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전

EXHIBITION FOR 9 : HELP WANTED展   2015_0202 ▶︎ 2015_0224 / 일요일 휴관

강석호_Untitled_리넨에 유채_215×205cm_2015

초대일시 / 2014_0202_월요일_06:00pm

참여작가 하용주_정용국_장재철_이강원 오상택_로와정_노충현_강석호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동덕로 36-15(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7더하기2명의 눈에 스쳐간 순간들 ● 『9인전』이 아니고, 『구인전』이다. 그러고 보니까 『7+2인전』도 이번 전시 제목으로 삼기에 좋을 법 했다. 모두 여덟 아티스트지만, 그 가운데 로와정은 노윤희, 정현석 부부로 구성된 이유에서 사람 수로는 아홉이 된다. 한 가지 덧붙여, 여기에는 사람을 구한다는 뜻으로 나는 '구인'이란 말을 붙였다. 사람을 구함? 화랑이 좋은 작가를 찾는다는 말이다. 갤러리 분도 박동준 대표는 나에게 늘 원칙을 설명한다. "좋은 작가들을 더 구해야 되요. 우리는 그림을 팔아야 되는 화랑이어서 시장성 있는 작가도 좋지만, 그래도 예술성이 우선입니다. 콘템포러리 아트인데 예술적 감각이 없으면 일이 될까요? 거기에 인품까지 갖추면 더 좋고요." ● 예술성과 상업성과 품성을 갖춘 작가, 그런 사람이 곧잘 있나? 여하튼 우리는 작가를 꾸준히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여기 이들을 모았다. 아직 봄이 오기엔 며칠 더 기다려야 되는 즈음에 그들은 지나가는 겨울을 아쉬워한다. 앞으로 그들과 제각각 펼쳐나갈 새로운 봄 여름 가을 겨울 앞에서 지난 계절의 끝을 함께 보내는 자리가 『구인전』이다.

노충현_유수지의 눈_캔버스에 유채_162×227cm_2014~5
로와정_Signature_쓰레받기, 빗자루, 먼지_50×50×10cm_2013

노충현은 대도시의 거대한 경관 속에 덩그렇게 놓인 장소를 그린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그 곳이지만, 실은 아무나 볼 수 없는 깊숙한 감정을 그는 아련하게 묘사한다. 이번 전시의 소재는 눈 덮인 겨울 풍경이다. 경관을 캔버스 위에 그대로 그리는 것은 후위적인 예술의 장으로 밀려났다. 노충현의 회화를 전위성으로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그림에는 대상을 응시하고 화폭에 옮기는 과정이 꿈의 흐름처럼 펼쳐져 있다. 번잡한 대도시의 겨울이 이처럼 쓸쓸하며 동시에 아늑한 기운을 띨 수 있는가? 나는 감탄한다. ● 이강원은 조각을 마치 모노크롬 회화처럼 간결하고 사색적으로 완성시킨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색추상화를 몽글몽글하게 뭉쳐놓은 것 같은 반복성의 원리 아래에서 진행된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 작업이 단순한 형태의 조합을 현대미술의 이름으로 과감히 드러낸 사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순박한 견해까지 품는다. 이 강박증적인 입체 연작은 그 탁월한 색감의 선택과 유기체가 지닌 무한증식 욕구의 은유 같은 해석의 공간을 남긴다.

오상택_128F03_캔버스에 포토그래픽 컬러 프린트_150×95cm_2015
이강원_물과 구름_스테인리스 스틸_29×31×32cm_2013

서양화가 장재철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절필 시점(요즘도 그는 작업실에서 이따금 그림을 그린다. 그 묘사력, 난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은 캔버스를 삼차원의 조각처럼 요렇게 저렇게 변형시켜 그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의 출발이었다. 작가는 예술가가 자신들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확정된 방식으로 현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그의 작품이 분명하고 매끈하기 때문에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빈틈없는 부분과 정리가 안 되는 부분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자신만의 논리성과 심미성을 마치 3.1416으로 시작하는 원주율의 비밀처럼 우아하게 완성(또는 미완성)시켜 나간다. ● 신표현주의라는 한 시대의 미술 장르를 그의 작품에 끼워 맞춰 설명할 까닭은 없지만, 하용주의 그림은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회화를 탐구하고 있다. 장지 위에 표현된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는 사실로 표명되는 내용과 사실을 애써 숨기고자 하는 내용이 뒤섞여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등장하는 붉은 방과 같이, 현실 속에서 현실을 초월하는 장치가 하용주의 그림에는 숨어 있다. 화면 속 공간은 뚜렷한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움직임이 보는 우리로 하여금 친절하게 설명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점은 화면 속에 제시된 모든 것과는 상관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즉시 받아들이는 인상과 추측, 이것은 작가의 현실참여일 수도 있고 심상의 흔적일 수도 있다. 예상컨대, 추상성이 아닌 구체성의 회화로 심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그의 시대가 오고 있다.

장재철_Time-space_파이버 글라스, 우레탄 페인트_29×214×20cm_2013
정용국_White Night-201402_77×112cm_2014

오상택은 「Sports」 이후의 일련의 작업에서 사진을 여러 차례의 수고를 거치며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다. 난 이 방식에 열광했다. 우리 감각을 기만하는 그의 작업이 예컨대 '이거 아크릴 물감을 세필로 그려 블러 처리하면 되는 거야'라고 아는 체하는 딜레탕트들의 허세를 목격할 수 있는 (예술)사회학 교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한 건, 사진가 오상택의 예술관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이식받던 단계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옷장 속에서 꿈결처럼 휘날리는 원피스는 주체가 빠진 옷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 -공허, 페이소스, 에로티즘, 이런 모두를 가소롭게 여기며 일종의 유미주의를 실현한다. ● 로와정이 설치한 작품 「86 days packed」는 예술적 층위에서 통하는 허구를 정직함으로 대체한 장난이다. 거짓은 진지하고, 정직함이 장난이라고? 예술에 적용되는 속임수는 그 이야기가 그럴싸할수록 박수를 더 받는다. 그/녀의 설치는 마치 대단한 위인이 거쳐 간 삶의 여정을 경건한 기록물로 남기고, 유물을 보존하는 형식을 빌었다. 박물관은 진실을 전시하지만 미술관은 허구를 디스플레이한다. 여기는 미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아마도 몇몇 사람은 로와정 이 펼쳐놓은 조작된 정직함을 더 신뢰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다. 특히 14분 21초 길이의 영상 끝부분에서 페이드아웃과 더불어 마침표를 찍는 한숨.

하용주_target_한지에 먹_143×155cm_2012

「White Night」은 한국화가 정용국이 담백하게 그린 목탄화 연작이다. 이는 그림의 크기나 개념을 쌓아올리는 면에서 실험을 거듭하던 그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맘 편히 그렸을 것'이란 내 말이 작가에게는 언짢게 들렸을 거다. 제목마다 따라 붙는 일련번호 부제를 보고 추측컨대, 이 그림은 매달 한 점씩 최소한 2년 동안 완성해온 삶의 축적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역시 정용국 그답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딴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는 소재가 화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미세하게 흘러내리는 목탄가루를 부여잡은 그림은 일상 속 모습이 가리키는 정용국 개인의 가족애, 피로, 정의가 함축되어 매우 절제된 표현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작가는 이처럼 희뿌연 길에서 어떤 방향을 택할까? ● 끝으로 강석호 작가. 그는 한 사람에게 속한 일부 혹은 순간을 눈으로 포착한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지닌 태도는 사소한 찰나의 부분을 돌이킬 수 없이 확정된 그림으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사소함을 단 한 번에 그것의 이 세상의 나머지 전체 -더 심각하고 존엄하고 중대하고 윤리적이고, 혹은 그 반대의 나쁜 경우-를 밀쳐내고 오로지 하나만을 드러낸다. 이렇게 드러난 것과 묻혀버린 나머지 모든 것들을 중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물론 거기엔 우리로서는 화가가 보는 것을 왜 볼 수 없는지, 자책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난 강석호의 회화가 통찰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가 가진 취향이나 자세와는 별도로 그가 이 세계로부터 퍼낸 시각적 경험은 무의미에 가깝다고 봐도 그는 우리를 탓해선 안 된다. 1990년대 한국의 탈근대주의 문학가들의 소설에서 관찰되는 묘사법은 지금도 더러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구인전』의 작가들은 모두 불안정했던 그 시대를 딛고 성장했으며, 이제 불안정을 간신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 윤규홍

Vol.20150202c | 구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