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작업

지동예찬(지역 동시대 예술가의 찬란한썸씽)展   2014_1129 ▶︎ 2014_120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곽동열_박영균_성수희_이아람

후원 / 문화관광부 주최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주관 / 문화상회다담_현대지동슈퍼마켓 기획 / 김월식

관람시간/ 11:00am~05:00pm

은 미용실_2층 숙소_현대지동슈퍼마켓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 292-3번지 Tel. +82.10.6477.1861 www.muniman.kr

나는 직업이 예술가다.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없지만 직업을 기입하는 난에 예술가 혹 은 작가라고 적어 놓는데 아무런 부담이나 불편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훨씬 오래전, 아마 도 전시를 수십 회도 넘게 치러 내고도 내가 예술가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 을 기억해 보면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매우 자 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에게 실존에 가까운 질문이 사라진 후 예술가 라는 직업이 편안해진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두고 보면, 질문을 잃는다는 것은 오히려 실존을 잃는 것, 아마도 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예술의 그 관성적 허울을 뒤집어쓰고 사는 인간일 뿐, 제도화 되거나 이미 길들여진 관성의 예술가일 수도 있겠다. ● 나는 올 해 초부터 예술인 복지재단의 파견예술가 지원사업의 멘토로 활동 중이다. 기업과 지역 전문가, 각 장르별 예술가 중 예술가들의 작업이 사회와 만나는 지점에서 길잡이와 조언자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주 임무인 멘토들은 예술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늘 예술가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성찰하고 더불어 사회에 본인의 예술과 그 예술적 재능을 매개로 다양한 상호 작용과 그 파장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어쩌면 예술(가)이 편안해진 예술가들과 전문가들이 아직도 치열하게 자신의 예술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는 예술가들에게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과잉 조언(?)을 하거나,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예술이 도구화되는 길을 안내하면서 정신 차리라고 조언(?)해주는 병 주고 약주고인 활동을 하는 셈이다. 적어도 한두 번 이상씩은 직업난에 예술가로 자신을 기재하는데 고민했던 예술가들은 그 만큼 예술가라는 직업이 상용화된 사회에 대한 비전을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라는 직업이 메우지 못하는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편한 심리 (직업은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심리)와 또한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재능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예술가라는 직업에 대한 자기표현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무도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직업은 경제 활동 외에 자신이 선택한 삶의 의미를 동반 성장시켜주는 것이라면 예술가에게 예술가란 직업은 어쩌면 처음부터 완벽한 예술을 이룬 천재들에게만 통용되는 직업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 기업에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세금을 깎아주고, 어린이들에게 무상교육과 보육을 정치적 공약으로 내세우며, 실재 사회적 약자들에게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상식이다. 당연하게도 예술가의 활동을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용으로써의 예술인 복지를 지원하는 방식은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가치있는 일이다. 때문에 예술인 복지재단의 파견 예술가 사업은 당연하게도 이 원칙선 상에서 지원되고 예술가들은 이 지원의 원칙상에서 활동한다. 누구는 기업으로 누구는 지역에서 각자의 예술적 재능을 지역과 기업을 위해 활용한다. 월 30시간 이상 파견지에서 활동한다는 의무 사항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자율적 방식으로 개인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파견 예술가 사업은 예술가의 작업을 직업으로 인정하려는 공식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비슷한 이유로 매월 일정의 금액을 지원하는 스웨덴 정부의 '국가 예술가 봉급'도 스웨덴의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작을 증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적 지원 시스템이다. 국가가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방식에서는 나라별 그 차이가 있지만 잉여적 활동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예술가의 작업에 기대하는 국가 정책이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는 단순하게 예술가의 먹고사는 문제를 지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술가의 작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에 지원을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 예술이 공무라 한다면 너무 무리한 해석일까? ● 직업이 작업인 올 해 수원 지역에 파견된 예술가 중 몇 명이 한 해의 작업을 정리하는 전시를 만든다. 이들은 예술을 영위하기 위해 각 각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다. 독일 유학시절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운전이 귀국 후에도 이어져 한동안 대리운전기사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예술활동을 했던 작가. 시급 5천원의 커피숍에서 많게는 하루 100테이블의 주문을 받고 커피를 팔았던 작가, 난치병을 고치기 위해 미국에서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하고 귀국 후 온갖 잡무적 아르바이트로 작업을 영위했던 작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집안의 눈칫밥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의 장사를 도와 고기를 팔 수 밖에 없었던 작가는 귀한 시간과 바꾼 직업 아닌 직업으로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들은 올 해 처음 예술인 복지 재단의 파견 예술가 지원 사업으로 본인의 작업으로 직업을 대신하며 작업을 했다. 이들은 수원의 작은 문화공간인 다담과 화성 담벼락 맞은편에서 수원 지동의 근현대를 함께했던 현대지동슈퍼마켓에 파견되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화성 때문에 지역의 일부가 철거되고, 주민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노인들만 거주하는 지역에 예술가들이 파견된 셈이다. 노인들과 점집(무속인)만 즐비한 지동에서 작가들은 본인의 직업에 충실하게 작업을 수행했다. 과연 파견 직업인 작업이 어떤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향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대신 지동예찬 (지역 동시대 예술가의 찬란한썸씽)한 직업의 작업을 나는 찬란한썸씽으로 부르고 싶다. ■ 김월식

곽동열_골목안신당_2014
곽동열_지동신_폐종이박스, 테이프_가변크기_2014

평범한 골목길 풍경, 일상의 공간 속속들이 수많은 이야기와 이미지가 숨어있다. 우리가 흔히 그리는 일상의 풍경과 대비되는 아니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가끔은 공포를 느끼는 사람까지, 초현실적 이미지 들을 한껏 머금고 일상에서 한발자국 뒤에 머물러 드러내지 않고 부딪치려 하지 않는 곳, 하지만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꿈틀거림이 있는 공간을 찾아가본다. 의외로 쉽게 일상의 거리에서 문하나 열고 선하나 넘어가면 모든 공간 배경이 바뀌는 필름처럼 등 뒤의 일상풍경을 확 잡아먹어버리는 듯하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기 전까지 그들을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고 밖에서 고민하고 상상하던 작가의 생각들은 작가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을 대상화 하여 접근 하고자 하는지, 사람과 함께 작업이든 관계든 얼마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접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얻게 만들었다. 삶과 일상과 종교와의 관계를 고민하지만 그 일상과 삶 종교 안에 각자의 삶에 주목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속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어리석은 과정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 곽동열

박영균_지금동네벽화_단채널 비디오_가변크기_2014
박영균_지금동네벽화_단채널 비디오_가변크기_2014

오늘날 서울이며 부산, 대구, 광주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전국의 군소 도시 읍면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있으니 바로 '벽화 마을'이다. '지금 동네 벽화'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펼쳐지고 있는 벽화를 중심으로 해서 공공미술로써 벽화의 현 위치를 진단해보고자 하는 기획아래 리서치를 하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진행 중에 있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낭만적인 풍경, 같은 소재들로 새로울 것 없이 채워가는 벽화마을들. 물론, 그 순수한 뜻과 작업 후의 깨끗해진 마을 풍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변두리의 낙후한 마을을 그대로 두기 보다는 정성과 뜻을 모아 조금이라도 말끔하게 단장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공미술로써 벽화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아닐 것이며, 일회성으로 끝나버리고 방치돼서는 안 될 것이다. 다양한 가치에서 벽화가 갖는 의미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 박영균

성수희_cityandsound1_종이에 연필, 드로잉_40×29.7cm_2014
성수희_cityandsound2_종이에 연필, 드로잉_40×29.7cm_2014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대하여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도 그럴법한 것이, 3년 전 한 잔혹한 사건으로 인해 수없이 매스컴을 오르내리던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 사건이 지나간 뒤 이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이 없다. 아. 요즘엔 지동벽화거리라는 이름으로 지역과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미지가 치덕치덕 덧대어져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이 착한 이미지로 지역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동을 산책하다보면 종종 젊은 커플이 카메라를 들고 지동벽화마을이 어딘지를 묻곤 하니까. 적어도 내가 처음 본 지동의 모습도 그러했다. 어떤 평범하게 이끌려, 그리고 나중엔 평범하게 소외된 이 공간에 대한 물음으로, 이곳에서 지난 몇 달간 한 달에 30시간 이상을 직업적으로 산책하고 일상풍경의 소리를 직업적으로 채집했다. 기록을 통한 관찰을 하고 지동을 배경으로 퍼져있는 문화적, 사회적 코드들을 사운드를 통해 읽는다. 이게 내가 지난 몇 개월간 지동에 파견 작가로서 작업하면서 예술가로서 지역을 매개하는 방법이었다. 작업적으로 산책한다. 공간읽기를 통해 평범함에 대해 사유하고, 지역의 모습에 대해 인문적, 사회적 시각을 덧붙여 읽어나가는 동안 이것이 누구를 위한 산책이었는가? 라고 자문한다면, '나 자신'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평범한 소리를 녹음하고 듣는 것에 사람들은 경제적 가치를 두거나, 감상의 욕구를 느끼지 않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그저 나 자신에게 하는 그 발언이 개인적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된다면 어떨까.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마 나에게 돌아와야 할 이 재귀적 발언을 공식화함으로서 작품을 보는 누구나가, 작품속의 소리 산책하는 '나'가 될 가능성을 열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직업적으로 채집한 낸 아주 평범하고, 지루하고, 일상적인 소리를 들으면 사실 정말 별거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별거 없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으며, 이 평범함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자한다.지동이라는 평범하게 소외된 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 ■ 성수희

이아람_지동은세인마켓Ⅰ_캔버스에 유채_50×60.6cm_2014
이아람_지동은세인마켓Ⅱ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4

「지동은세인마켓」은 6개월 동안 수원 지동에 드나들면서 마주한 풍경이다. 작업을 한답시고 부러 어색한 감정을 감춘 채 말을 걸어보기도, 차를 대접하기도 했던 모습이 억지스러웠을 때였다. 그저 반복되는 인사만으로도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겠다는 유익한 스트레스는 개인적인 내러티브로 습득되는 상황을 겪게 된다. 인테리어-세인상사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집 벽에 가득 메운 야생화를 보며 문화재 보호법으로 곧 철거될 보금자리의 풍경을 기억 속에 남겨야하는 아쉬움을 토로했고, 10대부터 평생 미용실을 운영하신 사장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남은여생을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막막함을 가지고 있다. 오후, 해가 중천에 뜨면 햇빛이 잘 드는 길가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도 이쪽저쪽 오고가는 소문을 이야기하다가도 작가의 작업실에 심어져 있는 꽃과 나무에 물을 주지 않는다고 핀잔을 준다. 사람도 밥을 먹듯이 식물에 세 번씩 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지동의 이야기이다. 이곳의 삶은 앎이 형성이 되는 경험적 공간이며 전시된 그림과 장소 사이에 현존하는 미세한 간격을 따라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는 지역이다. 「지동은세인마켓」은 노년의 삶이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의 특별함보다는 행복을 대하는 일상을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작업이다. ■ 이아람

Vol.20141129c | 직업과 작업-지동예찬(지역 동시대 예술가의 찬란한썸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