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을 기다리며: 위버맨쉬 Übermensch-Something Beyond Oneself

경남예술창작센터 5기 입주작가 결과展   2014_1209 ▶ 2014_1214

초대일시 / 2014_1209_화요일_06:30pm

참여작가 강선영_강좋은_김채린_구수현_손원영_오선아

주최 / 경남예술창작센터 www.gnac.or.kr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주말,공휴일_10:00am~06:00pm

창원성산아트홀 CHANGWON SUNGSAN ARTHALL 경남 창원시 의창구 중앙대로 181(용호동 2번지) 제1전시실 Tel. +82.55.268.7900 www.cwcf.or.kr/main/main.asp

인간의 의지를 벗어난 무한한 의지를 가지는 인간이 존재할까? 플라톤이 불러낸 철인이거나 마블영화에서나 나오는 "영웅"들. 그러한 인류 구원의 영웅에 대해서, 신을 대신하는 이상적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마치 Samuel Beckett이 기다린 고도처럼 신이거나, 희망이거나, 그도 아니면 자유이거나,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초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 전람회『초인을 기다리며: 위버맨쉬Übermensch-Something Beyond Oneself』에서 기다리는 것은 superman이 아니다. Ubermensch / Uncertainty, 즉 불확실성이다. 우리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니체의 초인을 불러내는 까닭은 당시의 시대적인 방향성에 대한 하나의 반성으로써 만들어놓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초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불안정하지만 꿈을 품고 앞날을 향해 떠난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니체의 초인은 완벽한 인간도 아니며, 위대한 업적을 가진 인간도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극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삶의 방식이다. 그가 주장한 세가지 단계의 변화에서 가장 상위의 단계는 삶의 다양성을 긍정하고 놀이처럼 살아가는 아이의 순수함을 내면화하기였다. 넘어가는 과정(Over-Going) - 새로운 가치 창조 단계를 거쳐 내려가는 과정(Down-Going) - 현실을 확인하고 아는 것. 즉,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목표를 만들어 내는 자가 바로 초인인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즉 자신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사람(Creating Something Beyond Oneself) ● 우리가 기다리는 초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는 젊은 작가들의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행위와 그 시간에 주목한다. 초월적 가치를 지녔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상승의 기운이 있다. 무엇보다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는 동사형이다. 목적보다는 창조하는 과정의 그들이 보낸 6개월간의 삶이 그러했다. 치열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자기 변화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사는지를 자문하고 바깥을 향해서 질문을 던지는 그들이 진정한 Übermensch였다. 경남예술창작센터에서의 6개월이 Utopia이거나 Shangri-La,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땅이라는 그들의 위로에 감사하며, 그저 묵묵히 작업에 임해주었던 5기 입주작가분들에게 마음을 담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고백하자면 어떤 작가에게는 초인은 신이었고, 또 어떤 작가에게는 미래였고, 천국이었다. 그리고 다른 작가에겐 그것은 자유였고, 해방이었으며, 고통의 끝이었다. ■ 경남예술창작센터

강선영_WONDERLA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5×110cm_2014

평범한 바라보기는 넘치는 대상을 적극 수용하려 하거나 혹은, 아주 진지한 생각으로 사물에 접근하기에 불편한 방법이었다. 나만의 고유시선에 걸려든 대상들은 주관적 감정이 씌워져 재인식되고, 본래의 기능은 점점 사라진다. 몇년간 쫒아 다닌 '불안'은 어느새 고유시선이 되어버렸고,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즐기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안정 느끼는 대상을 스스로 파괴해 실제 겪은 사건, 그리고 망상을 더해 화면속을 채워 나가는 행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불안과 공포까지도 차분히 대처해나가는 자세를 만들어 현실에 무력한 스스로를 위로하기에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 집중된 자신의 행위속에는, 강박관념적 태도로 화면을 대할때 나타나는 하나의 패턴을 품고 있는데, 이는 대상들과 엉켜 화면속 증식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며 부유한다. 어쩔땐 소극적이지만 고집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될때도 있다. ● 나의 작품은 단지 부정적인 느낌의 감상보다는 심리적회복의 공간으로서의 감상태도로 접근하길 원한다. ■ 강선영

강좋은_밀어내기 시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4

밀어내기 시도 Attempt to push out ● comfort zone. 동물이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에 충실한 자기만의 영역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편안한 공간, 혹은 개체공간이라고도 한다. 'comfort zone'은 그간 작업해 온 관계에 대한 사유들 가운데서도 '공간'이라는 하나의 단상에 좀 더 집중한 전시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간이 얼마나 한정적이고 연약한 것인지를 물리적 관점의 시선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한 작업이다. ● 개인이 점유하고 있는 본능적인 공간 comfort zone이 만약 물질로서 존재한다면, 다시 말해 comfort zone이 우리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게 될 경우를 상상했을 때, 본인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관계의 수동성이다. comfort zone은 개인이 점유하는 한정적인 공간임과 동시에 타자와 소통하는, 보이지 않는 능동적 관계의 도구이다. 우리는 타자와 관계맺음을 시도할 때 보이지 않는 zone을 상대방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회는 zone과 zone이 만나는 수많은 교집합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때 zone이 물질로서 존재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45cm~120cm의 거리는 개인적 거리로서 comfort zone의 범주에 속한다. 이 범주 안에 상자들을 이용해 물질적 zone을 만들고 턱없이 부족한 공간을 설정해 관객들을 당혹과 불편에 빠뜨린다. 숨 막히는 zone과 zone의 틈새들 속에서 관객들이 생각하는 관계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개인이 가진 comfort zone이 찌그러지고 움츠러드는 것. 그보다 먼저 개인이 가진 사적인 공간을 인식하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형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다. ■ 강좋은

김채린_우리의 순진한 기대_스티로폼, 석고_250×200×135cm_2014

살로써 감지된, 몸이 만들어낸 이야기 ● 나의 작업은 관계의 접점과 그 표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로 촉각의 감각이 주가 되며, 형태와 재료는 이런 감각적인 부분의 주요 요소가 된다. 작품은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여러 접촉에 관한 것으로 신체를 매개로 어떠한 대상과 이루는 공간적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살로 감지하여 남아있는 잔존감의 표현으로, 신체가 내포하고 있는 유기적인 곡선들과 양감으로 구성되어, 접촉의 기억을 지닌 덩어리가 된다. ● 이번전시는 센터에 들어와서 진행한 신작위주로, 몸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주변환경과 공간을 이용하여 읽어내고 표현해보려 노력했다. ■ 김채린

구수현_THE DEFINITIVE BOOK lab._나무, 플라스틱 베니어 등_가변크기_2014

발단은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마주하게 된 단어에서 시작 된다. The Definitive Book,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완벽하고 절대적인 책이라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예술의 세계를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었던가... 예술서적에 자주 노출되는 작가와 작품을 분석하다 보면 절대적이고 완벽한 예술의 조건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 폭발된 궁금증은 통계학과 만나 새로운 분석을 만들어 낸다. 분석의 과정은 도표로 표현되며, 궁극적으로는 이 도표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THE DEFINITIVE BOOK이라는 결과물이 된다. ■ 구수현

손원영_Relations_캔버스에 과슈_130.3×162cm_2014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끌어온 화두는 관계(relationship)이다. 근대 서양의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나 물아일체의 동양적 사고방식을 막론하고 그 중심에는 대상과 대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최근, 전시의 소제(sub-title)를 Between Landscape로 한 이유는 나와 나 아닌 것들(타자)에 대한 관계, 다시 말하면 나와 나를 둘러싼 풍경들 속에 내가 걸어온 길(풍경)이나 함께 걸어왔던 사람, 혹은 영감을 주었던 인물들을 작업 안으로 갖고 들어와, 작업 주제에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통하여 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조각들은 타자로부터 건너온 것이며, 각기 개별적인 요소가 아닌 생각의 흐름이나 혹은 몸 속 신경세포처럼 미세하게 연결되어 내 속을 떠다닌다. 이러한 퍼즐 조각들이 때로는 겹쳐지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그 사이로 이미지가 드러난다. 숲 안에 있으면 이미지 혹은 대상으로서의 나무가 보이고 숲으로 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있어야만 커다란 숲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듯, 작품을 대면했을 때 가까이에서는 추상적인 선들의 집합으로 읽혀지지만 뒤로 몇 발 물러서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커다란 이미지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마주하고 반응하는 상호작용 안에서 시간과 관계를 '쌓아가듯' 만들어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 손원영

오선아_사랑과 자유를 위한 기둥 종이_다이모 테이프에 레터링_지름 61cm, 높이 262cm_2014

사물의 분해와 재조합 그리고 나열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의 작품들은 기억과 무의식을 통한 우발적 조형행위의 기록이다. 우발적 조형행위를 통해 생성되어가는 오브제들은 시시각각 또 다른 물질이나 이미 형성되어진 오브제들을 부른다. 그것은 연관 없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생성되는'기묘한 조화'와 같은 것이다. 나의 작품은 이질적 단어들의 연결처럼 하나의 줄 또는 여러 개의 줄에 의해 꿰어진다.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한 형태나 의미는 해체되고 재조합 되어 본래의 모습과 다른 형태로 보인다. 각기 생성된 작품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시의 구절과 구절이 이어지는 것과 같이 재배열된다. 그리고 그것은 시적인 이미지로 함축되거나 확장된다. ■ 오선아

Vol.20141209f | 초인을 기다리며: 위버맨쉬 Übermensch-Something Beyond Oneself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