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OCI Cre8tive Report

2014 OCI 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展   2015_0108 ▶ 2015_021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108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박종호_범진용_서재현_이진영_전은희 최현석_허용성_홍정욱_판핑유 潘娉玉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콩사태 ●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한다. 사자성어로 흔히들 종두득두, 사필귀정을 떠올리리. 일견 타박의 용도에 쓰임새가 많아 보이지만, 셈대로 잘 뿌려 듬뿍 거두고, 참한 길 정녕 제대로 찾아 간다면? 그제는 오히려 늠름히 읊어 봄 직한 말이다. OCI미술관은 시각예술작가들이 작품을 일굴 터전으로 인천 들녘에 창작스튜디오를 꾸려왔다. 벌써 네 해째 접어드는 올해도 어김없이 새 얼굴들을 받아 밭두렁은 내내 분주하다. 이번 사철을 맞아 박종호, 범진용, 서재현, 이진영, 전은희, 최현석, 허용성, 홍정욱이 저마다 색색이 콩을 뿌렸다. 경작 내내 이 콩 저 콩 갖은 도리로 키워 보고 때로는 서로의 밭두렁을 오가며 고민과 격려를 나누었다. 아울러 지난 10월에는 'Open Studio'행사를 통해 관객, 작가, 비평가를 망라하는 소통의 장을 펼친 바 있다. ● 봄에 뿌려 겨울에 걷는 농사가 있다. 뭇 농부는 가을에 걷고, 여기 여덟 작가는 겨울에 걷는다. 이에 본 전시『2014 OCI Cre8tive Report』는 여덟 작가의 피땀 어린 결실을 함께 세어보는 마당으로 마련되었다. 뿌리고 가꾸어 애지중지 붓꽃 피운 일 년이 지나 어느덧, 평면과 입체, 음향을 망라하는 갖은 모양새로 열매가 영글었다. 콩 심은 데 제대로 콩 나길, 이왕이면 콩사태쯤은 나길 축원하며 한창 수확을 마무리하는 여덟 마지기 캔버스 두렁으로 초대한다.

박종호_Attack_캔버스에 유채_150×130cm_2014

밭두렁 머리맡엔 만성피로 처방전이 무성히 자랐다. 박종호는 세상의 부조리에 떠밀려 줄지어 걷는, 그러면서 한 번 돌아보는 법도 없이 그저 무기력한 군상 행렬에 환기를 도모한다. ● 부조리 한 점 마주침 없는 삶도 드물다. 겪고도 저항은 요원하고, 심지어 부조리였다는 인지도 분개도 없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그 무기력에 대해 다시 무감각하기까지 한 현실에 분연히 곁눈을 뜬다. 주목은 성찰로, 다가올 성토로 이어진다. 포착하려는 그 꺼림칙함이 오묘해 분절된 언어 조각들로 다잡기 썩 여의찮다. 뭇 언어의 성긴 그물대신 더욱 신랄하고 촘촘한 그것을 찾았고 마침내 회화로 걸러 낸다. 불분명한 인상과 오묘한 형태, 흐르는 듯 무심한 색상, 우울함을 잔뜩 머금은 분위기는 그렇게 건져 낸, 말로는 형용이 힘든 거리낌 그 자체다. 떠밀리듯 부대껴 무기력 속에 떼로 침잠하는 돼지에서부터 후드 지퍼를 채워 얼굴도 마음도 닫아버리고 급기야 표정마저 문질러 지워버린 군상들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던 답답함에 자조하며 반성의 계기를 제안한다. 인간 실존을 규정하고 강요하는 참상을 회화로 고발한다. 그것이 부조리와 무기력에 길들여져 감긴 눈조차 뜨지 못한 돼지를, 인간을 깨울 호각으로 다가온다.

범진용_Run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4

범진용은 자기 치유 특효약을 재배한다. 그건 아직 내면 여기저기 남아 맴도는, 채 다 풀지 못한 가슴앓이의 뒤섞임, 천방지축 꿈의 풍경화다. ● 정체와 관계가 모호한 주체들이 등장하는 이런저런 서사들, 그들끼리도 관계나 경계가 불분명한 채 엮이는 꿈의 특성을 평면회화라는 형식으로 담아낸다. 이름 모를 두상이 녹아내리는 뒤로 검푸른 숲이 펼쳐지기도, 정신을 차리면 때론 실내이기도 하다. 꿈결의 흐린 광경 전면으로 인물인 듯 연기 같은 형상들이 불분명한 경계를 주고받으며 엿가락처럼 엉겨붙어있다. 이야기 부스러기들은 이 팔 저 다리로 용접되어 한 화면에 쏟아진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는가 하면, 목탄 등을 활용한 작업 도중 우연의 효과로 나타난 형태를 포착해 삽입하는 등, 표현에서 표현이 파생하기도 한다. 최근엔 유채를 활용해 알록달록 번져 흐르는 꿈의 색상마저 담아내려 집중한다. 작업의 특성상 꿈 내용에 대한 정리가 표현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작품의 키워드에 맞게 주인공을 먼저 세운 뒤, 자료를 깔아 놓고 주변을 엮어 나간다. 묵히다 곪은 트라우마는 불안과 공포, 억압된 욕망을 이고 꼬리를 물며 갖은 생김새로 꿈에서 재구성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 쌓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쏟아내니 도무지 말로 풀어낼 도리가 없을 터. 그래서 더욱 말 대신 그림으로 푸는 치유가, 절실함 끝에 상봉한 필연의 해소법으로 와 닿는다.

서재현_전리품_한지에 먹, 과슈_112.1×145.5cm_2014

인간 본성을 헤집어 욕망 원석을 캐는 광부 서재현. 원석에 얼룩진 학습과 이성의 먼지를 털어내 적나라한 몽타주를 까발린다. 먹의 강점을 십분 활용해 표현의 효과와 의미의 안착을 동시에 거머쥔다. 한국화의 활로 모색과 다채로운 진화의 일면을 보여주듯 대상과 표현에서 재료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그만의 독특한 해답을 선보인다. ● 고추냉이를 우겨넣은 탐스런 송편을 덥석 베어 물면 그 맛이 결코 생김새 같지 않다. 송편의 반지르르한 모양새만으론 그 존재를 파악하기에 부족하다. 하물며 사람 맛이야 오죽할까. 그가 잡아낸 인간 존재는 동물적인 난잡한 맛이 번듯한 겉모습과 뒤섞여 기괴하다. 고추냉이 대신 야수성이 털처럼 무성히 배어 나와 뒤엉키고 이성을 셈할 손발은 억압에 변질해 지느러미처럼 불거져, 여태껏 헤아리지 못했던 반인반수의 초상을 낳는다. 암흑 속을 부유하는 기이한 짐승의 얼굴엔 아직 인간의 흔적이 잔존한다. 떨칠 수 없는 물욕마냥 무수히 번뜩이는 금색 은색, 그 너머로 칠흑처럼 한지를 뒤덮은 먹의 정신적 함축성과 내면을 어루만지는 상징성은 그 섬뜩한 눈초리, 실체에 대한 집요한 모색에 깊이를 넘어 그윽함마저 더한다. 올올이 훑어낸 바 인간은 일관되고 그럴듯한 품새, 명징한 경계와 논리적인 설명에만 옭아맬 수 없는 울퉁불퉁한 존재인 것이다.

이진영_Inframince 앵프라맹스_4×5인치 콜로디온 습판법, 네거티브, 잉크젯 프린트_92×69.8cm_2014

잔가지를 잘 쳐야 큰 가지가 자란다지만 구태여 큰 가지만 그래야 할 건 무에 있나. 잔가지도 가지고, 우연도 연(緣)이다. 이진영의 사진에는 큰 가지를 배경으로 작고 사소한 우연의 이야기가 잔가지마냥 가득 뻗어 있다. ● 옛 습판 사진술 암브로타입(Ambrotype)이 보완되어 그만의 형태로 새로 태어난다. 유리판에 감광제를 올려 젖은 채 오랜 노출을 주고 현상한다. 먼지가 내려앉기 일쑤요 의도치 않은 자잘한 흠집이 수시로 만발한다. 그 과정에 투자하는 시간이 매양 고를 수도 없다. 통제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가 늘 따른다. 내치지 않고 동행을 택했다. 바로 작업 제목 'Inframince'. 감지하기 힘들지언정 분명 존재하는 미묘하고 사소한 차이를 뜻한다. ● 그래서 이미지는 흐리고 오묘하며 때론 푸근하다. 대상을 둘러싼 사소한 징후와 흐릿한 심상을 매번 다른 빛과 감광제로 유리 위에 상을 받는다. 질료성이 강조된 촉촉한 상을 받은 유리 원판은 유일한 현상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진의 복제성을 벗어나고 의도, 과정, 결과 일련을 통틀어 차별성을 간직한다. 식물의 몽롱한 형상, 희고 검은 점들 너머 수채화처럼 번지는 벽과 창가는 점차 가지처럼 갈라지며 가장자리로 뻗는다. 부드러운 형상을 흐리게 둘러싼 미묘한 효과와 수많은 우연의 티끌을 포용한 덕에 더 많은 심상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견인한다. 작업 과정은 고스란히 작업물의 물리적 특성으로 전사되고 작업의 주제로 전이하며 또 다른 창작의 모티프로 거듭날 채비를 한다.

전은희_옥인동_한지에 채색_227×182cm_2014

지질학자는 지층을 썰고, 전은희는 켜켜이 쌓인 세월을 썰어 낸다. 썰어 낸 단면에는 아직도 매무새 반듯한 추억과 못다 한 이야기들이 화석처럼 고스란히 박혀 있다. 늙은 집의 낡은 담벼락과 문짝, 우체통, 초인종, 문패를 비롯해 도시 구석구석 얽힌 인생사의 실마리들을 먹과 분채로 우려낸다. ● 타자 없이 타자의 삶을 만진다. 거닐던 누군가 한 번쯤 눈에 잡힐 법도 하건만 화면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부재는 누군가 존재했기에 가능하고 같은 사물 같은 장소에 스민 저마다의 추억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회벽 녘에 힘겹게 기댄 사다리로 타자의 존재를 더듬어 오르고, 어슷비슷한 문패며 수없이 눌렸을 초인종으로 저마다 다른 기억들을 노크한다. 거친 밑을 입은 한지에 추억 대신 온갖 색을 거듭 쌓는다. 수십 해를 머금어 쇠한 슬레이트는 낡아 바스러지고 화장이 뜬 벽엔 주름살 같은 금이 핀다. 인고 끝에 우러나는 색상은 오랜 벽에 새겨진 흔적과 마찬가지로 깊고 은은하다. 그렇게 과정 또한 소재에 동화한다. 덕분에 생경한 동네의 녹슨 문짝과 낯선 문패에서도 삶의 흔적이 아른댄다. 긴 시간 서울 구석구석 거듭 배인 삶의 가치를 흠씬 맛보는 비결을 귀띔한다.

최현석_혼례거사도 婚禮巨事圖_마에 수간채색_110×110cm_2014

뭇 기록화는 빛나는 과거를 되새기려 기억을 거슬러 오른다. 그러나 최현석의 그것은 자성의 단초로, 또 더 나은 앞날로 이끌 계기로서 앞의 그것과 유다른 정체성을 지닌다. 때문에 옛 기록화에 스민 주류의 의지와 권위 대신, 오히려 영광 없는 현실에 닥뜨린 찜찜함에 눈을 맞춘다. 특정 입장과 편중된 의도를 경계하여 가감 없이 화폭에 담는다. 화폭 속의 군상은 하나같이 텅 빈 얼굴이다. 자유로이 표정을 채우는 것은 보는 이의 몫으로 돌아온다. 어떤 표정이었을 지 또 왜 불편하게 다가왔을 지 감상자가 잡아 낼 차례다. 관객이 작품을 손수 매조지하는 셈. 그 과정에서 자성적 성찰을 기대한다. 그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이끄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그래서 미래를 바라보는 기록화이다. 그 범위는 개인의 처지와 환경에서 맞닥뜨린 불편함부터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망라한다. 대상을 재구성하여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단이라면 조감(鳥瞰), 부감(俯瞰), 이시동도(異時同圖) 가리지 않는다. ● 결과적으로 그가 보았고 담아 낸 것은 장소와 등장물의 형태라기 보단, 생김을 움킬 꾀도 쉬이 나지 않는 거대한 무형이다. 거스르기 쉽지 않은 제도고, 거역하기 힘든 권력이며, 공유를 강요당하곤 하는 만연한 의식이다.

허용성_그 곳에서 바라보다_한지에 채색_184.5×192.5cm_2014

허용성의 화폭엔 고민과 방황, 불안과 혼란에 패기가 탈색된 젊은 초상이 들어찬다. 눈부신 기성 사회 구조에 과다 노출되어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새어버렸다. 행여 남았을 한 점 기상마저 발가벗길 양 인물마다 적나라한 정면상이다. 한지가 비칠 정도로 색을 얇게 썰어다 거듭 올려 끌어낸 색상은 희고 차분하며, 형태는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다만 그 와중에 도드라져 남은 이목구비가 누군가의 인상을 간직한다. 시대의 거듭된 실험과 속박에 몸서리 진저리 넌더리가 난 젊은이들의 젊지 않은 초상이다. 곁에 한둘 있음직한, 동네 골목 어귀에 이내 스칠 법한 우리네 가족들 친구들의 인상은 연민과 공감을 이끌고, 바랜 색상은 마치 고인이 된 열정의 영정사진을 대하듯 추모와 숭고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연민과 추모는 다시, 억눌려 빛바랜 그들의 젊음이 목소리를 펴고 색을 되찾을 기원으로 이어진다. ● 최근 작업에선 풍경이 전면에 서고, 소리가 나란히 자리하기도 한다. 인물을 벗어나고 평면을 넘어서는 시도는 세대의 활로를 찾는 작가의 능동적 의지이자 동시에 현대 한국화의 고민과 방황에 대한 극복의 모색이다.

홍정욱_detour_플라스틱 파이프, 나무_61×54×24cm_2014

홍정욱은 일파만파(一波萬波)에서 만(萬)대신 소외된 일(一)에 주목한다. 기본을 잊은 사회가 갖은 갈등에 신음하니 이상할 게 없다. 무리수를 둔다고 한다. 분수를 벗어나고 기본을 달리 하니 무리수가 되고, 무리가 물의로 번질 수밖에. 기본의 망각에서 발아한 이 비극에 경종을 울려 초심을 깨운다. 조형에서 일에 해당하는 점, 직선, 삼각형, 원과 같은 기본적인 시각 요소가 말 그대로 작업의 기본이 된다. 포맥스, 와이어, 프라이스 택에 이르기까지 조형의 기본 구성단위로 등용되는 재료가 다양하다. 서로 모이고 기대어 무궁한 볼품을 낳는다. 기본은 간단해도 결코 단조롭진 않다. 시각 요소의 반복과 점진적인 변화는 다른 차원으로 이접한다. 편평한 캔버스에 주름이 잡혀 산이 솟고, 다시 와이어가 곡선을 그리며 공간으로 내뻗는다. 점이 줄지어 선을, 다시 무리지어 면을 이루고, 면들은 떼지어 덩어리를 빚고, 그 반복이 다시 상(像)을 넘어 율(律)로 다가온다. 작품을 수놓은 빛살들은 그 선율에 발맞춰 평면에서 공간으로, 공간에서 다시 시간으로 차원을 꿰며 행진한다. 시공을 망라하는 이접은 기실 점에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만파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파는 곧 잠재된 만파임을 일깨운다. 이상에 대한 열쇠는, 간결하고 순수하며 가장 기꺼이 다잡아야 할 기본에 있다. 바로 잡힌 기본이 건실히 서로를 지탱할 때 비로소 이상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 번잡한 세상에 허우적대는 현대인에게 단순명쾌한 진리를 현실의 형체로 구현해 전한다.

판핑유_Family Recipes-Luggage Series_천, 종이,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4 (사진_Liu Jun-yo)

좋은 농사꾼에겐 나쁜 땅이 없다 했다. 채 못다 녹은 인천 들녘에 절차탁마 붓끝을 벼려 호되게 터를 갈고 한 해 줄곧 갖은 줄기 야무지게 돋우었다. 여태 벌고 내내 쌓은 구슬땀이 서 말에 비할 바 아니다. 보배로 꿰일 날이 머지않았으니 앞으로 여덟 농군의 작업세계에 무궁한 거름으로 거듭날 것이다. 아울러 본 창작스튜디오 역시 물리적인 공간의 차원에 머무는 대신, 작가 중심의 프로그램과 교류 확대를 통해, 작가로서의 삶에 자양분을 뿌릴 든든한 거름통이 되고자 한다. ■ 김영기

Vol.20150107b | 2014 OCI Cre8tive Report-2014 OCI 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