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짓기 Romantic build

박종찬展 / BAKJONGCHAN / 朴鍾贊 / painting.installation   2015_0410 ▶︎ 2015_0502 / 월요일 휴관

박종찬_구영3길 81_버려진 종이박스, 폐지에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12

초대일시 / 2015_0410_목요일_06:00pm

후원 / 도서출판 사계절_AGISOCIETY_네오룩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Multipurpose Art Hall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 1가길 7 B2 Tel. +82.2.730.5604 www.emuspace.co.kr

보는 일과 밝혀 보는 일 : 박종찬 개인전에 부쳐 ● 낭만은, 나와 대상 사이의 위치를 통해 드러난다. 낭만은, 위치 사이의 낙차가 크거나 나에 비해 대상의 위상이 완고할수록 증폭되며, 피폐함 위에 선 절대성을 불신하고, 거짓 이성으로부터 탈주하려든다. 때문에 낭만주의자는 비합리적이고 관념적이다. 박종찬은 스스로 그러하길 원하는 듯 하다. ● 시각예술가라는 이에게 의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모름지기 모두가 인식하고, 인식하므로 믿고 있는 '그것'의 이면을 밝혀주는 일일 테다. 되도록 화급하게 던져야 할 질문을 저 나름의 방식으로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도리이다. 이는 세상 모든 의무와 도리로부터 벗어난 듯 보이는 예술가가 지녀야 하는 '태도'이다. 첫 개인전에서 박종찬은 비교적 다양한 방식으로 그 헛된 의무를 다하려 한다. 그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 방식을 가진다. 첫째는 유화와 아크릴로 그린 건물 그림, 둘째는 그러한 그림 위에 천을 덧댄 것, 셋째는 바느질로 만든 「로맨틱 툴」 시리즈다. 이 세 가지 방식을 가로지르는 기준 하나는, 박종찬의 경험과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헌데, '그의 경험이, 그의 일상이 과연 우리네 경험이나 일상에 유효한가' 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

박종찬_음암로 67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289.1cm_2012
박종찬_음암로 672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2

밝힘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남들이 대상을 뒷면을 바라보지 못 할 때에 작가는 대상의 어두운 면을 밝히고, 밝혀진 부분을 보여준다. 단지 대상의 이면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유예시키는 게 작가의 몫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작가는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를 밝힌다. 과학자처럼 대상과의 거리 측정을 하기보다, 낭만주의자처럼 대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밝힐 뿐이다. 오직 대상과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밝혀 그것들이 온전해질 때 가능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자신의 경험적 관점과 일상성에 크게 기댈 때가 있다. 이 순간, 시각예술작품이라면 지녀야 할 그 의무는 때때로 너무 쉽게 무엇도 아닌 것이 되버리기 십상이다. 거리 밝히기는커녕 대상과 나 사이의 다름만이 부각되거나, 반대로 일치시켜버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 「볼 수만 있는 공간」(2010)이나 「열리지 않는 창문」(2010)은, 작가가 보기에 '묘한' 공간을 그린 회화 작품이다. 보통의 것을 넘어선 낯선 것을 말할 때, 묘하다고 한다. 묘하다기에 그가 그린 대상은 너무 일상적이다. 그러니까 묘하다고 수식된 대상이 궁핍의 존속, 부족함의 연장, 상대적 박탈, 보잘 것 없는 거짓 욕망의 확장이고, 이것들이 일상적 대상으로만 보인다는 것이다. 이때 작가와 관자는 오직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 측정에 나설 수밖에 없고, 거리 밝히기에는 실패하게 된다. 그가 캔버스에 재현한 대상은 그리 묘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마땅히 그곳에 있을 만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묘사한 「음암로 672」에 있을 수도 있다.

박종찬_천에 싸인 건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천, 바느질_45.5×53cm_2014
박종찬_내항 1길 6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6.9×130.3cm_2014

「아무것도 안 하는 집」(2012), 「구르야」(2012) 등도 다르지 않다(다만 형식상의 발전은 눈에 띤다). 보다 '묘해지는' 작품은, 근작인 「내항 1길 61」(2014)나 「어떤 층」(2014)과 「Palace」(2014)이다. 건물의 상층부를 극명히 보여주거나, 건물의 일부를 해체하여 물건처럼 만드는 방식은, 시각예술가가 기본적으로 지닐 법한 '시점 전환'의 한 양태다. 제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낭만주의자가 그러하듯 스스로 대상과의 커다란 낙차를 만들거나 위치지움, 혹은 위치 재설정의 방식이 도드라진다. 그런데 인식하고 문제를 설정하는 데 있어 박종찬이 취한 시점이 하위주체 만의 것으로 규정되고 한정지어졌다는 게 아쉽다. 거리재기의 느낌이 강하다는 건 이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대상과 내가 놓인 바탕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먼저 선행되었다면, 시점 전환과 위치 전환의 방법론 이상의 것이 나왔으리라. ● 「로맨틱 툴」은 2014년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서 몇 개월간 머물며 제작된 작품 시리즈다. 작가에 따르면, 남성적인 이미지로 고정된 공구를 바느질과 꽃무늬 천을 사용해 재현하면서 "기존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들고자" 했다. 사물의 성분을 뒤바꾸는 방식이나 고정관념 타령은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혹 '일상'이라는 개념의 문제를 설정하려 했어도 이 방법론, 표현방식은 자못 고루하다. 헌데 유구읍에서 이 시리즈를 만들어야 했던 배경이나 박종찬의 전작들과 연결관계를 봤을 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는 회화를 통해 표현하기보다 재현하는 데 방점을 두었고, 늘 자신의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첫 개인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점은 도리어 발전의 양상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시점의 변화와 다루는 매체의 변화는 늘 함께 하는 것일 터인데, 이 일련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말이다.

박종찬_Palace_천에 바느질, 나무, 파이프_가변설치_2014

첫 개인전을 연 박종찬이 작가로서 화급하게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우리'는 쉽사리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일은 '우리'에게 화급한 일이 아니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박종찬은 앞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 많다. 대상과 나 사이의 낙차를, 거리감을 '가시화'하는 것을 넘어 밝혀줘야 한다. 탈주보다 깊이 파고드는 태도로. 그 가능태는 다양하다. ■ 이정헌

Vol.20150413g | 박종찬展 / BAKJONGCHAN / 朴鍾贊 / painting.installation