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앙쥐와 함께 떠나는 판타지의 세계

손민광展 / SONMINKWANG / 孫旼廣 / mixed media   2015_0401 ▶ 2015_0420 / 월요일 휴관

손민광_상쾌한 드라이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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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광 블로그_blog.naver.com/crmkso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5 도심 속 찾아가는 미술관 선정작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센터신선 ART CENTER SINSUN 전남 목포시 평화로14번길 3(상동 1117-8번지) Tel. +82.(0)61.284.7887 www.sinsun.me

삶과 꿈 사이, 치유의 다리로 잇다1. 작가 손민광 근작에 있어 거푸집이 되고 있는 세 가지 요소를 언급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작가 손민광의 그림 속 화두는 '삶'과 맞닿는다. 그는 누구나 되묻곤 하는 생애에 관한 자문을 그림이라는 매제로 여밀고, 각기 다른 생의 다양성을 동화적 언어로 펼쳐놓는다. 서술의 모태가 되는 것은 세월 위에 터를 잡고 있던 기억과 내면의 편린, 일상의 단면들이며, 그 배경은 나 이외의 존재들과의 유심 및 소통, 객체에 대한 이해로 한다. 물론 여기엔 조금 더 구체적인 동인이 배어 있으니, 그건 바로 은유적인 형상과 밝고 유쾌한 색, 스토리를 통해 세계를 읽는 진솔한 시선의 유효함, 휴식과 치유의 장으로써의 예술지향이다. 둘째, 손민광의 작업 내부에 서린 메시지는 동화적 삶의 가치에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판타지적인 세상에 대한 갈구다. 이는 친화폐주의적이면서 비박애적이기만 한 세상에 놓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되물음이자, 가장 이상적인 삶이란 결국 동화 같은 사회구현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업이 치유와 여유의 원천이면서 일탈과 해방, 휴식을 도모하는 상상의 장이 되길 희망한다. 셋째, 그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새앙쥐(생쥐)'는 일차적으론 작가 자신이지만, 이차적으론 "나약한 존재이기에 현실에 지쳐있거나, 마음의 상처 입은 나약한 현대인의 메타포적 존재이다." 실제로도 그의 작업에서 이 '새앙쥐'는 예술이란 무대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지 일러주는 대리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삶의 방향에 나침반이 되고 있기도 하다.

손민광_좋은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4
손민광_좋은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14

2. 이 중 '새앙쥐'는 근래 작품에서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하나의 기호로써, 알록달록한 '새앙쥐 차'는 그 자체로 삶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이 바로 '새앙쥐'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판타지 세상일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를 정의한다. 하지만 꽃밭을 누비며, 화면 속 꿈꾸는 듯한 나무들과 어우러져 표상된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이 '새앙쥐'는 본질적으로 우리네 삶에 얹힌 많은 이야기들을 대신하는 기표이자 어쩌면 누구나 맺고 있는 모든 인연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투영으로 자리한다. 좁게는 작가의 순순한 심상을 관계적 삶과 고스란히 연계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관계적 삶, 그것은 마치 보석 같이 영롱한, 희망적이고 기쁨을 잉태한 삶을 말한다. 인간 삶의 단면들, 개인 누군가의 여정일 수도 있으며 내적으론 예술동기의 원인과 현상, 정신과 물질마저 포괄하는 조형언어를 넘나드는 미적 언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야말로 사람과 삶에 대해 보석 같이 변치 않는 믿음으로 모든 인연과 생에 대한 고귀함과 그 가치, 존재와 부재에 대한 깊은 성찰, 사람에 대한 애정을 연상케 하는 개념인 셈이다. 다만 손민광의 작업은 세상이 전달하는 다양한 슬픔의 정서를 단순한 교훈주의로 전개하지 않고 다른 관점에서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여운의 미학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일반적 '감성팔이'와는 다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다수를 대신하는 캐릭터인 '새앙쥐'를 통해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평범한 이들을 상징하며,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소환해 표상화 하는 예술가를 지정하기도 하지만, 이 '새앙쥐'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건 우리 앞에 드리워진 삶에 필요한 행복과 즐거움, 사랑이 넘치는 세계를 가로지르는 능동적 태도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3. 다양한 상징과 언어들을 통해 창의되는 손민광의 '새앙쥐'에선 한편으론 관계라는 안과 겉의 문제에서 '안'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밖의 언어를 차용하는 철학적 측면도 엿보인다. 또한 그 어떤 것, 그 어떤 존재와 세계에 대해 동일성과 존재의식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분석적이기도 하다. 특히 내적 미감의 상태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화려한 외(外)를 보여주는 방식, 내(內)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다 강렬한 외피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그저 단순한 장식성을 배제한다. 그 보단 이미지와 색감, 스토리의 결합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옳다. 이처럼 2014년 작품을 관통하는 그의 「좋은 날」 연작, 그리고 그 내부에 놓인 '새앙쥐'는 평범한 것을 고귀한 것으로 치환하는 예민한 독해와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 걸쳐 있다. 애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 애증처럼 따라다니던 인간사에 얽힌 열망과 갈등, 생활의 난맥이 형성한 삶의 덤덤한 표정과 희망의 코멘터리(commentary)를 관조하듯, 또는 갈망하듯 하나의 메시지로 치환해 화면에 귀착할 수 있었으며, 단순한 구도, 간결한 형태, 화사한 색을 통한 화두를 효과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해도 그르지 않다. 물론 그렇게 완성된 회화적 공간, 표면적 가시화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때론 억압하고 옥죄던 현실, 적당히 유지해야할 관계, 변화하려는 욕구에 반하는 환경, 유랑보다 고착에 대한 이유가 더 많은 세상의 관념들을 벗어나려는 몸짓에 과감히 접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은 눈여겨봐야할 이유를 성립시키며 시간의 누적을 이탈한 가능성을 지정한다.

4. 예술이란 언제나 그 길에서만이 새로운 나침반을 형성해왔으며,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극복할 때 비로소 달성할 수 있는 단계에 설 수 있다. 작가의 입장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그 속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다시 해체하는 수순을 반복해 진지하면서도 진솔하게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랄 수 있다. 따라서 화풍의 변화가 남다른 손민광 작업은 미래적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건 간략한 조형요소들이다.(흡사 슬픈 상황에서조차 당장에 만난 일상사에 몰입하여 놀이로 승화시키는 아이들의 단순함과 다름 아닐 만큼 단순하다.) 이런 현상은 2014년 근작 「좋은 날」 시리즈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래고들의 환영인사」(2013)나 「꿈트리와 함께하는 여행」(2012」, 「무지개 커플을 위한 이벤트」(2012」등의 구작들과는 달리 오늘의 시점으로 옮겨질수록 보다 고착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작업량이 쌓일수록 설명을 비워내고 덜어내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명료하게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젠 아예 회화에서 벗어나 설치, 퍼포먼스로 이어지는 추세에 있다. 탈장르, 탈영토, 탈구축의 시대에서 어느 하나만으로 자기언어를 완성하기란 쉽지 않음을 인지하고 열린 의식으로 예술언어를 활용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허나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이와 같은 양태를 보인 건 아니었다. 도시 야경을 담은 「상상예찬」시리즈로 순간의 지연, 박재된 시간을 다룬 2010년경만 해도 매우 정적이면서 다소 무거운 여운의 작업들을 선보이곤 했다. 대개는 질량이 느껴지는 내용이었고, 색깔 역시 무채색의 낮은 톤이 강했다. 일례로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 중심에 놓인 도시나, 그 도시가 이제 막 동트기 전의 푸르스름한, 혹은 연무가 드리운 대기와 순환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사실성은 희석되었고, 다소 몽환적이며 비현실적인 체감까지 전달하는 작업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들은 언뜻 감성적 리얼리즘, 매직리얼리즘의 한 형식으로 다가온 측면이 없지 않았다. 반면 구작들과 비교해 볼 때 현재의 그림들은 구상이 제 모습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또한 당시 작품 「A scallop」나 「A stingray」처럼 비교적 강렬한 색감이 주조를 이룬 작품들에서 드러난 꿈이나 환상과 같은 느낌들, 다양한 동물을 상징 언어로 치환한 작품들에서 읽을 수 있었던 판타지적 요소를 유지하곤 있으나 색깔은 매우 화려해졌고, 역동적으로 탈바꿈했다. 어딘지 모르게 진지함, 경건함, 엄숙함이 발현되던 수년 전과는 달리 긍정적이고 희망이란 부표가 부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간까지 이용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이는 시간적 구분을 떠나 조형적으로 자기 변별력을 구하는 단초가 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손민광_좋은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14
손민광_치유의 기류6_하드보드지,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4
손민광_치유의 기류7_하드보드지,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5

5. 그의 작업이 이렇게 변화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작가로서의 본연적 자세, 다시 말해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꼽을 수 있다. 나만의 것을 찾으려는 시도, 자신만의 언어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은 창작가들의 본능과 맞닿는다. 그런 측면은 손민광도 예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작가는 일차적으로 과거의 것에서 탈피하는 것에서 그 길을 찾으려 했고, 예술가로서 반드시 추구해야할 구태의연한 습속의 지양, 그로인한 비희열이 자연스럽게 작금의 작품을 잉태하게 된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오늘날 그의 작업은 보다 풍요롭게, 그리고 편안하고 생명하게 물들어가고 있다. 행복에 가치를 둔 애정이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읽는 내적 조타가 되었고, 사회 속 구성원으로써의 역할을 비롯한 여러 현실들은 작가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근원적 고독과 번민, 그리고 불현듯 떠올라 눈을 감지 못하는 많은 재생의 단초들을 그림 속으로, 또한 오히려 역설적인 조형미로 치환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손민광의 근작들은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이 절실하다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지만, 지난 세월이 만든 생채기와 흔적들을 극복하며 모든 것을 털고 열린 창에서 새롭게 시도하려는 작가 자신을 외면하긴 힘들다. "유년의 기억은 각박한 현실에서 이탈하여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치유의 장(場)'이자 동화를 잃어버린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정신적 쉼터가 되길 원한다"지만 실은 그림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사건에 관한 편리(片利)와 현시적 관점에서 본인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재해석, 분석해 새로운 조타를 생성하려는 조용한 몸부림이 녹아 있음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 홍경한

Vol.20150412k | 손민광展 / SONMINKWANG / 孫旼廣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