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돌 A Stone

안두진展 / AHNDOOJIN / 安斗鎭 / painting   2014_1114 ▶︎ 2014_1214 / 월요일 휴관

안두진_움직이는 돌_캔버스에 유채_218.2×291.6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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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1114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조현화랑 부산 JOHYUN GALLERY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길 65번길 171(중2동 1501-15번지) Tel. +82.51.747.8853 www.johyungallery.com

이마제(Imager)-이미지가 생성되는 과정 - "이 순수한 현전은 예술의 현전이 아니라 구원하는 '이미지'의 현전이다."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61쪽) 이미지의 권위 ● 이미지의 시대라는 상투적 표현도 이미 식상해졌다. 모든 곳에 이미지가 넘친다는 건, 결국 어디에도 이미지는 없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다. 실제로 이미지라는 개념, 상품, 표현은 넘치고 있지만 현대인들이 이미지의 존재론에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이미지를 소비한다. 마치 이미지는 소비만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러나 이미지를 다루는 것에도 윤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정치, 사회, 문화의 창이자 매우 강력한 자본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이미지의 운명이 끝이 났다는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서 그것은 운명의 끝이 아닌 미학적 체제의 변화로 해석한 바 있다. 사실 그의 의견은 전통적 이미지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과 갈등의 시대로 해석한 20세기 서양미술사를 뒤집어버린다. 현대가 되자 이미지는 수많은 도전을 받는다. 실제로 이미지를 둘러싼 종교적 신학적 윤리, 계몽주의적 태도, 신화의 재생 등과 관련된 기호학적 해석은 이에 대한 저항 세력을 만들어내었다. 현대미술이 기지개를 펼 때, 이미지는 쪼개지고 재조합된다. 그리고 작가들과 비평가들은 이미지를 초월하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전통적 의미의 이미지로부터 해방되겠다는 시도를 일종의 정치적 기획이라 해석한다. 왜 하필 이미지일까? 과연 사람들은 이미지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이미지가 어떤 '진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다시 진지하게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는 존재하는가? 어떻게 이미지는 탄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소멸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미술사 역시 큰 틀로 보면 미술의 탄생과 진화를 다루는 역사학이고 이미지를 읽는 해석학이다. 임상 역사학은 이미지의 탄생과 소멸의 시기를 임의적으로 설정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이미지의 운명은 레디메이드 인생처럼 미리 결정된 소모품에 가깝다. 이제 이미지가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대중의 선택을 받거나 다수의 욕망을 건드리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경우에 해당한다.

안두진_움직이는 돌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4

고대 그리스의 이미지론은 일종의 계보학과 유사하다. 이미지는 원본이 있고 원형의 절대적인 모방(미메시스)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이유는 원형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이미지가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원형에 대한 훼손 없는 모방에 있다. 이미지가 될 만한 것, 그것은 바로 신의 형상이며 신을 원형으로 한 인간의 형상이 바로 신의 모방물, 즉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이미지에는 영혼이 담겼다고 믿게 되었다. 성상은 실제로 원형과의 동일성을 담보하기보다 성상을 모델로 한 원형을 반복적으로 재생한 이미지이다. 서양에서 모방이 신이란 절대적 존재를 이미지로 재생하는 미학적 규범이었다면, 재현은 신을 닮은 형상으로 구성된 또 다른 세계를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방이 원형의 부재를 대신해 종교적 성스러움을 계속 유지시켜준다면, 재현은 미학에 의한 정치체제를 담는다. 그렇다면 복제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는 영혼이 없는 표피에 지나지 않기에 이러한 이미지는 판타스마고리아(환영)로 불렸다. 환영은 실체 없이 현혹하는 이미지이기에 허상에 가까운 것으로 여겼다. 이미지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원형의 부재로부터 기인한다. 이미지는 원형을 대신하기에 그것은 성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원형의 모방물을 복제한 것은 성스러울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은 원형이 없기 때문이다. 원형의 모방 없이 이미지는 존재할 수 없기에, 시뮬라크르는 원형을 지시하지만 영혼 없는 복제물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의 부재는 기독교 사상과 관련이 깊다. 신의 모습을 똑같이 모방했기에 기독교 중심의 유럽문화에서 모방 이미지는 신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뮬라크르를 영혼이 없는 복제물로 본 까닭은 분명해진다. 시뮬라크르는 실제 원형을 그대로 모방한 이미지가 아닌 모방 이미지를 복제한 것이기에, 원형 혹은 원본과 닮아있을 뿐이기에 영혼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안두진_움직이는 돌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14

들뢰즈는 이러한 이미지의 계보학을 인간의 형상과 연결해 설명한 바 있다. 기독교 사상으로 보면 인간은 신의 형상을 모방한 존재다. 인간이 신은 아니지만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을 원본으로 한 모방 이미지를 복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건 마치 안드로이드 같은 인조인간의 존재나 유전자 공학에 의해 복제된 인간을 상상하면 쉽겠다. 그렇다고 시뮬라크르를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원형이 없는 이미지의 증식은 발터 벤야민의 시각으로 볼 때 계급구조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변혁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마치 복제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 문명 사회를 붕괴한다는 묵시록적 미래 소설처럼 말이다. 랑시에르는 현대 미술로 이행하는 과정 중에 나타난 모방 개념의 해체에 대해 모방 자체를 문제로 상정하기보다 모방을 이미지가 생성되는 과정을 대표하는 시대적 체제로 해석한다. 이미지는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 시대적 조건, 주류 문화에 의해 구성되는 개념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두진_움직이는 돌_캔버스에 유채_24.2×33.4cm_2014

이미지의 생성 ● "문장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미지는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의 책, 86쪽) 안두진의 회화는 미학이 아닌 이미지학, 정치적 예술이 아닌 회화의 원형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안두진에게 이미지란 회화를 구성하기 위한 본질적 요소와 같다. 분명한 것은 그가 말하는 이미지가 구체적인 형상이나 이야기 그림과는 다른 것이란 점이다. 그의 회화는 그림(pictorial)의 속성을 충분히 담고 있지만 그것을 고전적 의미의 관습적 회화로 감상할 수는 없다. 그의 그림은 마치 낭만주의 풍경화 모델을 재해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회화적 서사나 양식을 참조하기는 하지만 이를 재현하기보다 이를 통해 이미지가 생성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자연과학적) 실험에 가깝다. 회화에 관한 작가의 집요함은 미술사, 미학, 우주론, 생명공학, 자연과학을 횡단하는데, 본인 작업의 기반을 이미지를 만드는 최소 단위를 지시하는 '이마쿼크'(Imaquark)라는 개념으로 제안한다. 이마쿼크는 원자를 핵과 전자로 쪼갠 후 핵을 다시 중성자와 양성자로 분리한 후 추출된 최소 개념을 부르는 쿼크(quark)와 이미지(image)를 합성한 조어다. 안두진에 따르면 이마쿼크는 이미지가 생성되기 위한 최소 단위다. 작가는 어떤 이유로 이마쿼크와 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만 했을까 궁금하다. 서구에서 이미지의 라틴어 어원인 이마고(imago)는 평면 위에 점,선,면 그리고 색으로 만들어진 그림, 판화 위에 나타난 형상, 풍경 등을 의미한다. 물론 소리나 맛, 감정도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가 반드시 시각적 영역 안에 제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미술에서의 이미지란 보이는 것, 평면 회화나 사진 등을 일컫는다.

안두진_떨어진 돌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4

이에 반해 안두진이 제안하는 이마쿼크 개념은 기존의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대안이자 전형을 극복하기 위한 개념적 장치처럼 보인다. 쉽게 생각하면 마치 픽셀과 유사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제안한 이마쿼크는 구체적인 형상을 가질 수도 있고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점, 선, 면, 얼룩 등이기도 하고 심지어 부피를 가진 물질일 수도 있다. 평면회화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질료들을 사용한 설치 작업에서 그가 제안하는 이마쿼크의 개념은 보다 잘 드러난다. 여기 정확한 명칭이 없는 하찮은 물건부터 연약한 공업재료들이 있다. 모든 재료들, 요소들을 이마쿼크의 단위로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제한된 공간 안에 최소단위들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설치 작업은 건축 모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레고로 쌓은 구조물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거대한 소용돌이나 기하학적인 구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마쿼크는 실제로 서구 관점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를 갖고 있다. 안두진은 서구 이미지학의 기반인 평면과 입체의 관계부터 형상, 모방, 재현과 같은 이미지의 계보학의 틀을 극복하고자 한다. 관습화된 사유는 기념비적 영토다. 이에 반해 이마쿼크는 영토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장소, 비-장소(Atopia)와 같다. 비-장소는 장소의 대척점으로 볼 수 있다. 영토가 없다는 것은 사라지거나 소멸한 상태가 아니라 가시적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잠재하는 상태로 해석될 수 있다. 장소가 물리적인 크기, 부피를 가지고 있다면 비-장소는 크기와 부피로부터 자유로운 장소일 수 있다. 비-장소는 떠돌아다닐 수 있고 기생, 공생, 착생이 가능하다. 비-장소는 모든 경계를 지우는 횡단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 비-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토피아의 다양한 변형 개념 (헤테로토피아, 디스토피아. 아토피아) 중 하나다. 롤랑 바르트는 아토피아(비-장소)를 유토피아처럼 불가능한 장소가 아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유토피아 개념으로 제시했으며 이는 노마디즘, 고정되지 않는 공간으로 해석되곤 한다.

안두진_분리되는 돌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14

안두진의 회화는 지질학 표본일 수도 있고 현미경으로 보는 세포의 움직임일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미지의 생명체, 대지,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형상, 추상, 서사와 같은 양식적 범주도 중요하지 않다. 그는 기본적으로 서양화의 규범 내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회화 세계는 미학과 과학, 동양과 서양이 뒤섞여 있다. 동서양 비교철학가인 프랑수아 줄리앙(François Jullien)에 따르면, 그리스 사상에서의 예술적 모방이란 자연의 이상화와 일반화를 위한 규범(효과)였다면 중국인이 생각하는 예술적 활동이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이용해 형상을 이끌어낸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중국인에게 형상은 단순히 서구적 개념인 이미지로 재현되는 논리와 다르다. 안두진이 의도적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하는 이마쿼크 개념은 서구식의 분류체계로써 회화가 한국의 토양 안에 이식되어 나타난 여러 한계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안두진의 회화는 겹칩과 포개짐, 펼침과 접혀짐, 단절과 연속, 따라가기와 가로지르기가 뒤섞인 움직임과 강도, 힘의 긴장감을 그린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이미지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중심 체제가 보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즉 이미지는 고정된 개념도 실체도 아닌 일련의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미지가 생성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컴퓨터 한 대면 충분한 시대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탄생한 이미지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미지보다 무조건 열등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미지를 비롯해 언어, 낱말, 개념,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외부의 힘, 교육, 역사, 권위, 명성 등이 개인의 생각, 판단을 지배하거나 적어도 고려할만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볼거리는 이미지가 아니라 보도록 강요된 이미지의 허상일 수도 있다. 안두진은 회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 중에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곧 철학적 사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는, 혹은 이미 고정된 사고로부터 벗어나 그 실체에 다가가려는 의지가 바로 예술적, 철학적 여정이기 때문이다. 안두진의 회화를 읽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미지 자체가 메시지는 아니니까. 대신 그림의 요소들, 작은 점부터 무지개 줄기까지, 또는 구름처럼 보이는 흐름과 빛 줄기들 사이의 관계를 엿보기를 권한다. 안두진의 그림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가 생성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 정현

안두진_어떤 돌 A Stone展_조현화랑_2014

Imager–the Process of Creation of Images - "This pure presence is not that of art, but instead of the redeeming Image." (Jacques Rancière, The Future of the Image, p. 61) The Power of the Image ● The phrase 'age of the image' has already become a cliché. The notion that there are images anywhere and everywhere implies that, after all, images are nowhere. In fact, the notions, products, and expressions associated with the image overflow, but it is difficult for contemporary people to find interests in the ontology of the image. We consume images with no feelings of guilt as if they were produced only to be expended. However, when we deal with the image, ethics must be applied. It is because images are the windows to politics, society, and culture, and are extremely powerful tools of capital. In regard to the general opinion that the end of images had come, Jacques Rancière interpreted such a view as not an actual end in the fate of the image but as a change in the aesthetic regime. His idea, in fact, subverts Western art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period that had been seen as the time of challenge and conflict to break away from the traditional ideas of the image. Entering the modern age, the image becomes a subject to a number of challenges. As a matter of fact, religious and theological ethics, the attitude of the Enlightenment, the revival of mythology, and the related semiotic interpretations surrounding the image caused an upsurge in its opposing force. When contemporary art stretches itself, images split and are put together again. Artists and critics strive to transcend images. Rancière sees the effort to break away from the traditional notions of the image as a sort of political project. Why, out of all, the image? What do people want to gain through images? Do images have some kind of 'truth'? We need to rethink about the image in regard to the following questions: Do images exist? How are they created? How do they cease? In a bigger framework, art history is none the less a historical study dealing with the birth and evolution of art and an analytical study that reads images. Clinical study of history was able to set the time of the birth and death of images arbitrarily, however, today, the fates of images are much like predetermined consumables, like the lives of ready-mades. Now, for an image to obtain power, it must get chosen by the public, provoke the desires of many, or present a new paradigm. ● The ancient Greek theory of the image is similar to a kind of genealogy. Images have originals and the fact that absolute imitation (mimesis) of an original form was considered as the highest virtue indicates respect to the original form. If there is a reason why images are capable of obtaining power, it lies in imitating their original forms without any alteration. It is because the form that is worthy of becoming an image is the form of God, and the human form modeled on God is, in fact, an imitation–that is, an image–of God. As a result, images came to be believed to contain souls. Instead of being a token of the sameness to their original forms, sacred images are, indeed, repeatedly recreated images of their original forms that are modeled on sacred images. In the West, if imitation meant an aesthetic norm for recreating God, an absolute being, as an image, recreation means completing a different world composed of forms that resemble God. If imitation preserves religious sanctity on behalf of the absence of an original form, recreation accommodates political regime upon aesthetics. Therefore, the images produced through reproduction are merely soulless shells and these images were known as the phantasmagoria (phantasm). Because the phantasm is an image that entices without an entity, it was considered as close to an illusion. The birth of an image result from, more than anything, the absence of an original form. Since images are the substitutes of their original forms, they can be sacred. However, the images that are the results of reproducing imitations of original forms cannot be sacred. It is because reproductions of images do not have original forms. Images cannot exist without imitating original forms, and therefore simulacra are, even though they hint to the original forms, merely soulless reproductions. The absence of souls is deeply associated with Christian theology. It is because imitations were considered as the same as God in Christian-centered European culture due to their identical imitation to the form of God. The reason why simulacra were seen as soulless reproductions becomes clear here. Because the simulacrum is not an image that identically imitates an actual original form but a reproduction of an imitation, and because it merely resembles an original form or an original, it cannot contain a soul. Gilles Deleuze has explained such geneology of the image by linking it to human form. From a Christian perspective, humans are the creatures that imitate the form of God. Although humans are not God, they have souls. However, if what is reproduced is an image that imitates humans, it becomes a different story. To make it easy, imagine android-like cyborgs or humans cloned through genetic engineering. However, simulacra cannot be dismissed as solely negative phenomena. Multiplication of images devoid of an original form is, from the perspective of Walter Benjamin, a potentiality of revolution that can cause rifts in the class structure. It is like an apocalyptic, futuristic novel of human clones bringing down a scientific civilization that challenges the domain of God. In regard to the dissolution of the concept of imitation that arose in the middle of the transition to contemporary art, Rancière interprets imitation as the regime of the period that represents the process of creation of images rather than postulating imitation itself as a problem. The image may be explained as a concept made up from the conditions of the period and mainstream culture, rather than as a fixed concept. The Creation of Images ● "The sentence is not the sayable and the image is not the visible." (Jacques Rancière, The Future of the Image, p. 86) The paintings of Ahn Doo-Jin stem from the questions related to the study of the image, rather than aesthetics, and original forms of paintings, rather than political art. For Ahn, images are the fundamental elements in constructing a painting. What is clear is that the images he deal with differ from the pictures that have specific forms or narratives. While his paintings demonstrate enough pictorial properties, they cannot be seen as conventional paintings in the classical sense. Although his paintings seem like reinterpretations of the models of Romantic landscapes, and even though the artist makes reference to painterly narrative and style, his paintings are not recreations of such a style but they are more like (natural scientific) experiments that trace the process of creation of images through painterly elements. As the artist's persistence towards painting traverses the fields of art history, aesthetics, cosmology, biotechnology, and natural science, he explains the basis of his work using the concept of the 'imaquark,' which refers to the minimum unit that composes an image. Imaquark is a coined term combining the words image and quark, the smallest unit extracted from splitting an atom into a nucleus and electrons and then again dividing the nucleus into neutrons and protons. According to Ahn, the imaquark is the minimum unit required for images to be created. What is curious is for what sort of reason the artist had to devise a new concept like the imaquark. In the West, imago, the Latin root word of image, means shapes, landscapes, and such that emerge from pictures or prints composed of dots, lines, planes, and colors on top of flat surfaces. Of course the image is not necessarily limited to the visual domain since sounds, tastes, or feelings can also evoke images, however, the image in terms of art generally refers to things that are visible, two-dimensional paintings, photographs, or such. ● In contrast, the concept of the imaquark presented by Ahn seems like an alternative to the existing stereotypical notions of the image and also a conceptual device to overcome its archetypes. Although it strikes as a similar concept to the pixel, the imaquark presented by the artist can have a specific shape and is also a dot, a line, a plane, a smear, or such, the things that can be created in the most simple ways. Furthermore, the imaquark also can be matter that contains volume. Diverging from his two-dimensional paintings, the concept of the imaquark presented by Ahn is more evident in his installation pieces where various substances are used. What are found range from petty objects without designated names to feeble industrial materials. Every material and element can be considered as a unit of imaquark, and the artist uses these minimum units within a limited space in order to create a new space. His installations can look like architectural models, suggest structures built from Legos, or resemble giant whirlpools or geometric structures. The imaquark, in fact, holds a considerable distance to the Western notion of the image. Ahn attempts to overcome the relations between two-dimensional planes and three-dimensional forms, which are the foundation of the Western theory of the image, and the frames of the genealogy of the image such as form, imitation, and recreation. Conventionalized thinking is a monumental territory. Conversely, the imaquark does not have territorial borders. It is a place that does not exist–that is, no-place (atopia). No-place can be viewed as an antipode of place. Missing territories does not indicate a state of disappearance or extinction, but may be interpreted as a state of, although invisible, latency. If place has physical size and volume, no-place is a place unrestricted of size and volume. No-place can drift about and live in parasitic, symbiotic, or epiphytic states. No-place signifies a possibility of traverse that can obliterate all boundaries. No-place is one of the varied concepts of non-existing utopia (heterotopia, dystopia, and atopia). Roland Barthes proposed atopia (no-place) based on the concept of utopia, not as an impossible place but as a potentiality that can carry meanings, and it is often interpreted as nomadism, an unfixed space. ● The paintings of Ahn may be the models of geology or the movements of cells under a microscope. They are similar to the process of creation of unknown creatures, the earth, and the universe. Stylistic classifications, such as figuration, abstraction, or narrative, are not important. Although fundamentally he paints within the norms of Western painting, his work embodies aesthetics and science, and the East and the West. According to François Jullien who studies comparative philosophy focusing on the East and the West, if the Greek idea of artistic imitation was the norm (effect) for idealization and generalization of the nature, the Chinese notion of artistic activity meant realizing a form through the dynamic energy stored within the subject. For Chinese, the form therefore is different from the Western concept of the form that are recreated as images. Ahn does not intentionally try to encompass the East and the West. Nevertheless, the concept of the imaquark he presents seems to reflect the determination to overcome the various limitations arising from transplanting painting, which is part of a Western classification system, to the soil of Korea. As a result, Ahn's paintings portray movements, intensity, and the tenseness of energy where overlapping and overlaying, unfolding and folding, disconnection and succession, and following and crossing are intertwined. According to Rancière, it is not an image that is visible but the central regime of the period that is forced to be revealed. In other words, an image should be seen as not a fixed idea or an entity, but a series of phenomena. Today is a time in which a computer with internet search access is enough of what is needed to create images. Should the images produced using digital technology be automatically dismissed as inferior to the images of the Renaissance age? External force, education, history, authority, reputation, and such control or at least influence personal thoughts and decisions in our process of understanding images as well as language, words, ideas, and phenomena. In other words, a spectacle may be not an image but an illusion of an image forced to be noticed. Ahn is in the middle of a journey, searching for the answers to the questions of painting. These steps are also the steps of philosophical thinking. The determination to escape from what one already knows or a fixed thinking in an attempt to get closer to the true nature is, in fact, an artistic and philosophical journey. There is no need of trying to read Ahn's paintings. The images themselves are not messages. Instead, what is recommended is to look through the relations between pictorial elements, small dots and the lines of rainbows, or cloud-like streams and strokes of lights, as Ahn's paintings portray not images but the process of creation of images. ■ Jung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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