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 Memory

나인주_변재규_서평주_설종보_정문식_정철교展   2014_1122 ▶︎ 2015_011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4_1206_토요일_03:00pm

후원 / 부산광역시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킴스아트필드미술관 KIMS ART FIELD MUSEUM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죽전 1길 23 Tel. +82.51.517.6820 www.kafmuseum.org

기억으로서의 장소, 그리고 장소의 기억 ● 이번전시 Site & Memory는 장소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동시대 철학에서 '기억'은 주요한 담론이었으며, 미술에서 '장소'는 새롭게 발견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개념은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기억으로서의 장소 혹은 장소의 기억을 호출하는 작가들을 통해 동시대 미술에서 기억과 장소가 담론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이번전시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나인주_Village3_나무에 아크릴페인트_가변설치_2014

장소와 기억, 그리고 작가들나인주는 2가지 개념의 작업을 병행해오고 있다. 하나는 블랙라이트와 형광물감을 통해 공간의 감각을 전이시키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이웃의 삶을 소박하게 재현하는 작업이다. 감천동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시작된 후자의 작업들은 의인화된 동물들의 등장으로 보다 친근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아기자기한 현실적 삶의 공간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대중적인 친화력을 확보하면서 폭넓은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서민들의 생활공간을 그리면서도 작가는 이를 네거티브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우화적인 표현으로 마치 동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만드는데 이러한 환상적 표현은 우리가 지향하는 욕망의 공간이자 유토피아 일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작가는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욕망의 공간으로 치환함으로써 오히려 부재를 증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감천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작가의 '어린왕자'는 대중적 환타지의 한 형태로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산복도로에서 마주쳤던 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작가의 표현방식중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의 하나는 엄청난 공을 들어 만든 현실적 공간에 사람이 아닌 동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설정으로 인해 현실적 공간은 환상적인 공간으로의 전이가 일어난다. 공간에 대한 '환타지'. 이 개념은 나인주 작가의 두 가지 맥락의 작품을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다.

변재규_Remote Sensing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4

변재규의 영상작품은 항상 '시선'과 '주체'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무빙파노라마」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360도로 재현된 영상을 보여주었으며, 「또 다른 소실점」에서는 소실점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내 뿜어져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light cone」에서는 롤러코스터의 속도감을 느끼게 해준 반면 「리멤버링」에서는 아주 느린 속도로 좌우 또는 수직으로 움직이는 시선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진이나 영상에서 고정되었던 시선과 주체의 위치를 교란시켜왔다. 특히 「사진측량」에서는 촬영행위와 그 장면을 촬영한 영상의 관계는 오히려 기억주체의 대상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착안된 작품이다. 우연히 순천만에서 시야에 들어온 창고를 '소금창고'라 인식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실체의 모습은 '조류 관망대'였던 자신의 경험을 담고 있다. 또한 이번에 전시되는 「원격탐사Remote sensing」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작가가 우주라는 공간을 설정한 이유는 그곳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장소이자 우리의 선입관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인 우주선에서 보내온 사진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별다른 선입관 없이 '지각적인 증거'로 쉽게 용인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용인이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간극이고 우리와 일상, 우리와 우주라는 관찰대상과의 물리적 거리감" 때문이라 전제한 뒤, 여전히 "이러한 시공간 틈에는 확장된 시각적 메커니즘과 이데올로기의 욕망들이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곳곳에 숨어" 있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 복잡한 구조체는 이러한 개념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장치를 고안해낸 '주체의 지위'를 관찰케 하는 일종의 표본인 셈이다.

서평주_할아버지의 역사_영상_00:05:20_2014

서평주는 줄곧 현실의 부당함을 '풍자'와 '유머'라는 특유의 방식으로 제기해온 작가다. 가령 작가의 신문작업시리즈들은 미디어의 권위나 정치적인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적인 속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작업들이다. 실제 신문에 텍스트를 입히거나 지우는 방식으로 진행된 일련의 시리즈에서 작가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현실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또한 원전을 배경으로 요가 하는 여인을 대비시킨 작품에서는 재난에 무감각한 현대인의 일상을 숨김없이 보여주기도 하였다.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탁월한 비판적 감수성은 질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 이면을 상상하게 해준다. 이번전시에서 작가는 「할아버지의 역사」라는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영상의 시나리오는 매우 단조롭다. 전반부는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에 휘말리면서 겪었던 이야기와 이로인한 두통으로 항상 뇌선(뇌선은 집집마다 가정상비약으로 준비했던 의약품으로 카페인 성분이 다량 함유된 진통제이다.)을 복용했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할아버지의 실재 공연 장면과 그가 동래지신밟기 예능보유자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고통을 현재적 삶의 방식으로 환원시키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비록러닝타임이 5' 54"에 불과한 짧은 영상물이지만 서사를 압축시켜 보여주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별다른 기법없이 담담하게 찍은 영상, 할아버지의 삶을 상기시키는 다양한 오브제들, 그리고 그 기억의 단편들을 담은 자막이 분할된 화면을 오가면서 영상과 텍스트를 병치시킨다. 이미 과거에 이미지와 텍스트를 훌륭하게 결합시켰던 작업들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순발력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할아버지의 방이라는 '장소', 그의 고통스러운 '기억', 그리고 현재적 삶이 공존하는 이 작품은 각 요소들이 뚜렷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설종보_감천-태극도마을의 오후_아크릴채색_72.7×116cm_2011

설종보는 일상적인 풍경이나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과 풍경을 오랫동안 그려왔다. 리얼리스트인 설종보는 과거 형식주의적인 모더니즘의 미학을 넘어 삶과 동행하는 예술을 꿈꾸어 왔다. 그래서 작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서민의 일상에 머물렀고 그들의 희노애락을 화면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화려한 기교에 짓눌린 관객에게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끼게 하는 작가의 소박한 화면은 특유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전국의 산하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항상 그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민중적인 미의식을 내용과 형식으로 구현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삶에 지친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을 준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도 모두 작가가 전국을 다니며 만났던 풍경들이다. 「법주사 가는 길- 은행나무」에서는 노을지는 저녁 무렵의 너무도 편안한 풍경이 펼쳐진다. 엄마와 길을 걷는 아이, 자전거를 끌고 가는 할머니가 석양의 풍경을 더욱 편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아담한 집은 이들이 살아가는 거처이자 가야할 곳이다. 그에게서 작업은 삶의 상처를 보듬어 내는 치유의 공간으로써의 '장소'를 드러내는 일이다.

정문식_모델하우스2 50P_캔버스에 유채_116.7×80.3cm_2013

정문식은 오랫동안 '도시'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작가다. 산업화가 고도화되면서 남긴 도시라는 생활공동체는 작가에게서는 매우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재현하고 있는 풍경은 마치 '미래의 기억'처럼 다가온다.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도시풍경은 환경적 재앙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산업화가 휩쓸고 지나간 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문식의 작업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활동한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 1733~1808)라는 화가를 떠올리게 한다. 남프랑스 풍경에 로마의 폐허를 결합한 그림을 그렸던 로베르는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로부터 '숭고한 폐허'라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루브르 박물관 최초의 큐레이터로 기록되어있는 로베르는 루브르를 페허로 그린 그림으로 더욱 더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문명의 흥망성쇠를 표현함으로써 당시 지식인 사회의 커다란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프랑스인들이 그토록 동경했던 로마를 폐허로 형상화 했던 로베르처럼 정문식은 화려한 도시를 물에 잠긴 도시의 풍경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모두 구체적인 장소성을 담고 있다. 달맞이 언덕, 감천동, 동백섬의 누리마루, 부산역, 광안리 등 부산의 낯익은 풍경들을 등장한다. 심지어 자신의 작업실조차 수족관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변환시켜 버린다. 디드로가 이야기했던 '숭고한 폐허'라는 표현은 정문식의 작품에 적용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정문식이 표현하고 있는 도시는 산업화의 이면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억이다.

정철교_신암리 아침 풍경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3

작가에게 있어 작업실이 가지는 장소적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매곡에서 12년 동안 작가는 자신의 표현대로 긴 '은둔'을 즐겼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그곳을 '자궁'이라 표현한 적도 있었고, "자신의 생각을 지울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공백의 시간 이후 작가가 새롭게 만난 것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었다. 다양한 실험적인 작업을 진행했던 작가는 매곡작업실을 나와 자신을 그리기 시작한다. 2009년과 2011년에 자신의 자화상으로만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 자화상 시리즈는 서생으로 작업실을 옮기기 전까지 지속된다. 최근 작가는 서생의 풍경에 빠져있다. 그러나 단순히 미학적 대상으로서의 '서생'이 아니라 그 곳에서 자신의 삶과 만나게 된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정철교 특유의 원색적인 화면으로 만나는 서생의 풍경들이다. 어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작가는 멀리 보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화면의 중앙에 배치해 놓는다. 또한 노란하늘과 푸른 바다 너머 송전탑들이 아스라이 지나간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흰 캔버스에 붉은 선으로만 처리된 폐가가 을씨년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집을 삼켜버린 넝쿨들은 고단한 어촌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철교의 풍경은 삶이 탈각된 '형식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삶의 문제가 비로소 드러나는 현실적인 '장소로서의 풍경'을 그린다. ● 이번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장소와 기억을 드러낸다. 가령 나인주는 산복도로라는 현실적인 공간을 모티브로 '공간적 환타지'를 만들어내고, 서평주는 '할아버지의 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 기억의 고통과 현실적 삶을 역어낸다. 리얼리스트 설종보는 삶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으며, 정문식은 산업화의 이면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억으로서의 도시를 그린다. 그리고 변재규는 가상의 우주공간을 설정하고 장치를 고안한 주체와 이를 받아들이는 주체 사이의 틈을 드러내고 있으며, 정철교는 자신의 주거와 동행하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으로부터 비롯된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Site & Memory전은 기억으로서의 장소, 그리고 공간의 기억을 호출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맥락이 교차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자 기억이다. ■ 이영준

Vol.20141122k | Site & Memor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