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의 시간 Ghosts

손경환展 / SOHNKYUNGHWAN / 孫卿桓 / painting   2015_0401 ▶︎ 2015_0407

손경환_유령들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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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4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1:00am~05:0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Imaginato, ergo sum ● 손경환은 우주를 그린다. 그는 '손에 닿을 듯 가깝다고 생각했던' 드넓은 공간을 평면 위에 펼쳐놓고 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의 입자들, 시간과 공간은 물론 중력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 초신성 폭발, 우주먼지, 이런 것들은 그에게 장관(spectacle)이고 사건이다. 우주 공간을 돌고 있는 항성이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작품의 경우 수소와 헬륨 가스로 뒤덮인 목성의 표면을 재현한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한마디로 그는 빛과 색채, 그리고 가스와 먼지로 가득 찬 우주공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불빛과 산업화에 의한 스모그로 오늘날 우리는 말 그대로 '별 볼 일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만약 무한우주론을 주장하다 '신의 섭리'를 위반했다는 죄로 화형을 당한 브루노(Giordano Bruno)나 신성한 종교법정에 끌려 나가 자신의 신념을 부정해야 했던 갈릴레오(Galileo Galilei)가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시대로 여행을 올 수 있다면 통곡할 일이지만, 초등학생조차 별자리를 줄줄 외고, 우주가 빅뱅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그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탄생했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쯤은 알고 있을 정도로 우리는 우주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허블망원경과 같은 첨단도구를 이용해 촬영한 무수하게 많은 우주공간의 이미지들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우주를 그리는 일이 그렇게 새로운 일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손경환의 작품을 보며,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이 이차원적인 평면에 평탄하게 그려놓은 우주공간이 아니라 미지의 공간인 우주에 대해 상상하기를 권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손경환_유령들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5cm_2015

달력의 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농경사회에서 달의 움직임은 매우 중요했다. 조수간만의 차에 대해 과학적으로는 지구의 자전과 달의 공전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달의 차고 기움을 포함하여 일식과 월식 등의 현상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많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점성술과 만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제들(Problemata)』에서 '멜랑콜리한 기질'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그것을 발전시켜 '철학, 정치, 시학 혹은 조형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정말로 탁월한 모든 인간들은 멜랑콜리한 자들었다'고 주장하며 중세의 점성술과 결부시켜 멜랑콜리한 존재가 토성좌에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모두 토성좌 아래서 태어나야 한다. 동아시아의 오행설에 따르면 토성은 흙에 해당하지만, 서구에서 토성(Saturn)의 명칭은 농경의 신이자 측량의 신인 사투르누스로부터 유래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인 바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잡아먹는 신이기도 하다. 고야의 유명한 작품, 노인이 어린이를 삼키고 있는 끔찍한 장면을 표현한 회화 속의 주인공이 바로 크로노스이다. 토성은 행성이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 즉 항성의 의인화는 동양과 서양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은하수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중국과 한국에는 음력 칠석(七夕)날 저녁과 다음날 새벽에 내리는 비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하늘의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고대 사회에서 소치기와 베짜기는 남녀에게 부과된 대표적인 노동이었던 바 이들이 각자에게 부과된 소임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만 쳐다보고 있으니 옥황상제의 분노가 하늘에 진동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옥황상제는 이들을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놓았다. 거대한 우주의 바다인 은하수를 건널 수 없었던 이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한숨짓는 것을 보다 못한 까치와 까마귀들이 옥황상제 몰래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일 년에 딱 하루만 만날 수 있게 했다. 이날 저녁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난 이들이 흘린 눈물이 비가 되어 내렸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다시 헤어져야 하는 슬픔의 눈물이 다시 비가 되어 내렸다는 것이다. 동요에도 나오는 '푸른하늘 은하수'는 막대나선은하에 속하는 '우리은하(Milky Way Galaxy)'의 나선 팔 중 하나에 있는 지구에서 볼 때 은하수는 밤하늘에 천구를 무지개다리처럼 가로지르는 흰 빛의 흐릿한 띠 모양으로 보인다. 북반구의 별자리인 거문고자리에서 데네브(Deneb), 알타이르(Altair)와 함께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가장 밝은 알파별인 베가(Vega)를 직녀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견우성과 마주보고 있는 알타이르가 견우성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염소자리에 속한 다비흐(Dabih)를 견우성이라고 한다.

손경환_유령들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26cm_2015
손경환_유령들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detail_2015

우리나라 말에서 은하수는 '미리내'라고도 하는데 미르(용)가 승천하여 사는 시내를 뜻한다고도 한다. 서구 언어에서 은하를 뜻하는 '갤럭시(galaxy)'는 그리스어 "갈락시아스"(γαλαξίας)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은하수가 마치 젖이 흐르는 것처럼 뿌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와 인간인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힘이 장사였는데 헤라의 미움을 받아 여러 가지 고초를 겪는다. 제우스는 어린 헤라클레스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헤라가 잠든 사이 젖을 물렸는데 아기가 얼마나 강하게 빨았던지 잠에서 깨어난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밀쳐내었다. 그래서 그녀의 젖이 밤하늘에 흩뿌려졌고 그 흔적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매너리즘 시대를 대표하는 틴토레토의 그림이나 바로크의 루벤스의 작품은 이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손경환_유령들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390cm_2015
손경환_유령들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detail_2015

항성, 밀집성, 성간 물질, 암흑 물질 등이 중력에 의해 묶여져서 이루는 거대한 천체들의 무리인 은하는 인간들로 하여금 신비롭고 아름다운 설화나 신화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신비로운 우주임에 분명하지만 손경환의 작품은 이러한 신화와 다른 영역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부의 폭발 흔적처럼 함몰된 분화구를 간직한 채 암흑의 우주공간에 부유하듯 떠다니는 고체덩어리는 떠돌이행성 같기도 하고, 구름처럼 뭉쳐있는 거대한 우주먼지는 우리 은하 너머의 먼 우주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또는 팽창하는 우주가 있고, 대폭발과 함께 에너지가 우주공간으로 확산되는 장면을 표현한 것도 있다. 한마디로 그는 오디세우스처럼 우주를 여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미지는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망원경으로 촬영한 우주의 모습을 참조하되 그것의 재현이 그의 목표가 아님을 이러한 연출된 우주공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그는 마음의 우주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점묘법처럼 작은 색입자를 화면에 뿌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려주는 작품이 색상환처럼 표현한 행성이다. 그는 빛의 삼원색을 기초로 하되 보색들을 병치시킴으로써 화면을 채우고 있는 색채들이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색채로 지각되도록 화면을 구성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요소는 빛과 색채이며 이것들이 조합돼 별이나 성운이 되는 것이다.

손경환_거의 모든 것의 일부분_종이에 목탄_72×396cm_2014
손경환_거의 모든 것의 일부분_종이에 목탄_detail_2014

그러나 정작 그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작은 색입자를 흩뿌려 별을 모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며, 그것을 그는 '유령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목탄으로 표현한 대폭발은 이러한 사건의 시간을 예고하는 것이며, 삼면화로 구성된 거대한 녹색 우주는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은하에 속하는 태양은 약 46억 년 전에 초신성의 폭발에 따른 가스의 응축력에 의해 산개성단 내에서 많은 형제 별들과 함께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태양으로부터 온 빛의 은총을 받으며 생존하고 있다. 빛의 속도는 1초에 299,792,458미터라고 하니 대략 300,000킬로미터에 해당한다. 지구로부터 달까지 빛의 속도는 1.3초이며,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1억 4,959만 7,870km이므로 만약 태양이 붕괴해 빛이 사라진다면 지구에 도달하는 빛도 약 8분 20초 후면 사라진다. 우리 은하에서 가까운 안드로메다은하는 지구로부터 약 220만 광년 거리에 있으므로 그곳에서 이미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먼 과거이기도 하다. 허블(Edwin Powell Hubble)에 의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학설이 유력해진 후 대폭발, 블랙홀 등이 우주의 탄생과 죽음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지금도 우주는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별들의 죽음과 초신성폭발에 의해 형성된 우주는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뒤섞여 있음을 깨닫게 한다.

손경환_유령들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91cm_2015

손경환의 작품을 보면 사건의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라는 직선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 응축돼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그것은 유령의 시간인 것이다. 그는 우주를 대자연의 외연이라고 파악하고 있으며, 우주가 폭발하는 순간의 가시적 모습에서 느끼는 경외심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숭고가 발생한다. 결국 그가 그린 우주는 관찰된 것이라기보다 마음에 새겨진 우주의 파노라마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도, 승천한 용도, 밤하늘에 뿌려진 헤라의 젖도 없지만 작가의 마음속에 상상된 우주가 존재한다. 유령의 시간에 거주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대적 주체(cogito) 너머의 상상하는 주체, 즉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imaginato, ergo sum)는 명제일 것이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으므로 우주선을 타지 않더라도 우주공간을 여행할 수 있고, 그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손경환은 마음에 새겨진 우주를 빛과 색채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우주이면서 동시에 우리 마음속의 우주이기도 하다. ■ 최태만

Vol.20150405c | 손경환 / SONGKYUNGHWAN / 孫卿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