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서 있는 곳

민준기展 / MINJUNKI / 閔濬基 / painting   2014_1218 ▶ 2015_0108 / 월요일,성탄절,신정 휴관

민준기_고성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75×16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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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기 홈페이지_www.minjunki.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성탄절,신정 휴관

갤러리 신교 GALLERY SHINGYO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81(신교동 52번지) 2층 Tel. 070.8239.8936 blog.naver.com/shingyoart www.facebook.com/shingyoart

지문(指紋)의 확장, 시간 순연의 확장 ● "작가는 사진을 통해 기억을 귀정(歸程)의 일부분으로 끄집어내어 화면에 옮긴다. 그곳엔 특정한 추억을 공유했던 지인들이 등장하고 발자취를 남겼던 어떤 풍경이 수놓아지며, 도시와 일상이 들어선다. 간혹 모호한 형상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재현성을 띠기에 인식 가능한 범주에 놓인다. 저건 무엇이고, 이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수용은 언제나 난해하지 않다. 그러나 현대예술에서의 사진이, 혹은 그것을 통한 찰나가 단순한 기록의 연장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때, 또한 그것이 재구성되는 재현의 베이스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의 작업엔 그 이상의 것이 투영되어 있음을 읽게 된다. 그건 바로 선택을 통한 기억의 지문(指紋)이요, 그가 선택한 사진은 그 기억의 지문을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엿보게 하는 질료(matter)가 된다는 사실이다."

민준기_고성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75×160cm_2014

위 기술한 문장은 지난 2011년 열린 개인전 당시 민준기의 작업에 대한 가치구분을 담은 비평의 일부이다. 당시 필자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특징과 내용적인 부분에서의 내외적 연계성을 언급하며, 재현으로써의 사진이 어떻게 실험적으로 변주되는지, 작가 개인의 파편화 된 기억들이 어떻게 공명을 유도하고 있는지 적시한바 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민준기의 사진 작업은 기억을 영원함 속에 포박함으로서 변하지 않는 카테고리를 생성하고, 그렇게 생성된 목록은 일개의 형식에서 벗어난 가시적인 것과 언표 가능한 것의 가변적 조합으로 재생산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장르 간 경계가 사라진 작금 그의 사진은 어떤 표현을 위한 적절한 장치이거나 작업의 주제를 더욱 주제답게 이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 그런 그의 작업이 2014년 들어 장르의 경계 넘기를 통해 또 한 번 새롭게 확장 및 전개되고 있다. 우선 기억을 쌓고 거두는 기존 행위를 확대한 작업으로 형식의 확산을 꾀하고 있는데, 지난 2011년 전시에서 보여준 낱장의 사진작업은 층을 이루고, 층을 형성한 사진들을 거푸집 내에 존재시킴으로써 보다 집약되는 결과를 내보이고 있다. 나아가 그 집약은 기억의 축적으로, 갇힐 수 없는 것들 혹은 갇히지 않을 것들, 갇혀야 할 것들을 편집, 누적시키고 포개놓는 방식 아래 이전 대비 훨씬 견고하게 옮겨 놓고 있다.

민준기_남겨진 것들에 대하여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33.3×23.3cm_2014
민준기_남겨진 것들에 대하여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33.3×23.3cm_2014
민준기_남겨진 것들에 대하여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33.3×23.3cm_2014
민준기_남겨진 것들에 대하여_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_33.3×23.3cm_2014

이때 겹겹이 쌓인 이미지들은 2차원적인 평면에서 이탈해 실제에 대한 가상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화 한다. 현재와 과거 사이에 드리워진 간극의 매개이면서 동시에 특정한 피사체나 공간의 재구현이 아니라, 기억 속 잠재태에 머물던 편린들이 이전과 또 다른 현실태로 견고히 고착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앞면이 개방된 직사각형 나무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과거의 그의 작업들이 그러했듯, 현실과 조우하는 통로이면서 현실의 본질적 연관관계를 증명하는 장치이지만, 그 장치가 시각적, 물리적으로 견고해졌다는 측면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과거 작업과의 차이를 유도한다. ● 그가 새롭게 선보이는 영상작업은 이전 작업에서도 그러했듯 '시간의 순연'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이 또한 접근법을 달리하고 있다. 일례로 2014년 전만 해도 작가는 일종의 비물리적 연속성을 따르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분절(分節)시키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캔버스에 덧입혀진 조각난 한지를 통해 드러내 왔다. 한지를 잘라 캔버스에 조각조각 덧입히는 과정은 그것자체로 기억의 찰나를 기록하는 행위라 해도 그르지 않았으며, 인간의 정신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단상들을 일일이 채록하여 안착시키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었다.

민준기_0.37m_한지에 나무_80×17×17cm, 설치_2014
민준기_0.37m_한지에 나무_80×17×17cm, 설치_2014

또한 조각난 한지는 작가의 주관적인 시도 아래 기억이라는 시간의 순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세편이자 이탈을 증좌 한다. 하지만 최근 선보인 영상작업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그의 한지작업들과는 별도로 일종의 시각적 규정에 함몰된 편린을 증폭시키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면서 시각과 기억, 시간과 공간이라는 다층적 교차, 관계를 맺은 채 서로 다른 개폐 구조 체계를 완성하는 수순을 내보인다. 따라서 한지에 투영되고 그려진 2011년 전시에서 선보인 각각의 파편들은 시간의 순연에서 탈선해 그 자체로 유의미한 다양한 집결지를 가질 수 있는 체계를 규정했다면, 지금의 작업들은 탈구축이라는 방향선회를 통해 열린 체계를 보다 강조하고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 단일 형식으로 재현되었던 기억의 집약체계를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 흥미로운 건 최근 작업의 경우 공간까지 아우른다는 점이다. 추상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지된 것이 아닌 시간의 연속성을 가시적으로 증명하고 있으며, 이전 사진콜라주를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잡아들이려 했다면 이젠 하나의 영화 같은 흐름으로, 일상의 상징언어로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일부 작품에서 엿보이는 추상성으로 해석의 풍부함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억과 연계된 다양한 감성적으로 풀어내려 함을 인지케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기의 작업은 하나의 일정한 맥락이 읽힌다. 계기성과 지속성을 규정하는 객관적인 존재 형식이 시간이고 사진 속의 시간은 정지해 있으나 사진 밖의 시간도 동시에 유동한다. 특히 사진 속 형상은 유구한 고착성을 띠지만 설치, 영상 속 이미지들은 기억에서 이탈해 다면화 되고 공유된다. 그리고 현재의 이와 같은 기억과 시간, 공간과의 감응은 끝없이 병립된 채 관객들을 맞는다.

민준기_당신이 서 있는 곳_비디오_00:06:00_2014

오늘날 작가는 기록의 나열이 아닌, 기억의 재생을 관통하는 새로운 창의적 시도를 지향하고 있다. 옛 비평을 다시 환기할 때 "비시와 같은 시간에 비례하여 흩뿌려진 기억들을 주관적 선택 하에 이입하여 타자로 하여금 간접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느낌과 감정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에 주된 지향성이 있다." 중요한 건 작가의 경우 진지한 고민과 실험적인 자세로 다양한 조형언어들을 개발해내려 한다는 점이다. ● 그러나 무엇보다 포스트모던 미학의 시대, 그 한복판에 영상이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유의미하다. 근대사회가 이성을 앞세운 과학의 시대였다면 포스트모던 사회는 감성을 중시하는 미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물론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몇몇의 작품들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준기가 시연하고 있는 사진적 영상의 지표적 특징들에서 말이다. ■ 홍경한

Vol.20141221b | 민준기展 / MINJUNKI / 閔濬基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