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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진展 / KIMWONJIN / 金媛鎭 / installation   2014_1224 ▶︎ 2015_0105 / 12월25일 휴관

김원진_Twisted moment_책, 스틸_가변설치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1:00am~05:00pm / 12월25일 휴관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시간, 그 기억과 망각의 흐름 속에서 ● 책꽂이에 책들이 한 가득이다. 한 권 꺼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니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파라핀(paraffin)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진, 불탄 흔적이 남아있는 책의 파편들이다. 당황한 마음에 시선을 돌리니 나이테가 두드러지는 나무로 만든 가구가 눈에 들어온다. 발걸음을 옮겨본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번에도 그것은 불탄 책의 파편들이 만들어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브제(object)이다. 이 불분명한 오브제들에 둘러싸인 순간, 우리는 잠시 동안 흐르는 시간으로부터 분리된다.

김원진_Flow_책_가변설치_2014

김원진은 책, 파라핀, 나무, 그리고 불(fire)을 이용해 시간과 기억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영역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원진은 기억 그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탐구에 몰두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책을 주된 재료로 선택했다. 한 권의 책에는 그것을 집필한 작가의 시간과 그것을 읽는 독자의 시간이 중첩된다. 또한 책은 기억하기 위한 인간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김원진_Re-constructed time shelves_책, 파라핀, 나무_180×168×15cm_2013

한편 시간과 기억은 필연적 관계 속에 놓인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붙잡거나 고정시킬 수 없다. 그저 계속 흘러갈 뿐이다.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억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시간은「Re-constructed Time Shelves」(2013)에 등장하는 책들처럼 기억의 집합체와 같다. 이에 작가는 책의 두께가 기억의 두께이며 기억들이 지층처럼 쌓여서 우리의 시간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는 순간은 현재에 존재하는 자아가 과거를 만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마치 책의 두께처럼 수많은 기억들이 쌓여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만들어나간다.

김원진_Time : mite_책, 파라핀_ 23×14×3cm×6_2013

그런데 우리의 시간을 구성하는 기억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기억은 기계적인 저장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기억은 개개인에게 내면화된 것이다. 따라서 기억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주관이 포함된다. 또한 기억을 되살릴 때에는 주체의 재구성과 새로운 의미 부여가 담보된다. 따라서 기억이 과거에 있었던 명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이(轉移), 변형, 왜곡, 갱신(更新)-추가, 삭제, 다시 고침-등의 작용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언제나 완벽하게 동일한 기억을 불러낼 수 없는 것이다. 김원진의 책들이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 불타고 남은 조각들로 등장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작가에게 불에 타고 일부만 남은 책은 기억의 본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Swings」(2014)에 등장하는, 파라핀과 한 몸이 되어 본래의 형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책의 부분들은 흐려지고 변형되며 언제든 녹아 사라질 수 있는 기억 그 자체를 은유한다. 결국 기억은「Time: Mite」(2013)처럼 몽롱하고 흐릿해지고 부서지는 것이다. 기억은 흐르는 시간처럼 과정 중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망각과 회상 사이를 오가며 끝없이 재구성된다.

김원진_Swings_책, 파라핀, 스틸_가변설치_2014
김원진_Swing_책, 파라핀, 스틸_25×25×10cm_2014

이와 같은 맥락에서「Twisted Moment」(2013)는 왜곡된 기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의 기억은 언제나 뒤틀려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동일한 사실도 누가 기억하는 가에 따라 바뀐다. 나는 진실이라 믿지만 그것은 흐려지고 왜곡된 것일 확률이 높다. 책으로 만든 동그란 조각들은 기억의 한 순간 혹은 한 지점을 의미한다. 그 하나하나가 모여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 개인의 일생이 되고 세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이 해체할 수 없는 단단한 기억의 덩어리-역사-는 개인들의 비틀린 기억들이 한 몸을 이룬 군체(群體)일 뿐이다. ●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표현처럼 기억은 개인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필연적인 힘이다. 기억은 현재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지식이며 미래의 삶을 만들어내는 바탕이다. 그것은 현재를 위한 과거이자 미래를 위한 현재이다. 현재가 생성되는 순간 그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되어버리며 기억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미래는 현재가 된다. 미래는 곧 과거가 되며 기억은 그렇게 쌓여간다. 그리고 기억은 우리의 시간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시간은 끝없이 흐른다. 기억도 흐른다. 우리의 삶도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이문정

김원진_Twisted moment_책, 스틸_가변설치_2011

기록으로 남겨진 흔적들을 태우면 작은 불씨로 종이가 타들어간다. 시간에 따라 다르게 각인되는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타들어간 기억이 재가 되고, 남은 자리에는 다른 공간이 생성된다. 또 다른 흔적이 생긴다. 실제로 혹은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 경험들과 그로인한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변주하고, 일부는 사그라지며, 흔적들의 시각적 형상을 만든다. ● 과거의 편린들은 무의식의 바다에 끊임없이 잠식된다. 바닥없는 심해에는 모든 단초들이 부유한다. 우리의 시선은 늘 일렁이는 바다의 그 표면을 향해 있다. 잠식된 기억들은 수면을 향해 다가오거나 멀어지거나 정체하여 다양한 속도로 움직인다. 작은 풍랑이 일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조각들은 현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새로운 편린들이 생성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잠식된다. 새로운 기억들은 과거의 편린들이 단초가 되어 변형되고, 이것이 깊게 잠기거나 다시 떠오르기도 하며 매순간 새롭게 재회한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순간은 모호함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숨어든 순간들은 각자의 체계 안에서 바스라지고, 그 조각들이 다시 연결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실체보다 더 견고한 모습으로 재생산된다. 사라진 순간들과 남아있는 순간들은 끊임없이 반복적인 흐름 속에서 재구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실체보다 더 견고한 모습으로 재생산된다. 나의 작업은 사라진 순간과 남아있는 순간들 사이의 반복적인 여행을 나타내려는 다양한 실험들이다. ■ 김원진

Vol.20141224a | 김원진展 / KIMWONJIN / 金媛鎭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