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된 풍경

김유정展 / KIMYUJUNG / 金維政 / painting   2014_1222 ▶ 2014_1231

김유정_Incubater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레치_70×90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0505d | 김유정展으로 갑니다.

김유정 홈페이지_kimyujung.com

초대일시 / 2014_1227_토요일_05:00pm

후원 / 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선광미술관(선광문화재단) SUNKWANG ART MUSEUM (SUNKWANG CULTURAL FOUNDATION) 인천시 중구 신포로15번길 4(중앙동4가 2-26번지) Tel. +82.(0)32.773.1177 www.sunkwang.org

식물정원 - 가치전도, 방향전환, 인지부조화의 관점 ●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제일 잘하고 관심 있는 일을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에피쿠로스에서 추구하는 행복의 개념은 자연과 문화가 이루어진 정원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kepos)은 자연과 문화가 있는 친화적 공간이다. 인간은 그 중간적인 입장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화, 자연의 문화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 김유정의 작품에 등장하는 정원은 기본적으로 에피쿠로스의 기초적인 해석을 기반으로 다시 자연과 어우러진 신비로운 인공적 정원으로 재해석한다. 구체적으로 그녀의 작업에 등장하는 정원을 살피면, 화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주된 주인공은 식물이다. 식물 중에서도 굳이 종으로 구별한다면 화초와 화분이다. 이런 식물들은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도심의 정원으로 대부분 거실과 베란다의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식물이란 존재감은 늘 있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가 없다. 작가는 기법적으로 프레스코를 사용해서 자신의 내면적인 세계를 구현하는데 채색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흑백처리를 하며 화면에서 심리적 배열로 바라본다. 가장 마지막 화면에서는 화지가 마르기 전에 흑석 안료를 바른 다음 조각칼을 사용해서 화면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어둠을 밀어내고 속살을 드러내는데 이런 행위는 '생명의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함이다.

김유정_Incubater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레치_120×120cm_2014

김유정의 「Incubater」 작품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도심의 건물에 있는 차갑고, 무거운 인큐베이터 안에 살아있는 식물들이 회색건물의 작은 창문들 뜸을 비집고 나오는 장면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식물은 인간의 욕망이 이기적인 방식으로 해소되는 대체물로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서 탈출해서 자연의 빛을 보고자 하는 심리가 내재하여 있다. 산과 들에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큐베이팅이라는 핑계로 통째로 옮겨져서 조기 발육된다. 식물들은 몸집이 커져서 더는 인큐베이터 공간에 온전하게 머물기에 숨이 가쁘다. 인큐베이터는 식물의 입장에서 볼 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갇힌 공간, 이기적인 인간들이 만든 인공물이다.

김유정_Alternative plant_와이어 드로잉, 프린팅_60×48.1cm_2014
김유정_Alternative plant_와이어 드로잉, 프린팅_80×70cm, 70×52.5cm_2014

또한, 그녀의 근작 중에서 「Alternative plant」는 눈에 띄지 않는 속성 때문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기 어렵다. 식물이 각별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는 특이하게도 살아있을 때 보다 죽은 다음 다른 식물로 대체되는 경우다. 자신이 있던 자리를 다른 식물이 대체 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존재감을 발한다. 인간의 경우 친한 지인이 돌아간 후에도 마음속에는 그리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식물의 경우는 이런 상황과 별개의 것으로 치부되어버린다. 그것은 단독적으로 특정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가 다른 식물로 교체되거나, 정원이라는 큰 집합에 부분적인 요소로 있다가 자신의 기능이 상실되어 다른 식물로 교체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김유정_Dream of the Green_프레스코_74.5×114.5cm_2013

영화 『황후화, Curse Of The Golden Flower』에서는 수많은 병사가 노란색 화분 위로 피를 토하고 쓰러지거나, 화분을 밟고 지나가는데 반란이 끝난 다음에 궁궐에 있던 신하들은 망가진 화분을 다시 새로운 화분으로 교체해 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말끔하게 새것으로 교체된 화분은 그 앞에 일어난 상황을 모르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다만 그 화분들이 장식적인 기능을 한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Dream of the Green」 은 식물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정한 복장을 한 여인이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위의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 여인은 나뭇잎에 약간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예측하건대 이런 행위는 누군가와 약속을 정하고 그 사람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사람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리던 익숙한 몸짓의 과거 표현을 재구성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인이 기다리는 사람은 현재의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 자리 잡은 어떤 사람에 대한 상실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Taming the Plant」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살아있는 식물을 길들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런 물음은 정원의 공간이 내포하는 아이러니를 함축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설정한 정원에 있는 식물은 관상용을 목적으로 설정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살아있는 식물들이 자신의 자유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길들여진다. 길들여진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식물이 원래 지닌 특성을 무시한, 전도된 정원으로 바뀐 것이다. 김유정의 프레스코로 표현된 가치 전도된 정원은 원래의 대상이 가진 의미가 사회적 목적 때문에 바뀌어 버린 현실이다. 원래는 이런 현상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인간의 눈에 익숙해진 정원의 풍경은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니체(Nietzsche)식으로 해석하면 김유정의 회화는 '가치전도 현상'에 해당한다. ● 「Alternative Plant」의 경우는 화분을 보고 드로잉을 한 것을 다시 철사로 표현한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작 방식이 무척 특이하게 구성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을 드로잉 할 때는 그 대상을 바라보고 화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특정한 대상을 보고 대상을 재현하는 도구인 자신의 손이 드로잉하는 것을 확인하고 수십 번에 걸쳐서 드로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반적인 재현방법을 일탈하는데 자신이 드로잉하는 손을 바라보지 않고 식물을 계속 주시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식물이 온전하게 재현되지 않는데, 작가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 종이 위에 다시 여러 번 중첩한 드로잉을 반복해서 완성한다. 결과적으로는 작품이 온전한 형태로 재현된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특정한 인상'이 남게 된다. 작가는 이런 의도는 식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그 식물의 주체가 되어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눈으로 식물을 본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본 지점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의 재질은 가느다란 철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식물의 연약함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작가의 의도는 세 가지로 축약되는데 첫째,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드로잉을 통해서 마치 식물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있다. 그것은 식물이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담보로 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바라본 식물의 내면적인 움직임과 활동성을 드로잉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둘째, 원래의 대상성에서 벗어나 추상화된 식물은 드로잉이 거듭해서 겹쳐질수록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불필요한 요소가 사라지고 본질만 남게 되는데, 걸러내는 과정을 통해서 모든 시각적 묘사에 적용될 수 있다. 셋째. 이것은 첫 번째 소개한 내용과는 다소 위배되는 내용인데 작가가 설치작업으로 제작한 화분의 드로잉 과정은 실제 식물을 바라보고 그렸다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에 의지해서 식물을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실재하는 식물과 드로잉이 구체적인 현실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식물의 통합적인 실체에 대한 해석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세 가지 중요 요소는 상황주의자 들이 즐겨 사용했던 '방향전환(데뚜르느망, détournement)'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모색한 행위로 인식된다.

김유정_Labyrinth_타일 프린팅_가변설치, 30×30cm_2014

김유정의 작품 중에서 미로를 찍은 특이한 사진「Labyrinth」이 등장한다. 이 장소는 제주도에 위치한 「김녕 미로 공원」에서 촬영한 것이다. 최종 결과물은 사진을 타일에 붙인 「타일 프린팅」한 작품은 제주도의 외딴 지역에 있는 '미로'를 찍은 사진이다.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중성적인 흑백 톤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효과는 시각적인 감동을 전달하고 감정의 분비물을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관객에게 잔잔한 여운을 느끼도록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미로는 다양한 공간적 분위기를 확보하는데 식물이 썩어있기도 하고, 공간이 막혀있기도 하고, 한쪽 귀퉁이가 열려있는 틈이 있기도 하며, 식물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사진은 전체적으로는 통일감이 모자라 보이는데 이러한 시도는 미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을 안내하는 방법으로 해석된다. 식물의 미로는 인공적으로 깎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나무만 있는 미로가 있기도 한다. 미로인지 하나의 풍경인지 구별을 못 하는 것들도 있다. 심리적으로 나무의 모서리 부분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잔가지는 '푼쿠툼(Punctum)' 혹은 라캉(Lacanian)의 '부분대상(part object)'의 효과가 발생하면서 자꾸만 신경을 자극시킨다. 얼핏 보기에는 인공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정원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편한 감정을 발생시키는 요소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인지 부조화(Congnitive Dissonance)'의 심리상태와 유사하다.

김유정_Gray Garden_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레치_120×162cm_2014

정확하게 김유정의 사진에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는 지점을 살펴보자. 「김녕 미로 공원」에서 찍은 영국산 랠란디 나무의 특성은 사계절이 푸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나무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나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고 이 사진은 관객에게 심리적인 녹색 압박감, 비가시적인 공포, 불안한 감정을 유발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작가가 미로를 찾은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작가는 심리적으로 각별한 지점이 포착되는 부분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적인 감정의 발단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인간으로서 사람과의 순탄하지 않은 관계와 거기에서 파생된 트라우마 등을 모두 아우른 통합적인 관계망과 맞물린다. 이런 표현은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막다른 미로에서 만난 것은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되는 시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극복하는 것이지 반전하기는 사실 어렵다. 작가가 미로 공원에서 의도하는 지점은 자신을 둘러싼 번잡한 모든 것과 내면적 고통을 몰아의 관조 속에서 관찰하고, 아름다운 식물정원을 거닐면서 시간상으로 앞서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을 체감하고 인간의 관계성을 탐색한다. 공간을 주시하지만, 그 자체의 특성에서 인지 부조화가 발생하는데, 자신과 대상과의 감정이 몰입된 공간 속에서 시각적 쾌감을 성취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자기 분열(자아가 해체되면서 깨달음을 얻는 방식)' 을 통한 치유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김유정의 작업은 자연과 인공이 결합한 정원을 테마로 그 안에 존재하는 작은 식물을 통해서인간의 탐욕으로 이루어진 '가치전도 현상'에 대해서 꼬집으며, 예술작품을 더 높은 환경적 상황으로 전환하는 '방향전환'의 정신과, 인공정원에서 인지적으로 혼란이 발생하는 '인지 부조화'의 심리적인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프레스코 작업을 완성해 나간다. 김유정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심중에 다가왔던 대상을 향하여 무엇인가 외형적으로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삭제와 생략의 방법을 동원한다. 이 때문에 지극히 익숙한 것들을 통해서 얻은 것은 확실한 무관심의 반영이며, 대상 자체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내면적인 특성을 승화시킨다. 그녀의 작업은 대상이 가진 비활동성을 통해서 외부의 세계에 대한 온갖 근심에서 벗어나는 완전한 자유와 예술적 이상으로 주장되는 내적 자유의 정신을 시도했다는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김석원

Vol.20141222g | 김유정展 / KIMYUJUNG / 金維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