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

김유나展 / KIMYUNA / 金유나 / painting   2014_1116 ▶︎ 2014_1123 / 월요일 휴관

김유나_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혼합재료_90×36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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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강원도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강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원주한지테마파크 WONJU HANJI THEME PARK 강원도 원주시 한지공원길 151 Tel. +82.33.734.4739 www.hanjipark.com

'일상'이라는 텃밭에서 일군 삶의 표상-묘사에서 사유로의 전이1. 우리에게 '삶'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친숙함이 곧 정답을 가리키는 건 아니며, 이성에 의한 해석이 실존의 파악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어쩌면 삶이란 알 수 없는 여정, 그 자체이거나 혹은 플라톤의 말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잃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일과 가족, 친구, 영혼이라는 각기 다른 이름을 순환시키는 과정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건 정의하기 힘든 이 삶을 우린 언제나 규정하려 한다는 점이다. 생활의 기저에 항상 머무는 여생의 의문을 도외시 하지 않은 채 각자의 방식대로 뜻매김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 김유나도 그렇다. 그는 세월의 텃밭에서 자란 인연과 사적 내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과 관계된 일상의 흔적들을 통해 표상을 만들어간다. ● 실제로도 작가는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비롯되는 수없는 물음을 그림이라는 매제로 여며왔다. 삶의 다양성 가운데 자신을 중심으로 한 내용들을 일기처럼 펼쳐놓았고, 그것을 근간으로 오늘을 읽었다. 그건 당대를 살아가는 아니, 살아가야할 알고리즘이었으며 예술가로써의 생을 옮길 수 있었던 뿌리 혹은 원인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그의 그림에 내재된 서술의 모태는 '일상을 텃밭으로 한 다양한 것들에 대한 시선'이랄 수 있다. '일상을 텃밭으로 한 다양한 것들에 대한 시선', 그 내부엔 감정과 기억, 소소할 수 있는 일상의 단면들이 이입되어 있다. 아픔, 슬픔, 사랑, 바람, 꿈, 미래, 소망, 희망, 행복과 같은 명사들이 책과 꽃을 배경으로 부유하고, 인형과 장난감, 화분 등이 놓인 작품「나의 작은 일상」(2011)시리즈처럼 정겹고 따뜻한 사물들이 공간을 안착된 채 화면을 물들인다. 이 모든 것은 일차적으로 생활의 부분을 소탈하게 적시한 것이지만 어떤 희원을 담근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여자이며 엄마이기에 포기해야했던 것들에 대한 꿈들, 틀에 갇혀있어야 하는 현실 속 소망의 갈구"인 것이다.

김유나_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혼합재료_120×120cm_2014

그의 일상은 예술로 치환되면서 시각의 기록으로 남는다. 보이진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예술의 갈증을 대신하고, '책거리(冊架圖)'를 포함한 여러 상징적인 도상에서 알 수 있듯,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예술적 지향성의 언어로 작동한다. 그래서인지「나의 일상」연작 내부에 어지럽게 쌓여있거나 책장에 꽂힌 그림 속 책들은 이성 너머에 존재하는 여백을 제공한다. 이를 해석하면, 책장의 책과 소파와 같은 사물들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가리키며 일견 자유로운 형상1) 을 하고 있다는 점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의 대각선에 위치한 작가 의지의 대리로 기능한다. 특히 전경과 후경 사이에 놓인 어둠(을 비롯한 얇고 반투명한 천 등)은 이상과 현실의 불안한 경계를, 한편으론 현실인이자 예술가로써의 동시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적 고독을 대신하는 기표로 작동한다. 언뜻 보면 그저 하나의 정물화요, 생활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내부엔 이처럼 남다른 의미가 배어있다. ● 책도 책이지만 형상과 관련해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목단 등의 꽃이다. 작가의 거의 모든 그림엔 꽃이 놓이는데, 책과 책 사이에서 자라고 피어난 이 꽃들은 작가의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이를 "화려해보이지만 언젠가는 지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함"2) 이라고 말한다. 허나, 필자의 판단에 이 꽃들은 작가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근원적 고독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징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환경에 좌절 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언어를 상정하려는 정신성과 다름없다.

김유나_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혼합재료_120×120cm_2014

2. 시공에 대한 단상과 작가 자신을 둘러싼 삶의 사유가 배어 있는 김유나의 작업은 '삶의 투영에 진실한 예술'이다. 매우 세련되거나 기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막사발처럼 투박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없진 않으나 위선과는 거리가 있다. 그야말로 미를 가장한 시각적 쾌락, 혹은 고통을 전달하는 가식적이거나 불편한 매개로 남겨질 가능성과는 간극이 있는 작품들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유나의 작업은 여전히 순수하고 바른 언어를 갖고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3) 만복과 축원을 기원했던 우리의 민화처럼 초월성을 내재한 행복의 기표임에도 틀림없다. ● 일례로 구성상 다면적, 다시점적이면서 교합과 개별이 혼재하는 도상은 공간감과 거리감 따위의 일차적인 도식행위를 들어서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근경과 원경 구별마저 없다. 이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기억들이란 늘 픽셀처럼 고른 분포를 지니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듯, 어느 것에도 우위(優位)란 없다는 평준·평화의 개념에 기인하는 조형성이랄 수 있다. 그런 연유로 드러남 역시 다분히 평면적이다. 그렇다고 지루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에는 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녹아 있는 탓이다. 그의 작업에서 읽혀지는 매력은 우선 자아를 포함한 실존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에 있다. 설명 대신 '상징'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도 그의 일련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유의미한 지점이다.4)

김유나_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혼합재료_70×100cm_2014

또 하나는 그의 작업의 경우 감각으로 받아들인 작가 자신의 정서를 초현실주의적인 외형 아래 펼쳐낸다는 사실이다. 어느 지점에선 현실성을 띠다가도 또 다른 측면에선 상상의 촉매를 건드려야만 열람할 수 있다는 건, 그의 작업에 내속된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업엔 시공이 따로 없다. 과거와 현재, 어제와 오늘, 전통과 현재(민화적 차용과 현대적 번안), 멈춤과 지속이 동시에 유효하다. 이는 작가의 예술적 열망과 비례한다. ● 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들을 작거나 큰 화면에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으며 시각화 하는 작가는 형상을 통해 종적의 이탈을 지시하고, 질서를 띠는 구조 내에서 자유로움을 도출한다. 그리고 이곳에 느낌과 감성, 일정한 스토리를 내재시킨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단지 공간의 규정성이나 개개의 형태 따위가 아닌, 심상과 이미지 간 상호관계에 의한 또 다른 이야기 생성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김유나_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혼합재료_70×100cm_2014

3. 꿈과 사랑, 소망과 행복 등의 모든 광채 있는 것들의 열량을 흡수해 버리는 최후의 언어인 예술로 일상의 틈과 내면의 본질을 담아온 김유나의 작품에선 이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여운이 묻어있다. 제 아무리 물신에 찬 환경과 야망에 사로잡혀 산다한들, 욕망과 이상의 마찰음과 번잡스러운 형색을 뚫고, 어느 궤도에 안착한다한들 끈질기게 똬리 붙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떨쳐내긴 힘든 우리네 삶이 기저에 안착되어 있다. 다만 범인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갈 뿐이지만 예술가는 그것을 시와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역경 속에 놓인 기회의 섬을 발견하는 능력과 자기 찾기를 통해 고독을 떨쳐낼 수 있는 지혜로움으로 자신의 세계를 타인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치환하곤 한다. 그리고 우린 김유나의 작품 속에서 그러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에 대한 고민의 연장, 자신에 대한 객관적 시각의 불투명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기록들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근작들은 정체성을 확인하는 다이어리이자 매일 매 시간 깨트리기 어려운 자아성에 대한 두려움을 대신하는 대리물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김유나_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혼합재료_60×60cm_2014

허나 김유나의 작업에서도 아쉬운 점은 발견된다. 지금까지 일련의 작업들과 형식, 표현의 전개 등을 고찰해 볼 때, 오늘날 김유나는 동양화라는 매체의 특성과 민화의 고유성을 저버리지 않은 채 고집스러운 주제의식을 펼쳐왔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가사와 예술을 더불어 개간하는 삶에서 소제를 찾고, 그 소제가 곧 미학적 견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한 범주 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도 있었음이 사실이다. ● 하지만 그것이 곧 표현의 한정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도 맞다. 이차원적인 평면에 삼차원의 입체를, 그것도 결이 같지 않은 내적 심상을 쏟아 붓기엔 작가의 의지와 열정이 남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작가는 다변화의 문을 스스로 열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행로일 수 있다. 내용에 형식을 고려하고, 보다 큰 지점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야할 필요성도 엿보인다. 그래야 어느 순간 자신 앞에 잠시 머물다간 살과 예술의 자유로움 및 열정이 교합된 진실한 언어, 즉, 삶이라는 거푸집에 투영된 실존의 언어는 더욱 확장될 수 있다. ● 다행인 건, 2010년까지 이어지던 민화적인 차용(작품「구경거리」시리즈처럼)에서 서서히 벗어나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갖춰가고 있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조언은 머잖아 완성될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 대비 묘사에서 사유로의 전이가 진행 중이고, 작가적 노력에 더해, 감수성과 지성을 갖춘 예술가의 집안에서 자란 환경도 그에겐 긍정적인 요인이 될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작가 김유나에 대한 근거 있는 희망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오늘을 잇는 내일, 이번을 잇는 다음 전시를 기대하는 이유이고. ■ 홍경한

* 주석 1) 그의 작품 속 특정한 인식을 유추토록 하는 것은 바로 형상들이다. 다만, 여기서의 형상은 인식의 증좌이며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공의 표상으로 머문다. 길상문, 당초문 등을 재해석하여 등장시키는 것에서처럼 그의 작업은 그의 마음이 가리키는 곳에서 지정되고 완성되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현실을 적시하는 언어가 된다. 2) 사실 '불안함'은 브라운 계열과 어두운 명도, 커튼과 같은 몇몇 건조하고 단순한 색감과 사물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 이들은 작가의 말 못할 어떤 억누름을 보여준다. 3) 사실 말이 나와서 덧붙이는 것이지만, 세련미가 넘치는 작품보다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작업이 오히려 깊은 잔상을 남기는 법이다. 예술 표현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이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든, 어떤 페르소나로 나타나던 예술가의 경험과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한 분명한 의식이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며, 예술적 실현의지가 철학과 미의식 아래 이입되어 존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궁금해 하는 좋은 작품이란 그런 범주에 들어선 것들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동시대 미술에 있어 이와 같은 컨텍스트에 부합하는 작업 사례는 쉽게 목도되지 않는다. 즉흥적이며 예술적 가치부여가 희박한 작업들이 현대미술이라는 미명 아래 드러나는 게 태반이다. 여기에 상업적 유혹까지 입혀지면 그로 인한 거북스러움이란 실로 형용하기가 어렵다. 이런 것들은 대개 보편적 정서에 부합한, 창의력과 개성을 적당히 대중적 가치관에 야합해 탄생한 결과물이며, 겉은 화려한 반면 속은 허구적인 느낌만 전달할 뿐이다. 그런 유형의 작품에서는 깊은 감동, 잔잔한 미의식을 체감하거나 끊이지 않는 심미적 여운 등을 경험하기란 실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결과적으로 '후지다'. 4) 이는 서구식 맥락에 덧대어진 동양식 관념의 부유와 같은 것으로, 비록 '타자인지'의 폭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한편으론 충분히 정돈된 상태로 치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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