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몽타주

정현용展 / JEONGHYUNYONG / 鄭賢溶 / painting   2014_1213 ▶ 2015_0110 / 일요일 휴관

정현용_Pabl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4

초대일시 / 2014_1213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마크 GALLERY MARK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0-23번지 2층 Tel. +82.2.541.1311 www.gallerymark.kr

푸른 비밀 ● 깊고 청명한 블루. 그 위로 빛을 머금은 형체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정확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고, 다만 어떤 사건이 막 일어난 순간과 우연히 맞닥뜨린 것 같은 상황. 정현용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불안한 심리와 상처를 그린다. ● 그림의 첫 시작은 수년간 병마와 싸웠던 유년시절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 그의 관심은 불특정한 다수의 심리상태로 향해 있는 듯하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오랜 병원생활동안 개인의 내면에 투영된 풍경을 그렸다면, 이것이 근래에 와서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복잡한 이야기의 구조를 지닌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투병기간 동안 일상이 되어버린 타인에 대한 관찰이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심리로 향해 있는 것이다.

정현용_Pabl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4_부분

이를 위해 작가는 2012년부터 건축가,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나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일명 비밀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타인의 비밀을 소재로 일련의 창작물을 제작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이들은 먼저 연령, 성별에 관계 없이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타인의 비밀을 수집한다. 그리고 비밀을 고백한 이들을 대상으로 10년간 비밀의 내용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되 그것이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감각적인 작품의 형태로 공개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나간다. 프로젝트 그룹에서 회화를 담당한 작가는 고백자의 은밀한 비밀을 상징적인 색채와 형태로 가득한 화면으로 풀어낸다.

정현용_일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5×405cm_2014
정현용_일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5×405cm_2014_부분

이번 전시의 주요 출품작은 이러한 비밀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일종의 비밀문서이자, 이미지로 기록된 고백이기도 하다. 작가는 조용하게 읊조리듯 전개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비어있는 화면 위에 색과 형을 채워나간다. 타인의 비밀을 보장한다는 프로젝트의 취지처럼 작가의 의도아래 관객은 그림 속에서 하나의 완벽한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결코 찾을 수 없다. 단지 사람들의 비밀고백이 오래전 기억에 근간을 두고 한 단어씩 떠듬떠듬 이어지는 것처럼 작가는 사람들의 고백에서 건져 올린 분절된 단어들에 형과 색을 더할 뿐이다. 두 대화자 간에 형성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생생한 색채와 형태를 입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하나의 화면에 두 가지 이야기를 섞어 표현하기도 하고, 때론 공간과 공간을 이어 붙여 비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하면서 화면 전체의 이야기 구조를 보다 촘촘하고 복잡하게 다져나간다. ●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비밀의 내용을 선택하는 기준이다. 그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고백에 하나의 조건을 붙이는데, 그 조건의 내용은 과거에 개인 혼자만 간직한 비밀 중 그것이 현재의 행동이나 습관에도 영향을 미친 비밀에 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부모 몰래 행한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이어진 이후, 그와 관련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연관된 동작을 성인이 된 후에도 하지 못하는 식의 반전이 존재하는 비밀이다.

정현용_Originat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6cm_2013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은 마음의 짐과 같았던 저마다의 비밀을 어디엔가 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심적 해방감과 그 반대로 이것이 간접적인 형태로서 누군가에게 작품의 내용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이것은 작가의 화면에서 가벼운 붓질과 함께 빛을 발하는 듯한 밝은 색면, 그와 함께 수차례의 덧칠에 의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 같은 진청색의 배경이 만들어 내는 극도의 대비를 통해 드러난다. 경쾌하고 밝은 색면이 화면 곳곳에 등장하고, 깊고 푸른 청색은 각각의 색면이 빛을 발하도록 돕는다. 덧붙여 2007년부터 정현용의 회화에서 주조색을 이루고 있는 청명한 청색은 기본적으로 그림 전반에 우울하고 불안한 심리를 전하지만, 동시에 내면으로 향하는 깊이 있는 명상을 유도한다. 근작에 보이는 화려하고 인공적인 색채가 고백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순간적으로 반영한 색채라면, 정현용의 푸름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 선행된 푸름이며, 듣는 귀와 열린 마음을 동반한 푸름이다. ● 이처럼 정현용의 회화는 개인의 내면적 심리를 그렸던 내향적 풍경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외향적 풍경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행보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에 머물러 있던 사고를 확장하고, 타인의 삶을 통해 개인의 삶을 반추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이렇게 정현용의 그림에 스며든 푸르고 시린 비밀은 나름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더해간다. ■ 황정인

Vol.20141213a | 정현용展 / JEONGHYUNYONG / 鄭賢溶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