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묘 玄妙 INTERSTELLA

이설애展 / LEESEOLAE / 李雪愛 / installation.sculpture   2015_0412 ▶ 2015_0422 / 월요일 휴관

이설애_Ready Blossom 01_아세탈, 아크릴_35×24×8_2014

초대일시 / 2015_0414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통의동 6번지) 이룸빌딩 Tel. +82.2.730.7707 palaisdeseoul.com blog.naver.com/palaisdes

현묘 玄妙 ● 나의 작업은 '너머를 보지 않고 너머를 보는 방법' 이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너머'란 일반적으로 "높이나 경계로 가로막힌 사물의 저쪽, 또는 그 공간"을 일컬으며 넘어서 보지 않고는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공간을 지칭한다. 나는 경계를 넘어 보지 않은 공간에 나의 상상력을 대입시킴으로써 그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의 보이지 않는 공간, 세계로 표현되며 나아가서는 우주의 섭리와 연결되는 그런 곳이다. ● 산업부품을 위해 가공하거나 절단해서 남겨진 플라스틱의 흔적, 파편들은 검고 기이한 형태 그대로가 현묘하다. 나는 그것들을 다발로 쌓아올리거나 형태를 분해,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쳐 날 것으로 그대로 '제시'하고자 했다. 그로인해 그것은 실존적 형태로 놓였다. 그것은 만개한 꽃이 되기도 하고 묘한 생명체, 빛나는 별 등이 되어 그들만의 우주를 품는다. ● 별의 먼지가 지구별 하나를 이루어 인간을 탄생시켰듯 우리의 파편 또한 사방에 존재한다. 실용성을 가미한 일상생활 속 사물들은 물론이고 의도치 않은 작은 것 하나까지 우리 인생이 낳은 것들은 이미 널브러져 그들만의 또 다른 세계를 이룬다. 여기에 인간이. 아니, 플라스틱이 파생시킨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들은 우리가 그래왔듯 또 다시 하나의 별들이 되어 찬란한 은하를 형성한다. ■ 이설애

저 너머에 피는 생명 #1 검정색 ● 검정색. // 신비와 두려움이 뒤섞인 상상이 서려 있다. // 땅 속에 묻힌 검은 물질은 가늠할 수 없는 생명의 역사를 담고 있다. // 주의 비어있는 공간인 동시에, 모든 별을 품는 색이기도 하다. // 우리는 어둠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유령은 어둠 속에서 드러난다. 어둠은 빛에 의한 시각적 경험으로 얻은 익숙한 공간감에 혼란을 준다. 축척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변화시키며, 거대함과 미세함의 차이를 모호하게 한다. // 헤아릴 수 없는 검은 우주. //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을 품을 만큼 큰 것은 어둠이다. 어둠은 색이 아니라 상태, 즉 빛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상태이다. // 짙은 암흑은 미지의 차원인 죽음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 그리고 검은 꽃. // 세상에는 없는 꽃이다. #2 꽃상여 ● 오색의 꽃으로 장식한 꽃상여가 있다. 싱그러운 생명의 상징인 꽃으로 죽음의 주위를 포장한다. 하지만 그 꽃은 살아있는 꽃이 아닌, 오색의 종이로 만든 조화(造花)일 뿐이다. 가짜 꽃은 찬란하게 빛나며 저승으로 가는 길을 밝힌다. 화려한 상여는 꽃이 만발한 사후세계의 문을 여는 암호다. 죽음을 꽃으로 밝히는 것은 망자가 가는 곳이 아름다운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화려하게 치장한 운반도구는 아마도 행복할 '저 너머' 세계의 문을 열고 영혼을 그곳으로 이끌 것이다. 망자를 보내는 우리들도 언젠가는 그러한 세계로 갈 수 있을 거라 염원한다. #3 우주 ● 이설애 작가는 자신의 손을 거쳐 꽃처럼 피어난 검은 생명들을 계기로 저 너머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한다. 저 너머의 세계는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감각과 인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앎으로는 정확하게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생명 없이 피어난 것들이 미지의 세계를 재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감각할 수는 없지만 그 세계 역시 우리 삶의 일부이자 온전한 우주에서 가려진 부분임을 기억하도록 한다. 우리는 다양한 생성과정 속에서 소모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원목 테이블 하나를 만들기 위해 깎여서 제거된 목재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목재가 된 그 나무가 생장하기 위해 사라져야 했던 많은 것들도 기억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렇게 무언가가 생성되기 위해 사라진 것들을 발견하고 주목한다. 작가가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선택한 아세탈 수지는 산업용 부품을 제작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작품에 사용된 이 재료는 그 제작 과정에서 깎여나가 폐기될 것들이었다. 작가는 이처럼 무상한 것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것들이 의미 없이 버려지지 않도록 고이 모아 놓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이 폐기물에서 '쓸모없는'이라는 말 대신 '생명'과 '우주'라는 이름을 발견해 낸다. 어떤 도구 혹은 물건을 사용할 때, 그 이면에 버려진 무수한 찌꺼기들이 어떤 형상으로 어떻게 존재하는지 상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포착되는 모든 것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기 위해서 동시에 많은 부산물들을 '찌꺼기'나 '폐기물'이란 명복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언젠가는 죽는 우리 역시 이 우주가 어떤 목적을 위해 생성되는 과정에서 깎여 나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 우주의 차원에서는 인간은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의 차원에서 벗어나면, 그 모든 생성과 소멸은 자연 그 자체이며 이 넓은 우주를 이루는 법칙이다. 모든 것이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찬란하면서도 당연하다. #4 별 ● 이 검은 꽃들은 아직 완전한 생명체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곧 의미 없이 사라질 존재이기에 우리가 숨 쉬는 이 세계인 차안과, 저 너머의 세계인 피안, 혹은 죽음이란 굳게 닫힌 벽에 작은 흠집을 낸다. 생명 없는 것에서 생명력을 느끼며,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오가는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검게 핀 아세탈 생명체들은 저 너머 세계와의 얇은 벽에 난 흠집으로부터 몽글몽글 비어져 나와 피어난다. 별빛 중에 어떤 것은 수백 광년을 달려와 우리에게 닿기도 한다. 그 우주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별은 이미 소멸된 별일 수도 있고, 검은 공백으로 보이는 곳 어딘가에 이미 밝은 별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의 삶과 앎 역시 그 무수한 생성과 소멸의 속도의 어느 지점에서 방황하는 별일지도 모를 일이다. 생명 없는 밤하늘의 별들이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이 초라하고 생명 없는 것들이 슬며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싱싱한 꽃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말하듯, 검고 부스러질 것 같은 꽃들에게서 저 너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설애는 이 모든 생성과 소멸의 과정, 모든 물질과 공허가 하나라고 본다.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이 세계와 피안으로 통칭하는 미지의 세계가 하나이며, 그 모두가 영겁의 시간과 끝없는 우주의 일부일 뿐이다. 별은 인간적 경험의 시간을 뛰어넘는 빛의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진다. 인간의 삶 은 이 가늠할 수 없는 차원의 시공간이 꿈틀거리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임을 검을 꽃을 빌어 말한다. #4 검은 꽃 ● 꽃상여가 꽃이 만발한 저 너머 세계의 문을 여는 것처럼 // 검은 꽃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있었던 저 너머로의 창을 여는 열쇠다. ■ 이수

이설애 이메일_seolaelee@naver.com

Vol.20150412j | 이설애展 / LEESEOLAE / 李雪愛 / installation.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