物의 언어

곽인식展 / QUACINSIK / 郭仁植 / painting.printing   2015_0402 ▶︎ 2015_0504 / 일요일 휴관

곽인식_Untitled_화지에 수묵, 캔버스_84×84cm_197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324b | 곽인식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0402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송아트갤러리 SONG ART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5-3 아크로비스타 아케이드 B-133호 Tel. +82.2.3482.7096 www.songartgallery.co.kr blog.naver.com/haksoosong

나는 일체의 표현행위를 멈추고 사물이 하는 말을 들으려 하는 것이다. (곽인식) ● 곽인식의 예술세계, 물物의 언어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모노(사물, 物)로 돌아가야 한다. 곽인식은 모노로부터 시작하여 모노가 되어 가는 예술가였다. 곽인식에게 物은 의미를 생산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존재하는 물 그자체여야 한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물들에게 말을 하게 해서, 사물의 말을 듣는다면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체험을 하게 하는 존재로서의 物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곽인식은 物이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조성하기 위해서, 작품에 임할 때 최소한의 개입만을 하게 된다. 物의 표면을 노출하는 것으로도 그가 드러낸 표면은 표면을 초극하고 새로운 차원의 말이 전개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 농도가 다른 미점들이 집적된 평면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공간감이 생성되고, 평온한 감각의 빛이 스미듯이 뿜어내는 무한(Infinity)이 열리게 되는 것은, '점은 점을 부르고, 점이 겹쳐지고 점을 찍는 것에서 초월한다'는 그의 말과 일치한다. 미점의 표면이 빛의 표면으로 되어가는 것은 '저 자신도 역시 '사물'입니다. … 이 점묘에 있어서도 나 자신이 '사물'이 점이 되어 간다는 기분이지요.'2 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노가 되어가는 자신, 망아忘我'에 이르기까지 몰입하는 그 경지에서 기인한다. 곽인식은 모노가 되어 구분이 없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3의 차원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점의 귀결을 맺는다.

곽인식_무제 Untitled_화지에 수묵, 캔버스_72×50cm_1978
곽인식_무제 Untitled_화지에 수묵, 금분, 캔버스_62×55cm_1979
곽인식_작품 A Work A_ed.30_종이에 에칭(동판화)_72×100cm_1983
곽인식_작품 86-5 Work 86-5_ed.50_종이에 메조틴트(동판화)_40.8×40.7cm_1986

곽인식의 物의 언어가 직관적으로 사물과 동화되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지점으로 회귀하게 되는 것은 그가 살아온 시대적 상황과 삶의 무게에 대응하는 그의 예술적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1919년생 곽인식은 일제시대와 전쟁과 분단의 한국 격동의 세월 속에서 시대가 가진 한계와 아픔을 고스란히 생에 담아야 했던 작가였으며, 일본과 한국의 미술사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곽인'이라는 재일 조선인으로 살아가야 했으며, 분단으로 인해 생의 대부분을 모국을 밟을 수 없었다. 곽인식은 1939년 일본미술학교(다마미술대학)에 진학하여, 1954년 일본 요미우리 신문 앙데팡당전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1956년 일본 아사히신문 주최 신인 선발전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75년 오사카 포럼 전시를 통해 일본 미술계에 재조명되었다. 곽인식의 유학시절 일본은 세계 미술계의 주요한 흐름들을 조우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1950년대 그의 초기작들은 서구 현대미술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었으나, 곽인식이라는 작가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1960년대 말 일본의 모노하를 예견하였던 '유리깨기 작업'4에서 동판, 자연석, 화지에 이르기까지 곽인식은 物의 언어를 향한 적막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참담한 현실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그에게 物의 언어를 향한 깊이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었을 것이다. ● 그럼에도 그는 생生을 긍정하였고, 그가 살았던 타마천 가의 자연석에 조석朝夕으로 물을 주는 것이5 그의 일상이었을 만큼, 생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물의 언어를 만나고자 하였다. 물의 언어로의 여정이라는 면에서, 화지에 미점을 집적하는 작업과 돌의 표면에 점을 찍는 것과 동판작업은 같은 맥락의 작업이다. 그는 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物너머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상태, 교감의 상태로 이끈다.

곽인식_작품 65-2-1 Work 65-2-1_패널에 동판_85×56.5cm_1976
곽인식_무제 Untitled_자연석_1976

'매일 동판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그러면서 보면 볼수록 동판의 겉 표면의 판면은 따뜻하고,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온화한 빛이 나타났다. 그 동판의 판에 구멍을 뚫고 시간의 흐름을 잃은 며칠간 동판의 표면에 한 점, 한 점 구멍을 파서 그 구멍으로부터 비추어져 나오는 심플한 빛이 눈을 찌르는 것처럼 들어왔다. 그 동판은 서서히 구멍의 점, 빛의 구멍으로 꽉 차게 된다. 또한 구멍으로 흘러 나오는 빛은 나의 의식을 아득히 멀리 초월하게 하는 것으로 정말이지 아름답다. 그리고 한 쪽 구멍의 빛에 의해 동판은 새롭게 태어나게 되며 동시에 점의 구멍에 의해 어울리는 표면이 빛의 표면으로 된다.'_곽인식6 ● 무한의 공간 속에서 점은 투명하게 숨을 쉰다. 대기의 호흡처럼 스스로 있는 듯이…농밀하기도 하고, 투명하기도 하며, 흐리기도 하고, 빛으로 충만하기도 하고, 사라沙羅 자락처럼 겹쳐지고, 없는 듯 존재하며, 생동하는 기운이 있는 미점 사이에서 소요유逍遙遊할 때(노닐 때) 그것은 점이 아닌 공간이 되고 점이 아닌 빛이 되어 무한을 만나게 한다. 곽인식의 예술세계를 언어로 표현하기는 난해하다. 곽인식의 예술언어는 물物의 언어이고, 추상적으로 다가오지만, 그가 제시하고 있는 物의 언어는 구체적 현실에서 인간과 물질이 관계항을 갖는 언어이며, 밀도 깊은 차원의 세계로 인도함으로써 귀결을 맺고 있지만, 진실한 의미에서 예술이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극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곽인식의 예술세계에는 관점이 아닌 관조가 필요하다. 무한의 세계에서 숭고한 무엇이 되어 인간의 숨결과 함께 호흡하는 점으로 흡입되어갈 때, 비로소 우리 시야에 보이는 세계가 수묵의 농담이 되고 태초의 세계와 같은 소박하지만 무위의 공간속을 노니는 다른 현실에 거하게 될 것이다. 담담하고도 조용하게 고요하고도 평온하게, 의식 너머에 존재하는 광막한 세계를 따뜻한 기운이 아물거리는 경치처럼 생의 기운이 충만한 곳으로 점은 인도한다. 곽인식의 점은 그의 생의 농도만큼 밀도있게 그리고 깊숙하게 화면 속에서 번진다. ■ 이지연

* 각주 1. 곽인식 「사물의 말을 듣는다」"소재에 빠져서, 벌써 3, 4년이 될까. 처음에는 놋쇠 판, 작년에는 철판이라고 하는 소재에 가능성을 느껴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은 모든 물질과 말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우주 가운데에는 여럿 알 수 없는 사물이 존재하고 있다. 이 많은 사물에 사물을 말하게 함으로써 무수의 언어를 들을 수 있도록 하면 현재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사물이 말하는 언어는 반드시 새로운 차원을 창출하는 것일 것이다. (중략) 나는 일체의 표현행위를 멈추고, 사물이 말하는 언어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2. 무로후시 테츠로(室伏哲郞), 「곽인식아뜨리애 인터뷰 MONO파 사물의 시작」,『판화예술48』, 阿部出版, 소와60년, 1985, p.126 "저 자신도 역시 '사물'입니다. 나라고 하는 '사물'이 종이나 유리라는 '사물' 을 마주대하는데 말을 하게 합니다. 이 점묘에 있어서도 나 자신인 '사물'이 점이 되어 간다는 기분이지요..." 3.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말로, 장자가 추구한 무위자연의 이상향을 뜻함. 4. 미네무라 도시야키(峯村敏明), Concerning Origins, Osaka Formes Gallery, 1975. 곽인식의 1962년도 유리작업들은 물의 논리를 추구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곽인식은 면의 통일성을 파기하지 않고 유리판 위에 작은 쇠구슬을 떨어뜨려 파열의 흔적을 내어 면과 금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물의 논리를 추구했고, 타블로(일반평면회화) 아닌 타블로인 유리는 타블로의 형태를 수정하면서 물의 논리를 수립하는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리작업은 곽인식 개인에게는 변화를, 일본미술계에는 60년대 말의 변화를 예고했으며, 곽인식은 모노하를 예견했다. 5. 야마무라 히토시(山村仁志), 「곽인식-어울리는 것을 위하여」,『후츄시미술관 연구기요 제4호』, 2000, p.27 돌 역시 주변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는 소재들이었으며 대부분이 곽인식의 자택 근처 타마천에서 주워 모은 둥근 돌들이었다. 곽인식은 아침, 저녁 돌에 물을 주는 것이 일과였으며 이 일은 인간과 자연의 동화를 위해 그가 스스로 처음 행한 것으로 그것은 일상의 자세를 발판으로 하는 자연 정수(精髓)로의 조용한 접근이기도 했다. 6. 야마무라 히토시(山村仁志), 「곽인식-어울리는 것을 위하여」,『후츄시미술관 연구기요 제4호』, 2000, p.79 7. 이경성, 「예술가 곽인식」곽인식의 작품에는 서양적인 논리와 구조적인 조형력은 없으나,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것은 그가 걸어온 고고한 인생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적감을 나타내며,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내재된 정신세계의 문으로 인도하고, 보는 사람까지도 조용하며 깊은 세계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 태양이 아닌, 즉 달빛에 의해 투영된 음영의 세계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양에는 원래 달을 사랑하는 옛 부터의 풍습이 있는데, 동란시대를 살아온 곽인식이 자기주변을 탐색하면서, 근원에 접근하고자 했던 것을 작품 속에 엿볼 수 있다. 화지 和紙 위에 쌓아올린 색면 色面의 구조는 섬세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물질과 생명의 요동침을 색면에 의해 표현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차원의 세계를 이탈하여, 대단히 매력적인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곽인식은 COSMOLOGY는 국가를 초월하고, 동양을 초월하며, 시대를 초월한 정신세계와 공명하는 우주와의 만남인 것이다.

Vol.20150402b | 곽인식展 / QUACINSIK / 郭仁植 / painting.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