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 CONTACT

정상수展 / JEONGSANGSOO / 鄭相受 / painting   2014_1106 ▶︎ 2014_1118

정상수_EYE CONTACT - dogⅠ_금박, 아교, color lacq, 레진_지름 8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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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1108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1:00am~08:30pm

현대백화점 충청점 갤러리 H GALLERY H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308 7층 Tel. +82.43.909.2717

여성의 동공 속에재료 정상수는 여러 해 전부터 특정 재료의 사용 자체가 작품의 의도에 대한 알레고리가 되는 작업방식을 시도해왔다. 그의 대표적 재료들은 동박(銅箔), 박을 태워서 얻은 먹과 같은 검은색, 투명한 코팅 재료 등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사용하는 이 재료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채이다. 동박의 매우 독특한 노란색은 매트한 동시에 태양과 같이 빛나고, 에폭시의 투명하고 독특한 광택은 작품의 표면보다 한 겹 위에서 끝없는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먹과 같은 검은색은 화면에 그려진 도상의 어두운 면과 미스터리한 면을 은유한다. 이 재료들의 조형적인 힘은 바로 누구나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 사회는 낮과 밤, 즉 빛과 어둠에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러한 빛과 어둠이라는 시간의 리듬이 모든 것의 기준이다. 재료의 힘은 그들에게 부여된 암묵적 의미에서도 발생한다. 금을 연상시키는 동박의 색채는 필연적으로 부(富)를 떠올리게 하며, 힘과 권력을 연상시킨다. 칠흑 같은 검은색은 우리들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어두운 부분을 연상시킨다. 정상수의 작품에서 우리는 달빛이 호수의 잔잔한 표면 위에 반사되는 듯한, 나무의 그림자와 이야기 나누는 햇살과도 같은 동양적 전통의 반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검은색은 비밀의 색이며 의식이 없는 밤과 같다. 이 색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우리를 감싸고 있던 색이며,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우리를 덮어줄 색이다. 금색의 변화무쌍한 빛과 비밀스러운 어둠, 그것이 정상수가 보여주는 그 만의 독특한 세계이다.

정상수_EYE CONTACT - tiger_금박, 아교, color lacq, 레진_지름 80cm_2014
정상수_EYE CONTACT - eagle_금박, 아교, color lacq, 레진_지름 80cm_2014
정상수_EYE CONTACT - wolf_금박, 아교, color lacq, 레진_지름 80cm_2014

주역들 ●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화면의 첫번째 주역들은 비록 재료와 색채들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주목할 점이 그것들 뿐인 것은 아니다. 이 작품들은 신체나 오브제의 가시적인 형태들을 보여준다. 물론 아무렇게나 선택된 신체나 오브제가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종이에서 오려진 뒤 그림의 표면에 드러난 여성의 몸, 다리, 눈, 기관총 같은 무기 그리고 동물이다. 이 형태들은 개인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들 공통의 기억이며, 우리들 일상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들이고, 우리가 속속들이 알고있는 형태이다. 이 형태들은 정신적, 감정적으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매체이다. 우리의 내밀한 기대와 욕망을 건드림으로써 대체 어떤 측면에서 사람들이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표현들(Cliché)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잠재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사람들의 정신세계에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기관총이나 여성의 다리 등의 이미지들은 보통의 일상 속에서 보다는 잡지의 지면 등을 통해서 더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들, 이런 형태들, 이런 실루엣 들은 사회에 의해 강요된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면서도 야만적 형태의 욕망의 표현인 폭력의 유혹에 고통 받는 인간 본성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작품들에 대해 여기서 아직 다루지 않은 핵심적인 포인트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그림들의 형태이다. 그것들은 보통의 캔버스 그림처럼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며, 이 둥근 형태는 단순한 원형이 아니라 어떤 구상적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바로 눈의 형태, 여성의 눈이다. 정상수는 여성의 눈 속에 포지티브로, 또는 네거티브로 남성의 욕망을 새겨넣었다. 그래서 그 이미지들은 이 사회 속에서 여성이 처한 입장에 대한 비판적 접근처럼 이해된다. 남성적 욕망을 보여주는 상징들로 채워진 이 여성의 눈은, 사실 남성이 바라보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는 여성의 눈을 통해 그것들이 다시 남성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대상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되고 있다. 우리를 보는 시선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세상에 투사한 것이면서도 우리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빛나는 반투명의 코팅재는 여기서 그 반영을 진실의 한 부분으로 만든다. 각각의 작품들은 그래서 어떤 시선에 대한 은유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기를 망설이는 까닭에 그것은 우리를 동요하게 만든다. 우리는 심지어 한 순간 이 이미지들이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작가에게 그것은 욕망과 폭력의 남성, 그들의 시선 속에 담긴 여성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정상수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 지속되어온 이 상황의 책임자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보여주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중인 형태와 클리쉐의 거대한 게임에 뛰어든다. 다른 그림들에서 눈동자의 동공은 동물의 형상으로, 오려낸 그림자의 형태로 채워져 있다. 이 형태는 우리가 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보는 그 무엇이다. 그렇게 이 「eye contact」는 정상수의 작업에서 우리를 보는 것은 항상 '남'이라는 것을 납득하도록 해준다.

정상수_EYE CONTACT - skull_금박, 아교, color lacq, 레진_지름 80cm_2014
정상수_EYE CONTACT - dogⅡ_금박, 아교, color lacq, 레진_지름 60cm_2014
정상수_EYE CONTACT - dogⅢ_금박, 아교, color lacq, 레진_지름 60cm_2014

일상 속에서 ● 정상수의 최근 작품들 가운데에는 두 개의 네모진 형태의 작품도 있다. 캔버스 천 위에 그려진 작품이 아니라 격자를 이루는 나무 패널에 그려진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네모난 형태의 구멍에 그는 검은색과 금색으로 칠해진 대상을 배치한다. 이 네모난 형태를 채우고 있는 구멍의 조합은 구의 형태를 이루는데, 그것은 어떤 종류의 모호한 시각적 모티브이다. 각각의 작은 크기의 작품에서는 모티브를 잘 알아볼 수 있다. 바로 한국의 국기이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면 모티브는 덜 명확하게 변한다. 중요한 것은 이 큰 작품들이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작업한 것으로 구성된 하나의 결과물이며, 또한 일상의 재료로써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이미지는 부처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천사의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작은 이미지들은 천이나 나무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담뱃갑 위에 그려진 것이다. 어떤 담뱃갑들은 작가의 지인이나 일반 사람들이 피운 것이고, 다른 것들은 작가가 직접 피운 것이다. 그렇게 각각의 담뱃갑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표상한다. 이 강렬한 작품들은 일상에 대한 기념비이며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삶은 마치 담배처럼 우리를 관통하며 소모되고 사그라진다. 관람자가 개인적 욕망의 형태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클리쉐와 우리를 바라보는 강렬하고 빛나는 눈동자가 삶에 대해 말하는 바를 혼동하지 않는 한, 정상수는 가공할 조형적 능력을 갖춘 작가이다. ■ 장 루이 쁘와트방

정상수_EYE CONTACT展_현대백화점 충청점 갤러리 H_2014
정상수_EYE CONTACT展_현대백화점 충청점 갤러리 H_2014
정상수_EYE CONTACT展_현대백화점 충청점 갤러리 H_2014

Dans la pupille des yeux des femmesMatériaux Sangsoo est un artiste confirmé qui a commencé, il y a maintenant quelques années à ouvrir une voie où le recours aux matériaux est une allégorie du propos de ses œuvres : la feuille de cuivre, le noir d'encre et la laque translucide. Comprendre son travail, c'est donc d'abord tenter d'entendre ce que nous disent ces matériaux. Face à ces œuvres, ce sont en effet les couleurs que nous percevons en premier, le jaune si spécial de la feuille de cuivre devenant à la fois mat et solaire, la brillance si particulière de la laque translucide qui ouvre presque en avant de la surface une profondeur infinie et le noir de l'encre qui confère au visible sa part d'ombre et de mystère. La force plastique de ces matériaux tient en ceci qu'elle fait jouer de manière reconnaissable par tous, les associations humaines les plus profondes, celles qui sont liées à la lumière et à la nuit, c'est-à-dire à ce rythme du temps qui est pour nous la mesure de toute chose. Mais leur force vient aussi de leur signification implicite. En effet, la couleur rappelant l'or de ces feuilles de cuivre nous l'associons inévitablement avec la richesse, la puissance et le pouvoir. L'encre, nous l'associons, avec l'écriture, mais aussi avec la part d'ombre qui existe en chacun de nous. Dans les œuvres de Sangsoo, on peut aussi percevoir un écho de la tradition orientale qui fait se refléter la lumière de la lune dans l'eau calme du lac, et un rayon de soleil venir converser avec l'ombre d'un arbre. Le noir de l'encre, c'est aussi la couleur du secret et de la nuit de l'inconscient et la couleur de l'inconnu qui nous enveloppe avant notre naissance et nous enveloppera après notre mort. Entre la lumière volage de l'or et la nuit des secrets, c'est l'univers propre de Sangsoo qui se met en place. ● Protagonistes Ses œuvres ne sont pas seulement matériaux et couleurs, même si ce sont eux les premiers protagonistes de la scène qui se joue sous nos yeux. Ces œuvres montrent aussi des formes reconnaissables, en l'occurrence des corps et des objets. Mais ce ne sont pas n'importe quels corps, ni n'importe quels objets. En effet, ce que l'on voit sur ses tableaux, ce sont, découpées dans des feuilles de papier, collées ensuite sur la surface du tableau, des corps de femmes, des jambes de femmes, des yeux de femmes, mais aussi des armes, des mitraillettes et des animaux. Ces formes ne sont pas des représentations individuelles. Ce sont des éléments de notre mémoire collective, des éléments qui font partie de notre vie quotidienne, des formes que nous connaissons par cœur et qui sont le support d'associations mentales et affectives communes à tous. C'est cela qui fait la force potentiellement scandaleuse des œuvres de Sangsoo car elles nous touchent dans nos attentes, nos secrets et montrent en quoi nous sommes hantés par des clichés. Dans l'esprit des humains, les images qui les hantent, celle d'une mitraillette ou celle de jambes de femmes, on les voit moins dans la vie courante que dans les pages des magazines. Et ces images, ces formes, ces contours sont de ceux qui expriment le mieux l'ambiguïté de la nature humaine, tendue vers un idéal de beauté imposé par la société et torturée par l'appel de la violence qui est la traduction du désir sous des formes barbares. Il y a un point central de ces œuvres que nous n'avons pas encore évoqué, c'est celui de la forme de ces tableaux. Ils ne sont pas rectangulaires comme des toiles, mais circulaires et ces cercles ne sont pas de simples cercles, mais ils représentent une forme, celle d'un œil, d'un œil de femme. Sangsoo peint le désir des hommes en l'inscrivant en négatif et en positif dans l'œil des femmes. Ainsi, ses images sont-elles à comprendre comme une approche critique de la place des femmes dans la société. Ces yeux de femmes, couverts ici de symboles qui mettent en scène le désir masculin, montrent en fait ce que les hommes regardent et qui leur est renvoyé ici par un œil féminin. Dans ces œuvres de Sangsoo, nous regardons, mais nous sommes aussi regardés et ce qui nous regarde c'est paradoxalement la part que nous projetons sur le monde et que nous ne voyons pas. La laque brillante et translucide est ici ce qui permet au reflet d'être une part de la vérité Chaque oeuvre est donc une métaphore de la vision. Elle nous trouble parce que nous hésitons à nous y reconnaître. Nous pouvons même croire un instant que ces œuvres donnent des femmes une vision négative. Or ce qu'il s'agit de montrer pour Sangsoo, c'est ce qu'il y a dans le regard des hommes, de l'homme : du désir et de la violence. Sangsoo n'est pas responsable de cette situation aussi ancienne que l'humanité. Au contraire, en l'énonçant, en la montrant, il inscrit son travail de peintre dans le grand jeu de l'histoire des formes et des clichés. Dans d'autres tableaux, la pupille de l'œil est occupée par la figure d'un animal ou plutôt sa découpe, son ombre. Cette forme est à la fois ce que nous voyons et quelque chose qui nous regarde. Ce « eye contact » est ce qui nous fait comprendre que, dans les œuvres de Sangsoo, c'est toujours l'autre qui nous regarde. ● Au jour le jour Parmi les œuvres récentes de Sangsoo, il y aussi deux tableaux rectangulaires. Ce ne sont pas des toiles mais des structures en bois formant comme des grilles et dans chacun des trous, eux aussi de forme rectangulaire, il installe un élément peint en noir et or. La totalité des trous étant remplis de ces formes rectangulaires, une forme globale apparaît alors, une sorte de motif que l'oeil s'applique à deviner. Dans une oeuvre de petite taille, ce motif est reconnaissable, c'est le drapeau coréen. Mais dans le panneau de grande taille, cela est moins évident. Le même drapeau est comme brouillé, par les événements récents qui ont endeuillé la Corée. Ce qui importe, c'est surtout de comprendre que ce grand tableau est à la fois une oeuvre faite au jour le jour et une œuvre faite avec la matière même du quotidien. Car ce panneau est composé d'un grand nombre de petites images qui, si elles sont vues dans un sens rappellent la silhouette du bouddha, et qui, si on les voit dans l'autre sens, ont la forme d'un ange. Ces petites images ne sont cependant pas peintes sur une toile ou sur du bois mais sur des paquets de cigarettes. Certains paquets ont été la propriété temporaire de personnes qu'il connait bien. Les autres sont ceux que l'artiste a fumés. Ainsi, chaque paquet, représente à la fois la vie et la mort. Cette oeuvre forte est un mémorial du quotidien et un hommage à la vie qui inévitablement, comme les cigarettes, se consume à travers nous et en nous. Sangsoo est un artiste d'une efficacité plastique redoutable à condition que nous spectateurs, nous ne confondions pas les clichés qui nous hantent avec les formes de notre désir individuel et l'image de la femme avec ce que les yeux de femmes qui nous regardent, impitoyables et lumineux, nous disent sur notre vie. ■ Jean-Louis Poitevin

Vol.20141106a | 정상수展 / JEONGSANGSOO / 鄭相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