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공 公共·空

강지호展 / KANGJIHO / 姜智淏 / mixed media   2014_1201 ▶ 2014_1206 / 일요일 휴관

강지호_Walk Along-Walk Alone_나무에 아크릴채색_50×72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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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호 블로그_blog.naver.com/kjh0129

초대일시 / 2014_1202_화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00am~11: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 움 SPACE UM 부산시 동래구 명륜로 106(명륜동 424번지) 혜준빌딩 1층 Tel. +82.51.557.3369 www.spaceum.kr

공허한 우리와 독백의 공간Community as void and void space as monologue 강지호의 『公共·空』展 작업의 주된 매체는 나무이다. 작업에 사용된 나무는 일상에서 버려진 따라서 통상 폐목재라 불리는 것이다. 강지호 작업의 특징을 크게 작업의 제작 및 기법의 측면에 있어 폐목재의 사용과 그것의 재조직화 그리고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 군집화된 인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작업에서 사용된 폐목재는 말 그대로 못쓰게 되거나 버려진(廢)것이다. 인간의 윤택한 혹은 편리한 삶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 버려진 것, 작가는 그것을 수집하고 재조직화 한 뒤 의미들을 그려 넣는다.

강지호_Some-People7_나무에 아크릴채색_187×118.5cm_2014
강지호_Some-People2_나무에 아크릴채색_107×103.5cm_2014

한 무리가 있다. 그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와 옷차림새들로부터 대략적으로 그 장소들을 유추할 수 있으며 해변, 공원, 혹은 공연장, 길거리 등으로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읽혀질 수 있다. 어떻게 읽혀지든 결국 공공의 성질을 띤 장소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공공의 장소는 많은 사람들이 점유하고 또한 활동하는 장소이다. 공공의 장소에 속해있는 다수의 사람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함께 있기'보다는 오히려 '홀로 있기'라는 느낌을 주는데 동일한 공간을 위치하고 있다하더라고 그곳엔 무엇인가 허전함이 있다. 그러한 허전함의 원인은 「Walk along-Walk alone(따라 걷기-혼자걷기)」에서 조금 더 명확해 지는데 이들이 그곳에 '머무름'보다는 '스쳐 지나감'으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의 '관계'에 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관람객의 눈으로(「The eye of spectators」) 타인을 사물처럼 바라보거나 때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는가.

강지호_Some-People13_나무에 아크릴채색_90×90cm_2014
강지호_Some-People10_나무에 아크릴채색_100×100cm_2014

이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 같은 공간 속에 위치한 상대방이 아닌 자신에게로 향해 있기 때문에 이 관계는 피상적이라고 말하기도 곤란한데 이미 속 알맹이라고 하는 본연의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의미는 '그려 넣기' 이전에 폐목재의 선택과 재조직화에서부터 이미 예견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작가가 언급하고 있듯이 폐목재가 "우리인간과 닮아 있다"는데 작업의 출발점이 있기 때문이다. 폐목재는 인간을 위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윤택한 혹은 편리한 삶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 버려진 폐목재, 현대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연발생적이기 보다는 인간,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형성되는 공동체와 또한 각각의 쓸모로써 그 명확한 목표와 목적 달성이후 해체되어버리는 우리의 공동체, 그리고 그렇게 해체 된 각각의 개인과 분할 된 폐목재의 조각, 작가의 말처럼 참으로 닮아있지 않은가. 이렇듯 폐목재는 곧 작업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자 기조로써 이미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강지호_Pieces of relations_나무에 아크릴채색_48×77cm_2014
강지호_Invisible man_나무에 아크릴채색_87.5×69.5cm_2014

다시 각각의 분할된 공간에 위치한 그들로 돌아가 보자, 그들이 무엇인가 전하고자 하는바가 있다면 그것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것은 연극에서의 독백(monologue)과 유사성을 갖는다. 독백은 관계적 측면에 있어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다. 그 말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말로 자신을 향한 말이기 때문에 소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독백이 다수의 관객들, 즉 상황 바깥에 있는 우리에게 향해있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놓인 상황의 쟁점인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뿐인 비어있는 자신들을 보여주면서 외부의 우리에게 대화를 요청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얼굴이 비어있는' 막연한 어떤(some) 타인이기를 거절하며 막연한 어떤(some) 관계이기를 거부하고 이 비어있음을 의미들로 채워나가자고 하는 시도는 아닐까. 『公共·空』은 우리들의 모습들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러한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박은지

Vol.20141202h | 강지호展 / KANGJIHO / 姜智淏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