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광팩토리 Bi-gwang Factory

김단비展 / KIMDANBI / 金단비 / painting   2014_1203 ▶ 2014_1208

김단비_화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6×162cm_2014

초대일시 / 2014_120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 12월8일_10:30am~12: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3층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비광팩토리』를 방문한 관객에게"암탉은 두 다리가 묶인 채 분필로 그어진 선을 응시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그 선은 마치 사슬마냥 부리 가까이에 그어져 있었다. 그런데 묶인 것이 풀린 다음에도 여전히 암탉은 매혹된 채 꼼짝하지 않고 '자신의 정복자에게 복종하는'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의『경이로운 암탉』) 나는 빠져들어 간다. 그러므로 너는 사라진다. ● 「아이씐나」를 바라보면, 화투의 세계를 달리는 존재 혹은 그림자가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 이 이미지에서 저 이미지로,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마라토너처럼 달리는 검은 사람이 보인다. 무엇이 급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려한 풍경을 도외시한 채 지나쳐간다.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수상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정체를 숨긴 채 이질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아무튼 쉼 없이 달리던 그(녀)가 멈춘 곳은 12월의 풍경이다. 그런데 주행 중 보이지 않았던 우산과 그 옆자리에 함께 서있는 강아지 한 마리는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원래대로라면 그 자리엔 우산 든 비광씨와 개구리 한 마리가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 둘이 사라지고 새로운 둘로 대체 되었다. 여기서 하나의 가설을 세우자면, 비광씨는 우산이 필요하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이때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정체모를 이방인이 새로운 비광씨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 속으로 들어온 존재와 게임 밖으로 나가버린 존재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잠깐! 게임 속으로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고, 또 게임 속 존재가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 거죠? 이것은 함정이다. 게임은 상상계와 상징계의 놀이이기 때문에 진실을 찾으려면 언제나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토끼굴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앨리스처럼. / 감상 포인트: 강아지

김단비_아이씐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21cm×12_2014

나르시시즘 ● 새로운 비광씨는 화투 이미지들을 가지고 놀면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도 하고 자신을 치장하기도 한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이미지에 사로잡혀있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 주문을 걸고 최면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비광씨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시리즈는 그 증거물들이다. 마술에 걸린 듯 황홀해 하는 자화상들은 화장대 앞에서의 욕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과시와 허세 같은 지배 욕구를 부추기기 때문에 착란을 일으킨다. 자아를 확인하는 거울과 자화상은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 동일시라는 암시를 걸어오는 위험한 도구이자 그림이다. 왜냐하면, 재현된 이미지는 실체를 궁금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비광씨는 화투 속에서 자신을 꾸미고 다변화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잊어버릴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있다. 그리고 자꾸만 우리의 눈을 현혹하려고 한다. / 비광씨를 구출해줄 아이템: 이상의「거울」, 인셉션의「팽이」 비광씨 ● 화투의 세계에서 명화의 세계로의 침범은 일종의 탐험가 또는 관광객의 사유이다. 새로운 것과 불확실성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은 충동이 낯선 세계를 찾게 만드는 것이다. 비광씨는 자신의 세상을 명화 속의 풍경으로 바꿔보는 놀이에 심취해 있다. 일종의 인테리어 취미활동이다. 때문에 패러디 연작들은 다른 세계로 찾아간 것이 아니다. 반대로 세계가 찾아오도록 도치시킨 것이다. 상상계에 예속된 그(녀)가 어디서 놀고 웃고 떠들 수 있는가. 화투의 빨간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안에 갇혀있어야 한다. 아담이 되어보고 달마도 되어보고 천수관음상까지 되어서도 빨간 틀은 벗어날 수 없다. 이로부터 명화 패러디는 비광씨의 연극적 코스프레로 막을 내린다.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궁지를 만들지만 여전히 궁지에 몰려있는 셈이다.

김단비_완벽캐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35cm×4_2014

손에 쥔 패 ● 손에 쥔 패란 예견된 사건들의 전조를 암시하는 기호다. 만약, 이 패들이 현실에 들러붙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비광씨는 이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화투 패를 펼쳐 보인다. 넉장의 패 중 석장은 쌍피고 나머지 한 장은 알 수 없는 뒷면이다. 아주 좋은 패를 쥐고 있다. 그런데 곧바로 아주 나쁜 패로 돌변한다. 점수를 내는 쌍피가 아니라 상처를 내는 쌍피로 변신한 것이다. 예리한 관찰자라면 이미 간파하고 있겠지만, 쌍피가 드러내고 있는 이미지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대구지하철 참사' 그리고 '세월호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쌍피공화국」에서 패는 아직 던져진 것이 아닌 잠재태이기 때문에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채 불온한 기운만 흐르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미 일어나 버렸다. 비광씨는 지나간 미래를 붙들고 다가올 과거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부질없는 일이다. ● 상대편에게 쌍피는 기습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언제나 당할 수밖에 없는 위험요소다. 그러나 반대로 쌍피를 소유하게 된다면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가 된다. 잔잔한 수면위에 동심원의 파장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신화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행을 기점으로 다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도미노처럼.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사건은 괴로워하는 자가 많을수록 그리고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신화화 된다. 상처란 무시무시한 내면성이기 때문에 봉합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틈을 벌리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마음 한 구석으로 비집고 들어온 사건은 금세 몸을 갈취하고 주인행세를 하게 된다. 사건은 과거 시제이지만 기억은 언제나 현재 시제로 겪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닫히지 않는 문이 바로 상처다. 화투의 뒷면처럼 씨줄과 날줄의 교차에 의해서 벌어진 이미지가 봉합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6월)   비 쌍피(12월) / 대구지하철 참사(2월)   난초 쌍피(5월) / 세월호 사건(4월)   국단 쌍피(9월) /「쌍피의 오류 혹은 사건의 어긋남」

김단비_쌍피공화국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35cm, 23×15cm×4_2014 김단비_모나미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35cm_2013

× ● 갑자기 필자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하나의 파편, 순간적인 모양새, 그 모양은 도형 ×다. 작지만 1점 투시도법에 의한 중심성 때문이었을까.「모나미피」의 모델 입이 다른 문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홀베인의「대사들」에 등장하는 왜곡된 해골처럼. 재밌게도 도형의 그리스어 어원에는 움직임, 상황, 삶 속에서 포착된 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는 기호가 아닌 표현이다. 봉해진 입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억양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이미지가 아니라 "당신이 내게 한 짓을 좀 보라구요." 라고 시위하는 몸이 된다. 그 작은 것 하나가 사건의 전체를 말하고 있다. 들리지 않는 메시지가 가장 큰 소리로 전달된다. 어떻게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말하지 못하면서 왜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는 축소된 입. 누군가에게는 참기 어려운 것이다. 흔들고 흔들어야 한다. 뭔가가 석연치 않고, 충분치 않은 무리들에게. 현실은 추방된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의 자리로 밀려나 있다. 판을 흔드는 일은 무척 고단한 일이다.

김단비_말하자면 그렇고 그런사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6×192cm_2014

화투 ● 화투는 밀착된 집합들의 속살을 하나씩 숨죽이며 뒤집어 까는 은밀한 행위의 반복으로 게임이 이뤄진다. 그리고 미끈하고 화려하게 투영된 이미지들의 짝짓기로 희열을 맛보는 게임이다. 이것이 우리를 옥죄어 오는 게임의 사슬이다. '경이로운 암탉'은 깨어났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최면이란 마법에 빠진 암탉을 깨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살짝 한 대 때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암탉은 푸드득거리면서 다시 모이를 쪼아 먹기 시작한다. "최면의 에피소드는 일반적으로 황혼의 상태 다음에 오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주체는 무언가 텅 비어 있고 얽매이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기습하게 될 그 유괴에 몸을 내맡긴다." 그러나 문제는 풀리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때릴 수 있는 모든 것의 부재 때문에. 꽃을 흔들어라! 꽃을 던져라! 화. 투. ■ 임체스

Vol.20141204b | 김단비展 / KIMDANBI / 金단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