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working

백연수展 / PAIKYEONSOO / 白然琇 / sculpture   2015_0206 ▶︎ 2015_0226 / 2월19일 휴관

백연수_I am working展_혜화아트센터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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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2월19일 휴관

혜화아트센터 HYEHW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대학로 156(혜화동 90-7번지) Tel. +82.2.747.6943 www.hyehwaart.com

나무 오브제에 나타난 공간 이미지 ● 1960년대 이후 전통조각과는 달리 이른바 "비물질성(immateriality)"을 강조하는 현대조각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각의 비물질성을 "조각에서 물질을 배제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개념 조각이든 설치 조각이든 간에 조각은 재료의 미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조각은 본래적으로 물질을 다루는 작업이다. 비물질성은 역설적으로 물질성을 전제로 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조각의 비물질성이 아무리 강조된다하더라도 조각은 물질적인 사물로 경험된다. 물론 조각은 물질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조각은 본질적으로 공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형언어는 조각이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조각에서 표상되는 공간은 물질적 조건에 따라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조각적 공간이란 물질로 인해 촉발되고 또한 인지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조각가나 관람자의 마음이 투사된 조형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물질로서의 조각이 공간과의 이러한 관계성을 통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이로 인해 조각이 구현하는 공간에서 사물과 경험 사이의 조형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백연수의 나무 조각에서 특징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조형성이다. 백연수의 작업에 나타난 조형언어를 명확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여기서는 드로잉, 드로잉, 과정, 경험, 시선 그리고 공간을 핵심어로 삼아 살펴보기로 한다.

백연수_work_소나무, 가변설치_150×180×50cm_2014
백연수_work_소나무, 가변설치_150×180×50cm_2014

드로잉 ● 평평한 나무 테이블에 연결되어 솟아있는 오브제들로 이루어진 조각(이하 편의상 "테이블 조각"이라 약칭해서 부르기로 한다)은 거의 대부분 전기톱으로 거칠게 깎여진 것이다. 백연수의 테이블 조각에서는 나무 본래의 재료적 속성이 손상되지 않고 유지된다. 나무의 갈라진 틈이나 자연스럽게 변형된 형태는 나무의 고유한 자연성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나무 오브제들에 칠해진 색은 거친 붓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나무를 다루는 작업의 방식이나 태도에서 "드로잉"의 특징이 감지된다는 점이다. 드로잉은 원초적 조형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이기에 단순히 밑그림이나 어떤 형태를 제작하기 위한 준비 설계로 간주될 수 없다. 드로잉에서는 무엇보다 조형적 행위가 직관적으로 포착되기 때문이다. 연필로 종이 위에 드로잉하듯이 백연수는 전기톱으로 자유롭게 나무를 깎고 있다. 드로잉 작업은 나무를 깎는 행위 그 자체이며, 또한 작가의 마음이 어떻게 조형적 순간으로 표상되고 있는지를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이로 인해 관람자는 백연수의 테이블 조각을 마치 드로잉이 그려진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백연수_I am working展_혜화아트센터_2015
백연수_I am working展_혜화아트센터_2015

과정 ● 백연수의 테이블 조각은 하나의 견고한 덩어리로 제시된다. 이러한 조형성에서 논리적 인과성을 상정하고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테이블 조각은 관람자에게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려는 시도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깎는 드로잉적 작업은 인과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과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백연수는 과정에 중점을 둔 조형적 문법을 구사한다. 작업에서 과정은 나무라는 재료가 선택되고 작업이 완결되는 순간의 연속에서 핵심이 되는 의미를 창출한다. 테이블 조각에서 관람자에게 흔히 떠오르는 물음, 예컨대 "왜 이런 오브제를 만들었을까"라는 물음은 뒤로 밀려나간다. 오브제들은 오롯이 직관적으로 열려진 과정의 조형성으로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관람자들은 테이블 조각에서 오브제들이 제작된 원인이 아니라 과정의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백연수의 작업이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단히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련성보다는 과정의 조형적 함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프로세스 아트와 그 맥락을 같이 하지만, 그럼에도 과정 그 자체를 굳이 의도적으로 제시하거나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프로세스 아트와는 다르다. 백연수의 작업에서 과정은 물질에서 무엇이 진행되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아니다. 나무라는 재료를 통해 작가 자신의 마음을 풀어가는 순간들 사이를 연결하는 조형적 끈들인 것이다.

백연수_work_부분

경험 ● 백연수의 작업은 일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러 사물들, 예컨대 아이의 물건들, 책과 도록, 작업과 관련된 도구들, 노트북, 인형, 홍시, 슬리퍼, 두루마기 휴지, 김밥 등을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바라본다면, 실상 재현된 오브제들이 일상적 사물을 지시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테이블 조각의 오브제들은 단지 일상에서 개념적으로 규정된 사물이 아니라 조각가 백연수의 기억과 경험이 내재화된 조형적 상응물이다. 조각에는 작가의 "경험"이 표현되어 있다. 오브제들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 대한 일종의 증거인 것이다. 여기서 경험은 단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몸(물론 여기서 몸이란 생물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의미를 갖는 몸을 의미한다)과 함께 형성되는 경험을 의미한다. 전기톱으로 오브제들을 다루는 행위는 작가 자신의 몸에 대한 경험의 총체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오브제들은 몸의 행위로 투사되는 경험 세계, 즉 생활세계에 대한 조형적 반응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관람자들은 백연수의 나무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몸의 흔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백연수_work_부분

시선 ● 테이블 조각에서 직관적으로 확인되는 드로잉적 요소, 과정이 중시되는 측면, 몸에 대한 경험의 가능성 등은 공간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다. 백연수의 작업에서 공간은 우선 시선과 밀접히 연관된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테이블 조각의 오브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된 이미지를 드러낸다. 예컨대, 의자에 앉아 테이블 조각을 바라보면 서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 이미지가 열리게 된다. 전경과 후경 그리고 수평과 수직이 교차되면서 이루이진 테이블 조각의 풍경은 관람자에게 시선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공간 이미지를 제공한다. 시선으로 형성된 공간은 작가 자신이 사적으로 경험한 공간이자 동시에 관람자가 경험하는 공간, 즉 중첩된 공간이다. 백연수의 작업은 조각에서 시선이 이러한 공간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조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백연수_work_부분

공간 ● 테이블 조각에 나타난 공간 이미지는 일반 테이블 위에 놓인 사물들 사이에서 경험되는 공간과는 사뭇 다르다. 일반적인 테이블 위에 놓인 사물을 보자. 테이블과 사물 사이에는 선, 달리 말하자면 뚜렷한 경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경계는 테이블과 사물을 지각적으로 분리한다. 즉 테이블 위에 놓인 사물들은 언제든지 제거되거나 재배치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백연수의 테이블 조각은 어떠한 경계를 갖지 않는다. 오브제들은 테이블과 통합된 하나의 형태이기에 제거나 재배치의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다. 이로 인해 오브제는 일상성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 조형적 형태로 변화되고, 새로운 공간 이미지를 형성하는 구성요소가 된다. 테이블 조각에 나타난 공간은 테이블에서 분리되거나 배치될 수 없는 오브제들 사이에서 경험되는 고유한 공간이다. 하나의 조형적 덩어리로 제시된 테이블과 오브제들에서는 부분과 전체라는 개념조차도 뒤로 밀려간다. 무엇보다 테이블 조각은 분리를 전제로 이루어진 공간 개념으로서는 전혀 파악될 수 없는 공간 이미지를 보여준다. 결국 테이블 조각에서 공간이란 오브제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분리될 수 없는, 무한히 열려진 마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백연수의 나무 오브제 작품에서 감지되는 이러한 공간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 임성훈

Vol.20150208a | 백연수展 / PAIKYEONSOO / 白然琇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