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알 그리고 달빛콩고

이상형展 / LEESANGHYOUNG / 李祥珩 / painting   2014_1105 ▶︎ 2014_1111

이상형_신세대 New generation_장지에 석채_116.7×80.7cm_2013~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어느 날 오후였다. 당돌하게도 사과 위에 달걀이 떡하니 올라앉아 있는 게 아닌가! 설마 자발적으로 올라가 앉지는 않았겠지만 왠지 그 모습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보였다. 이 이상야릇한 만남에 심상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이상형_사과, 알 그리고 달빛콩고 Apple, egg and moonlight_장지에 석채_145×97cm_2013~4

"새빨갛게 달아오른 사과 꼭지는 마치 성숙한 자궁처럼 보였고 알은 착상 잘 된 수정란처럼 보였다. 오히려 하얀 알이 원래부터 자기자리였다는 듯 위풍당당해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과는 자신의 온 몸을 불태워버리려고 맹렬히 타올랐다. 반면 차가운 침묵 속에 달걀은 견고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처음 둘의 조화는 놀라울 정도로 잘 이루어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발그레하던 사과의 볼에선 어느 샌가 죽음 꽃이 피어나더니 죽음의 그림자가 완연히 드리워졌다. 마치 산화된 검붉은 핏덩어리들이 뭉턱뭉턱 주름골로 휩쓸려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과 꼭지에 똬리를 틀고 앉은 날선 달걀이 무섭게 내려앉고 있었지만 사과는 대책 없이 무너져 내려앉고 있었다. 급기야 온 몸으로 힘겹게 달걀의 무게를 버텨내던 밑동에서도 누르스름한 액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도발적일 만큼 농염한 자태와 달콤 상큼한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누가 보아도 이미 완숙을 넘어 만숙하여 쉬어 곪아 터져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죽음의 향내를 맡은 하루살이들이 몰려들어 누런 농액으로 축배를 들었다. 다시 한 번 쓰러져가던 사과의 주위는 수선스러워졌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문드러진 사과의 씨방까지 내려앉은 얄밉도록 냉랭한 달걀을 들어 올리려는 그때였다. 손끝에서 무언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졌다. 붉디붉은 사과의 생기를 모두 빨아들인 조용한 달걀은 그 견고한 껍질 안에 모든 걸 응축시켜 갖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그렇게 삶이란 모든 이의 삶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어 들고 있다가 다음 이에게 격렬하지만 은밀하게 전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싶었다." (자작 소설『사과, 알 그리고 달빛콩고』)

이상형_창가의 달빛콩고 Moonlight in the window_장지에 석채_116.7×80.3cm_2013~4
이상형_곪 Maturation_장지에 석채_116.7×80.4cm_2013~4
이상형_야수성 Brutalism_장지에 석채_170×88cm_2013~4 이상형_어머니란 이름으로 A mother named_장지에 석채_116.4×116.2cm 이상형_암유 Metaphor_장지에 석채_170×88cm_2013~4
이상형_어머니란 이름으로 A mother named_장지에 석채_116.4×116.2cm_2013~4
이상형_현혹 Temptation_장지에 석채_170×165.5cm_2013~4 이상형_정령 The spirit of a flower_장지에 석채_170×44cm×2_2013~4
이상형_현혹 Temptation_장지에 석채_170×165.5cm_2013~4

나의 작업은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이었다. 품고 있었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화폭으로 돌아와 내가 저질러 놓은 상과 색을 보며 놀라워서 뒤로 물러서선 '이거였던 거야?'라고 되묻곤 했다. 내가 나에게 물었다. '그럼 니가 진짜로 표현하고 싶은 게 뭐야' 10년 전부터 한밤중에 문득문득 빚쟁이처럼 찾아오는 불안감과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거기서부터 였다. 그러던 어느 날「눈으로 세계를 만지다」란 글귀가 내 가슴을 쿵하고 쳤다. 그랬다. 내가 진정으로 숨 쉬고 뛰어 놀 수 있는 곳은 바로 그림이었던 것이다. 눈! 단순히 망막의 상이 비추어지는 것이 아닌 존재와 존재를 접하는 곳도 눈이었다. 사과와 달걀사이, 나무와 하늘사이,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응력선(물체에 외력이 작용했을 때 물체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체 내의 내력으로 생겨나는 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자 생명체가 내뿜는 힘의 자기장이 나를 끌어당겼고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세상에 모든 것의 존재들이 곳곳에서 나를 붕 떠오르게 하더니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들의 속삭임을 그림으로 번역하기로 했다. 그 일은 참 재미나고도 신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 이상형

Vol.20141105c | 이상형展 / LEESANGHYOUNG / 李祥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