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門을 열다

Lucida Gallery 초대展   2015_0404 ▶︎ 2015_0430

김인경_Anamorphosis_잉크젯 프린트_60×90cm_2015

작가와의 만남 / 2015_0404_토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인경_김영일_김화숙_송인순_이동훈 이희연_장남진_조향래_한진희_홍영희

기획 / 조정화

관람시간 / 10:30am~09:00pm / 주말_10:30am~10:30pm

루시다 갤러리 Lucida Gallery 경남 진주시 호탄길 10 Tel. +82.55.759.7165

사진, 경계를 보다 ● 사물 등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가 바로 '경계'다. 그런데 '사진, 경계를 보다'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이번 전시는 보다 광의廣義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나와 너의 관계적 경계나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와 메이킹 포토Making Photo와 같은 사진표현 방식의 방법론적인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아가 안과 밖의 경계 또는 유토피아Utopia와 디스토피아Dystopia 같은 담론적 경계 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각양각색의 경계를 통해 자타 自他에 의해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의 이분법적 선택이 강요되었던 경계의 門을 열어 소통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 이번 기획전시『경계의 門을 열다』展은 루시다 갤러리의 초대전으로 약 30일 동안 갖게 되었으며 김인경, 김영일, 김화숙, 송인순, 이동훈, 이희연, 장남진, 조향래, 한진희, 홍영희 총 10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어떤 대상을, 어떤 표현 방식과 어떤 이야기로 시각화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자신의 내재적內在的 관심사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표현하고자 갈망해 왔던 것이다. 이제 사진 매체를 통해 인식의 경계에서 문을 열고 나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경계의 자리를 탐색 하거나 또 다른 경계를 추론하고 있다. 이러한 '경계'에 따른 시도는 제3의 눈으로 새롭게 '본다'라는 행위를 근간으로 가능하며 이는 경계 인식과 자유로운 사유에서 비롯되었다. ● 김인경의 'Anamorphosis' 작업은 복제에서 복제, 그리고 또 다른 복제로 넘어가는 다소 복잡한 작업 절차를 거친다. 먼저 자동차 운전석 앞에 카메라를 거치 시켜 놓고 일상의 사적 공간들을 이동하면서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그런 다음 TV를 통해 촬영 한 영상을 구현해 놓은 다음 자신의 감정과 일치 하다 싶은 이미지를 캡처해 렌즈 앞에 유리를 대고 이미지를 왜곡시키면서 사진을 찍는다. 이때 일상에서 느꼈던 불안감, 소외감, 괴리감과 같은 경험들이 투영되길 바라는데 그는 사진 작업을 통해 자신 안에 내재한 상흔들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즐긴다.

김영일_Let it be_영상, 잉크젯 프린트_36×57cm_2015

김영일의 'Let it Be'는 동성애자를 인정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게이 퍼레이드Gay Parade'를 3년 동안 촬영한 사진 및 동영상 작업이다. 그는 성 Gender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구조를 탐구한다. 레인보우 깃발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소통의 기호로 받아들여지며 성소수자의 응시를 침묵으로 말없이 받아주는 작가의 주제의식과 깊은 사념은 우리를 아프게 찌른다. 그러나 작가는 성 정체성을 쉽사리 규정하지 않고, 거리두기를 통해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들이 외부적 장치들에 의해 규정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김화숙_잃어버린 풍경_잉크젯 프린트_56×30cm_2014

김화숙의 사진, '잃어버린 풍경'은 노원구 중계동의 도심 속 풍경을 담은 사진이다. 핀홀카메라의 시선으로, 디테일이 사라진 전면은 몽롱하고 흐릿한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에게 노원구 중계동은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풍경과 비슷한 곳이다. 현란한 도시적 '풍경'안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유년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풍경을 통해 위로 받고, 누군가에게도 위로 해 줄 수 있는 풍경이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이란 미명하에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풍경'을 되살려 놓으므로 해서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풍경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송인순_선경仙境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2×121cm_2014

송인순의 사진 '선경仙境'은 보는 행위로부터 출발해 무거운 담론이나 과도한 연출에서 벗어나 차분한 감수성으로 대상을 응시한다. 그녀는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환영이며, 무엇이 상상적 풍경으로 공존 가능한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그녀의 사진에 등장하는 장소성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선경' 작품은 사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진은 수묵 담채로 그려진 산수화 한편을 보는 듯하다. 나아가 물안개로 가려진 공간은 유한한 인식의 공간을 넘어 상상과 유추의 공간 즉 여백의 공간으로서 직관의 사유를 경험하게 한다. '선경'은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과 성찰, 그리고 그것의 경계로 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동훈_Delete 57_잉크젯 프린트_20×30cm_2014

이동훈의 'Delete 57'은 먼저 지금까지 살아온 아픈 기억들을 종이 위에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우개로 지운 다음 그 지워진 흔적들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자가 된다. 그동안 되살려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의 경계에 비로소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식 아래에 남아 있는 불편한 기억을 꺼낸다. 이때 기억은 재현하기 위한 기억이며, 재현은 정신적 외상外傷을 어루만져 털어 내기 위한 재현이다. 그는 사진 작업을 통해 기억-재현-해체의 관계가 미학적 차원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해체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장남진_Nothing_잉크젯 프린트_30×20cm_2014

장남진의 사진 'Nothing'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무심한 순간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물웅덩이에 반영 된 나무 한그루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Nothing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사진에 담았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모든 것인 줄 알았던 '모든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이는 곧 무無의 세계와 맞닿는다. 그것은 그 자신을 향한 질문이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엄격한 질서와 절제된 표현,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개념과 동양적 정서와 결합한 관념적 해석은 우연과 필연, 그리고 관계와 만남 을 은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희연_설송 雪松_스테인리스 스틸, 프린트_61×147cm_2015

이희연의 '설송雪松' 사진은 'Stainless steel' 방식을 취한다. 인화지가 아닌 묵직한 스테인리스 스틸에 출력 된 소나무는 내면의 강인함이 외재적으로 쉽게 드러나며 스테인리스 스틸로 인한 조명 반사로 사진을 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보인다. 또한 조명의 밝기 정도에 따라서도 하나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감상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험적 체험을 위해 조명 밝기를 적정, 부족, 과다의 3단계가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켜질 수 있도록 스텐드 형식으로 조명을 제작해 작품 앞에 설치한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마치 자신의 삶과 닮아 눈물을 흘리며 봤다던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소나무 형상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관조한 소나무 작업은 내면으로 소통하는 대상으로 전환되고 소나무의 무한한 생명의 약동은 원경遠景과 사광斜光으로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으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조향래_174 Cloud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60×60cm_2014

조향래의 '174 Cloud'는 그녀가 현재 살고 있는 174번지의 아파트 옥상에서 찍은 구름 사진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구름은 성찰省察과 표현表現의 대상이다. 구름은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한 변화를 거듭한다.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저 구름은 덧없으며 불가피한 환영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인생을 투영 한 구름은 설명적 요소가 철저히 배제 된 채 비우고, 덜어내며 최소한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정화 시키도록 한다. 그녀는 구름이 담긴 익숙한 하늘 풍경을 제3의 심안心眼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절제된 조형적 감각으로 우리에게 관심 밖 무심했던 하늘 위 찰나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한다.

한진희_Untitled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70×70cm_2014

한진희의 사진 'Untitled'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은유Metaphor이며 환유 Metonymy다. 사진을 위한 단순한 피사체로써의 재현을 넘어 하나의 관념적 오브제로 전환 된 매개체媒介體인 것이다. 그는 필요 없음에 버려지고 방치 된 오브제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 창출로 부유하는 기억으로의 메시지를 송출하고자 한다. 오거스틴 Augustin에 따르면 기억은 경험의 이미지와 감정 등을 보존하기 때문에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오브제 재현 방식은 자발적 회상의 보고가 아닌 오래전에 지각 된 경험의 양상들이 의식의 깊은 곳을 자극하고 현재의 의식 밖으로 방출 되도록 불러 모으는 것인지도 모른다.

홍영희_Flower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30cm_2014

홍영희의 사진 'Flower'는 사진과는 거리가 먼 그림으로 보여 진다. 그녀는 꽃이 그려진 다양한 접시들을 수집해 반사율이 많도록 사진을 찍는다. 그런 다음 파스텔이나 색연필 또는 수채화 물감 등을 이용해 최대한 엷게 인화 된 종이 위에 채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림이 모두 완성 된 후에는 물에 수채화 물감을 조금 섞어 큰 붓으로 전체에 펴 바른 다음 그 위에 굵은 소금을 뿌린다. 소금이 녹으면서 점차 부분적인 선과 점 등의 크랙crack이 가도록 해서 말리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그녀의 작품은 이러한 과정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한 장을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 된다. 그녀는 사진의 특성 중의 하나인 기록과 재현이라는 큰 명제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 매체의 한계를 벗어나 실재와 허구화의 경계의 접점에서 각각의 다른 두 개를 하나로 응집 시키는 아름다움에 몰두 하고 있다. ● 이와 같이 작가 자신의 경계에 대한 인식의 시선에서 시작 된 물음, '경계의 門을 열다'전은 하나의 인식적인 헤게모니Hegemony에 의한 경계인식의 패러다임으로 작가의 시각과 관점으로 열어가는 경계 인식의 접점인 것이다. 또한 작가 자신을 둘러싼 '경계'적 모순에 가려진 현재적 입장에서 통시적으로 압축된 의식의 단면에 대한 '바라보기'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경계는 역동적으로 교차되면서 '보이는 것'에 의해 '보이지 않는 것'이 비로소 열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언뜻 보면 인물사진이나 일상의 풍경사진처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진적 체계를 빌어 그 문맥에 경계의 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감각적인 현실 재현에 있기 보다는 일종의 관념적 재현으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에 내재 된 경계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명징한 전달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온전히 읽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식의 확장으로의 길로 안내하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제기 된 경계 안으로 몰입될 수 있을 것이다. ●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불필요한 경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경계'는 관점의 선택에 따라 무한히 열려 있다. 또한 경계의 시선은 관점의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경계의 門을 열다'전을 통해 경계에 대한 잠들어 있는 시선의 의식이 깨어나기를 기대해 보며 자신 안에 구축 된 경계를 떠올려 봐도 좋겠다. ■ 조정화

Vol.20150407f | 경계의 門을 열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