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일상

임해랑展 / IMHAERANG / 任𣢇琅 / painting.installation   2014_1113 ▶︎ 2014_1122

임해랑_편집된일상#497번지_부조에 유채, LED_130.5×162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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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랑 홈페이지_imhaerang.com

초대일시 / 2014_1115_토요일_04:00pm

2014 화성시문화재단 신진작가공모 기획전

기획 / 화성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00pm

동탄아트스페이스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 134 동탄복합문화센터 1층 Tel. +82.31.8015.8266 www.hcf.or.kr

너와 나의 다른 시간, 공간을 스치는 빛 ●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간이란 '한정된 수의 운동'을 나타낸다. 운동의 양이 곧 시간의 양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물리적 시간의 개념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근원적이고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하늘의 공간운동을 통해 측정되는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의 철학자의 시간에 대한 사유에서 임해랑의 작업이 드러내는 고민의 한 축을 발견한다면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주제가 또 있을까. 핵심은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임해랑_편집된 일상-#drowing_종이에 연필_각 40×47cm_2014

19세기 화가 터너가 경험한 속도와 감각 ●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를 대표하는 윌리엄 터너(J.M.Turner, 1775~1851)의 한 작품에 주목해보자. 「비, 증기, 그리고 속도- 대 서부 철도 Rain, Steam, and Speed The Great Western Railway」(1844)라는 다소 긴 제목의 유화이다. 일흔이 거의 다 된 나이에 제작된 이 작품은 언뜻, 희뿌연 색채로 가득한 추상화처럼 보인다. 아마도 당시 이 작품을 처음 본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화면 중앙으로부터 뚫고 나오는 검은색 굴뚝과 함께 다리 위를 내달리는 증기기관차의 모습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빛과 대기의 표현에 관심 많았던 터너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희미한 형체와 휘날리는 색채, 아스라한 분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되는 강한 현실감은 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1825년 영국에 첫 철도가 개통된 이래 대중은 전과 다른 놀라운 속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터너 역시 1840년경에 만들어진 최신형 증기엔진이 장착된 기관차를 타고 템스 강을 건넜다고 한다. 이때 그는 열차의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10여 분 동안이나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달리는 열차의 경이로운 속도와 그로 인한 시각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비, 증기, 그리고 속도 – 대 서부 철도」는 바로 이러한 화가의 감각적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임해랑_편집된 일상#흑석동_부조에 유채_30×80cm_2014
임해랑_편집된 일상#우주_부조에 유채_28×40cm_2014

21세기 작가의 편집된 시간과 공간, 빛 ● 굳이 19세기 화가 터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엄청나게 향상된 속도와 발달된 과학으로 인해 변화된 우리의 일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비행기와 KTX, 인터넷과 실시간 채팅,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우리는 극도의 시간과 공간을 압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이러한 경험은 같은 시공간 안에 있더라도 천차만별의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개인들의 삶을 뜻하기도 한다. 임해랑이 이제까지 보여준 「애매한 풍경」(2012) 시리즈, 「사물의 시간」(2012) 시리즈 「편집된 일상」(2013) 시리즈와 같은 작업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각자의 다른 시간, 공간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관점의 차이가 생기고 또 그것이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이를 일컬어 편집적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편집된 시간과 공간, 해석은 개인마다 고유하다. 그것이 각자의 현재를 이룬다. 임해랑의 작업에서 그 고유한 현재, 저마다의 현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빛이다. 은근한 빛으로, 색색의 빛으로 비추는 이미지는 미묘하게 표정을 달리해가며 잔상을 남긴다. 누군가의 현재는 보는 이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과거가 되고 그것은 또 다시 현재로, 엄밀히 말하면 과거의 현재로 꺼내진다.

임해랑_편집된 일상#L2_아크릴판에 LED_61×91cm_2014
임해랑_편집된 일상#L3_아크릴판에 LED_60×60cm_2014
임해랑_편집된 일상#L5_아크릴판에 LED_40×60cm_2014

익숙함과 낯섦 사이, 경계적 일상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를 둘러싼 일상과 그 안의 사물들 역시 누군가의 시점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내가 보는 것과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무수한 개인의 감각적 경험이 각자의 현재를 이룬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나와 이들의 일상에 대한 지각 역시 다를 것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편안하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실은 어떤 이에게는, 더 나아가 나에게조차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의구심은 임해랑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작품 속 형태들이 비교적 똑 떨어지는 가운데 왠지 모를 어색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아마도 작품들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어긋나는 느낌을 주는 반전적인 요소들이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첩되는 이미지와 선들 사이로 비추는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이라든지, 또는 직선적인 형태들을 에워싼 식물의 형태 혹은 해조류와 같은 모티브가 그런 예이다. 상대적으로 가변적인 인간의 시간, 공간, 사물들이 있는 반면 동이 트고 노을이 지는, 순환하는 자연의 한결 같은 시공간 또한 어김없이 존재한다. 임해랑은 이를 두고 '경계'라고 표현한다. 경계에 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이를 선택의 국면, 그것이 바로 경계에 서 있는 이의 입장이 아닐까, 그렇기에 경계적 입장이란, 비난과 방관의 사이, 또는 비판과 대안모색의 사이, 아니면 그 자체로 비판적 대안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 임해랑이 앞으로 그가 행할 다양한 실험들 가운데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아찔한지만 멋진 외줄타기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이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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