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풍경 속으로

고경남展 / KOKYUNGNAM / 高炅男 / painting   2014_1111 ▶ 2014_1116

고경남_기억의 숲_감추거나, 숨기는_캔버스에 유채_116.5×92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숲속갤러리 SUPSOK GALLERY 청주시 상당구 대성로 122번길 67 2층 Tel. +82.43.223.4100 cbcc.or.kr

'꿈을 꾸는 것' 그것에 대한 그의 태도-고경남 읽기 ● 최근 고경남의 작업을 살펴보면 캔버스의 화면은 꿈을 꾸는 듯 눈을 감은 소년과 그 주위를 가득 메운 꽃의 형상을 주지하게 된다. 물론 화면에서 변주로 느껴지는 가끔씩 등장하는 풍경, 집, 열기구, 나비 등등의 사물들 혹은 나란히 등장하는 소녀 형상, 수백송이의 꽃봉오리가 닫혀있거나 개화한 것 또 그 파스텔톤 색채의 다양함 정도로 열거 할 수 있겠다. 이전의 작업 포트폴리오에서 느껴졌던 전위적인 형태, 사회에 대한 낙서적 디스크립, 이유없는 반항들, 자신과 타자에 대한 어떤 힘이거나 배반의 얄궂은 이미지였던 화면들은 어느새 그들의 당참을 몰아내고, 전혀 다른 완전 반전을 선보이는 파스텔톤의 막대사탕을 입에 문, 달콤한 표정들이 관람하는 필자를 '압-도?' 한다. 그 이전 이미지를 간간히 보아왔던 필자는 조금 당황한 나머지 고경남이라는 작가의 몇 년간 있을 작업 서사에 등장하는 서막과 대략 중략이 사라진 끝을 미리 예고하는 어떤 장면, 혹은 중간중간 함께 등장해서 그 등장인물과 오버랩 되는 어떤 달콤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연출적 이미지, 지속적으로 반복시키는 어떤 속사정의 미로들 등등 온갖 상상적 나래와 분석적 접근으로 작업을 이리저리 속과 겉을 샅샅이 훑는 삼매경에 빠졌다. 그에 대한 뭉툭한 뚝심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던 나로선 아마도 그 화면이 주는 온화한 변성을 어떤 해석론으로 다가서야할지 고민이었다. 물론 차차 고경남에 대한 주변인들이 모르고 있는 다양한 '면'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파헤치기를 기꺼이 하겠지만 현재 마주하고 있는 이 그림, 화면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일까?'가 그에 대한 일차적 초점이며 관심이다. 고경남은 이번 개인전을 앞두고 있어 그런지 작업실은 온통 그 꽃만발 작업들로 가득하다. 작업실 곳곳 작업에 바른 유화 특유의 테레핀 냄새기도 하지만 왠지 유채꽃 기름같은 냄새이기도해 화면의 꽃들이 불러일으키는 꽃내음이라는 착각인지 모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엉켜있는 미끄러짐까지 작동하게 된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덧붙이자면, 필자가 그에 대한 기억이라면 태생이 제주도이고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현재도 그 터전이 집이며 고향이라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 언젠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젠 탐독의 지리멸렬한 스캐닝은 그만두고 화면의 이미지를 분출해낸 고경남이라는 작가와 마주한다. 위에 질문으로 이 마주침의 포문을 열어놓고 그의 대답이 돌아왔을 땐 '어떤 반전'을 기대했던 필자로선 상당히 심플한 대답이었다. 그 즉 복잡다단하고, 불경스러운 세상을 '포근함'으로 바라보고 '꿈꾸고 싶다'이다. 오히려 너무 심플해 더 삼천포로 빠질 것 같은 어려운 지경이지만 갑자기 선회한 고경남의 미적 태도, 취향의 방향으로선 뭔가 자신에 대한 다층적인 의미가 내포되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묻고자 했던 그의 회화적 설정, 감각들은 단숨에 명쾌했다. 그래서 더 진실했다. 필자가 보기엔 매번 그 자신에게 주어졌던 회화적 난제와 미학적 난해함, 개념적 표류를 단적으로 단절하고 새로운 '희망', '꿈꾸기'라는 메시지로 단장하고 그 스스로 처음부터 풀어나가는 것에 작업적 의미로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고경남' 플러스 '작업', '의미 찾기'라는 단서로 풀이되고 그 경계에서 살피고 있다는 것으로 직관되어 명쾌함으로 연결되었지는 모르는 연유다.

고경남_기억의 숲_침략의 반짝임_캔버스에 유채_162×390cm_2014
고경남_기억의 숲_바람꽃, 속삭이는_캔버스에 유채_116.5×92cm_2014
고경남_기억의 숲_바람꽃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4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희망'이라는 '꽃봉오리'와 그 자신에 둘러싼 이미지들은 그러한 것에서 출발하고자 한다는 서막이자 더 즐거운 맛을 즐길 준비로 만든 '에피타이져'이다. 이는 우리 내 인간존재에서 너무 보편적이며 일상적이고, 또한 매번 풀어내기 힘든 명제여서 더욱더 작업에 커다란 주제로 기용하는 것에 망설이기 일쑤다. ● 이런 면에서 고경남이 사용하고 있는 주제 '포근'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그 이미지를 넘어 새끈하고 더 불온한 어떤 경계로 나아갈 임계점에 있어 그 변용될 에너지로 변주의 가능성은 크다. 왜냐하면 몇 개의 메시지로는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욕망은 매번 전복과 반향을 일으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경남은 매번 그 보편적 명제에 대한 풀이함으로서 알싸함과 쾌감을 맛보는 것이며 자신의 카테고리, 영토를 확장하는 태도여서 더 그 묵직함이 보인다. 다만 '왜 이것인가?'와 '왜 이 방향인가?'를 자신에게 '지속과 반복'이라는 시간의 양념과 물리적 울궈냄으로 매번 점철돼야하는 숙명을 지닌다. 그것이 자신의 '희망찾기'라는 테제에서 얼마든지 컨텐츠를 분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고경남이 만든 '희망'이라는 단순한 동화적 화면에서 좀 더 다층적인 시공간을 넘나드는 공감각, 영화적 시나리오, 행동이 얽혀진 경험적 메시지, 이 시대의 현실과 초현실주의 등 매번 변주 가능성의 문학적 '플롯'같은 어떤 기계가 얹혀진다면 그 '고경남식'의 파급적 상상력은 대단할 것이다.

고경남_기억의 숲_꿈과 마주보다Ⅰ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4 고경남_기억의 숲_꿈과 마주보다Ⅱ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4
고경남_기억의 숲_안녕이란 안식Ⅰ_캔버스에 유채_116.5×92cm_2014 고경남_기억의 숲_안녕이란 안식Ⅱ_캔버스에 유채_116.5×92cm_2014
고경남_기억의 숲_시나브로, 그리고 어긋난 이미지_캔버스에 유채_60.5×50cm_2014

이미지는 이미지를 먹고산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를 파생시킨다. 지속적인 파종은 간혹 독특한 우연의 돌연변이를 생산한다. 콩 심은데 콩 나기도 하지만 팥이 튀어나오기를 기대하는 경우다. 또 세상은 가끔 그런 긍정의 변종으로 즐거울 때가 있다. '지속'이란 이름으로 관계 맺기를 통해서 또 이 끊을 수 없는 '관계망'에서 고경남은 자신의 전반적 희망에 대한 서사를 계획하고 매핑하는 것에 현재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다. 다시 고경남의 화면으로 와서 그 자신이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그 자신에게 흐르는 대자에 있음이다. 고경남은 '바다의 순수함', '부드러움', '엷은 녹색', '셀 수 없는 맑은 공기의 층위들', 더 나아가 '제주도라는 지리적 환경' 등이 자신에게 베여져 있음을 알고 그 표면에 드러내는 것이다. 고경남이 그려내는 '희망'이라는 꽃잎을 자신이 만들고 있는 변환conversion의 과정에서 지속duration의 '차연different'이라 여기며 이번 작업들을 필자 나름대로 그 중층의 '고경남식 느낌의 세계'를 엮어봤다. 다음 고경남식의 '희망'이라는 언어적 테제아래 어떤 새로운 그의 '긍정함'들이 화면에 펼쳐질 것인가를 보고 싶다. 꼭! ■ 김복수

Vol.20141111k | 고경남展 / KOKYUNGNAM / 高炅男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