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로 읽는 언어, 언어로 읽는 색채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   2015_0202 ▶︎ 2015_0227

등작_내 마음 mi corazon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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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작 플리커_flickr.com/photos/dungza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12:00pm

카페 페이버릿 FAVOR EAT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488-3번지 Tel. +070.7762.0148 favoreat.alldaycafe.kr

빨강 -고독의 힘, 무의식의 날개, 빛을 잃어버린 거리의 색 ● 빨간색은 흰색이 배합되거나 흰색이 제거되거나 그 차이는 미약하다. 공간을 붉은 색으로 이루는 것은 자칫하면 공기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역할을 하지만 적절한 분배의 빨강은 공간의 힘을 보여주며 숨통을 틔여준다. 빨강은 빨강으로 존재하지만 간혹 노랑과 만나거나 파랑과 만나면 더욱 깊은 맛을 보여준다. 색채를 다루는 힘은 생각을 다루는 힘과 비교해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 붉어짐은 엷은 오렌지 빛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빛의 세기에 따라서 그 본래의 색채가 변화한다. 화가가 색깔을 만들 때 빨강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숨기고 싶을 때 주변의 색과 빛에 대한 면밀하고도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핵심은 1센티미터의 빨강에 10센티미터의 다른 색이 만나는 지점을 잘 활용하면 공간의 구성이 꽤 단단해지며 시각적인 명상을 이룰 수도 있다 는 점이다. 왜 빨강이 고독의 힘이냐면 빨강은 혁명으로서의 붕괴가 아닌 혁명에의 길을 지시하는 색채로서의 역할 때문이다. 무의식의 날개가 달린 붉다 는 쓰러짐이 아니라 일어남을 상징함으로서 의식의 체계가 곤두선다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대중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군중들이 거리에서 쏟아져 나올 때 붉어짐은 힘의 상징을 잃고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믿음에서의 색이기 때문에 빛조차 필요 없는 이유로 빛을 잃어버린 색으로 빨강을 지정한다.

등작_던지다 throw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4
등작_매혹하다 captivate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4
등작_멀리 far away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4

주황-홀로 일어서는 색, 그리움의 저 편, 욕망을 사랑하는 타자 ● 1인칭의 관점에서 주황은 홀로 일어나는 색이다. 태양의 색은 이 주황의 자립으로 자유로워진다. 색채는 배합과 적절한 대비와 균형 있는 색의 발색으로 이루어지며 주황은 기꺼이 자신의 색을 다른 색채들에게 내어준다. 자연에서의 주황은 훌륭한 미덕이지만 인공물에서의 주황은 자칫하면 시각의 흐름을 방해하고 끊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주황을 배치하는가에 따라서 시각을 다루는 자들의 실력이 드러나며 보는 사람의 공허를 메운다. 노을이 지는 풍경. 인간의 생애가 삶과 죽음이라면 인간의 일생에서 주황이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낮에는 해로 밤에는 달로 이루어지는 색깔이기에 늘 곁에 있지만 그리운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무릎을 꿇지 않는 주황은 욕망 그 자체지만 타자로서의 엿보기와 설레임으로 언제나 노랑과 비교되며 논란을 낳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색깔은 색채 자체로서의 본질이 난잡하지 않고 정갈하게 다른 색채들과 합일될 때 아름답다는 점이다. 인간의 하루가 너덜거리지 않고 홀로 섬은 오래된 균형의 훈련이 있기에 가능하다. 주황은 균형과 조화를 펼치려고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자연의 색으로서 흡수와 팽창을 하는 것이지 인공의 색으로서의 조화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화면에 골고루 필연적으로 펼쳐지거나 단 하나의 색으로 주황이 존재할 때 빛은 주황에게 인사를 건넨다.

등작_받다 receive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4
등작_자비 mercy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4
등작_자화상 self portra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5

노랑-가난을 위한 노래, 빛의 눈물, 맑은 상상의 숨결 ● 이 세상이 물질로만 이루어졌다면 노랑은 숨죽여가며 내밀해지다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영혼을 읽는 색채로서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숨결을 넣어주는 색채가 노랑이다. 잠들지 못한 자 잠들게 하고 희망이 없는 자 희망을 넣어주는 색깔. 환하고 일렁이는 빛깔이 춤출 때 생명은 진동한다. 공간의 구성에서 노란색이 사라져도 공허한 공기가 아닌 충만한 공기로서 존재하는 힘의 노랑. 자연의 색채에서 드러내지 않으며 빛의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 바로 노랑의 아름다움이다. 신이 허락하고 신이 내려준 선물. 만약에 당신이 당신의 공간을 구성하고 화면을 이루는 색으로 노랑을 선택했다면 조금은 신중해야 한다. 너무도 밝아서 사라지는 색채이니 적절한 여백으로 노랑을 채워야 한다. 때로는 미움이 가득한 색. 상대방이 노랑으로 가득차서 사라지기를 바라면 지상은 흔들리며 그 상대를 삼킨다. 더불어 살아가는 색으로 노랑을 선택했다면 노랑 혼자서 일어서는 흔들림에 살짝 붉은 입김을 넣어라. 생기는 돋고 노랑이 주는 바람을 맞은 색들은 발랄해진다. 숨김이 없이 도드라지지도 않는 빛, 그럼에 고매한 숨. 노랑은 당신이 목마름으로 맞이하는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물이 되어 반짝거리며 찰랑일 것이다. ■ 등작

Vol.20150202a |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