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

김정환展 / KIMJEONGHWAN / 金政煥 / painting   2015_0106 ▶ 2015_0202

김정환_기억의 날인_리넨에 소인된 편지봉투, 아크릴과 돌가루 혼합_55×10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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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KSD 나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00pm

KSD 문화갤러리 KSD CULTURE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4길 23 한국예탁결제원 1층 Tel. +82.31.900.7449 gallery.ksd.or.kr

편지,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하여 - 작업재료인 소인된 편지봉투에 대한 단상 ● 밖은 섭씨 영하 15도의 강추위다. 내린 눈이 며칠 동안 녹지 않아 작업실 블라인더를 들치고 밖을 보면 밤인데도 환하다. 낡은 보일러에선 난방 들어오는 소리가 들릴 뿐, 주위가 조용하다. 모르는 새 창에 성에가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한 이십분 가량 FM도 끄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즈음 와서 무얼 생각하는 것도 아닌 잠자는 것도 아닌, 그저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저녁시간이 며칠에 한 번씩 온다. 주위엔 작업을 위해 하나 둘 사 모은 소인이 찍힌 낡은 편지봉투들이 쌓여 있다. 한편으로 내가 보내거나 받았던 그 많던 편지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의 눈물과 함께 불태워졌을 그 편지에 담겼던 언어들은 지금 어디쯤 떠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소인이 찍힌 편지봉투를 보면서 떠오르는 건 머뭇거림을 모르는 디지털 문명은 이제 기다리는 일도, 그리워하는 일도 추억 저편으로 떠밀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환_기억의 날인_리넨에 소인된 편지봉투, 탁본한 종이에 아크릴과 돌가루 혼합_53×41cm_2014
김정환_기억의 날인_캔버스에 소인된 편지봉투, 아크릴과 돌가루 혼합_34×27.5cm_2013

편지봉투를 보면서 그 편지에 담으려 했던 진심은 생각해 본다. 그것은 도저히 다른 도구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편지봉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것을 쓴 사람들이 느꼈던 떨림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 같다. 편지는 편지로밖에 담아낼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해주곤 한다. 편지를 통해 우리는 기다림과 그리움을 느낀다.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편지지를 고르고, 필기구를 선택하고, 편지에 담을 내용을 가다듬은 다음, 마침내 등불 아래 혼자 앉아 첫 문장을 쓸 때, 편지를 쓰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펜 끝에 집중된다. 존재는 한 곳에서 팽팽하게 긴장한다. 그러나 첫 문장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종결 어미, 접속사와 부사 하나를 동원하는 데에 전 존재를 걸지 않을 수 없다. ●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나의 삶과 운명이 재조정되고, 편지를 받아 볼 상대방의 반응이 떠오른다. 이렇게 위태롭고, 폭발적이며, 그리하여 위대한 글쓰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편지의 미덕이 편지 쓰기의 고통스러움에서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편지를 편지이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봉인과 개봉 사이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때문이다. 수신인에게 도착하는 데 걸리는 하루 이틀이란 시간도 견디기 어렵다. 가긴 가는 것인가, 수신인은 그 편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편지는, 수신인의 입장에서 새로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처음 받아 본 편지는 극과 극 사이에서 위험하다. 뭐, 이따위 편지가 다 있어, 하며 집어던지거나, 아, 그 사람이 그랬구나, 하며 가슴에 품어 보게 되는.

김정환_기억의 날인_리넨에 소인된 편지봉투, 아크릴과 돌가루 혼합_23×16cm_2014
김정환_기억의 날인_린넨 위에 소인된 편지봉투_탁본한 종이에 아크릴과 돌가루 혼합_32×23cm_2014

디지털 문명의 최종 목표는 기다림과 그리움이 관련된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편지에서 전화기와 팩시밀리로, 다시 호출기와 이동 통신, 그리고 컴퓨터 통신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속도에 길들여졌고, 느린 것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계단만 있던 시절에 누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초조해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사나흘 걸려 수신인에게 도착되는 편지의 시절에 누가 컴퓨터 화면이 느리게 뜨는 것 앞에서 분통을 터뜨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 ● 커서의 움직임과 전송 속도 또는 프린트 속도에 의해 기다림과 그리움은 박멸되고 있다. 속도 지상주의, 속도 패권주의 앞에서 편지로 대표되는 종이 위에 글쓰기는 골동화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종이 위에 글쓰기가 갖고 있는 위력을 신앙하고자 한다. 손(촉감)과 눈(읽는 방식)으로 대표되는 몸의 기억력을 나는 믿고자 한다. 속도를 상품화하고, 마침내는 기다림과 그리움을 멸종시키려는 이 디지털 문명의 그늘을 감시하고 고발하고자 이러한 「기억의 날인」 연작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김정환_기억의 날인_리넨에 소인된 편지봉투, 아크릴과 돌가루 혼합_32×16cm_2014
김정환_기억의 날인_리넨에 소인된 편지봉투, 아크릴과 돌가루 혼합_27.3×19cm_2013

아호가 사라지고 그 대신 영어로 표기하는 아이디 하나씩 갖는 세상, 집과 사무실 전화 번호 대신 휴대 전화 번호를 갖는 시대, 집과 실재 주소에다 이메일 주소를 하나 더 가져야 하는 문명, 그리하여 종이와 육필이 사라지고, 편지가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시절. 나는 오늘도 인터넷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월급을 쪼개, 틈이 날 때마다 질감이 좋은 종이를 사고, 거금을 들여 만년필을 산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잉크를 넣고, 촉에 묻은 잉크를 닦아 낸 다음, 순백의 종이 위에 기다림 혹은 그리움이라고 쓸 때, 나는 디지털 문명을 거슬러 오르는 내 몸 속의 유전자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곧, 이 무지막지한 속도의 시대가 가고, 느림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가로막고 있는 디지털 문명의 모니터가 사라지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직접 만나는 맑은 몸의 문명이 올 것이라는. ■ 김정환

Vol.20150106g | 김정환展 / KIMJEONGHWAN / 金政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