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경 版畵鏡

물성, 복제, 정보로 보는 세상展   2015_0407 ▶ 2015_0531 / 월,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425_토요일_02:00pm

참여작가 강은진_곽태임_권순왕_김승연_김온환_김유림 김이진_김지혜_김현주_김희진_민경아_박기훈 박예신_박지선_백승관_석유선_송대섭_신상우 신혜영_안영찬_윤세희_이상미_이상민 이은진_이하나_임영길_장영숙_전선영 정미옥_정희진_조향숙_주성태_천영진 하임성_한규성_함창현_장원석_홍승혜

학술세미나 / 2015_0425_토요일_03:00pm_세미나실 발제자 / 고충환_신상우

주최,후원 / 진천군 기획 / 한국판화연구회_김영인(학예연구사)

관람료 / 1,500원 만 20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관람

관람시간 / 09:00am~06:00pm / 매표마감_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ALIVE JUNCHEON PRINT MAKING MUSEUM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0(장관리 732-19번지) Tel. +82.43.539.3607~9 art.jc.go.kr

세상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기 때문에 공간이 변하면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고, 시간이 변하면 공간이 휜다. 최근에 현실 생활의 많은 부분이 가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가상공간에서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인 시간개념에 심리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원자진동단위의 극도로 정밀한 시간개념과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전달하는 전자통신기술은 공간을 심하게 일그러뜨린다. 실제로 얼마 전에 개통된 KTX를 타보면 시속 30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가 우리의 산하를 드라마틱하게 왜곡시키는 것을 몸으로 느낄 것이다. 이렇게 시공간의 변화로 인해 세상이 극적으로 달라지는데 비해서 현실에 대한 몸의 적응은 너무나 느리게 진행된다. 우리는 느린 진화속도를 가진 몸으로 빠르게 변하는 풍경에 어떻게 마주하며 살 수 있을까? 디지털문명이 전통적인 시공간의 리듬을 해체해 우리는 온전히 적응되지 않은 몸으로 변화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가야만 한다.

강은진_blooming robot_목판화_40×30cm_2014
권순왕_가만히 있으라-레퀴엠의 다리에서_영상_00:02:00_2014

판화가들은 판화라는 매체의 틀로서 외부뿐만 아니라 마음의 풍경까지 받아들이고 표현한다. 판화는 인간의 몸과 같이 물성을 가진 매체다. 이것은 판재가 목판, 동판, 석판과 같이 고유한 모성(matrix)을 가진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복수로 이미지를 제작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비트에 기반 한 디지털 매체와는 달리 판화는 구체적인 몸을 가졌기에 제판과정에서 날카로운 칼과 니들과 같이 뾰족한 철제 침에 의해 찔리고 잘리는 아픔을 공유하면서 물성에 현실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변화한 시공간에 부딪치듯이 판화도 고유한 물성을 가졌기에 변화하는 예술현실에 적응해야만 한다.

김온환_illusion Ⅱ_탈색한 데님에 스텐실_27.3×22cm×3_2014
김현주_Neo-Flower 1307_디지털 프린트에 리토그래피_60×50cm_2013

뤼시앵 골드망(Lucien Goldmann)은 "작품의 형상은 매체로부터, 매체는 동시대의 사회적 구조와 현실로부터 일부분 '상동(homology)'의 관계를 맺는다"고 했다. 판화는 인간의 눈(기억)과 손으로 복제이미지를 만들어 세계와 소통하는 매체로 대략 7-8세기 이전에 개발되었고, 그 전성 시기는 사진술이 발명되기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이다. 전통적으로 판화는 농경에서 산업시대를 걸친 기간에 당시의 모습을 시각적 조형방식으로 표현하던 매체였다. 이러한 판화는 똑같은 그림을 복수로 제작하여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지식의 축적과 전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최고이동속도가 시속 40-5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느리게 움직이는 세계였고, 다루어야 할 정보도 지금처럼 정교하거나 많지 않았기 때문에, 판화와 같이 성기고, 제작이 느린 이미지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는 판화는 이미지 복제의 기능을 보다 객관적이고 정교할 뿐 아니라, 이미지의 제작 속도가 빠른 사진과 자동인쇄술에 넘겨주고, 20세기의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회화와 같이 호흡하며 복수원본(Multiple Original)예술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또다시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걸쳐 현실이 물성이 제거된 거대한 가상의 세계에 접어들자, 판재와 함께 호흡하는 몸의 물성을 가진 판화는 복수원본예술로서의 존재방식을 다시금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한다. 이 성찰의 핵심은 "가상현실로 변화하는 세계의 사회적 구조와 판화 매체는 어떤 상동의 관계를 맺을 것이며, 또한 이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서의 형상을 발현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박예신_Uncommon Day_리토그래피_38×65cm_2014
신상우_Modern People-Creative_목판화_30×40cm_2014

멀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정신은 인공지능에, 신체는 로봇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에 인간의 몸이 담당하던 삶의 현장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인간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몸으로 정서를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디지털 가상 시대에 오히려 몸이 더 중요해질 것이며, 몸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정의 할 것이다. 가상이 현실과 관계를 맺어 증강현실이 나오듯, 우리의 몸도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착용하거나 직접 신경조직에 컴퓨터를 이식하는 등 가상과 결합하게 되며, 유전자를 정보로 처리하는 후기 생물학과도 밀접하게 되어 새로운 인간상을 형성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인간은 가상공간이 지배적이 되어가는 21세기에도 역시 몸으로 현실과 직접 부딪치며 살아가야만 하고, 삶의 주체로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고유한 물성을 가진 판재에 작가의 순수한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물리적인 힘을 주어 제판한 후에, 표면에 잉크를 바르고 압력을 주어 반복해서 찍어내는 판화의 행위에서 마음의 위안과, 동시에 인간의 삶과 세계를 재현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광학적인 카메라의 메커니즘으로 세계를 보고 표현하는 사진과 수학적인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디지털로 세상을 보는 가상세계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준다. 또한 우리의 고판화에 각인되어 있던 불교의 가르침이라던가, 유교의 공동체주의와 같이 고유한 전통에 내재된 과거의 유익한 가치들을 점차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가는 현대사회에 되살려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안영찬_I AM POEM vol.023 HERE I AM_목판화, 실크스크린_76×55cm_2014
이상민_Rolling_금속에 레이저 컷팅_80×88×65cm_2011

나는 앞으로 판화매체를 이용하는 창조적인 예술가들이 앞서 설명한 판화가 가진 기존의 덕목을 이용해서 다양한 실험으로 '물성', '복제', '정보' 등과 관련된 다채롭고 참신한 세상의 풍경을 창조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성'적 측면에서는 판재에 현실뿐만 아니라 가상까지도 각인시켜, 나무나 쇠 혹은 돌과 같이 촉각적이고 원시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물성에 가상(정보)을 공유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동시에 정보로 이루어진 가상세계도 적극적으로 자신이 안주할 몸을 찾아 보다 적극적으로 물성의 세계를 탐구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3D프린터가 가상과 현실세계의 간극을 허무는 최근의 현상을 보면 이러한 예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디지털 복제시대에 원본의 개념을 아예 증발시켜버리는 '재생산으로서의 새로운 복제개념'의 설정과 '데이터베이스를 다루는 정보처리양식'의 측면에서도 판화와 관련해서 다양한 실험을 요구하고 있다.

조향숙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_목판화, 세리그래피, 신콜레_60×100cm_2011
하임성_네오-다섯명의무녀들-델휘카_에칭_60×40cm_2014

과거의 전통적 가치와 미래의 역동성이 교차하고, 원시적 물성과 가상의 데이터베이스가 교차하며, 원본으로서의 아우라와 재생산으로서의 복제가 교차하고,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차가운 수학적 세계와 따뜻한 감수성이 교차하는 이런 풍경을 '행복한 판화경/版畵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롭게 출발하는 한국판화연구회 작가들의 이번 전시를 통해서 이러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가늠해 본다. (2015년 4월) ■ 임영길

Vol.20150411i | 판화경 版畵鏡-물성, 복제, 정보로 보는 세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