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Nothing we could know

2015_0206 ▶ 2015_0308 / 월요일,설연휴 휴관

초대일시 / 2014_0206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서평주_석수선_최수연 타다수 타카미네_한정우_000간_ETC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설연휴 휴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89(원서동 90번지) Tel. +82.2.760.4722 www.insaartspace.or.kr

조악한 화질, 극적으로 왜곡된 화면 속에 그것이 서있었다. 제한된 구도 속에 뒤돌아선 신체는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양손에 들린 기다란 무엇은 어떤 위협으로 다가온다. 현실과 괴리된 이미지의 촉각적인 거리감이 좁혀지는 순간, 부유하던 정보는 더 이상 저 너머의 것이 아니다. 공포물의 진부한 공식을 따라 음습한 대기 속에 누군가가 일상의 공간에 서있는 장면은 비명소리와 숨 막히는 추격, 그리고 검붉은 액체의 질척한 분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타임라인을 웅성거리게 만들었던 엘리베이터 연쇄살인마는 이렇게 상상을 넘어 현실에 진입한다. 실체 없는 이미지 정보에 구체적인 시공간이 덧입혀지면서 목을 움츠리고 주변을 살피게 만드는 기묘한 이야기. 우리는 이것을 "괴담"이라 부른다. ● 최초의 유포자가 누구였는지, 어떠한 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이미지 정보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겹겹이 달라붙는 사이, 그 틈으로 실재적 공포가 출현한다. 본 전시는 최초의 정보가 무기명의 타자들에 의해 재구성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전시 방법론으로 끌고 들어온다. 익명의 네트워크는 괴담이 생성되고 유통되기에는 최적의 서식지이며, 현대인은 여기서 공포와 불안을 소비한다. 괴담이 능동적으로 소비되고, 전략적으로 기능하는 현상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 『아무도 모른다: Nothing we could know』는 전시장을 괴담의 최초 발원지로 위장시키고, 관람자에게 괴담을 양산하는 침묵의 동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서평주_쌔빨간 눈_신문에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14

소비되는 불안과 공포 ● 이곳을 부유하는 정보의 형태는 짧은 글에서부터 이미지,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이고 일상적 증거물이라면 더욱 효과적이다. 여기에 안정된 현실을 일그러뜨릴 불안과 공포를 흘려보내면 괴담은 어느새 일상을 제한할 수 있다. 괴담으로부터 발현되는 불안과 공포는 삶의 영역에 교묘히 침투하고, 현실을 축소시킴으로써 개인을 고립시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각의 개인은 정보의 본질은 인식하지 못한 채 이것들을 일면적으로 소비하고 무의식적으로 전달하는 주체가 된다. 특히,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타고 정보들이 무한히 구전되는 과정에서 이미지는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괴담의 추동력을 증대시키는 탁월한 언술 전략으로 작동한다.

석수선_Mutation_디지털 프린트_150×210cm_2015

괴담의 탄생과 은유 ● 끈적한 어둠이 깔린 공간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이 보인다. 연못은 욕망과 그것에 기생하는 믿음이 솟아나는 장소이다. 인물이나 사건이 묘사되지 않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 자체의 불확실성은 새로운 서사의 개입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최수연의 회화 「용궁」은 신을 호출하는 작은 연못을 묘사한 것이다. 손바닥만 한 연못은 용궁으로 이름 붙여지고, 다른 세계의 매개가 됨으로써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모한다. 미지의 세계가 현실과 교류하는 통로, 그것은 불안을 동반한다. ● 석수선의 타이포그라피 작품 「Mutation」연작은 괴담이 빠르게 전이되고 확대, 재구조화되는 성질을 바이러스의 변이로 은유한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감과 동시에 불안과 공포를 통해 아프리카를 대상화하고 고립시켰다. 외부에서 온 정보들에 익명의 서사가 달라붙고 변이를 거듭하는 괴담의 특성은 텍스트의 변주를 통해 형상화된다. 미지의 연못에서 기어 올라온 불안은 일상을 위협할 사건과 만나 기이하게 변이하고 어느새 실재하는 공포로 자리 잡는다.

최수연_용궁_캔버스에 유채_190×260cm_2015

괴담의 언술 전략으로서 재구성 ● 짧은 머리에 녹색코트를 입은 인물이 망원경의 시뻘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그 옆에 선 수상한 인물 두 명은 그(녀)를 망원경으로 관찰한다. 일간지 기사 위에 덧그려진 이 상황은 장난스러우면서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서평주의 「쌔빨간 눈」을 포함한 일련의 작업들은 신문매체가 가진 공신력을 작위적으로 일그러뜨림으로써 부여된 권위를 전복시키고 이중의 프로파간다로 기능한다. 공인된 정보에 덧붙여진 가벼운 농담은 그것의 성질과 무게를 너무도 쉽게 변질시키고 흩어지게 만든다. 새로운 서사에 대한 가능성과 함께 공인된 매체에 대한 맹신에 문제 제기하며, 정보 그 자체의 순수성을 재고하게 한다. ● 한정우의 「알리바이에 관한 세 가지 거짓」은 발생한 사건을 각각의 상이한 시점에서 재구성하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필연적 틈에 주목한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세 가지 진술에는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상반된 지점이 존재한다. 진실을 추적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덧붙여진 서사들은 판단을 유보시킬 뿐만 아니라, 사건을 지켜보는 관람자들의 시선까지 개입하며 또 다른 틈이 벌어진다. ● 이것은 000간의 「공공적 괴담」에서 보다 분명하게 암시된다. 「알리바이에 관한 세 가지 거짓」은 이 "집"에서 시작된 것이다. 000간은 오랜 시간동안 비어있었던 그 집 주변 주민들의 인터뷰 녹취자료와, 그 집으로부터 수집된 다양한 오브제들을 통해 이곳에 얽힌 소문과 기억의 분열을 확장시킨다. 그런데 "그 사건", 정말 이 "집"에서 일어난 것일까? 하나의 대상은 여러 시선이 개입하며 왜곡되고 재구성된다. 괴담의 언술 전략은 선동적이며 또한 그 선동을 무력화시키는 이중의 기능을 할 수 있다.

타다수 타카미네_일본 신드롬­야마구치 편_단채널 영상_00:45:00_2012
한정우_알리바이에 관한 세 가지 거짓_캔버스에 유채_가변설치_2014

실재하는 공포와 불안 ● 타다수 타카미네의 「일본 신드롬 - 야마구치 편」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내부의 변화를 극으로 연출한 영상 작품이다. 불안감과 공포 사이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일본인들의 긴장감은 그들이 나누는 담담한 대화 속에 투영되어 있다. ● 타다수 타카미네의 작품과 함께 전시장에는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진 식음수가 비치되어 있다. 강남 지하 천연 암반에서 추출한 완벽한 미네랄 조합을 가진 「강남수(水)」는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식수이다. 일시적 합의 기업 ETC는 이번 전시를 위해, 불안과 공포를 단번에 잠식시킬 수 있는 「강남수(水)」 200여병을 제조하여 본 전시에 제공한다.

000간_공공적 괴담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사운드_가변설치_2014
ETC_강남수(水)_생수병, 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14

『아무도 모른다: Nothing we could know』는 현대 사회의 공포와 불안감을 이미지라는 매체를 통해 들여다보는 전시이다. 이미지를 통해 들여다본 괴담은 우리 사회의 병적 징후를 환기하는 통로였다. 괴담을 전시장에 구현해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의 서사를 전염시켜 변이되고 재구성되길 바란다. 전시장의 모든 내러티브와 소문들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불안과 공포에서 싹튼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괴담들은 가장 욕망 하는 것, 가장 기피 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 이 기괴한 상황 속에서 관람자, 혹은 우리 모두는 이 정보들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를 자문해본다. 신진 기획자 4인이 기획한 이 전시는 진정 "우리가 무얼 알겠는가(Nobody knows)"라는 회의가 아니라,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Nothing we could know)"는 현실 감각과 더불어 이를 통해 우리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실험적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김리원_김보현_김태인_정시우

Vol.20150206g | 아무도 모른다 Nothing we could know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