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송지연展 / SONGJIYEON / 宋知硏 / painting   2014_1201 ▶ 2015_0131

송지연_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_사진에 종이_80×100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7:00am~09:00pm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HOAM FACULTY HOUSE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239-1번지 Tel. +82.2.880.0300 www.hoam.ac.kr

암시적 길 위에 피어난 감각적 돌기, 또는 이미지 수선공의 손길길의 사유, 꽃-돌기의 미학 송지연의 이미지들은 길을 말한다. 길은 광장과는 다른 세계요 차원이다. 광장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교류하고, 즐기고, 축제를 연다. 통상 광장은 길의 끝이지만, 길의 끝이 광장인 것은 아니다. 광장은 자주 목적지가 되지만 길은 자체 내에 결코 궁극을 포함하지 않는 불완전한, 또는 항구적인 미완료의 공간이다. ● 광장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길은 '개인'을 훨씬 더 문제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길은 부단히 '나'를 문제로 대두시키는 비(非)공간이다. 아마도 길이 직관적으로 여정을 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길 자체는 방향성과 과정의 문제일 뿐이지만, 그로 인해 어떤 도착지, 종점, 궁극에 대한 암시의 차원을 지니기도 한다. 이를테면 길이 궁극의 내포며 종점의 내재라는 의미로서, 모든 도상(途上)이 내포와 내재를 환기시키는 환유(換喩)적 기제가 되는 것이다. 광장에서와 달리 길에서 사람들은 가야만 하며 머물 수도 주저앉아서도 안 될, 자신의 어떤 불가항력의 운명적 정체성과 대면한다.

송지연_황무지가 장미꽃같이_사진에 종이_45×45cm_2014

송지연이 사유하고 바라보는 세상은 '길로서의 세상'이다. 길은 세상을 언제나 떠나야 하는 곳으로, 동태(動態)로서의 삶으로 교정하고, 암시된 궁극을 포용하도록 재촉한다. 그렇더라도 송지연의 길은 별날 것이라곤 없는 일상 속의 길이다.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와 그 위에 쳐진 노랗고 흰 차선들, 주행 중이거나 주차된 자동차들, 맨홀이 고작인 도시의 차도나 골목길이 고작이다. 송지연이 자주 바탕으로 사용하는 사진 이미지들 중에서 길에 관한 것이 적지 않고, 또 더 인상적인 이유로, 그것을 작가에 다가서는 우선적인 접근로로 택하긴 했지만, 그에게 길 만이 유일한 모티브인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은 한가로운 호숫가거나 도시의 모퉁이에서도 시작되고, 길가의 식물이나 탁자 위의 화병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그것들은 작고, 기념비적이지 않으며, 일상적 삶의 주변부를 구성하는 소소한 것들로서, 유별스러운 의미부여 없이 그의 세계로 초대된 것들이다. 그렇더라도, 그가 자신의 캔버스 위로 받아들인 것들의 저변에는 길의 그것과 동일한 사유와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송지연_본향을 향하여_사진에 종이_60×80cm_2014

송지연은 이 환유로서의 길, 작고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 위에 어떤 돌출되고 만져지는 실체를 존재시킨다. 그것은 자주 꽃이거나 꽃의 형상을 닮은 어떤 것으로서, 때론 꽃의 완연한 재현이기도 하고, 때론 꽃과 꽃잎의 형상적 특성으로 구성된 어떤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각 차원의 전환을 허용하는 일종의 감각적 돌기이기도 하고, 이미지에 실체를 기입하는 상징적인 표상이기도 한 것으로, 그 돌기 또는 표상들은 증식을 거듭해 화면 전체를 채우기도 한다. 그것들은 도상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퉁이나 정원, 꽃병이 있는 실내 등, 작가의 호흡이 닿은 모든 곳에서 피어난다. 그때 세계는 온통 감각의 돌기들로 뒤덮인 편만한 예민함, 실체를 갈망하는 표상들로 포화된다. ● 이러한 꽃잎, 또는 돌기의 개입으로 인해 2차원 평탄했던 세계에 돌연한 긴장감이 촉발된다. 그 긴장감은 우선 2차원의 냉정한 평형상태에 균열을 초래하고, 3차원의 촉각적 질서와 결부되는 '피어오름'에서 비롯되는 긴장이다. 송지연의 세계는 이렇듯 두 질서 사이를 변증적으로 왕래한다. 2차원과 3차원, 이미지와 실제, 사진과 콜라주, 감각적 돌기들로 균열되고, 실체의 표상으로 분주해지는 암시적 이미지 사이를 산책한다.

송지연_그날에_사진에 종이_60×80cm_2014

이미지의 수선공, 치유적인 수작업 ● 송지연은 손노동을 통해 직접 재단하고 만든 꽃잎 하나하나를 캔버스에 붙여나간다. 3차원의 촉각적 실체를 2차원의 이미지 위에서 작용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작가는 수작업의 고단함을 기꺼이 감내한다. 그에게 노동은 (어떻게든 견뎌내야 할 번거로운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만 이미지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필연적인 미적 기제인 것이다. 이 기제로 인해 이미지는 단지 소통되거나 소비되는 것이 남아있을 뿐인 완료태(完了態)가 아니라, 무언가를 새로이 피워낼 수 있는 힘을 그 안에 지닌 가능태(可能態)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미지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힘, 살아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미지는 더 이상 쉽게 '점유(Zugriff)될 수 없는 것', 즉 소유되거나 통제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이 송지연을 '이미지의 수선공', 그의 수작업을 수선공의 치유의 손길로 비유해내는 것을 허용하는 근거인 것이다.

송지연_마라나타_캔버스에 하늘 사진 모자이크_75×94cm_2014

그러므로, 송지연의 이 과정을 단지 3차원 공간과 2차원 공간, 오브제와 평면 간의 무미건조한 위상학적 놀이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단지 '이미지 위에' 물리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수선공의 손길을 통해 '이미지로부터' 솟아오르거나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 반복가능하고 지루한 이미지에 예기치 못했던 결과가 초래되는 이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야말로 이미지가 그 태생적 한계를 넘어 실제적이고 유일회성을 지닌 사건의 일환으로 재생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입으로 인해 비로소 이미지는 다시 세계와 촉각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미적 신체, 또는 촉각적 교류를 허용하는 소통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미지는 그것을 통해 다시 상황적인 것이 되고, 현재적인 사건을 옷 입는다. 훨씬 더 세계적인 사건이 되고, 세계의 실제적인 일부가 된다. ● 이 시대는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는 만큼 실재가 재난에 처한 시대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는데 익숙해질수록, 세계를 통해, 세계 안에서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망각되어가고 있다. 실재는 부재를 향하고, 세계는 사라져가는 중이다. 이것이 이미지 제국의 재앙이다! 반면, 송지연은 소박하지만 가장 유효한 방식으로 이미지 제국의 반란에 맞선다. 그의 방식은 이미지의 세계에 세계의 이미지를 기입하는 것이다. 이미지들로 오만한 자율성을 벗고, 다시 실제와의 상호성 안에 위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송지연_Thunder 1_캔버스에 종이_75×94cm_2014

송지연의 세계에서 이미지는 2차원이라는 공간적 부재를 넘어서고, 이미지 고유의 고갈인 시간의 단절을 반성한다. 그리고 잠재적인 생명, 잠재적인 역동성, 잠재적 존재성의 지평을 회복한다. 사물과 상황의, 살아있고 역동적인 것을 피어낼 수 있는 토양으로서, 세계의 작은 환유적 대변자로 복원된다. 캔버스 위에 송글송글하게 돗아난 송지연의 꽃-돌기들이 카이로스적인 의미의 기표가 되는 이유가 이러하다. ● 송지연의 꽃-돌기와 그것이 의미해내는 '피어오름'의 작업은 사물과 세계와 일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교정시킨다. 그 안내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활동이며 모든 사건들은 공간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의미가 읽히고 해석되기를 기대하는 하나의 거대한 의미의 대기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송지연의 세계가 우리를 비로소 세계의 모든 것들을 매순간 일깨워지고 피어나는, 그러므로 형언할 수 없는 감탄 속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카이로스적 사건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 심상용

송지연_Halleluiah_종이_60×120cm_2013

콜라주는 두 사물 혹은 다른 공간의 만남이다. 두 사물, 다른 공간의 만남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있음', '존재하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콜라주의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세계를 피사체로 삼는 사진 이미지 위에 삶의 편린이 담긴 신문지, 잡지, 광고지 등을 잘게 부수고 뜯어서 다시 모으고 세워 붙여서 생명력을 암시하는 꽃의 형상을 덧붙여 나간다. 콜라주의 재료로 사용된 폐지 부스러기들은 연약하고 효용성을 잃은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이 부스러기가 중첩되고 호흡 할 수 있는 공간을 품은 부조로 일으켜 세워져 꽃이 된다. 부스러기가 꽃이 되는 것은 무가치성과 무의미성이 비로소 진정한 현존, Logos와의 만남을 통하여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고 생명을 덧입게 됨의 표현이다. 어떻게 종이 부스러기 같은 물질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 영원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계속 추구해 나가야 할 작업의 숙제이다. 가시적 세계의 이미지인 사진 위에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인 종이 부조를 만나게 함으로써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시적 세계보다 더욱 실존적인 현실은 믿음으로 바라보는 세계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 송지연

Vol.20141204k | 송지연展 / SONGJIYEON / 宋知姸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