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서울시 가상구쑥로1길

허현숙展 / HERHYEONSOOK / 許賢淑 / painting   2014_1025 ▶ 2014_1113 / 월요일 휴관

허현숙_都市計劃_올바른 합집합_이합장지에 흑연_133×400cm_2014

초대일시 / 2014_1025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토스트 GALLERY TOAST 서울 서초구 방배로 42길 46(방배동 796-4번지) 3층 Tel. +82.2.532.6460 www.gallerytoast.com

기억의 공간, 공간의 기억 _ 線으로 구축된 도시의 노스탤지어 ● 당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나 동네의 모습이 아직도 그곳에 그대로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성인이 되어 세상 앞에 홀로선 당신은 현실속의 고독감과 무력감을 느낄 때 따뜻한 보호와 사랑이 감싸주던 유년시절을 품은 그곳을 찾아 아련한 향수에 젖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불과 10여 년 전 삶의 터전들이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과 기대가 헛됨을 우리는 안다. 가까운 과거의 흔적조차 복고주의 영화나 음반, 미술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 유년시절 일상을 함께 했던,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것만 같던 그 집과 골목길, 그 동네의 풍경은 도시재개발의 가속화에 의해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주거의 형태가 단독·공동주택에서 아파트로 급선회하면서 주택과 가게들의 수평적 라인은 고층건물 속으로 수직이동하게 되었다. 저녁이 되면 밥 짓는 냄새로 뒤덮이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집안 소음이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시끌벅적하던 구불구불한 옛 골목길은 이제 매끈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사이로 사라진지 오래다.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공동주택의 보급으로 그물망처럼 형성된 좁은 골목길과 세간 밖으로 삐져나온 살림살이의 풍경 역시 이제는 도시 관광의 가이드에서나 찾아볼 진기한 풍경 혹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대대적인 신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터전을 일군 지역민들의 소외와 갈등, 거대자본으로 공공문화지역이 흡수되는 현상을 보면서 개발의 의미와 주거문화에 대한 성찰이 제기되는 가운데, 개발에 반대하는 인문학자, 건축가, 문화연구자들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사라지는 공간의 의미, 오래된 공간들에 대한 문화사적 재검토와 미학적 제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개발의 논리를 오히려 적극 부정하지 않으면서 보존사업을 유행하는 이벤트로 삼거나, 고도의 향수마케팅으로 상품화의 붐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있지만, 콘크리트로 굳어진 도시민들의 의식에 옛 삶을 환기시키고 과거를 기억하고 흔적을 보존하려는 변화를 일으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현숙_都市計劃_살았던 도시_이합장지에 흑연_42×75cm_2014

이합장지에 연필 하나로 서울의 옛 주택가의 풍경을 그려나가는 허현숙의 작업은 유년의 향수를 간직한 공간을 재구축함으로써 옛 것에 대한 환기와 현대인의 삶에 부재한 유대감을 되찾으려는 이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밑그림 없이 자동연상으로 축적되는 건물의 반복적 나열은 큰 그림 없이 개발되고 부수어져온 한국의 주택개발정책처럼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천만 인구의 서울에서 살아남으려는 전쟁 같은 삶의 풍경으로 보인다. 구글맵으로 바라본 서울의 모습이 한강을 따라 번식하는 유기체처럼 군집하는 유사건물들의 합집합인 것처럼, 허현숙의 화폭에서 건물과 건물의 틈사이로 우후죽순으로 비집고 들어찬 주택의 모습 역시 생존을 위해 옹기종기 붙어사는 도시 서민들의 삶의 의지와 끈끈한 유대감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1980~90년대 주택보급정책으로 지어진 연립주택과 개량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기왓장과 벽돌, 나무창틀과 베란다 난간, 돌담의 반복적 나열은 예술적으로 조형의미를 부여하였고 그것들은 화폭에서 도시풍경을 구성하는 모듈로 작용하여 작가의 화필은 마치 한 땀 한 땀 촘촘히 박아올린 바느질처럼 견고하게 구축되었다. ● 작가는 옛 추억을 간직한 지역의 답사를 통해 지붕의 깨진 기왓장, 기와를 덮은 천막과 널려진 자재들, TV 안테나, 굴뚝, 좁다란 층계, 옥상의 물탱크, 장독대, 에어컨 실외기, 빨랫줄 등 세간의 요소들을 그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묘사한다. 투시도, 입면도, 단면도, 평면도 등 다시점에서 바라본 주택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도시의 그물망을 형성하던 시선은 낮은 곳으로 이동하여 최근의 작업에서는 개별 주택의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하여 벽돌과 슬레이트, 콘크리트와 기와로 뒤덮인 건물을 비스듬히 기울여 드러낸 살림살이의 풍경에서는 삶의 냄새를 더욱 진하게 느끼게 된다. 반복적인 집 그림 속에 배제되었던 사람의 모습은 삶의 흔적이 베인 사물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은유되고 있다. 이렇듯 집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언제나 개인의 추억과 공동의 역사가 배어있으며 그 기억 속 공간은 나와 우리의 과거를 환기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허현숙_都市計劃_살았던 도시_이합장지에 흑연_92×232cm_2014

기억은 당시 상황에서 느낀 공감각이나 정서적 분위기가 머문 공간으로 이루어지며 공간은 기억으로 존재한다. 감각이 머문 자리, 즉 기억의 공간은 내적 공간으로서 시간의 거스름과 함께 하여 우리의 정체성과 삶을 형성한다. 공간은 우리 기억의 이정표로 자리하며 기억된 공간은 정신적 구조물로 존재하게 된다. 공간의 무수한 겹들 하나하나에는 우리의 존재가 오롯이 박혀있으며 그 겹들을 하나하나 벗길 때 우리의 삶은 드러나다 감춰지기를 반복한다. 그 무한한 과정에서 나의 공간은 끝없이 열린다. (박상진, 「공간의 기억」, 철학아카데미 엮음, 『공간과 도시의 의미들』(소명출판사, 2004), pp.13~36. 참고) ● 허현숙의 작업은 현재의 공간 속에 기억의 공간을 담는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의 기록과 과거 살았던 기억 속 동네의 모습을 오버랩한 이미지의 재조합인 것이다. 그래서 그 기억의 공간에는 단지 살았던 동네의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닌 과거의 정서를 갈망하는 마음 속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다. ● 기억과 함께 하는 공간은 하나의 텍스트, 즉 기호로서 작용한다. 소멸해가는 공간에 대한 갈망은 하나의 상상의 풍경으로, 기호로서, 미학적 표상으로 되살아난다. 즉 그것은 개인이 간직한 기억의 구체성보다는 집단의 기억으로 걸러진 정제된 감성을 환기시키는 아우라의 공간으로 재현된다. (김홍중, 「골목길 풍경과 노스탤지어」, 『경제와 사회』 통권 제77호(2008년 봄호) 참고.) ● 풍부한 장소감을 지닌 아우라의 공간은 정지된 시간 속에 보존된 박물관의 유물처럼 존재하게 된다. 개발이 가져다주는 편리와 이득을 대가로 상실한 모든 것들을 상상적으로 혹은 가상적으로 품은 아우라의 공간은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은폐하는 일종의 '차폐기억(screen memory)'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실제의 삶에서 소멸한 것이 이처럼 문화적 표상의 공간에서 부활하는 역설은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삶의 원리가 재편한 경쟁사회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꿈꾸고 욕망하는 공간이 환상적으로나마 보존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허현숙_都市計劃_언덕건너편_이합장지에 흑연_25×77.5cm_2014

한지 위에 슥삭슥삭 유연한 손놀림으로 거주의 풍경을 그려나가는 허현숙의 작업에는 옛지도가 지닌 회화적 구성과 현대적 디자인감각이 함께 녹아있다. 전통 한지에 아날로그적 손맛을 되살린 연필이라는 도구는 과거의 향수를 더욱 진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천진하며 즉흥적인 가벼움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흑연의 번짐에 최대한 유의하면서 밑그림 없는 가운데 선의 이탈 없이 한 번에 완성되어야하는 이 숨 막히는 작업 과정은 엄청난 집중과 도취를 요한다. 또한 세밀한 입방체의 무수한 반복적 구축이라는 노동집약적 작업 속에서 마음 속 안정을 되찾으려는 작가의 수행의지가 담겨있기에 그의 작업은 가벼운 듯 무겁고, 복잡한 듯 담백하다. ● 오로지 선(線)맛으로 차가운 도시의 표정을 담담하게 재현하는 허현숙의 그림은 집이란, 혹은 거주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조용히 제시한다. 사람이 부재한 그녀의 집 그림에는 주택의 동선과 삶의 흔적이 베인 사물로 표정을 대신함으로써 사람이 곧 집이라는 명제를 부여한다. 이것은 하이데거가 의미하는 거주와 건축에 대한 사색과 맞닿아있다. 거주란 단지 공간 속의 인간과 사물의 점유가 아니라 그곳에 거주한 사람이 공간에서 형성된 여러 관계를 보살핌으로써 비로소 형성되는 존재론적 의미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의 노스탤지어는 전원의 풍경 대신 숨막힐 듯 빽빽하게 자리한 주택가 골목이라도 거주의 기억이 머문 공간이며 존재가 머문 한, 아름답게 채워지는 그런 공간에서 존재하게 된다. ● 허현숙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과거로의 여행, 즉 베르그송이 말한 '무의지적 기억' 혹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잠시나마 빠져들어 그곳에 거주했던 나와 주변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도시의 익명에서 벗어나 자아를 형성해가던 유년기의 나를 다시금 만나 지금의 나에게서 상실된 그 무언가를 다시 되찾아 올지도 모른다. ■ 김미금

허현숙_都市計劃_올바른 합집합_이합장지에 흑연_각 25×21cm_2014

都市計劃 - 기억 속 나의 유년기 도시를 짓다 ● 「도시계획」은 기억 속 유년기의 나의 마을을 다시 새롭게 건설하며 환타지적, 비현실적인 도시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는 도시환경 속 유년시절의 경험을 도식화하며 기억과 나의 일시적이고 역사적인 과거의 삶을 공간적으로 재현한다. 기억 그 자체는 도시와 유사하게 재현된다. 거리와 골목길의 복잡한 망은 얽히고설킨 기억의 실과 유사하다. 도시환경의 열린 공간은 망각된 것들의 공허한 빈자리와 유사하다. 잃어버린 시간은 간과된 장소와 유사하다. 나의 마을은 기억 속에서 구성되며, 기억을 형성한다. - 발터벤야민, '발터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中... ● 언뜻 스쳐보았을 땐 평범한 도시풍경화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가까이 세밀하게 보면, 좁은 부지에 너무나도 많은 집들이 지어져 있으며 시점도 제각각 지어진 건물들의 엉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무지 그림 속에 건물들 사이에는 길이라는 공간이 들어설 수 없을 만큼 빼곡하게 붙어있어 보이고 심지어 맞물려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는 현재의 도시의 모습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질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배열되지 않은 모습이다. 높은 건물과 기와건물, 신식 다가구주택 건물들까지 전혀 시대도 찾아볼 수 없는 '건축물들의 집합'은 나의 유년기의 시대 자체가 변화 급변한 1980-1990년대에 걸쳐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 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던 1990년대의 한국사회의 모습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전 속에서, 기존의 것을 모두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변화시키며, 사람들의 사회생활, 생활패턴까지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변화의 물결의 중심에서 유년기의 '나'는 커다란 충격적인 경험을 한 것이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기존의 것은 모두 없어지고 새로운 것들로 차곡차곡 채워져 갔다. 빠른 변화 속에서 삶을 영유하는 현대인들은 변화한 편리함에 빠져 과거의 추억과 기억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허현숙_都市計劃_있었던 도시_내가 다녔던 초등학교_이합장지에 흑연_62×74.5cm_2013

그리하여 현대인들에게 '도시'는 무엇이며 이러한 도시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예술을 통해 밝혀내고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 아닌 새로운 재창조이며, 현실에서의 삶의 감성을 반영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삶을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도시계획」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이는 유년기 기억이 바로 도시의 지형 안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안에 잘 보이지 않은 흔적들로부터 일깨워진 것들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형상들이 모두 한곳에 빼곡하게 모여 하나의 도시집합체로 만들어진 것이 '나의 기억 속 유년도시'이다. ● '기억 속 도시'의 모습은 광활하고 빽빽하다. '빽빽함'은 과거 끊임없이 펼쳐지는 다가구주택의 엉켜있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옛 끈끈했던 인간간의 유대관계가 건물로 의인화되어 비현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광활함'은 과거로의 회상을 통한 기억의 극대화현상 중의 하나로, 어린아이로 돌아간 '나'가 보는 거대한 마을의 모습을 표현한다. 한편으로는 관람자로 하여금 「도시계획」을 한 눈에 담기 위함이며, 그 속에서 자신을 포함시켜 거대한 도시에 압도되는 상황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허현숙_都市計劃_있었던 도시_할아버지와 별보던 시절_이합장지에 흑연_60×90cm_2014

「도시계획」 속 건물은 '나의 주변사람들'을 의미한다. 빼곡했던 집들이 모여 살던 나의 유년기를 생각하면, 이 집들이 나를 보호하고 함께 놀아주었으며, 항상 보듬어주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았다. 여기서 나는 또 다른 하나의 건물로 표현되어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속에 파묻혀 안정을 찾고 있을 수도 있고, 하나의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건물 속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도시계획」은 무표백된 천연장지(Korea paper)에 '연필'로 전체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연필을 사용하여 펼쳐진 기억 속 '도시계획'는 어린아이의 낙서와 흡사하다. 흑연 선들의 반복되는 행위로 만들어진 도시의 모습은, 흡사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우듯 반복행위를 통하여 나의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도시계획」에서 '길'은, 거리와 골목길의 복잡한 망이 얽히고 설킨 기억의 실과 같은 것이며, 현재과 과거를 연결하는 매개체역할을 하기도 한다. 위와 같이, 「도시계획」은 현재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반복적 집짓기를 통하여 '나 자신의 기억 속 도시'를 현재로 생성시킴으로서, 빠른 변화의 사회에서 편리함에 묻혀 순간 잊혀진 과거에 대한 향수를 반영함으로써 기억 속 도시를 통해 우리의 현실에서의 삶을 재인식하고, 돈독했던 과거 유년기의 유대관계 회귀를 갈망하고 과거의 향수를 치유할 수 있으며 이 같은 작업을 통하여 현재 삶에서의 새로운 '행복과 안정'을 찾고자 한다. ■ 허현숙

Vol.20141025e | 허현숙展 / HERHYEONSOOK / 許賢淑 / painting

@ 우민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