압도적인 힘과 아름다움은 이러한 인간사의 본질을 매섭게 통찰해내는 작가의 보이지 않는 힘에 있다. 그것은 배워서 된 것이 아니다. 타고난 것이다. 작가는 가까운 것에서 먼 것의 모습을 연상해내는 힘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원리를 포착해내기도 한다. 그는 확실히 프렉탈 이론(fractal theory)의 대가이다. 화분 속에서 산과 강을 발견하며 우리의 강산에서 지구를, 지구의 모습에서 우주의 참모습을 연상해내는 작가의 능력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능력이 화면 위에서 상징적으로 포개지고 나뉘어지다 다시 커다란 하나의 전체로 거듭 태어난다. 그것은 우주가 인간에게 명령한 천명(天命)으로서의 전체 의식을 닮았다. 통나무처럼 하나되어 굳건히 존재하다가 각개의 그릇으로 흩어지고 다시 하나로 거듭되는 소용돌이의 영원한 흐름이 바로 우주의 참모습이고 세상의 실상이자 인간의 삶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러한 지점을 간파하고 있다. 논리적 추론에 의해서가 아니다. 천명을 읽을 줄 아는 작가의 선함에서 기인된 직감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칼로카가티아는 영원하다. ■ 이진명

Vol.20141010f | 김동유展 / KIMDONGYOO / 金東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