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셰 엘리메릭展 / Moshe Elimelech / painting   2014_1128 ▶ 2014_1231 / 일요일 휴관

모셰 엘리메릭_Sunnyside_패널에 아크릴채색_122×145×14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세솜 GALLERY SESOM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지로 239번길 38 Tel. +82.55.263.1902 www.gallerysesom.com

기하주의(geometricism)는 현대미술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관용어 중 하나이다. 관람객은 이것이 수학이 아니면 논리에 의해 결정되고 인간의 감정이나 해학, 더 나아가 관중들의 개입은 배제되어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기하학의 형식용어에 의존하는 화가들은 이 시대의 재치 있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정답기까지 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단순화된 언어를 사용하는 화가들은 그 단순함과 다양한 색의 팔레트를 이용하여 시각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반면 예상된 간소한 기하학적 형태에 영리하게 맞선다. 여기서의 유머는 건축과 음악에서만큼 순전히 시각적이다. 어떤 경우에서든, 이것은 널리 퍼져있고 철저하며 매우 매력적이지만, 전혀 표면에 들어나 있지 않다. ● 이것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모셰 엘리메릭(Moshe Elimelech)의 전작을 설명한다. 엘리메릭은 (비록 대부분의 수채화에서 그의 작업은 상당한 개인적 표현이 관여되어 있지만) 전문 디자이너였던 직업관으로든 마음속으로든 시각적이고 구조적인 상상에 사로잡혀있다. 특정한 조각적 요소들을 극적으로 이용하는 그의 페인팅작업들은 관중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장난감이며 매체이다. 엘리메릭의 설치물들은 그의 그림의 원리를 보다 넓혀, 웅장한 광경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의 평면작업, 특히 그의 수채화 작품들은 현실과 공상의 사이에 자리잡고 있고, 기이한 상태의 순수구조와 관찰된 실태를 연결시켜 관심을 집중시킨다.

모셰 엘리메릭_Windows No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2×152cm_2014

엘리메릭의 작품에는 우아한 감각이 퍼져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감수성의 통합된 특징이다. 하지만 이 우아함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그의 폭넓은 목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것은 거의 "비밀스러운 정체" 로서 사용되는데 차갑고도 명료하게 감각들을 숨긴다. 확실히, 이것은 정밀히 검토했을 때만 존재를 드러내는 지침원칙이다. 반사성질과 적어도 몇몇의 관중의 방향감각상실을 목표로 한 엘리메릭의 구조물들은 그의 오락성에 대한 몰두를 증명하지만 그것들의 미니멀리스트적인 단순한 면모는 구조물과 관람객의 일정한 거리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수채화작품들에서도 순한 색감과 비단 같은 질감, 더 나아가 종이의 감각성을 표현해 작가는 화려함을 충분히 이용하면서도 우리에게 과도한 화려함을 건네지는 않는다. 작고 섬세히 만들어진, 율동적인 만큼 철저한 줄무늬 패턴으로 이루어진 그의 수채화는, 다른 거대한 작품들에 맞서 더 빠르게 관중의 눈길을 유혹한다. 그 어떠한 것도 처음 접했을 때 이만큼 규칙적이거나, 단순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모셰 엘리메릭_Turnaround_Series of 5_알루미늄,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66×66×9cm_2010
모셰 엘리메릭_strokes_알루미늄,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66×66×9cm_2004

엘리메릭의 작품에 기여하는 현대적 요소가 몇 안 되는 것을 보면 재빠른 관람객들은 사실 그는 전통주의자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실천하는 근대성은 현대식 사치의 양식에 기초하여있지 않고 우리보다 오래된 근대성에 기반한 디자인의 필수적 개념에 관련돼있다. 그는 일류의 근대 전통을 유지하고 재활성화하여 '신근대주의자'로 거듭난다. 그의 명랑하고 광포한 감각의 형태와 구성은 몇 세기 전을 상기시키지만 실제로는 옵아트와 키네틱아트가 연관된 1950년대 후기에서 1960년대에 널리 퍼진 개념과 구조에 근원한다. 또한 엘리메릭은 하드에지와 미니멀리즘 장르에 유념하여, 옵아트와 키네틱아트의 섬세함을 벗고 명확성의 기본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고로 그는 관중을 현혹시키기 보다는 놀라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리메릭은 화려함이 아닌 즉각성에 기반하여, 발견의 과정이나 옵아트와 키네틱아트가 특징적으로 가져오는 오락에 대한 관중의 개입에 의지한다. 예를 들자면, 그의 설치작품들은 시각적인 속임수에 의지하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의 변칙이나 누구나 설명할 수 있는 기초적인 배치에 중점을 두어 모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의 작품들에는 확실히 마력이 있다. 하지만 엘리메릭의 깔끔한 스타일에서 보여지듯이, 그는 관중을 따르고 돕는 마술사이다.

모셰 엘리메릭_Ad Lib_Series of 2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46×102×9cm_2011
모셰 엘리메릭_Ad Lib_Series of 2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46×102×9cm_2011

관중들은 오직 그의 수채화에서만 그의 마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가장 작은 종이작업에서도 엘리메릭의 수공은 순전히 건설적이기 보다는 회화적이다. 그의 수채화 작업에서는 페인팅이나 설치물보다 다양하고 세부적인 시각 정보를 제공한다-이는, 정제되고 절제되어 있는 반면 논리와 구조보다는 형상에 중점을 맞추어 해석적이고 기발한 정보를 제시한다. 여기서 관중의 역할은 우리가 배치의 요소를 수동으로 결정하는 페인팅작품이나 우리가 위치를 어디로 어떻게 바꾸는지에 따른 변화가 영향을 미치는 구조물에서보다 신체적으로 수동적이다. 그의 수채화작품들은 전통적인 회화성의 친밀함과 비관계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모든 미술은 상관관계에 있다; 어떠한 예술품의 상태도 우리가 누구고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우리에게 다양한 영향을 준다. 뒤샹이 주장했듯이, 예술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은 관중이다. 엘리메릭의 다른 작품에서 그는 이것을 핵심인 관중의 신체적 참여에서도 탁월이 분명하게 나타내는데 수채화에서는 엘리메릭의 섬세한 공상이 반영되어 관중의 유세가 이미지의 한 부분이 된다.

모셰 엘리메릭_Yellow Field_종이에 수채_23×25.5cm_2010

만약 수채화작품들이 고정요소로 이루어져있다면, 그것은 관중의 개입으로부터 안전하며, 작품의 변이성은 불변의 요소; 그의 모양과 색에 의해 퍼지고 확대된다. 배열이 불규칙하든 대칭적이든, 이 모양과 색들은 생기가 넘치고 활기찬데, 이것은 관람객의 개입에 좌우되지 않거나 그것의 영향을 받았어도 넘길 수 있는 생기와 활력을 말한다. 우리가 그의 작품의 요소를 재배치할 때, 우리는 우리만큼 생기 넘치는 시각적 존재와 마주한다; 그의 시각적 영혼을 구조에 대입시키고 나면, 엘리메릭은 관중들에게 동일한 활동을 권하며 본래의 규칙보다 더 많은 오락을 전파시킨다. 그 오락은 비록 엘리메릭의 것이라도 결국은 모두가 이긴다. 고로 그의 작품들은 '배치'라 불리는 게 적합하며, 외관의 조건부를 강조한다: 많은 사람의 활동적인 처리에 의존되며, 하나가 아닌 그들의 지속적인 배치는 한 순간의 배치만큼이나 중요하다. ● 설치물들은 엘리메릭의 모든 정황에서 가장 불안정한 환경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는, 적어도 그 경계 안에서 불변하는 것이라곤 없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혼란 위에 만들어지거나 혼란을 암시하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유동의 변화에 의존한다. 이 작품에서의 구성원리는 안무에서만큼이나 유희가 포함되어있지는 않지만, 이것의 고정요소는 형성하는 성분보다는 변형시키는 성분 속에서, 가장 중요한 형성하는 성분인 관중이 그들을 잃고 다시 찾는 것이다. ● 모셰 엘리메릭의 현재 예술적 연구 중 세가지 영역들과, 그들의 모양이나 기능뿐만이 아닌 감각이나 뜻에서 구별된 것들은 철학적으로, 또한 경험적으로 다양하다. 그것들이 제시하는 공통된 요소는 감각의 지속성인데, 단지 흥미로운 디자인이나 현대적 사상이 아닌 흥미로운 관점, 활동적인 개입을 중시하는 정신, 직접 해보든 않든 기하학, 구조, 그리고 논리에 의존하는 신현대주의자의 디자인과 오락에 대한 감각이다. 엘리메릭이 엄격히 선을 그을지라도, 그는 관중에게 눈짓하고 있다. ■ 피터 프랭크

Vol.20141128g | 모셰 엘리메릭展 / Moshe Elimelech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