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1108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숲속갤러리 SUPSOK GALLERY 청주시 상당구 대성로 122번길 67 2층 Tel. +82.43.223.4100 cbcc.or.kr
사물의 기억에 관한 솔직한 모큐멘터리 ●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의 첫 장에서 그가 어떤 사진을 보았을 때를 회고하며 시작한다. 그가 본 것은 1852년에 찍은 나폴레옹의 막냇동생 제롬(Jerome, 1784-1860)의 사진인데이에 대해 바르트는 "나는 지금, 황제(나폴레옹)를 직접 보았던 두 눈을 보고 있다."며 놀라움을 표현했지만, 당시 주변의 누구도 자신이 받은 이러한 놀라움에 공감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삶이란 이처럼 작은 고독의 상처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각 개인이 느끼는 바는 얼핏 비슷하거나 한 지점으로 수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크고 작은 인식의 차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 『기억종합상사』로 첫 개인전을 치르는 조세핀은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물건(혹은 잡동사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해 말을 걸고 또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다. 그녀는 주로 '기억'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를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혹은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기억은 일반적으로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기에 이를 허구와 뒤섞인 모큐멘터리의 문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사람의 기억이나 어떤 사물에 담긴 기억은 언제나 허구와 설정, 개인의 욕망이 뒤섞일 수 있는 불명확한 것이기에 이들은 얼핏 이질적인 조합으로 보인다. 하지만 흔히 '가장 기록적이고 사실적인 매체'라고 불리는 사진이 어떤 측면에서는 가장 왜곡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진 것처럼 기억에 의존한 이야기는 언제나 모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안고 있기에 작가는 사실과 허구 그리고 기억 사이에서의 고민을 이어간다. ● 그녀의 첫번째 작업인 「Project. GIVE ME POST」는 '우체통 밥 주기'라는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세 달 동안 한 통의 편지도 들어오지 않는 우체통은 철거된다는 것에 착안하여 '우체통'의 생존을 위해 낯선 사람들과 주고받은 손편지를 묶어낸 책이다. 이는 단순히 사라져 갈 우체통이라는 물리적인 대상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단, 직접 손으로 편지를 쓰고 보내기 위해 수반되는 일련의 과정(편지지를 고르고, 펜을 고르고, 우표를 고르는 것 등)과 답장을 기다리는 두근거리는 감정을 되살리고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다. 작가에게 편지를 보낸 낯선 사람들은자신을 익명화한 '손편지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기 힘들었던 마음속 깊은 곳에 고민까지 털어놓으며,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편지지라는 타자화된 대상에게 말을 건다. ● 이처럼 「Project. GIVE ME POST」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 보단 타인이 자신의 속마음을 엿보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었다면 「the document for HECTOR」는 타인의 편지에서 비롯된 작가 본인의 감정을 담은 작업이다. 우연히 얻게 된 오래된 엽서로부터 출발하여 이 엽서의 남아 있는 흔적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든 일러스트와 사진들이 '그럴듯하게' 만들어져 함께 배치된다. 이는 '기억'이라는 소재(엽서)에 사진과 그림들이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내면서 결과적으로 엑토(Hector)라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러한 전개방식은 전시의 제목이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억종합상사」시리즈에서 좀 더 확장되는데, 언뜻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는 상자들과 그 안에 담긴 물건들은 특정한 분야가 아닌 모든 영역에 걸친 상품들을 유통하는 과거 근대화 시대 '종합상사'의 컨셉을 가져와 전시장을 상품 진열장의 형태로 변화시켜 관객을 맞이한다. 상자 속 물건들은 작가 본인의 기억과 집착 그리고 짧고 긴 세월이 뒤섞인 물건들이지만 각각 가격표가 붙어 하나의 '상품'으로 작동한다. 이들 상품들을 살펴보면 친구와 축제에 놀러 가서 금붕어를 잡았던 뜰채, 별다른 이유 없이 모든 연필을 몽당연필로 만들던 친구에게 받은 연필, 남자친구의 책에 꽂혀 책갈피로 쓰이던 은행잎, 아버지의 약상자에서 나온 오래된 반창고 등 막상 그 사연을 알고 나면 사물에 담긴 기억들도 무척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한 기억이기에 관객 입장에서는 이들 사물에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대입하며 어떤 추억의 내용이 아닌, 흔적과 기억 그 자체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조세핀이 사물에 대한 '기억'을 관객에게 작동시키는 방식은 굉장히 사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푼크툼(Punctum)의 존재와 맥락을 같이 한다. 바르트는 푼크툼에 대해 "흔히 푼크툼은 '세부', 다시말하면 부분적인 대상이다. 또한 푼크툼의 실례를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라고 서술한다. 이런 측면에서 관객들이 「기억종합상사」가 판매하는 '상품'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끄집어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콕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자신만이 느끼는 어떤 '꽂히는' 부분, 즉 푼크툼의 작동이 사진에서 사물로 이행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이 그렇듯 사물도 그 자체로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the document for HECTOR」의 일러스트와 사진들은 작가 본인이 엽서에서 느낀 푼크툼을 풀어낸 결과물이며 「기억종합상사」의 상품들은 모큐멘터리의 산물이지만 작동방식의 주체를 작가 본인으로부터 관객으로 이행시키면서 그 중심에는 허구가 아닌 '기억을 회상하는' 진실한 행위가 자리한다.
「the document for Gariwangsan Mountain」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파헤쳐지고 있는 가리왕산의 처참한 풍경에 찬/반이 엇갈리는 현수막을 합성시킨 사진과 그곳에서 주워온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식상 구성은 「기억종합상사」와 비슷하지만 비교적 명확한 사건을 다룬 작업이다 보니 앞서 언급한 작업들과는 다른 맥락으로 존재한다. 주워온 사물들은 「기억종합상사」의 사물들만큼이나 사소해 보이지만 이는 가리왕산을 둘러싼 상황과 엮이면서 타인이 개입할 여지를 잃어버린다. 이들 테이프, 돌멩이, 헝겊 등은 일관되게 가리왕산의 부분으로 작동하면서 단지 이 사건을 둘러싼 하나의 '단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작업은 전시 전체의 맥락이나 작가 조세핀이 일관되게 탐구해온 '기억'의 활용법에서 다소 동떨어져 다분히 다큐멘터리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마치 사이즈는 맞지만 정작 자신의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한 인상을 남긴다. ● 이러한 어색함은 모큐멘터리 형식을 극대화한 「fake poster series」에서도 존재하는데, 앞선 작품들이 모두 '기억'이라는 소재에 모큐멘터리 형식을 양념처럼 가미한 형태였다면 포스터 시리즈는 기억은 배제되고 모큐멘터리라는 형식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작업이란 인상이 강하다. 물론 포스터가 담고 있는 모순적인 내용은 그 자체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주제를 다루기에 흥미롭긴 하지만 앞선 작업들과 비교하면 다른 방향성을 띠고 있기에 조금은 붕 뜬듯한 느낌을 준다. ● 이처럼 몇 가지 아쉬운 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종합상사」는 한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써 자신의 작업 방향과 관심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하는 전시다. 작가가 집중하는 기억과 사물의 관계성이 전략적으로 선택된 소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을 비집고 나온 정체성이 반영된,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은 고독의 상처'가 엿보이는 진정성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 이기원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11쪽 * 같은 책, 46쪽
Vol.20141104k | 조세핀展 / JOSEPHIN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