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침묵 Silence of Flaubert

고명근_김승영_유영진_이혜승展   2015_0107 ▶︎ 2015_0224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4_01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 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8-4 Tel. +82.2.747.4675 www.skape.co.kr

"나는 서술을 해야 했소. 그런데 그 이야기는 내게 진저리 나는 어떤 것이었소." 귀스타브 플로베르는『마담 보바리』를 쓸 당시 글쓰기의 고통을 이리 토로하였다. 그가 참을 수 없었던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소설의 본질이자 본연의 기능이었다. 상투적인 서술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플로베르의 실험적 글쓰기와 언어적 침묵이 대담하게 감행되었다. 그의 육성을 빌려 들여다보는 네 작가 김승영, 고명근, 이혜승, 유영진은 시선을 사로잡는 시각적 화려함이나 명료한 개념과는 거리를 둔 작업 세계를 지닌다. 작업의 주제는 서술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으며, 시각적 디테일 또한 서로 중첩되고 모호한 채로 남겨진다. 이러한 이미지의 불투명함은 분명하게 표명하기 어려운 이면의 세계로 시선을 안내한다. 전시는 작품이 이야기가 침묵하고, 시선이 굳어지는 정적의 순간에 주목된다.

이혜승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0

이혜승의 시선은 공간의 경계, 그 언저리에 머문다. 정확하게는 틈새가 있는 벽, 창문보다는 창가, 통로와 같이 열림과 닫힘의 사이 공간에 머문다. 그의 감정이 절제된 붓 터치는 마치 벽을 어루만지듯 사려 깊게 벽면의 한 귀퉁이, 차폐된 공간에 담긴 침묵과 욕망을 그려낸다. 스테인글라스가 있는 회색 벽면에는 침묵의 풍요가 넘치고, 문틈으로 슬며시 새어 나온 빛과 창 밖의 풍경은 마음의 침묵을 저편의 공간으로 비밀스럽게 이끈다. 담담히 침묵의 시간을 지나온 붓의 흔적은 온기가 느껴지는 나머지, 시선을 한참이나 그곳에 서성이게 한다.

유영진_The Weathering_피그먼트 프린트, 아세톤_2013

사진 매체를 통해 찰나에 존재하던 시공간성에 대해 고민해 온 유영진은 기억과 시공간에 담긴 현존과 부재를 관조해낸다. 존재했던 사라진 공간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조심스럽게 망각되고 폐허화된 삶의 흔적들을 반추한다. 아현동 재개발 지역에서 채집된 폐허의 사물들은 스노우볼 형상의 플라스틱 구에 담기어 유토피아적인 건축구조로 되살아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건물 사진은 아세톤으로 지워져 사라져가는 풍경으로 남고, 그 지워진 흔적들은 잿빛의 가루로 스노우볼 안에 흩뿌려져 삭제된 꿈과 불안한 미래를 애도한다.

고명근_Building 1990_필름지, 플라스틱_44×30×29cm_2003

유영진이 안타까워하는 지나간 존재, 시간에 대한 기억과 이혜승이 붓으로 벽을 보듬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은 고명근의 사진조각 작업에서 섬세한 디테일에 상상의 강도를 더하는 인상이다. 고명근의 1990년대 초기작을 보면, 낡고 지저분한 벽면들 위로 차폐된 창문, 폐쇄된 건물의 인상이 침묵의 메세지를 강하게 전달하였다. 이후 작가는 투명한 물성을 가진 OHP 필름, 플렉시글라스를 사진조각에 도입하며 표면으로부터 안으로 시선을 관통하는 흐름의 공간을 형성해 낸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2000년대 초부터의 건물 작품들로 재현과 환영 사이에서 벽의 경계 지점을 벗어나는 응시의 무한한 황홀함을 전달한다. 여기에는 도시와 자연 사이의 이질적 풍경이 너그러운 시선으로 담기고, 상이한 시공간의 장소들이 서로 콜라주 되어 기억, 역사, 자연, 시간, 상징의 영역이 공존한다.

김승영_깃발 Flag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4

지하 공간에 독립된 방으로 마련된 김승영의 작업은 비밀스럽게 외부 세계의 풍경과 내면 깊숙이 잠긴 개인의 침묵을 서로 조응시킨다. 2012년 작가가 남극을 다녀온 경험으로부터 등장한 '깃발'은 소금이 광활한 눈밭처럼 깔린 그 위로 작은 깃발이 미세하게 펄럭이는 작업이다. 작년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를 다녀온 작가는 우주의 섭리가 담긴 숭고한 자연의 시간을 깃발 작업에 투영시킨다. 깊은 정적이 가득했던 어둠의 시간을 응시했던 작가는 밤하늘의 신비로움을 서서히 변화하는 LED조명을 통해 담아낸다. 투명하게 검푸른 밤하늘이 변하는 가운데 흔들리는 깃발 작업은 침묵과 세계가 공명한 순간의 깊은 내적 울림을 전한다. ● 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전시장에는 모호하고 중첩된 이미지와 암시와 보류의 어조들이 차게 된다. 이는 시간에 대한 음미, 과거에 대한 기억, 사라짐에 대한 애도, 눈에 잘 들어나지 않는 모호하고 차폐된 텍스트들과도 관계 된다. 작가들이 전시장 속에 흩뿌려 놓은 이 암시의 징표들에는 시각적 이미지와 내러티브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나, 그 의미의 주변을 더듬다 보면 공간과 시간, 개개인의 내면에 담긴 침묵에 다가가게 할 것이다. 아마도 이곳엔 망각된 찰나에 존재한 침묵의 목소리가 닿을 거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심소미

* 전시 제목은 문학이론가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가 1966년에 쓴 글   『플로베르의 침묵(Silences de Flaubert)』을 인용하였습니다.

Vol.20150107e | 플로베르의 침묵 Silence of Flauber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