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언트 메모리즈 brilliant memories

현대자동차 GBC 캠페인展   2015_0128 ▶ 2015_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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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병호_김종구_김진우_박선기_박진우_신유라 아티스트칸_양민하_양수인_에브리웨어 우주+림희영_이광호_이용백_한진수

전시상세정보 / brilliant.hyundai.com 문의 / Tel. +82.2.6959.2463

관람료 / 성인 5,000원(단체_2,500원) / 학생 3,000원(단체_1,000원) 미취학 아동 및 65세 이상 무료관람 * 단체_10인 이상 * 관람료 수입은 전액 청각 장애인 학교에 기부됩니다.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입장마감_07:00pm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ONGDAEMUN DESIGN PLAZA, DDP 서울 중구 을지로 281 알림 1관 Tel. +82.2.2153.0000 www.ddp.or.kr

나. 너. 그/녀. 우리. 그들의 자동차 - 1. 인생 공간 ● 마침 차에 문제가 생겼다. 자동차 내부 어디선가 신경을 긁는 미세한 마찰음이 나는 것이다. 얇은 종잇조각이 바람에 나부낄 때를 닮은 그 소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심각한 일이 아닐 것이고, 실제로 엔진이나 브레이크장치처럼 자동차 운행 및 안전성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사건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음 때문에 사랑해마지 않는 내 차를 타기가 싫어진다. 차를 판 딜러와 AS센터 기술자는 물론 점점 자동차회사까지 미워진다. 그 마찰음이 귀에 거슬리는 작은 소음 수준을 넘어 불쾌하게 진동하면서 몸 구석구석부터 뇌 중추신경까지 흔들고 다니는 미지의 괴물처럼 느껴져서다. ● '현대미술과 자동차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술과 자동차가 미학적으로 관련된 어떤 역사적 사례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글을 쓰고 싶었던 나는 위와 같은 상황에 빠져 도저히 좋은 글을 쓸 상태가 아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견디며 글쓰기에 참고하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한다. 거기서 한국의 미술가들과 현대자동차사가 협업한『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캠페인 영상들을 본다. 75만km를 뛴 어느 택시기사의 구형 그랜저 택시가 아티스트의 손을 거쳐 그만이 앉을 수 있는 택시 뒷좌석 소파로 거듭났다. '싼쵸'라는 이름이 붙은 어느 연극배우의 싼타페는 아내에게 바치는 두 번째 프러포즈 이벤트에서 가족의 추억을 담은 디오라마작품으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에 앞서 답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간 운전석 시트에 깊게 자국이 패일 정도로 애용했던 베라크루즈를 팔아야만 했던 한 여성에게는 아티스트가 그 시트를 탈바꿈시켜 만든 여행용 가방이 전달되는 영상도 본다. 차 주인들이 깜짝 놀라거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내 콧등도 시큰해진다. 그 영상 속의 그/녀가 자신들의 차와 함께 한 삶의 순간들이 "빛나는 추억"의 예술 오브제로 승화된 것 같아 덩달아 감동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내 차의 소음 문제는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엉켜있다.

에브리웨어_메모리얼 드라이브_2000년 싼타페, 디오라마, 자동차 엔진부품_70×150×55cm_2014

문득 동영상목록 중에서「쏘나타 더 브릴리언트 사운드 프로젝트(sonata the brilliant sound project)」를 발견한다. 소음에 민감해져서 그런지 거기서 유독 '사운드'라는 단어가 신경 쓰인다. 2013년 경 현대자동차사가 진행한 사회적 기여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내가 클릭한 영상에는 "4분 28초의 기적"이라는 제목과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3분 5초짜리 그 비디오의 전반부에는 청각장애를 숨기기 위해 줄곧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 중학생 방대한 군의 모습과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리고 후반부, 대한이는 아무 것도 들려주지 않는 가짜 헤드폰을 벗고 열네 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짜 노래를 듣는다. 아니, 온몸으로 느낀다. 현대자동차와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송은성박사가 함께 개발한 "쏘나타 터처블 뮤직시트"에 앉아 몸의 촉각을 통해 전달되는 리듬, 멜로디, 하모니를 경험한 것이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내게는 스트레스를 유발한 자동차의 소음과 떨림이 대한이에게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세상의 생생한 사운드와 촉각적 화음이 됐다는 사실 앞에서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하지만 이내 즐거운 자극이 내 몸과 머리를 관통하며 헝클어졌던 생각이 풀리고,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부드럽게 흐르기 시작한다.

아티스트칸_Mr.Taxi_2004년 그랜저 XG, 혼합재료_120×138×130cm_2014

이제 본론을 말하자. 사실 대한이의 영상을 보고난 후 곧바로 나는 이 글을 위와 같이 써야겠다고 방향을 정했다. 자칫하면 시시콜콜한 신변잡기 잡문으로 읽힐 내 차의 소음에 관한 에피소드와 특별한 기술력으로 만든 자동차시트에 앉아 몸의 촉각을 통해 처음으로 음악을 들은 대한이의 사례를 연결시켜 자동차라는 사물이 우리와 맺고 있는 '친밀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요컨대 자동차는 말 그대로 나, 너, 그/녀, 우리, 그들 각자의 신체에 닿아있고, 그 각자의 시공간적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 중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그 자체로 우리에게 소소한 통증부터 상상도 못한 크나큰 환희까지 줄 수 있는 특별한 사물이다. 그것은 그저 운송수단이나 생계를 위한 도구, 아니면 자신의 부와 명성을 뽐내는 고가의 사치품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자동차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 대부분이 세상을 경험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서 그 세상과 관계하도록 돕는 매우 일상적이면서 예외적으로 멋진 매체다. 또 우리의 사고와 감각이 만들어지고 축적되는 곳이자,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판단과 경험을 산출하도록 이끄는 아주 흔하면서도 내게 독특한 인생 공간이다. 거기서는 신경을 긁는 소음도 현실이고, 음악이 되는 떨림 현상도 현실이다.

양수인_이야기 그네_'94년 쏘나타 Ⅱ_300×500×200cm_2015

2.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아름다운 ● 그럼 예술 영역에서 자동차는 어떨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동차는 어떻든 간에 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인데, 예술에서 자동차는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으며, 어떤 효과를 발휘할까? 나는 여기에 미술사의 비극적 고비 하나를 풀어놓는다. ●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의 한 축인 이탈리아 미래파(futurism)를 이끈 마리네티(Filippo Tomasso Marinetti)는 자동차 숭배자였다. 오죽하면 그는 1909년 2월 20일 『피가로(Le Figaro)』지에 발표한「미래파 선언문」에서조차 그 숭배의 마음을 열광적으로 토로했겠는가. 이렇게. "우리는 세계의 광휘가 새로운 아름다움, 즉 속도의 아름다움으로 풍부해졌음을 선언한다. 폭발하듯 숨을 몰아쉬며 뱀처럼 두꺼운 파이프로 뒤 트렁크를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 기관총을 난사하듯이 으르렁거리는 자동차 한 대가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The Victory of Samothrace)보다 더 아름답다." 이 문제의 선언문에서 갑자기 불려나와 폭발적 속도의 경주용 자동차보다 못한 것으로 폄훼된 사모트라케의 조각상, 일명 니케(Nike)는 그리스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된 BC 200년 경 고대 그리스의 유물이다. 헬레니즘시기 조각으로 오늘날 파리 루브르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자 미술사학자들이 앞 다퉈 서구 미학의 원천 중 하나라 칭송해마지 않는 불멸의 예술품인 것이다. 그런 엄청난 예술 전통과 권위를 가진 니케 상을 마리네티는 기껏 기계장치에 불과한 자동차에 비교하다니.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인 마리네티에게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은 조국 전체는 물론 젊은이들이 그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런 혁신도, 미래를 향한 속도감 있는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역사의 짐에 불과했다. 그와는 달리 영국 ․ 프랑스 같은 유럽의 다른 나라나 신생국 미국이 19세기부터 발 빠르게 추진한 산업화의 빛나는 성과 중 하나인 자동차야말로 찬미하고 추종할 미래의 예술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미래파는 '기계미학'을 통한 탈 전통과 '금속성' 미래의 선취를 금과옥조로 삼았고, 리더 마리네티는 그런 미래주의 미학에 걸맞은 상징물로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밀어내고 자동차를 현대적 미의 왕좌에 올린 것이다. ● 여기까지는 좋았다. 당대의 예술이 과거의 유산에 기생하는 대신 새로움을 추구하고 동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미래 지향적 예술을 제시하는 일은 언제나 그만한 가치를 가지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주도하는 침략전쟁에 몰두하던 때였고, 파시즘에 적극 가담한 마리네티는 그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소위 "전쟁미학"을 외쳤다. 그 미학은 전쟁을 "아름답다"고 찬미하고, 인간은 기계를 지배함으로써 금속화된 불멸의 육체를 얻을 수 있다고 부추겼다. 하지만 역사의 스포일러를 통해 우리가 이미 알듯이, 파시즘 전쟁과 미래파의 전쟁미학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괴물을 낳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죽었고, 인류 공동체의 삶이 폐허가 됐으며, 서구 근대 문명의 빛나는 순간들이 말짱 헛것이 됐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경주용 자동차를 새로운 미의 화신으로 숭배하며 미래로의 혁신을 외쳤던 서구미술사의 사례가 우리에게 일깨우는 바를 여기서 새겨야 한다. '요컨대, 도착(perversion)은 치명적이다.' 아름다움 또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을 물신 숭배하는 도착, 예술을 위해 인간을 재료로 삼는 도착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그 결과는 항상 우리를 참혹하게 만든다. 여담이지만, 자동차광 마리네티는「미래파 선언문」을 발표하기 1년 전 밀라노 인근 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다 도랑에 빠지는 사고를 겪은 후 그 선언문을 쓰기 시작했다. 자동차 사고가 그에게 준 교훈은 '기계의 질주를 조심하라'가 아니라 '그것을 더욱 더 찬미하라'였던 셈이다.

김종구_자동차와 시,서,화_'90년 초 포터, 차 외관, CCTV, 쇳가루_270×1000×1000cm_2015

3. 빛나는 관계들로 ● 모더니즘예술의 역사에서 발생한 가장 큰 도착 중 하나는 소위 '유미주의(aestheticism)' 또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는 미학적 정신을 예술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가 아니라, 예술지상주의의 무소불위한 권력으로 전용한 일이다. 그에 따라 예술이 모든 것들의 우위에 있으며, 절대자이자 오직 그 자체인 것으로서 예술은 인간의 삶은 물론 모든 사회 현실로부터도 자유로운 특권을 갖는다는 식의 논리가 횡행했다. 그 논리는 현실에서 어디에도 쓸모없고,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는 예술작품의 범람으로 실현됐다. 미술관 흰 벽에 걸린 텅 빈 캔버스 앞에서 대중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대사도 움직임도 없는 무대를 보며 관객은 모멸감을 느꼈으며,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의 독서를 접고 사람들은 TV 같은 대중매체에 빠지거나 차를 타고 외출하기 시작했다. ● 오늘날 장르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예술이 '관객 지향'을 표방하며, '상호작용' '공감' '협업' '경험의 공유' 등을 모토로 내세우는 배경에는 위와 같은 모더니즘예술의 아픈 과거가 있다. 이를테면 '예술을 위한 예술'이 낳은 폐해를 극복하고, 나아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예술' 또는 '공동체를 위한 예술'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더 깊고 넓게 하겠다는 것이 오늘의 예술이 취하는 방향이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이 같은 방향의 예술이 강하고 다채롭게 추진되고 있다. 예컨대 이제 미술작품은 스튜디오에서 작가 혼자 순수한 미의식에 휩싸여 완성한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의 미술은 다양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협업하고, 작가와 감상자 간의 차별이나 구분 없이 상호 능동적 참여를 통해 산출되는 유무형의 존재, 그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활성화되는 일종의 미적 매체가 됐다. 예컨대 여러분이 어느 날 미술관에 갔더니 벽에 그림은 없고 무용수가 공간을 가로질러 다니고, 사방에서 기이한 이미지가 흘러넘치고, 여러분의 호흡과 몸짓이 홀로그램 영상과 전자 사운드로 변환돼 울려 퍼지는 경험을 했다면 그 시간과 공간, 상황과 경험이 바로 현대미술이었구나, 또 내가 그렇게 예술이 되었었구나, 여겨도 좋다.

신유라_숨겨진 기억들_'96년 아반떼, 자동차 부품, 플라스틱, 투명 수지, 우레탄 도장, 알루미늄, 비즈, 철사, LED 조명_500×230×230cm_2015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앞서 현대차의『브릴리언트 메모리즈』나『쏘나타 더 브릴리언트 사운드 프로젝트」또한 그 자체로 현대미술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차주와 한국의 현대 미술가들과 현대자동차사의 상호 협업 관계, 차주의 자기 차에 얽힌 추억과 그에 관한 아티스트의 예술적 해석 및 작품으로의 재탄생 과정, 그 일련의 상황들을 조율하고 진행시킨 프로젝트 팀원들의 보이지 않는 활동과 유튜브 영상이나 전시를 보며 느끼는 우리의 구체적인 흥미와 감동까지, 모두 예술의 이름으로 수용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기꺼이 예술이 멋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인정해줄만한 면모들이다. ● 아는 사람들은 이쯤에서 현대자동차사와 한국 미술가들의 협업 프로젝트를『비엠더블유 테이트 라이브(BMW Tate Live)』같은 사례와 연결시켜 보기도 할 것이다. 독일 BMW사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4년 간 혁신적인 퍼포먼스아트를 지원 육성하는 프로그램 말이다. 기업의 예술 후원내지는 미술과의 상호 협력이라는 맥락에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비엠더블유 테이트 라이브』의 어떤 작품에도 BMW사는 물론 자동차 이미지조차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관계란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현대예술과 BMW의 혁신적 이미지를 공유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차의『브릴리언트 메모리즈』는 훨씬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정서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친밀하고 소박한 상호관계로 구성원들을 매개하는 것 같다. 나, 너, 그/녀, 우리, 그들의 인생이 맞닿았고, 추억이 서려있으며, 이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자동차라는 매체를 통해서 말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동시에 기술적으로도 적절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 강수미

Vol.20150128e |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brilliant memories-현대자동차 GBC 캠페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