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몇 번 찔렀을 뿐 A few little pricks

장영원_진선희_임영주_홍태림展   2015_0226 ▶︎ 2015_031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226_목요일_06:00pm

기획 / 김소원(독립큐레이터)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옵시스 아트 OPSIS ART 서울 종로구 소격동 36번지 Tel. +82.2.735.1139 www.opsisart.co.kr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은 1935년도에 실제로 벌어진 살인사건과 관련된 제목이자,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가 그린 작품의 제목이다. 질투에 눈 먼 한 남성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난자했고, 살인사건의 재판과정에서 그는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당시에 많은 멕시코인들의 분노를 자극했으며 칼로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죄의식과 양심이 결여된 이 살인자의 무감각한 발언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의성 있는 질문을 던진다. 뒤틀린 욕망에서 비롯된 수 많은 폭력사건들은 매일매일의 음식쓰레기들처럼 넘쳐나고,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기 조차 힘들다. 직접적인 폭력뿐 아니라 잠재적, 정신적인 형태의 폭력들, 그리고 수많은 고통과 상처들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 ● 문제는 '무감각증'에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설명될 법한 가해자들은 도덕적 무감각증 상태에 있으며, 자신의 내적 결핍을 충족시키는 것에만 몰입한다.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타인을 파괴해서라도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과거에는 이런 인격장애적 현상들이 극소수 정신병리적 주체들에 국한된 문제들로 치부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공감능력과 감정의 결핍이 더 이상 범죄자들에게만 국한된 지적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포스러운 지점은 가해자 뿐 아니라 피해자, 그리고 제3의 목격자 모두가 점점 무감각한 상태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당하는 폭력에 무감각한, 혹은 무감각해진 피해자들은 정당한 저항과 주체적 삶을 포기한다.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제3자들은 바다에 수장된 아이들에 대한 애도보다 당장의 내 밥벌이에 타격이 오는 현상에 분노한다. 80년 전 멕시코의 한 살인사건에 연루된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란 류의 심장이 도려진 듯한 발언들을 우리는 어제도 들었고, 오늘도 들었으며, 아마 내일도 들을 것이다. ● 여기 네 명의 작가들은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변화하는 인간사회에 저항하는 어느 지점들 위에 존재한다. 자신들의 내적 상처나 불완전한 자아, 혹은 사회적 모순이나 금기에 대해 다소 까탈스레 느끼고 반응하며 그것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슬픔, 무력감, 두려움, 아련함 등의 감정들은 작품의 직접적인 주제나 형식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유머나 사회 풍자적인 방식과 결부 되기도 한다. 개인의 고통에 더 깊은 닿을 내린 작가들은 소금 친 지렁이처럼 과거의 상처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자아를 찾고자 끝없이 무의식 속을 헤매기도 한다. 사회적 억압과 금기 등에 더 관심이 밀착된 작가들은 퇴행적인 배설의 형태를 보이거나 게임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장영원_기억된 관계_천에 유채, 혼합재료_69×113cm_2012
장영원_몇 번 찔렀을 뿐_리넨에 유채_162.5×258.5cm_2011
장영원_완벽한 파트너_천에 유채, 혼합재료_90×166cm_2012

#1. 기억의 재구성_장영원 & 꿈의 극장_진선희 ● 내면세계를 풍부한 회화성과 감각적인 표현방식으로 풀어낸 회화작품들이 1층 공간에 소개된다. 관계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무대나 영상 연출의 방법으로 재구성한 장영원작가, 그리고 자신의 독특한 꿈 세계를 기억해내고 그 파편들을 재조합 하는 진선희작가의 작업이다. 두 작가의 작업은 모두 한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스토리가 있다는 점에서도 묘한 공통분모를 갖는다. ● 관계에 대한 기억은 장영원 작가의 작업에서 지속되는 모티브다. 그는 특별히 광고, 영화, 만화와 같은 시각이미지들 중 일부를 선택적으로 가져와 사용하거나, 혹은 배우를 섭외하고 그들을 통해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다시 회화로 재현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몽환적인 영화 스틸컷 같은 그의 작업들은 상실과 아픔의 비가시적 경험세계를 영상세대적인 해법으로 풀어내는 예 중의 하나이다.

진선희_떠도는 그림자들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4
진선희_정지된 비상_캔버스에 유채_80.8×116.7cm_2011
진선희_xenitis_캔버스에 유채_145×145cm_2011

진선희 작가는 꿈이 지닌 유용한 가치에 공감하고 자신의 특별한 꿈들을 작업의 소재로 이어가고 있다. 융은 무의식을 들여다 봄으로써 불완전한 자아를 완성해 갈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꿈은 무의식의 세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기에 중요한 대상이 된다. 그녀의 물음은 실재와 허상, 일상과 상상 사이에 있으며, 둘 사이의 변증법을 통해 보다 완전한 무언가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인간은 결국 영원성의 다른 이름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다. 그녀 역시 꿈을 통해 잡히지 않는 관념을 시각화하여 실제이미지로 치환하고자 한다. 이런 조각맞춤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다.

임영주_아들아,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 텐트를 쳐야 한다_단채널 영상_00:20:07_2014
임영주_아들아,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 텐트를 쳐야 한다_단채널 영상_00:20:07_2014
임영주_신이 나셨네_단채널 영상_00:17:22_2014

#2. 뜨끔뜨뜻 문답_임영주 & 낙서 · 피똥침_홍태림 ● 앞선 회화들이 개인의 상처나 문제들에 관해 비교적 직접적이고 감성적인 접근방식을 보여 주었다면, 2층의 드로잉과 사진, 그리고 설치는 냉소적이거나 비유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사회정치적 비판의식과 경험을 조악한 낙서의 형식을 통해 표출한 홍태림의 드로잉과 글, 그리고 사건사고들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을 관찰한 계기를 통해 사람들의 기분과 기운에 직접 개입해보는 퍼포먼스를 감행한 임영주의 영상작업이 놓인다. ● 임영주 작가는 감생설화와 같은 믿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해 왔으며, 지금도 이야기가 있는 곳이면 지방 곳곳을 찾아 다닌다. 스크립트 영상으로 만나게 될 이번 작품은 2014년 독산동 파출소 전시 때 진행한 퍼포먼스와 관련된 것이다. 임작가는 SNS를 통해 접하는 사건들에 의해 사람들의 기분이 극단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발견하고 그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특정 기분을 발현시킬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영상에 담았다. 영험한 능력을 지닌 길안내자로 분한 그녀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건넨다. "요즘 잠자리는 편하신지", "텐트는 쳐 보신적이 있는지"가 그것이다. 중의적인 단어로 된 이 성적금기가 담긴 질문은 어떤 이들에겐 아버지와의 추억을, 어떤 이들에겐 성적인 무력감이나 성취감을 , 또 어떤 이들에겐 슬픔과 아련함을 불러일으킨다. 방문자의 정서를 통제하기 위해 그녀는 점쟁이 같은 목소리와 조그만 점방 같은 공간을 활용하였다. 전략적 장치를 통한 것이긴 하지만, 퍼포머가 묻는 말에 반드시 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이 상황은 다분히 권력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움찔하는 정도의 반응만 자각할 뿐, 순한 양처럼 질문에 답 할 뿐이다.

홍태림_1년 넘게 그린 그림 N-1_장지에 마카펜_195×160cm_2014~5
홍태림_통곡의 바다_종이에 펜_25×18cm_2010
홍태림_양키_종이에 펜, 색연필_29×21cm_2010
홍태림_여자친구 어플리케이션_종이에 펜_29×21cm_2010
홍태림_우유 먹기_종이에 펜, 색연필_29×21cm_2010

드로잉과 사진을 보여주는 홍태림은 현재 웹진 크리틱-칼의 발행인이자 저자로서 주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정치적인 분야에 대한 그의 관심은 동양화를 그리건 드로잉을 하건 사진을 찍건, 혹은 글을 쓰건 간에 두루 관통하고 있는 요소이다. 전공분야인 동양화를 지속할 내적 논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지필묵을 완전히 버렸으며, 대신 속도감과 표현의 용이함에 있어서 더 많은 장점을 제공하는 드로잉을 선택했다. 그의 드로잉들에는, 그의 말처럼, 밀도 높은 미적 형식에 대한 특별한 노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충 툭툭 뱉어버린 듯한 퇴행적 형식들이 되려 저항적인 메시지에 적합해 보이며, 간결한 선들로 이뤄진 표현력은 메시지들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배설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사회정치적 주제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경험들을 가공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녹여내는 점은 낙서 자체가 갖는 기능과 미적 감성, 그리고 내용적인 면에서 두루 어우러진다. 상업적 논리, 거대담론 등에 대한 무력감을 볼품없는 형식들로 보여주는 지점이 흥미롭다. ■ 김소원

Vol.20150226f | 단지 몇 번 찔렀을 뿐 A few little prick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