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소리의 기록 A Record of Autobiographical Sounds

박지하展 / PARKJIHA / 朴志夏 / video   2014_1217 ▶︎ 2014_1227 / 일요일 휴관

박지하_풍경을 빌리다_단채널 영상, 음악_00:05:16, 가변크기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보는 GALLERY BONUN 서울 마포구 독막로 556 1층(합정동 354-32번지) Tel. +82.2.334.0710 gallerybn.com www.facebook.com/gallerybonun

음악이 자기 고백이 되는 순간 ● 박지하가 마련한 '자전적 소리의 기록'전(展)은 박지하 자신이 음악을 눈에 보이도록 전시(展示)하는 것이자 전시(展時), 즉 음악에 쌓아 온 시간(時)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 '자전적 소리의 기록'전(展)은 자전적 음악-하기의 연장선이다. 공연은 극장 공 간에 일시에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같은 것을 다시 볼 수 없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기록 정리하고 싶었다. 연주 여행을 하며 담았던 영상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다시 보기'였 다. 거기에서 새로운 음악이 떠오르기도 했다.제3자가 찍은 나의 사진도 전시하기로 했다. 나와 악기가 주고받는 그 밀어를 그들은 어떻게 들었고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담은 것도 '나'였고, 사진 속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도 '나'였지만 조금은 생소하다. '또 다른 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노트) ● 전시(展示/展時) '자전적 소리의 기록'은 12월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다고 했다. 박지하와 나는 이 텍스트를 완성하기 위해 재미있는 설정 하나를 하기로 했다. 직접 만나든 전화로 통화하든 혹은 이메일이든 매일 17시 27분에 접촉하 여 그 시간에 오간 말들을 토대로 이 글을 완성하자는 것이었다. 박지하가 이끌고 있는 숨[suːm]의 2집 음반에 수록된 곡 '오후 5시 16분'의 제목에서 따온 발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17시 27분에 이야기를 섞었다. 시곗바늘은 매번 같은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계절에 비해 일찍 내려앉는 창밖의 어둠은 늘 같은 색채로 세상에 저녁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매번 오간 이야기는 달랐으나, 그 가운데에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박지하가 매번 반복하는 이야기는 그의 삶을 이루는 중추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연필로 계속 선을 긋다 보면 하나의 굵은 선이 도출되듯. 나는 그 이야기들을 이 글의 군데군데 박아 넣기 시작했다. ● 어린 시절부터 음악이 좋았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우리 집에는 늘 공기 안에 음악이 있다. 온 가족이 '주말의 명화'를 보다가 들은 음악이 귀를 맴돌았다. 다음날 아침 꼬마는 피아노 앞에 앉아 그 음들을 그렸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오선지 위에. 그저 놀이였다.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플루트를 배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국립국악학교에 합격했다. 악기 지망은 입학 후에 하는 곳이었다. 1지망·2지망·3지망, 비어 있는 세 칸 모두에 '피리'라고 적어 넣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가야금, 해금과 같이 여성의 이미지로 자리 잡은 악기를 적었다. 나는 '박' '지' '하'라고 세 글자를 적듯이 피리, 피리 그리고 또 피리라고 적었다. 플루트와 같은 취주 악기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피리와 만났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나는 한눈팔지 않았다. 오로지 피리만 했다. (작가노트) ● 그런 그녀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피리의 서를 꾸준히 모아 왔다는 것이다. 축적된 서들이 '서-133'을 가능케 했다. 나는 그것을 왜 전시하느냐고 묻기 이전에 얼마나 모았는지가 먼저 궁금했다. ● 세어 보니 133개였다.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숨(호흡)과 기운 즉, 혼이 담겨 있는 것이라 여겨 쉽게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노트)

박지하_서-133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4

서는 피리의 관대에 꽂는 대나무 도막이다. 한쪽 끝은 피리의 관대(竹管)에 꽂히고, 다른 한쪽은 연주자의 입술에 깊게 물린다. 보통 '서'라고 쓰고 읽고 부르지만 한자로는 '설(舌)'이라고 적는다. '설(舌)'은 혀를 뜻한다. 글자를 들여다보면 입을 뜻하는 '구(口)'자가 들어가 있다. 그런 서(설)의 혀와 입은 피리의 '이야기'(說:이야기 설)를 풀어놓는 중요한 도구다. 그리고 주자의 몸에서 나온 숨은 입을 통해 피리의 입으로 들어간다. 피리는 그 숨을 고스란히 받아 자신의 몸에 전달한다. 그때, 피리는 서가 건네준 숨으로 제 몸을 울려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공간을 떨게 하고, 그 떨림이 다시 연주자의 몸으로 전해져 몸을 떨게 한다.박지하가 모은 133개의 '서'는 이 공간에 그냥 '서' 있다. '서' 있는 '서'들일 뿐이다. 만약 단 한 개만 전시된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인상을 만들 것이다. 그냥 '박지하'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명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33개라는 숫자는 맥락을 짜고 만든다. 더 정확히는 박지하가 만든 지도이며, 또 앞으로 쌓일 133개의 밑그림이자 예행연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 당신의 발길과 눈길을 돌려 '풍경을 빌리다'로 가 보자. 당신 앞에 하나의 영상이 보인다면, 그 안에 물결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2013년, 연주 여행을 갔던 터키의 보스포러스 해협이다. 이 음악은 박지하가 목소리와 피리, 대피리, 양금 선율들을 따로 녹음한 뒤, 그 선율들을 포개고 쌓아 여러 명이 동시에 연주한 음악처럼 만든 것이다.  ● 음악 속의 양금은 흘러가는 물을, 피리와 대피리는 흰 물결을, 목소리는 바다에 기거하고 있을 법한 신(神)의 존재를 떠올렸다. 경치를 '담았다'기보다 '빌려서' 이곳에 나의 음악을 잠시 내려놓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조상들은 365일 시시각각 바뀌는 계절의 풍경을 벗 삼기 위해 창과 문을 내었다. 창과 문에 잠시 머무는 풍광은 자연으로부터 빌린 것이었다. 나에게도 모아 온 풍경들은 새로운 소리를 찾는 동기가 된다. 풍경 안에 길이 드러나 있지 않아도 계속 보고 있노라면 막연했던 나의 음악 찾기에 길이 된다. '길' 없는 바다에 배가 지나가면 '물길'이 생기고, 그 '물길' 끝에 매달린 '물결' 속에서 내 음악이 새롭게 흘러갈 '물길'이 돋아났다. (작가노트) ● 박지하는, 세계 곳곳을 누볐고 어디를 가든지 바다의 풍경을 부지런히 담았다. 왜 그리 바다를 담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냥'이라고만 답했다. '그냥' 혹은 '무의식적으로'와 같은 말들은, 한 작품에 대해 과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상한 직업을 가진 나 같은 이들(이른바 평론쟁이)에게는 참으로 힘겨운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말하는 '그냥' 속에서 인위의 의미를 건지려고 했다. 하지만 박지하는 매번의 질문에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 바다와 마주할 때, 지나가는 배 한 척 없어도 나에게는 뱃고동 소리가 늘 환청처럼 들려 왔다. 피리는 처음 배울 때, 좋은 소리가 날 때까지 한 음씩 지속적으로 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의 선생님은 음악에 관해 구구절절 말씀하시지 않았다. 다만 "한 음을 뱃고동 소리처럼 내라."라고만 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내 피리가 뱃고동이 되기를, 그리고 그 뱃고동 소리로 가득 채울 바다를 떠올렸다. (작가노트)

박지하_풍경을 빌리다_단채널 영상, 음악_00:05:16, 가변크기_2014

'풍경을 빌리다'가 흘러가는 풍경과 음악을 보여 주었다면 '밤을 도와…'에는 정지된 박지하의 모습과 소리 없는 풍경이 담겨 있다. 박지하가 생황을 불고 있는 장면인데, 피사체로서의 그녀가 모양을 잡고 정지하여 찍은 것이 아니라 뭐에 취해 유동하는 흐름을 잠시 스톱시킨 장면 같다. ● 나의 주전공 악기는 피리다. 하지만 만들고자 하는 곡의 성격에 따라 피리 외에 생황, 양금, 태평소, 타악기, 목소리 등을 선택한다. 악기의 선택은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 주느냐와 관련된다. 사람의 목소리처럼 각 악기는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가장 단순한 구조로 생겼지만 연주하면 할수록 변수가 생기는 피리는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악기다. 그 악기의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섬세하면서도 깊은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다. 피리를 연주할 때 가장 나답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연주할 때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악기는 생황이다. 화려한 악기의 모습에서부터 사람들의 호기심은 시작된다. 이어서 불어넣은 숨이 떨판을 울리고, 여러 개의 대나무관을 통과하며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소리는 사람들을 생황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듣는 사람을 현혹시키는 소리'(조선왕조실록)라는 생황에 대한 평도 있지만, 나에게 생황은 절실함과 진정함을 끌어내는 두 손 안의 경건한 파이프오르간이기도 하다.김홍도는 '월하취생도'에서 생황을 불고 있는 (그 자신으로 추정되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 장면을 빌려, 생황을 연주하는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작가노트)

박지하_밤을 도와…_혼합재료(사진, 음악)_00:03:01, 가변크기_2014

생황은 다른 악기처럼 정좌(正坐)를 하고 연주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생황을 연주할 때 몸에는 작은 율동이 흐른다. 그 흐름을 생각에 두고 이 사진을 본다면 피사체로서의 박지하가 뷰파인더 앞에서 '흔들린 것'이 아니라 생황 소리가 박지하를 '흔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밤의 골목에서 사랑하는 이와 입 맞추며 제 몸을 떨고 있는 여인의 뉘앙스처럼 느껴진다. 음악이란 부동하는 현실과 몸에 설명할 수 없는 운동을 주는 것이기에. ● 133개의 서, 바다의 물결, 밤의 생황. 이것들은 지금의 박지하를 대변하는 기록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녀의 일상이었다. 일상은, 의식되면서 동시에 의식되지 않는 것들이다. 평소 서랍과 컴퓨터 안의 폴더에 있는 일상의 편린들은 '자전적 소리의 기록'이라는 제명 하에 여기에 놓이게 되었다. 새롭게 파악된 존재 양태들이며, 박지하와 풍경, 박지하와 음악-사물 사이에 관계가 새롭게 열리는 계기이다.매번의 인터뷰마다 10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그녀에게 물었다. ● 크게 욕심 내지 않았다. 그저 음악을 하면서 정리한 지금까지의 노트이다. 생활과 경험, 환경과 공간의 변화,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꼈던 것들을 모아 보았다. 지금 나 자신은 음악으로 사회를 말할 수 없고, 인간사에 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룰 수 없다. 사회와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섣불리 알고 있다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조금은 소심했다. 하지만 정리하고 보니 음악 안에 삼십대를 맞이하기 전 나의 모든 시간이 들어 있었다. 10년 뒤에 내가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살지 모르니, 이 모름이 정답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처럼 정성껏 살 것이다. (작가노트)송현민

Vol.20141220h | 박지하展 / PARKJIHA / 朴志夏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