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d

하용주展 / HAYONGJOO / 河龍宙 / painting   2014_1128 ▶︎ 2014_1212

하용주_Blind_장지에 채색_150×15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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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주_blog.naver.com/gasmask0200

초대일시 / 2014_1128_금요일_05:00pm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레스빠스71 L'ESPACE71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71길 5(청담동 141-11번지) 중인빌딩 B1 Tel. +82.2.511.7101 www.lespace71.com

내가 나에게 답을 묻다 ● 하용주는 방독면을 쓴 인물들을 통해 척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타자의 모습들이 담긴 초상이나 풍경들을 통해 우리들의 현실적인 모습과 상황에 대하여 그려오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방독면은 방어기재로서의 페르소나로 볼 수도 있으며,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정화된 공기를 제공하는 숨구멍 같은 생명유지 장치이기도 하다. 방독면은 그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대상이며, 또한 하용주의 작업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용주의 작품을 떠올리면 바로 방독면과 연관을 지으며 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각인 시키는 것이 현대 미술계에서 지속적으로 작가들이 추구하는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방식이며, 자신을 쉽게 남들에게 각인 시켜 미술계에 안착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하나의 시스템은 작가에게 독창성을 부여하며, 그 이후에 나오는 작가들은 기존의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작가로 구분되거나 아류 정도의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그의 이번 개인전 이전까지의 행보는 이러한 정석(?)을 차근차근 밟아온 점에서는 성공적인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개인전까지 그의 작업에서는 방독면은 물론 방독면이 아닌 다른 것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들이나 불꽃 같은 소재를 새로 사용하기도 하고, 대형 그림을 통해 네러티브에 집중하여 그 스케일을 점점 넓혀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개인전에서는 기존의 작업 선상에서 갑자기 벗어난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그룹전을 한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를 보면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점은 왜 이렇게 정리되진 않은 방식의 전시를 하게 되었을까?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작업실에서 어떤 결론을 내어 새로운 경향을 하나 선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굳이 이 과정을 공개했을까? 라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의도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전시의 의도와 의미를 온전히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하용주_Yellow piece_장지에 채색_25×25cm_2014
하용주_Yellow flag_장지에 채색_73×51cm_2014 하용주_Yellow flag2_장지에 채색_73×51cm_2014

처음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자신이 그려왔던 방식의 방독면 대신 과녁을 얼굴에 쓴 인물이 등장하는 작업과 함께 이 작업을 다시 그린 작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기존의 작업과는 다른 방식을 가진 작품들이다. 새로운 작업들에서는 이전까지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인물이 기본적으로 제외되었고, 인물들의 행동과 상황에 의해서 전달되던 메시지는 정적인 오브제들로 대체되었다.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연결고리는 노란색으로 된 무엇인가로 이는 화병, 깃발, 긴 띠, 의자, 펜스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과 구도는 한 사람의 작업으로 보기에는 통일성이 없으며 정리가 덜 된 모습이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다양하다 보니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쉽게 연결되지 않으며 혼란스럽다. 작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한 형식적 연구는 두 가지의 의도로 파악된다. 첫 번째는 작가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작업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자신이 사용했던 방식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형식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면,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만의 특성을 가진 작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지점일 수 도 있으나 이로 인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화 되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어 가고 있어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렇게 운신의 폭이 좁아진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앞으로 진행해야 할 작업에 대한 고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라는 존재는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작업 태도에 대한 고민으로 전이되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여태까지 해오던 작업에서 벗어나 단지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의 과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작가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작업의 내용들과 같이 스스로에 의해서 통제된 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되돌아 보고 앞으로 작업을 새롭게 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하용주_Yellow flowerpot_장지에 채색_120×80cm_2014
하용주_Flower dress_장지에 채색_120×80cm_2014

다시 작품들로 돌아와 보자. 작가는 마치 학창시절에 작업을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연습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하용주는 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민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하용주의 작업은 항상 변화를 추구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폭이 넓지 않고 변화를 크게 보여주기 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그것을 더욱 심도 있게 향상시켜왔을 뿐이다. 그것은 초기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스타일에서 네러티브로의 이동, 배채법을 이용한 추상적 배경 그리고 특징적인 상징보다는 상황에 맞는 최소한의 상징들을 사용하고자 해왔다. 이는 아마 작가 스스로도 방독면이 본인의 이미지의 고착을 가져오고 있음을 처음부터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변화로는 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음을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이는 자신이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현대인들의 비애와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우리의 사회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강하게 주장해 왔던 그의 작업세계가 이제는 하나의 엄격한 법칙과 규율처럼 자신이 비판하던 것처럼 자신도 맹목적으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과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틀 안에서 반복하고 안주하고 있음을, 오히려 자신이 만든 세계에 눈이 멀어버린 자신을 발견 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자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Blind」처럼 작가로서 작업을 지속해오는 동안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고민하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모든 시선이 외부로만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타성과 관습에 젖어서 반복적인 작업만 해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있다.

하용주_Line2_장지에 채색_25×25cm_2014 하용주_잉여공간_장지에 채색_25×25cm_2014
하용주_모순된 질서2_장지에 채색_182×244cm_2014

하용주는 다시 한번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우리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녹록하지가 않다. 우리의 사회는 빨리 변해가고 현대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 시간은 물론 주관적인 시간이 아니라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어떤 주된 흐름과 경향이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누구나 이야기하는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이러한 흐름과 경향을 주도하고 그 시간의 맨 앞에 위치해 있어야만 하며, 끊임없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새로운 것만을 찾는다. 이는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현대 사회의 큰 화두는 소통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지속적으로 전시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은 기본이며, 자신이 잊혀지지 않게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집단들과 관계를 맺고 지면이든 온라인의 개인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자신의 관점과 주장을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누군가에 읽히고 보인다는 것이 스스로 소비되는 것을 자명하게 알면서도 글이나 사진을 올리거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쓸 수 밖에 없는 굴레가 된다. 이런 태도는 결국 자신의 관점과 의견을 발산하고 외부로 전달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의 성향은 매우 경쟁적이며, 치열하고 소통이라는 이름아래 또 다른 새로운 권력 구조를 형성한다. 새로운 평등적 소통 시스템이라고 보이는 소셜 네트워크도 결국은 하나의 주된 흐름과 유행으로 정보를 잠식하며, 여기에 따라가지 못하면 뒤쳐지는 전형적인 권력과 피권력의 구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 결과 우리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외부적인 상황에만 관심을 가지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진지한 성찰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렇게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사회가 혼재된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내면이 무엇인지 자신의 주체성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자기 내면에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하는 고전적인 방식의 심신을 수행하는 수신(修身)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이를 고치고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나' 에 대한 관심, 나의 내면과의 소통 필요한 것이다. 이는 외부의 가르침이나 정보에 의해서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용주는 작가로서의 자신 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만의 시간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만들어낸 시스템의 시간 속에서 마치 자유로운 예술가인 것처럼 자신이 틀에 갇혀버려 이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살아 왔음을 깨닫고 이를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상업주의로 흘러가는 미술계의 전반적인 경향을 경계하고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획득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도 있겠다. 따라서 하용주의 지금 이러한 실험은 결국은 예술가를 직업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팔리는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 스타일만이 부각시키고 찾는 미술시장의 현 세태를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하용주_Target2_장지에 먹, 채색_150×150cm_2014

물론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온전히 작가만의 새로운 생각은 아니며, 하용주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작업 방식에도 아쉬운 점도 보인다. 우선 형식적 실험이 그에게 익숙한 회화라는 장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본인의 틀을 더욱 과감하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형식적인 실험의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가 시작점에 다시 서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단편적인 부분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사회가 만들어낸 틀과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의 틀을 해체하기 위해 자신의 작업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 제일 먼저 본인의 작업의 습관적인 스타일을 배제하고 분석하고 파헤쳐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 관찰자와 수행자의 태도를 보이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현대 사회가 원하는 빠른 속도의 변화와는 맞지 않는 험난하고 느린 길을 작가가 걷고자 하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은 그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자 화두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작가는 결국 자신 내면에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내기 위한 끊임 없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수행을 정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하용주 행보를 통해 나타나는 그의 작업을 기대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 신승오

Vol.20141128b | 하용주展 / HAYONGJOO / 河龍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