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겹의 시간 The time of Two layers

민은주展 / MINEUNJU / 閔銀珠 / sculpture   2015_0204 ▶ 2015_0226 / 설연휴,백화점 휴점시 휴관

민은주_옻칠문갑책장_나무백골에 옻채색, 자개, 한지, 옻칠_130×281×3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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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204_수요일_06:00pm

민은주 한지조형展 KOREAN PAPER MODELING EXHIBITION

관람시간 / 10:30am~08:00pm / 주말_10:30am~08:30pm 2월26일_10:30am~03:00pm / 설연휴,백화점 휴점시 휴관

롯데갤러리 광주점 LOTTE GALLERY GWANGJU STORE 광주광역시 동구 독립로 268 롯데백화점 11층 Tel. +82.62.221.1807~8 blog.naver.com/glotteart

영겁(永劫)의 인연을 다스리며 ● 한 호흡에도 쉬이 날아갈 것 같은 종이 한 장. 그 위태로워 보이는 보드라운 물성은 자연의 빛을 담아낸 결과일 뿐, 외려 강건하다. 으레 천년을 간다는 우리의 종이 한지, 이 한지에 묵묵히 삶을 투영하는 이가 있다. 한지 공예가 민은주, 그녀의 작업은 참 단단하다.

민은주_삼층찬장_나무백골에 한지, 옻칠_153×111×56cm_2006
민은주_이층책장_나무백골에 자개, 옻채색, 한지, 옻칠_116×117×46cm_2009

닥나무의 얽히고설킨 섬유가 수십 번의 물질에 의해 한 장의 종이로 거듭나는 것처럼, 작가의 작업은 한지의 견고함을 그대로 닮았다. 작업은 단순히 종이를 덧입히는 것이 아닌 여러 번 중첩한 한지를 건조해 문양을 새기는 과정을 거친다. 문양이 새겨진 한지는 선조들의 미감이 살아 숨쉬는 문갑, 반닫이, 궤, 사방탁자, 서안 등의 나무백골(白骨)에 입혀지고, 이내 남아있는 골격은 한지로 마감하거나 혹은 그 위에 옻칠을 가하게 된다. 한지 위의 옻칠은 종이의 수명을 열 배 연장시킨다 하여 예로부터 '만년지(萬年紙)'로 일컬어졌다. 지속성이 배가된 한지, 그리고 가구 명인에 의해 탄생한 백골은 백동 장석과 금박, 색색의 자개 등으로 장식되며 수려한 구조물로 완성된다. 민은주의 결과물은 의미 그대로 화려하지만, 속되지 않은 완연한 맛을 자아낸다. 기교의 과잉을 절제하며 이음새, 자물쇠 하나하나도 가벼이 넘기지 않았던 옛 명장의 섬세함을 쫓는 듯하다.

민은주_서안_나무백골에 한지, 금_30×60×30cm_2010
민은주_궤_나무백골에 자개, 옻채색, 한지, 옻칠_39×77×37cm_2008

작가는 본시 구상조각을 전공했었고 고된 작업과정을 익히 몸에 익혔던 터이다. 어찌 보면 과정의 수고로움이 낯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한지를 만져온 시간은 녹록지 않았다. 때로는 한지작업을 통해 살아감의 번뇌를 풀어내기도 하고, 변화무쌍한 자연의 이치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한지는 내게 봄날의 꽃이었고, 한여름 느닷없이 쏟아져 내리는 한 움큼의 소나기였으며, 가을의 빨간 단풍이었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폭설이기도 했다"는 그녀의 회고에서 작가가 갖는 한지에 대한 애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민은주_예단함_나무백골에 한지_30×60×40cm, 24×50×30cm, 18×40×22cm_2003
민은주_직동고리_종이백골에 한지, 금_18×36×29cm_2013

더불어, 한지에 새겨진 문양에서는 미적인 장식성 외 수복강녕(壽福康寧)과 덕이 충만한 삶(攸好德)을 기원하는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부귀와 번영 등 인생의 찬란함이 투영된 모란은 화려한 금박으로 단장하기도 하고, 맺어진 인연 희망 가득한 금슬로 빛나길 바라는 지, 얽혀있는 당초문 위에 나비 장석이 놓여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한쌍의 봉황과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십장생, 그리고 세상에 그 큰 뜻 펼치라며 힘차게 차오르는 잉어무리까지 우리 삶의 마중물이 되는 절절한 바람들이 촘촘히 새겨져있다.

민은주_삼각보석함_종이백골에 한지, 금_12×22×22cm, 11×20×20cm, 10×16×10cm_2011
민은주_기와 동경_기와에 한지, 금_36×29×7cm_2014

그러나 민은주의 문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연꽃이다. 불교에서 연기(緣起)를 강조하는 것처럼 작가는 억겁의 시간 속 수많은 인연들을 수천송이 연꽃으로, 그리고 흩날리는 꽃잎으로 은유한다. 겹겹이 쌓인 종이의 살결처럼 우리네 삶도 얼기설기 무수한 인연으로 이뤄진다. 사람살이가 내포하는 삶의 번잡스러움, 그리고 이에 의한 생의 외연이 비좁아지는 역설처럼 삶의 매 순간순간을 조율해가는 과정은 뜻 그대로 고된 행로일 터이다.

민은주_다상_나무백골에 한지, 금_18×55×39cm_2011

"꽃 피기 전에는, 기대하는 이도 없는 진달래여라" 일본의 하이쿠(열일곱자로 된 한 줄의 정형시) 문인, 오가와 하리쓰 小川破笠 1663~1747의 시며 일찍이 옛 시인은 읊었더랬다. 오랜 시간을 웅크리다 이제야 우리에게 인생 이야기를 건내는 작가, 에둘러 말하면 지금에서야 자기만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홀로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과정, 그 영겁의 시간을 창작을 통해 다스리는 세월이 부디 완성형의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이번 자리가 많은 분들의 소중한 인연으로 빛날 수있기를 기원해본다. ■ 고영재

Vol.20150204d | 민은주展 / MINEUNJU / 閔銀珠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