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집단(彩林)

모시 모분 모초에 대한 기록展   2015_0401 ▶ 2015_04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고산금_김홍식_김효정_김미옥_김효선_김정효 김수진_김채원_김영지_나인하_남여주_노승복 박형주_송은주_손인선_윤정선_윤경미_오경아 이주은_이경희_유지연_정경미_제유성_조송_장은의 주영신_장수임_정선주_전보경_조기주_전영희 조강신_최원정_최우진_차명임_허정원_허윤희

한전아트센터 기획공모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효령로 72길 제1전시실 Tel. +82.2.2105.8133 www.kepco.co.kr/artcenter

시간은 사라짐의 방식을 감내하거나 부재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들과 함께 흘러왔다. 이때 기록은 금세 사라져 버리는 삶의 시간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여기 35년간 지속되어온 채색집단(彩林)의 전시 또한 그러하다. 그들은 긴 시간의 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대들 간의 사유작용을 나누어 온 느슨하면서도 긴밀한 집단이다. 서구미술이 압축적으로 이식되고 정착된 한국 특유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특정한 성과 기관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들에게 이 전시는 서로에 대한 채무감과 함께, 사회적 소속감을 높이고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자신을 지키게 해주는 삶의 보루이다. 이는 사적 감상이나 공적 이슈와 관련한 각각의 개인적 서사를 펼쳐놓은 하나의 연혁으로서 기록의 유의미성을 지닌다. 작가들은 마르셀 뒤샹의 '랑데부'처럼 '모시 모분 모초'의 단상에 주목하고, 회상과 망각의 과정 속에서 부조리한 삶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그 가운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출이나, 삶의 유한성을 증거하는 죽음과 그로 인한 대자연의 순환에 대한 인식 등이 발견된다.

김미옥_김홍식_김효선_김효정
박형주_송은주_오경아_윤정선
정경미_제유성_차명임

일상적 순간들은 스냅샷처럼 작품에 포착된다. 윤정선은 특정한 날의 귀가 길의 모습을, 김홍식은 플라뇌르로서 박물관에서 유구한 역사물과 대면한 감상자의 기록 행위를 피사체로 삼아, 그 만남의 순간을 담아낸다. 때로는 단편적 기억들을 응축시킨 새로운 공간이 생산되기도 한다. 오경아는 다양한 색의 선으로 구획된 2차원적 건축물을 축조하거나 하늘에서 미학적 가능성을 견지하는 송은주는 빛과 어둠의 공간을 연출해 내기도 한다. 한편 성벽의 창 너머로 다른 장소들을 교차시킨 정경미, 구조물의 풍경화로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김효정, 차가운 알루미늄 창틀 너머의 화조화를 통해 시공을 넘나드는 화면을 그린 박형주, 상이한 정치, 문화적 맥락의 풍경들을 병치시킨 김미옥, '저 너머'의 내면세계를 초현실주의적 공간으로 표현한 차명임, 건축 구조물을 색면 속으로 함몰시킨 김효선, 날라 다니는 사물들을 탄탄한 구조물처럼 표현한 제유성 등은 분절화된 시간들을 생경한 풍경으로 공간화시킨다.

김수진_김영지_김정효_이주은
장은의_조송_최우진_최원정

한편 몇몇 작가들은 서로 다른 시각장 속에 회화를 둘러싼 지속적인 탐구 과정의 한 순간을 기록한다. 김수진 작품에서 '버건디' 색의 잔상은 일상적 풍경에 대한 인상파 식의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면, 원통, 구, 원뿔을 통해 일상의 풍경을 화면 위에 구조화하는 최우진과 사과를 회화적 요소로 분석하는 김정효의 화면은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세잔의 작업 과정을 연상시킨다. 반면 텅빈 공간과 대치하는 순간의 긴장감을 포착한 조송의 둥근 형상과, 농축된 체험적 미의식을 수직으로 길게 늘어트린 김영지의 붓터치는 순간을 회화적 언어로 발화한다. 회화적 언어로 발화된 순간을 증거하는 지표이다. 최원정이 과거의 기억을 ft소품을 시간이 멈춘 듯한 진공 상태에서 '일기'로 기록한 것이나, 이주은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사물들이 이제는 '사물기행'을 위해 비행을 준비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 그리고 재현적 행위에 대해 고민해온 장은의가 '비타민처럼 맛있는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을 순차적으로 찍어낸 것 또한 그러한 순간들을 증거하는 지표이다.

고산금_손인선_유지연_이경희
장수임_전영희_전보경
정선주_조기주_주영신

때로 상이한 시간들은 모순적 정보들이 병치된 콜라주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는 작가 주체와 몸을 동일시한 주영신의 작품에 불연속적 지각에 기인한 돌연변이 형상이 등장하고, 장수임의 '8900원'이 단편적 편린들 속에서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내며 이경희의 화면이 탈맥락화된 사물과 풍경들이 선회하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근거이다. 정선주는 '자기방어적 행위'로써 자기불안 상태를 병 속의 메모와 독백으로 남기고, 고산금은 진주 구슬로 작가의 해독과 번역의 과정들을 재구성하며, 전보경은 무의미해 보이는 공의 움직임과 들숨과 날숨의 반복적 이야기로 부조리한 순간들을 조합한다. ● 다른 작가들은 수행적 행위를 통해 이러한 절차들과 내러티브를 순화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조기주는 '감추고 싶고, 잊고 싶은 삶'을 점으로 나열하여 자연의 연속적 흔적들 위에 위치시키는가 하면, 손인선은 나무에 대한 기억의 순간을 섬세하고 반복적인 필선으로 담아낸다. 또한 매일 그림일기를 남기듯 점과 선을 반복적으로 그려온 유지연은 LED 설치물로 '망각과 소망(忘望)'을 직조하고, 전영희는 동심원을 그리며 숨 고르기를 시도함으로써 특정 순간을 반복적 행위로 구현한다.

김채원_나인하_남여주_노승복
윤경미_조강신_허윤희_허정원

사라짐의 방식에 대한 고찰로, 노승복의 「노화-조화」가 순리를 거스르는 인공물의 존재양태로 유한함을 강조하는가 하면, 수탉의 죽음에 대한 허정원의 기억들은 트레팔지 위의 빠른 필치들로 환기되고, 자연과 관련한 조강신의 더블이미지는 버려진 길고양이의 허망한 죽음을 추모한다. 그러나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은 또다른 시작 혹은 상호관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자연과 우주가 지닌 무한함과 지속성을 통해 그려지는데, 윤경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한 생명력을' 화면 가득 채운 별로 은유하는가 하면, 남여주는 물 표면에 드리워진 자연의 모습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작품에 투영시키고, 박상숙은 '바시미'라는 한옥의 어우러짐의 미학을 토대로 서로 의존하는 전체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아가 허윤희의 마을이 화초의 생육 형태와 자유로운 목탄의 흔적들을 따라 생장하고, 김채원의 카오스모스가 우주의 시스템에 따라 비선형적인 형태변이를 함으로써, 이들의 작업은 '모시 모분 모초'가 분절된 것이 아닌 상호관련된 지속적 흐름 속에서 무한히 성장하고 증식되어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 장 보드리야르가 진단하듯, 한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재생 속에서 이제 더 이상 가능한 재현도 없어 보일 뿐 아니라 우리를 침수시키는 시각적 흐름 속에서 이미지가 될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 재현의 역사를 내재화시키고 재구성하는 이들의 일련의 작업들은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현재화(re-present)하여 유의미한 것으로 기록한다. 각 작품들의 '모시 모분 모초'가 만들어내는 전시의 묵직함은 작품들의 개별적 감상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간극들을 각 작품들 간의 두툼해진 시대적 변화와 변이를 토대로 당대적으로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채색집단의 이 전시는 35년 간 한국미술의 계보와 다종의 가능성을 회고하고 진단하며 나아가 예측해온 그 기록의 과정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진다. ■ 박윤조

Vol.20150412h | 채색집단(彩林) : 모시 모분 모초에 대한 기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