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feat of Thinker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hotography   2015_0130 ▶︎ 2015_0301

박종호_The Defeat of Thinker展_63스카이아트 미술관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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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블로그_blog.naver.com/noah25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63스카이아트 미술관 25회 MINI exhibition

입장료 / 어른 13,000원 / 어린이,청소년,경로자 11,000원

관람시간 / 10:00am~10:00pm / 입장마감_09:30pm

63스카이아트 미술관 63SKY ART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0번지 63빌딩 60층 Tel. +82.2.789.5663 www.63.co.kr

63스카이아트 미술관은 2012년부터 한국 현대 미술을 이끌어나갈 역량 있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63스카이아트 미술관 MINI exhibition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작가를 선정하여 릴레이식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25회 전시는 박종호 작가의 개인전이다. 박종호 작가는 지금의 시대와 개인과의 관계에서 상실된 인간 본연의 어떤 것을 갈구하고 희망하는 의미로 매개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 63스카이아트 미술관

박종호_The Defeat of Thinker_컬러 잉크젯 프린트_160×107cm_2015

2008년 돼지를 소재로 한 전시『Blind narcissism』에서 눈이 멀어서도 보려 하는 의지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현재 개인이 처한 정신적인 위기 상황을 묘사하였다. 이후 수차례의 전시에서 우리가 사육 당하는 존재가 아닌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세상과 자아에 관한 인식의 틀을 다시금 마련해야 할 때임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2009년 9월, 깡통을 소재로 한 사진전『사라진 사람들』에서는 우리가 들어가 있는 상자 즉 시스템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라는 사회 심리학적인 관점에 서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표현하였다. 그 후 3년여 간 작품의 내용을 '작가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그림에 도전해 왔다. 그 일련의 최근 도정이 2013년 9월의 개인전『내 안의 약속』이다. 이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사라진 사람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다.

박종호_대중이 된다는 것-존재론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_C 프린트_54×20cm_2009

이 시대의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과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고 조급할 수밖에 없다.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욕구를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인간은 자유가 원래 리모컨을 들고 여러 선택지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른 것임을 망각하고 원인 모를 소외와 불안감을 지닌 채 삶을 영위하는데 급급해 한다. 예술가 또한 자본 전체주의 속에서 고독한 투쟁을 해 나가고 있음을 표명하는 것이 오만한 엘리트주의에 빠진 것으로 혹은 보편적 기치에 어긋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임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행정기관이 이끌고 있는 예술은 매체의 구조적 융합에 매달려, 개념의 껍질만을 바꿔치기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결국 예술조차도 껍데기는 화려해 졌지만, 컨텐츠는 외산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박종호_아버지-서글픈 바램_C 프린트_65×81cm_2009

철학은 세밀한 조정을 거쳐 더 깊고 넓어졌지만 고리타분한 책속에만 갇혀 있을 뿐 사회적 영향력을 잃었다. 보편화된 엘리트들은 요약된 자투리 지식 탓에 냉소적 발언 외에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한다. 일상에서도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진 방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판단하고 행동할 시간적 여유를 취할 수 없다.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부조리를 만든 상부구조가 오히려 하부구조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다. 이 수많은 부조리를 논하면서도 나 또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책에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다시 봉건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박종호_River_C 프린트_72×72cm_2009

한나 아렌트는 이미 50년대에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망각되고 외면당하는 고독과 수모의 수세기를 거치면서도,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아왔다. 하지만 향후의 작가들이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그것이 오락이나 유흥적 형태로 표현되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과연 계속해서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그저 유희 속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을 기대하는 것이 능동적 사유는 아닐 것이다. 구조만 바뀐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리 만무하다. 그토록 예민한 자들에게 허무하지 않던 시대가 있었던가. 그러나 이 허무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신념이며 새로운 시작이 아니겠는가. 이 시대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인간적 삶을 이끌어 나갈 능동적 사유의 힘이다. 텅 빈 깡통이 되어버린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동양의 반가사유상은 바로 이 점을 역설한다. ■ 박종호

Vol.20150130e |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