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동하다 내밀한시선

김명진_신현경展   2014_1105 ▶︎ 2014_1123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4_110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3 GALLERY3 서울 종로구 인사동 5길 11(인사동 188-4번지) 3층 Tel. +82.2.730.5322 www.gallery3.co.kr

김명진의 작품은 주로 꼴라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린 것처럼 정교하다. 그것은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이어간 붓 질 같다. 여러 가지 색과 무늬가 새겨진 가느다란 한지 끈은 붓에서 나온 하나의 선처럼 화면 위에 흐름을 남긴다. 그 흐름의 흔적은 유기적이지만, 붓에서 직접 나온 선이 아니기에 단절과 간극이 있다. 물감 대신에 준비된 것들은 다양한 길이와 폭, 색의 농도로 이루어진 한지 띠이다. 정확히 언제 만들어진지 기억할 수도 없는 이 재료들은 여러 상자 속에서 서로 섞여 그때그때의 맥락에 맞게 선택된다.

김명진_투명한 계단_장지에 채색, 한지 콜라주_72×150cm_2014

김명진의 작품에서 자연이라는 자못 견고해 보이는 실체는 과정이 된다. 그것은 자연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 갈 뿐이다. 하인리히 롬바흐는 [살아있는 구조]에서 고대와 중세를 아우르는 시기 전체를 특징짓는 실체라는 말과 그 사상은 씨앗에 대한 근본적인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씨앗을 근본적으로 존속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 근본적인 존속자는 식물에서 새롭게 전개되고 다른 모습들을 취하지만, 결국 다시 근본형상으로 되돌아온다. 이 근본 경험으로부터 고대인들은 모든 단계들을 거치는 동안 항상 동일한 것으로 유지되는, 스스로는 아직 형상이 없는 가장 내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들은 본질들과 성질들과 외적인 현상들의 어우러짐으로부터 질서정연한 코스모스가 생긴다고 보았다. 오직 본질만이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개체는 단순히 시간적인 현상으로서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법칙이 인간에게도 적용되었다.

김명진_혈류식물_장지에 채색, 한지 콜라주_138×100cm_2014
김명진_혈류식물_부분

자르기와 결합하기라는 그의 방식은 오히려 실체를 대신하여 들어선 체계나 구조와 관련 된다. 바르트에 의하면 '자르기와 결합'이라는 두 가지 조작은 엄밀한 규칙을 사용하여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나타나도록 한다. 명백한 외적 증명에 의존하는 '사실'과 달리, 예술은 자기가 만든 것을 야기한다는 사실로 만족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시대상의 불가능성들이 담론의 가능성들로 바뀐다. 자유롭게 꾸며내는 과정을 통해, 예술작품은 세계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형식이 된다. 한지 끈으로 된 망을 엮어가는 김명진의 작품은 자연적 대상의 재현이나 자동 기술 같은 내면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이 시작되는 시점은 불분명하다. 자연으로부터도 자아로부터도 시작되지 않는다. 원초적인 것은 불완전하며 그것을 대신하는 보충만이 있을 따름이다. (중략) ● 김명진의 작품은 구성요소들의 이질성이 두드러진다. 명백한 의도와 방향, 목적이 없이 흐르는 선들은 수목의 모델이 아니라, 리좀의 모델과 관련된다. 펠릭스 가타리는 [기계적 무의식]에서 촘스키의 언어학이 전제하는 수목의 모델은 한 점에서 시작해서 이분법에 의해 진행한다고 본다. 반면 리좀의 모델은 임의의 한 점을 임의의 다른 한 점과 연결할 수 있다. 수목모델은 책(사본)을 리좀모델은 지도를 만든다. 리좀의 최종적 성격으로서의 지도는 해체, 연결, 역전 가능하며, 끊임없이 개조할 수 있다.

김명진_허약한 가지_장지에 채색, 한지 콜라주_69×86cm_2014
김명진_바람속_장지에 채색, 한지 콜라주_72×75cm_2014

리좀은 변이, 팽창, 정복, 포획, 꺽꽂이를 통해 나아간다. 위계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며 미리 연결되어 있으며, 중앙 집중화 되어 있는 체계와는 달리, 리좀은 조직화하는 기억이나 중앙 자동장치도 없으며, 오로지 상태들이 순환하고 있을 뿐이다. 나무는 혈통관계이지만 리좀은 결연관계이다. 나무는 '-이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그리고...그리고...그리고'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백지 상태를 상정하는 것, 0에서 출발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것, 시작이나 기초를 찾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여행 또는 운동에 대한 거짓 개념을 함축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절대로 심지 말아라! 씨 뿌리지 말고 꺽어 꽂아라! 하나도 여럿도 되지 말아라. 다양체가 되어라!'라고 제안한다. 김명진의 '이식'은 이러한 리좀적 사고에 기반 하여 유기적 사고나 재현주의에 내재된 계보적인 것을 해체하고, 연결 접속을 늘려 나간다. 이러한 배치물과 흔적들은 '다양체로서의 유기체'의 진면목이다. ■ 이선영

신현경_부끄러워않는Ⅰ_종이에 색연필_76×57cm_2010
신현경_참아주는_한지에 바느질_46×38cm_2009
신현경_바람이 인다_종이에 색연필_76×57cm_2014

위로 ● 큰 소리로 웃고, 큰 소리로 장담하고, 보폭 넓게 걸어도, 돌아선 어깨 위에서 허허로움을 본다. 모두를 향해 힘주어 말하고, 상대의 허물을 지적하고, 주먹을 쥐지만,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려는 용기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내재된 허기는 사랑한다 말해놓고, 초조하게 답을 바라다, 돌아앉아 아물지 않은 제 상처를 다시 만지게 한다. 내가 너를 기뻐함이 아니요, 네 안에서 발견한 나의 즐거움으로 손뼉 치는 것이며, 내가 너를 측은히 여김이 아니요, 너에게서 보아버린 내 슬픔으로 눈물 흘리니, 네 속에 있는 아픈 나를 보고 있었음이다. 우리는 스스로 내 아픔을 보상받으려 그렇게 사랑한다. 평생은 내 상처의 치유과정, 나만큼의 너를 보고, 나만큼의 세상을 본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다. 나를 쓰다듬은 손으로 너의 손을 잡고 싶다. (2009)

신현경_상냥한_한지에 바느질_46×38cm_2009
신현경_너그러운_한지에 색연필_100×70cm_2010

용서 ● 우리 그곳으로 가자. 벗은 몸으로 부끄러움이 없고, 벗은 몸으로 부러움이 없는. 우리 처음 지어진 바, 바람이 시작되던, 거기. 너무도 누추하여 어떤 의로도 가릴 수 없는 부끄러움을 하늘 같은 용서로 벗어내고, 우리 처음 온전하였던 그 모습으로 우리 거기 서자. 거기는 경계가 없는 곳, 거기서 우리 서로 사랑하자. (2014) ■ 신현경

Vol.20141105e | 連-동하다 내밀한시선-김명진_신현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