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가?

Why we can't see the far side of the Moon?展   2014_1129 ▶︎ 2014_1213

초대일시 / 2014_1129_토요일_02:00pm

참여작가 김민_김익현_박정근_성보라_안다솜_안종현 양윤선_이내_이승훈_이우기_임태훈_조재무_홍진훤

후원 / 더 텍사스프로젝트_제1회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달

관람시간 / 01:00pm~07:00pm

더텍사스프로젝트 THE TEXASPROJECT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290번지 www.facebook.com/thetexasproject2013

근대와 산업화를 거쳐 IMF를 겪어온 대한민국에서 완고한 의지와 막연한 기대감은 우리를 미래로 추동하는 힘이라 믿어왔다. 그것은 개인적, 사회적 토대위에 자연스럽게 때로는 의식적으로 추구되어지는 무엇이었다. 주어진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삶의 속도는 성공을 향한 최고의 지향이되었다. 그것은 개인, 가족, 사회, 국가를 위한 절대선의 상징이었고 당대의 인간상이 되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모두의 성실은 아침형인간을 만들었고 부자아빠를 생산했으며 끝내 청춘을 아픔으로 규정했다. 모든것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모든것이 선하지는 않았다. 

김민_2013년 8월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2호선_디지털 프린트_20×25cm_2014
김익현_삼풍참사위령탑_C 프린트_100×120cm_2010
박정근_나를 구성하는 공간_디지털 프린트_60×90cm_2014
성보라_Untitled_잉크젯 프린트_50×50cm_2012

어느순간 우리의 내달림이 큰 굉음을 내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우리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반은 약해졌고 그 반작용은 강해졌다. 88만원세대를 그리워하는 청년실업을 마주했고 가족은 붕괴되었으며 출산율은 바닥을 향해 내달린다. 그에 반해 자살율은 치솟았고 양극화는 극에 달했다. 중산층의 붕괴와 함께 강남의 백화점과 다리가 무너져 내렸고 진도앞바다에서는 대형 여객선이 침몰했다. 모두가 직감했지만 눈 감았던 불안은 여지없이 우리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났고 그 충격은 이내 우리에게 좌절과 상실을 경험하게 했다. 

안다솜_이순복_디지털 프린트_20×20cm_2013
안종현_붉은 방_단채널 비디오_00:06:52_2014
양윤선_The Donut Song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_2013
이내_시간의 영속성에 내재된 비가역성에 대한 연구_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_2013

하지만 켜켜이 쌓여온 군상들의 관성은 이 좌절 앞에서 망각을 위한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이미 우리가 만든 작은 우주는 그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게 진화하였고 이 궤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념을 통해 망각을 정당화시켜야만 했다. 그 자체로 가속운동인 궤도운동을 하는 우리에게 이 시공간을 벗어날 방법은 없어보였다. 그저 더 빠르게 내달릴뿐이다. 

이승훈_At the second my place_컬러 포지티브 필름_10×12.5cm_2014
이우기_명백한운명, 땅을 사랑한 어느 장관후보자의 땅, 128000원_디지털 프린트_150×120cm_2009
임태훈_자유의 출발점 #02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8

하지만 어느날 어느 길모퉁이를 돌아 그 망각의 기념과 문득 마주치는 순간, 그 부재의 시공간은 또다른 생경함의 충돌을 만들어낸다. 애써 지우려 누군가 만든 풍경이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각인의 풍경이 되기도한다. 이 사소한 멈칫함은 우리 궤도속의 관습적 신념에 균열을 야기한다. 그것은 너무나 사소해서 예민하게 관찰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는 역설적 굉음이기도 하다. 망각과 각인은 그렇게 기념의 행위와 기념을 발견하는 행위로 하나가 되어간다.

조재무_용산사진관_디지털 프린트_38.5×50.5cm_2009
홍진훤_PROTOTYPE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14

지구에 사는 우리는 늘 달의 한 면만을 볼 수 있다. 달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의 궤도운동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1959년 달 탐사선 루나3호는 처음으로 우리에게 달의 뒷면을 보여주었다. 박테리아가 나타난 이래로 스스로 궤도에 균열을 내고 달의 뒷면을 보기까지 35억년이 걸린셈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 사회의 뒷면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떤 망각을 각인하고 있을까? 우리가 반응한 균열의 풍경은 어떤 것들일까? 그 균열의 틈을 기록한 기념행위들은 또 어떤 망각과 어떤 각인을 만들어 내게 될까? 우리는 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가? ■ 홍진훤

Vol.20141129h | 우리는 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