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알바그래픽 NATIONAL ALBAGRAPHIC

김은진展 / KIMEUNJIN / 金恩眞 / video.photography   2015_0217 ▶︎ 2015_0306 / 월요일 휴관

김은진_이과수폭포 Iguazu Falls_단채널 영상_00:01:45_2014

초대일시 / 2015_0225_수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서교예술실험센터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SEOUL ART SPACE SEOGYO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6로 33(서교동 369-8번지) B1 Tel. +82.2.333.0246 cafe.naver.com/seoulartspace www.seoulartspace.or.kr

만행과 창작의 기로에서 유희하기 ●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황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가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것. 또 하나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무언가를 감행하거나 상황을 역으로 활용하여 하나의 전혀 다른 상황으로 이끌어 가는 것. 물론 주어진 상황이라는 것은 그 경우의 수가 천차만별이며,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 또한 개인의 경험이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진이 현실에 대처하는 자세는 후자를 많이 닮았다.

김은진_정상 mountaintop_단채널 영상_00:05:15_2015

김은진의 작업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창작환경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몇몇의 요소에서 출발한다. 흔히 작가를 떠올릴 때,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는 작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을 때에는 작가의 작업실이나 창작을 위한 물리적인 환경이 조금이라도 갖춰진 장소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일상의 공간이 곧 창작의 공간이거나 컴퓨터를 기반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을 집중력 있게 매만지고 완성하는 곳은 적어도 복잡한 일상과는 별개인 공간이 많다. 하지만 김은진에게 작업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에게 작업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노동의 대가가 보상되는 생업의 공간이며,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의 일시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재차 확인하는 감시 체제가 작동하며, 필연적인 관객과의 만남이 직간접적으로 일어나는 곳. 바로 아르바이트, 줄여서 '알바'라는 시간제 근로가 이뤄지는 삶의 현장이다.

김은진_정상 mountaintop_단채널 영상_00:05:15_2015

김은진은 이러한 아르바이트 현장을 작업실 삼아, 개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과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창작활동의 경계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졸업 후 작업을 포기하기도, 생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 작업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의 무게를 덤덤히 받아들이면서, 일탈을 꿈꾸는 작고 멋진 소망을 포기하지 않은 채, 나름의 유머코드를 발휘하여 하나 둘씩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내셔널 알바그래픽(National Albagraphic)'이라는 이름 아래, 김은진은 생업의 현장을 하나의 작업실이자, 작품이 머무는 일시적인 장소로 탈바꿈하는 기지를 발휘하기에 이른다. 그는 빵집에 꽂혀있는 일회용 비닐장갑으로 만개한 꽃을 만들거나, 지루하게 서 있는 틈을 타 정체를 알 수 없는 댄스 스텝을 밟는가하면, 버스터미널 한 켠에 자리한 매점에서 진열장에 꽂혀 있는 갖가지 과자상자를 이용해 화문석 무늬와 같은 기하학적 형상을 만들거나, 학과 사무실에서 반복되는 행정업무를 리듬있는 몸동작으로 승화시킨다.

김은진_알려지지 않은 춤2 Unknown dance 2_단채널 영상_00:04:50_2015

여기서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이뤄진 생업의 현장에는 CCTV와 같이 감시를 위한 제 3의 시선이 존재하는 데, 작가는 이를 작업을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장치로 이용한다. 이로 인해 버스터미널 매점에서 진행한 작업의 경우, 과자상자를 재배치한 행위는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만행', 피고용인인 작가에게는 '창작'이 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참고로 작가는 이 일로 인해 매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웃으며 말한다. 결국 웃지못할 만행과 창작의 기로에서 CCTV의 기록은 작가가 수행하는 행위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한 가장 기본적인 증거물로 작용하며, 작가는 그에 대한 판단을 관객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다시 영상을 편집하고, 사진과 설치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재구성한다. 버스터미널의 아르바이트 일화를 시작으로 작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현장을 역으로 작품의 기본 소재이자 창작의 장으로 적극 끌어들인다.

김은진_그랜드캐년 GrandCanyon_C 프린트_58×80cm_2014

한편 김은진이 머무는 노동의 현장은 사물들을 재조합하거나 몸동작과 동선이 미묘하게 제어되는 물리적인 기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현장이 고되고 지루할수록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작가에게 일정한 규칙과 규율 속에서 반복적인 일이 지속되는 현실 공간은 그와 정반대인 무궁무진한 상상의 공간으로 그를 이끈다. 작가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꽉 막힌 사무실 어디선가에서 슬며시 들려오는 커피메이커의 소리에서 평소 동경하던 여행지 중 하나인 이과수 폭포의 경이로운 경관을 떠올리고 이를 영상작업(「이과수 폭포」, 2014)으로 풀어내거나, 빵집에서 팔고 남은 소보로 빵의 질감에서 그랜드 캐년의 거대한 협곡을 투영시켜 설치와 사진작업(「그랜드 캐년」, 2014)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생계를 위한 작가의 업무공간은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경탄을 금치 못할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대자연의 풍경에 대한 동경심을 키우는 장소이기도 하다.

김은진_라스트씬 Last scene_단채널 영상_00:12:06_2010

이렇듯 김은진은 생업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사물을 작품창작의 소재로 삼거나, 현장의 다양한 조건을 유희적 상상의 연쇄를 일으키는 재료로 적극 활용하면서, 창작활동이 불가능한 상황, 감시와 통제시스템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는 것임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다. 현실에 대처하는 창작자의 자세, 혹은 삶의 태도로서의 예술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김은진은 동시대의 또래 작가들이 직면한 현실적 고민을 두려우나 피하지 않고, 꾸밈없이 당당하게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 황정인

Vol.20150218a | 김은진展 / KIMEUNJIN / 金恩眞 / video.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